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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페스트>를 통해 본 '집단적 반항
🎈페스트의 발병과 위기
< 페스트>에 나타난 집단적 반항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려면 먼저 이 작품의 구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은 페스트를 소재로 한 재난 소설답게 질병의 발생부터 퇴치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는 '오랑(Oran)' 시에서의 페스트 발생(1부), 행성 당국의 늑장 대처 페스트의 획산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
시의 폐쇄(2부), 막대한 인명 피해와 페스트 퇴치를 위한 설망적인 노력(3~4부),
페스트의 약화와 그에 따르는 새로운 삶의 시작(5부) 등의 내용이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페스트>의 배경은 오랑이라는 곳이다.
오랑은 알제에서 서쪽으로 423km 떨어진 항구도시로, 카뮈는 이 시에 거주한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이 시에 대한 묘사는 아주 사실적이다. 어쨌든 작품에서 페스트 발병 이전에 이 시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특별하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은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오랑 시의 분위기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 시민들은 일을 많이 하지만, 그건 한결같이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에서 하는 일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장사에 관심이 있다. 그들 자신의 표현대로 우선 사업을 하는 데 골몰해 있다.
물론 단순한 즐거움에 대한 취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와 영화와 해수욕을 좋아한다.
그러나 상당한 분별력이 있어서 그런 재미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위해 아껴두고 주중의 다른 날들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애를 쓴다. 저녁때 직장을 나서면 그들은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 모여 앉거나, 늘 같은 대로를 거닐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 집 발코니에 나와 앉는다.
그러던 194X년 어느 날, 오랑 시에서 쥐 떼가 죽어가는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좀처럼 쥐를 찾아보기 힘든 건물 안에서 죽은 쥐 떼가 발견되기도 하고, 공장에서도 수십마리의 쥐가 죽어나갔다. 시민들의 불안과 근심이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하지만 어떤 날은 쥐떼의 출현이 잦아들기도 하고, 또 쥐 떼의 죽음이 진정세를 보이기도 해서 시민들은 곧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생각하고 차일피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사태는 오히려 악화된다. 죽은 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사람들이 고열과 구토로 고통을 받고 급기야 그들의 몸에서 검은 반점이 생기는 등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 당국은 이 질병을 페스트로 단정 짓기를 꺼린다. 그사이에 기온이 올라갔고 비도 내리면서 페스트가 창궐하는 데 더없이 좋은 여건이 조성되어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난다.
페스트를 소재로 한 니콜라 푸생의 회화 (La Pesle d'Ashad)(1630)
행정 당국과 의료진은 마지못해 이 병을 페스트로 규정하고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하지만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페스트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행정 당국은 페스트를 공식 선언하고 결국 오랑 시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사망자 수가 다시 서른 명으로 늘어났을 때, 베르나르 리유는 저들이 겁을 먹었소'라고 말하며 지사가 내미는 전보 공문을 받아 읽었다. 전보에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라고 적혀 있었다.”
폐쇄 조치 이후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조치로 인해 오랑 시는 고립되고 많은 사람이 생이별을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요컨대 오랑 시민 전체가 페스트의 포로가 된 것이다. 참고로 카뮈는 애당초 <페스트>의 제목을 갇힌 자들(Let's Piisonniers)〉, 〈헤어진 사람들(Les Séparés)〉로 정하 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랑 시는 폐쇄 조치 이후 생지옥이 되고 있다.
🎈자원보건대의 활동 - 리유, 타루, 그랑, 랑베르
이 같은 끔찍한 상황에서 페스트에 대해 반항하는 자들이 나타난다. 그들 중에시도 특히 '자원보건대에 속하는 자들의 활동이 가장 눈에 띈다. 그들은 의사 리유', 외지에서 우연히 오랑으로 와 머물고 있던 '타루', 시청 서기 '그랑', 그리고 아랍인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오랑 시에 왔다가 갇힌 기자 랑베르' 등이다.
이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페스트에 대한 집단적 반항의 구체적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페스트 발병 직후 자원보건대가 조직된 것은 아니다. 자원보건대가 조직되어 활동하기까지는 페스트로 인한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 자원보건대는 오랑 시민 중 일부의 생명을 무릅쓴 결단에서 비롯된 조직이다. 다시 말해온 힘을 다해 페스트에 맞서려고 하는 몇몇 사람의 반항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때 자원보건대를 처음으로 입에 올린 사람은 타루다.
“그래서 나는 자원보건대를 조직하는 구상을 해보았습니다. 내게 그 일을 맡겨주시고, 당국은 빼버리기로 합시다. 게다가 당국은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여기저기 친구들이 있으니,
우선 그들이 중심이 되어주겠죠.
그리고 물론 나도 거기에 참가하겠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 리유가 말했다. (중략)
리유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다가 생명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겠지만요. 그러니 좌우간 알려는 드려야지요.
잘 생각해보셨나요?"
자원보건대기 타루의 제인에 의해 조직되었지만, 이조직의 핵심 인물은 의사 리유라고 할 수 있다. <페스트>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서술자이기도 한 리유는 병든 아내를 멀리 요양원으로 보내고 노모와 지내고 있는 35세쯤 되는 의사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구한다는 대단한 소명 때문에 의사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페스트가 확산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점차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변해간다.
리유에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페스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리유의 눈에는 수많은 사람이 페스트로 죽어간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로부터 리유의 반항이 시작된다.
그가 내세우는 행동 모럴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에게 가장중요한 것은 페스트에 걸리지 않고, 페스트에 걸려도 남에게 옮기지 않고, 페스트에 걸렸으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리유는 페스트의 완전 퇴치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찾는다. 그렇다고 사랑, 행복, 신앙 같은 관념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가치를 위해서 유용한 방법과 수단을 추구할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관념이나 가치도 삶을 대신할 수없다는 것이 리유의 생각이다.
이러한 리유의 태도는 오랑 시에서의 페스트 창궐을 시민들이 지은 죄에 대한 신의 징벌로 해석하는 파늘루 신부의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리유는 특히 순진무구한 한 어린아이가 페스트에 걸려 단말마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초월적 존재에 기대는 파늘루 신부를 용인할 수 없었다. 페스트라는 거대악에 맞서고 있는 리유에게 건강과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리유에게는 건강과 생명이 그의 행동을 구하는 정언명령(impératifcatégorique)'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 외익 다른 선(善)을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리유가 신봉하는 '성실성'이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하고 랑베르는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처럼 페스트가 창궐하는 극한 상황에서 초인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일을 해내는 자를 영웅이라고 한다면,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리유의 모습은 참다운 의미에서 카뮈에 의해 창조된 현대적 영웅이라 할 수 있다.
타루는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오랑 시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우연히 이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혼자 이 도시의 이곳서곳을 어슬렁거리고, 해수욕을 즐기고, 시민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들의 기벽( 奇癖)을 기록하면서 지냈다.
<페스트>의 화자인 리유의 증인대로 타루의 이런 기록은 후일 오랑 시를 덮친 페스트에 대한 연대기를 작성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
페스트 발병 이전에 타루와 리유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저 우연한 기회에 몇 차례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페스트가 확산되면서 다루는 점자 리유와 의기투합해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급기야 자원보건대 조직을 의논하게 된다.
그렇다면 타루는 왜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위험한 자원보건대 조직을 제안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타루의 결심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이 같은 타루의 결심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타루의 아버지는 검사였다. 그는 종종 범법자들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사형장에 입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괘종시계를 맞추어놓고 자다가 종소리가 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를 알게 된 후, 타루는 집에서 뛰쳐나온다.
그 이후 타루는 정치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자행하던 정치 조직의 위선을 겪으면서 이른바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갖게 된다. 그 기준에 의하면 '목적'도 순수하고 정당해야 하며,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 역시 순수하고 정당해야 한다.
이 같은 그의 소신이 후일 페스트가 맹위를 떨칠 때 자원보건대의 선봉에서 활동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타루는 페스트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가 결국 페스트에 걸려 죽고 만다. 하지만 리유는 이런 타루에게서 신 없는 세계에서의 성인의 모습을 본다. 실제로 타루의 삶의 목표는 신없는 세계에서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는 이 꿈을 결국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흑사병을 소재로 한재난소설, <페스트> 표지
'결국 하고 솔직한 어조로 타루가 말했다.“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聖人)이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안 믿으시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이죠.
오늘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이 신 없이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랑은 어떠할까? 그는 일개 시청 서기에 불과했다.다시 말해 별 다른 특징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또 그랑은모든 면에서 보잘것 없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 그저 첫 몇 줄을 쓴 것이 고작인 소설 집필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을 유일한 보람으로 여기면서 사는 그야말로 답답하면서도 고행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랑은 소설을 쓰거나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합당한 의미를 가진 낱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또 그렇게 하기위해 라틴어를 다시 배우기도 하는 일종의 완벽주의자다.
그런 그의 눈에는 페스트라는 병의 실체를 알고도 이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회피하는 행정당국자들이 모두 비겁해 보인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페스트와>의 싸움에 대해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반항의 첫걸음으로 가장 힘들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실 카뮈가 그랑의 이름을 '그랑(Grand)'이라고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어에서 그랑(grand)은 '위대한, 큰' 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랑은 평범한 한 명의 오랑 시민에 불과하지만, 자원보건대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하는 정말로 위대한 인물로 비친다. 한마디로 영웅인 것이다. 실제로 리유는 <페스트>의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영웅으로서의 그랑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이 소위 영웅이라는 것의 전례와 본보기를 세워놓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반드시 이 이야기 속의 한 사람이 영웅이어야 한다면 서술자는 바로 이 보잘것없고 존재감 없는 영웅,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 없는 이 영웅(그랑)을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랑베르를 살펴보자. 랑베르는 파리에서 온 신문기자다. 아랍인 삶의 조건을 취재하기 위해 오랑시에 왔다가 페스트로 인해 그곳에 갇히게 되었다. 외지인이라 할 수 있는 랑베르는 페스트 발병 이후 오랑 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사랑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파리에 머물고 있는 애인과 재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같은 그의 태도는 개인주의적, 도피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랑베르는 점차 자신의 태도를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특히 의사 리유의 아내가 멀리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이렇게 해서 랑베르는 오랑 시에 머물고 있는 한, 그 역시 어떤 식으로든 페스트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또 이 자각은 자신이 오랑 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외지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그는 자원보건대에 가담해 페스트에 맞서 열심히 싸운다. 또한 명의 '반항인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대로 다 보고 나니,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한 것입니다. "
오랑 시민들, 그리고 특히 자원보건대의 노력으로 극으로 치닫던 페스트가 기적처럼 사라지고 시의 폐쇄령이 풀리자 도시는 축제 분위기에 휩씨인다.
"그 주일에 통계 수치가 어찌나 낮아졌는지
시 당국은 의사협회의 자문을 받아 질병이 저지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중략)
지사는 전체적인 기쁨에 동조하기 위해 건강 시대와 마찬가지로 등화관제를 해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시민들은 차고 맑은 하늘 아래, 불이 환하게 켜진 거리로 떠들썩하게 무리를 지으며 웃으면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사람들을 보면서 리유는 이렇게 생각한다. '페스트가 물러갔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가르쳐준 교훈과 흔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리유는 페스트가 창궐했던 때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 기록이 바로 <페스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자원보건대의 주요 구성원 모습에서 저자인 카뮈의 모습이 조금씩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리유의 모습이다. 카뮈가 의사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폐결핵을 앓으면서 의사들과 많은 접촉을 했고, 그러면서 그들의 삶과 직업에 대해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타루가 보여주는 해수욕, 소요(小搖)에 대한 취향, 사형과 살인을 거부하는 태도는 그대로 카뮈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랑은 어떨까? 소설을 쓰면서 완벽한 표현을 추구하는 그랑의 고통스러운 열정은 <페스트>를 쓰는 카뮈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또 카뮈가 학창 시절 시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자원보건대의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하는 그랑의 모습에서 일찍부터 가난을 알고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살아온 카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랑베르는 어떨까? 카뮈는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게다가 사랑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랑베르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리유, 타루, 그랑, 랑베르라는 자원보건대의 핵심 인물들이 카뮈 자신의 분신(分身)이라는 점을 <페스트>에서 분명히 보여준다. 또 이것은 이들이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이며, 이들이 힘을 합쳐 페스트를 물리치기 위해 조직한 자원보건대는 돈독한 형제애와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맺어진 '반항하는 우리', 곧 집단적 반항의 가장 훌륭한 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페스트>가 카뮈의 전 작품 중 훈훈한 인간애가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IV <페스트>를 통해 전하는 세 가지 메시지
첫째, 페스트와의 투쟁에서 자원보건대의 구성원이 집단적 반항을 통해 보이준 공동체적 휴머니즘이다.
이 작품에서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준 사람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스(Noblessise Oblige)를 말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는 누구나(ninfortequi)' 고귀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둘째, 재난을 한 번 경험한 다음에는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재난이 닥쳤을 때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검이다. 리유는 오랑 시에서 페스트가 퇴치되었을 때조차도 이 질병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다시 인간을 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의 재난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서는 행정적, 제도적 정비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페스트>의 소재가 되고 있는 페스트의 의미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성찰이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분명 질병이다. 하지만 작품이 집필된 배경을 고려하면 페스트는 전쟁, 나치즘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페스트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병리적 차원에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주위에서도 각종 전쟁, 테러, 범죄, 질병 등의 위험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게다가 우리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악마적 요소 증오, 분노, 노여움 등 역시 페스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 어떤 페스트에도 걸리지 않기 위해 항상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 페스트에 걸렸을 때 남에게 옮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직분을 다해 성실히 행동하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카뮈가 <페스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