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가 있는 지금, 어떻게 보면 '자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를 속박하고 있는 강아지 때문에라도 얼른 일 마치면 집에 가서 개부터 끌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퇴근 후 가장 중요한 일상으로 삼고 있는 요즘, 아무래도 문제는 '해 먹는 것'입니다. 원래 양식이나 좀 만들 줄 알았지, 한식을 만든다는 것엔 전혀 도전해 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와 아내의 그 손맛이 그리워진달까요.
그나마 아침엔 간단한 귀리죽, 그러니까 오트밀을 만들어 먹는데, 설탕 잔뜩 들어간 인스턴트 오트밀이 아니라 진짜 잘게 바순 귀리를 사다가 재어 놓고, 이걸로 죽을 끓이는데, 이게 꽤 든든합니다. 식민지 시대 미국사람들이나 혹은 지금도 영국에서는 아침도 이른바 '포리지'라고 부르는 귀리죽을 아침으로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식이섬유도 풍부하고, 식감도 물을 많이 부으면 누룽지를 끓인 것 같고 물을 적게 부으면 약간 뻑뻑하게 느껴지지만 수분이 적게 만들어진 밥 같은 느낌도 듭니다.
점심은 샌드위치를 싸는데, 아내가 만들어줄 때와는 확실히 식감이 영 파이입니다. 햄과 치즈, 토마토, 양상추를 넣고 싸는데, 확실히 이것도 숙달된 손맛이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아침엔 전쟁이죠.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는데, 나이 든 강아지가 중간에 마루로 나가는 소리, 그러니까 발톱이 마루에 닿으며 나는 '다닥다닥'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깹니다. 열 다섯 살 먹은 늙은 강아지는 배변 조절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얼른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 주면 자기가 나가 볼일을 보고서, 문 다시 열라고 짖습니다.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하루도 스트레이트로 쭉 자 본적이 없네요. 강아지 덕분에.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아직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나름대로 채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 합니다. 가족들이 없는 집에서 나름으로 이것저것 정리하고, 사내놈 둘(아니, 저까지 셋)이 쳐 놓은 난리들을 정리하며, 차고를 정리하며, 또 그동안 미뤄왔던 집안 일들을 하면서 제게 없는 줄 알았던 일종의 시간 강박 같은 걸 확인합니다. 멍하니 지나는 시간이 너무 싫고, 피곤하면 쓰러져 잤다가도 다시 새벽에 일어나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제 새벽엔 느닷없이 커피를 마시다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커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하나 시청했고, 오늘 새벽엔 느닷없이 화장실 토일렛 보울을 벅벅 닦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장난감들을 챙겨 옆집 영찬군의 세살배기 아들을 위해 넘겨줬고, 이참에 차고를 치워 아이들의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던 차고에서 물건을 다 내다 버리다시피 하고 아내의 밴을 차고에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을 꽉 채워서 보내야 한다는 어떤 강박은 어쩌면 혼자 있는 데 대한 두려움, 이른바 알러트 모드 Alert mode 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사람이 늘어지거나 풀어지는 시간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고,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카카오 톡을 통해 날아드는 한국의 사진들을 보며 그 시간의 외로움 같은 걸 달래고 있습니다. 가끔은 아주 늘어지고 싶을 때도 있기 마련이고, 이럴 때의 와인은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가 있으면 같이 했겠지만... 프랑스 속담에,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최고의 와인을 혼자 마시는 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셀라를 뒤져 나름 혼자 마실만한 와인을 찾았지만... 다 사연 있는 와인들이고, 제가 좋아하는 벗님이 오시면 함께 따겠다고 모셔둔 와인들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강아지를 동네 한 바퀴 돌린 후에 운동 갔다가, 나오는 길에 코스트코에 들러 모처럼의 일탈의 준비를 했습니다.
클린턴 시대 중반, 한참 닷컴 경기로 인해 미국이 잘 나갈(정확히 말하자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때가 있었습니다. 개나 소나 주식을 사서 재산을 증식했고, 이름난 IT 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조기 퇴직을 하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데이 트레이딩이 유행처럼 번졌고, 제게도 왜 주식 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원체 그런 면에서는 보수적이고 의심이 많았던 저와 우리 가족들, 특히 어머니께서는 고집스레 가게를 운영하셨고, 그런 면에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식과 집값이 펑펑 뛰는 것이 영 수상하게만 보였습니다. 역시 이것은 나중에 폭망했고, 그 당시에 재산 깨나 있다는 사람들이 알거지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미국인들은 와인 맛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보잉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유럽으로 발령받은 이들은 구세계의 '진짜 와인'을 맛보고 여기에 흠뻑 빠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미국엔 캘리포니아란 곳이 있고, 이때부터 캘리포니아, 특히 이름난 와인 산지인 나파나 소노마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조기 은퇴한 후 와이너리를 차리는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늘어났고, 이때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와인들이 미국의 컬트로 불리우는 스크리밍 이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부티크 와이너리의 소유주 경력을 보면 대부분 서부 해안 주들의 이른바 선 밸리, 실리콘 밸리, 실리콘 포리스트로 불리우는 지역에서 하이테크 직종에 근무하다가 조기은퇴하고 UC 데이비스의 양조학과를 거쳐 와인메이킹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자기의 열정은 주체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와인메이킹 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신흥 부자들은 아예 와인메이커를 고용했습니다. 이때를 진정한 미국 와인의 중흥기로 봐야 할 겁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가 된 와인은 많은 사람들을 이와 관련된 업계로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UC 데이비스는 실력있는 와인메이커들을 매년 배출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캘리포니아 와인의 중추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배출되는 와인메이커들의 수가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 주는 세계 4위의 와인 생산지. 그러나 미국에서 자신을 와인 애호가라고 부르는 음주 인구는 많이 늘었다 해도 겨우 8%나 될까말까한 상황. 게다가 조기 은퇴한 풋내기 와이너리 오너들도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캘리포니아의 땅값이 움직였고, 나파와 소노마 같은 곳에선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 엄청난 땅값이 와인 가격으로 전이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수백달러짜리 와인들이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와인에 입맛이 길들여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기꺼이 이 돈을 썼습니다. 실물 경제가 없었던 허수의 경제는 마치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벨르 에포크 시대의 유럽처럼 사람들을 흥청망청의 분위기로 이끌었고, 이미 소비 중둑이 된 사람들은 기꺼이 와인과 시가를 새로운 취미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포칼립스' 가 터졌습니다. 이미 몇 차례의 위기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위기는 역시 서브프라임 사태였습니다. 실물경제의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거품은 너무나 허망하게 쉽게 꺼져 버렸고, 와인의 소비는 그 정점에서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때 문 닫는 와이너리들도 많이 생겼고, 굳이 빚을 내어 와이너리를 구입한 사람들이 은행 이자를 못 내 차압당하는 사태도 많았습니다. 적지 않은 와인메이커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들에겐 신천지가 필요했습니다. 이미 몇몇 와인메이커들이 지대가 너무 비싼 캘리포니아를 떠나 워싱턴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중엔 '버나드 그리핀'의 랍 그리핀 같은 롤 모델들이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와인메이커들의 워싱턴 '대량이주'는 아마 이때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워싱턴주 와인의 제 2의 도약기는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미국의 경기가 망가지고 와인의 소비가 주춤해졌을 바로 그 때. 사람의 입맛이란 게 간사해서 이미 와인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자기들의 입맛을 다운그레이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캘리포니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하고 따라서 생산 단가가 낮을 수 밖에 없는 워싱턴주 와인이 질적 향상을 하게 됨에 따라서 와인애호가들이 워싱턴 와인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워싱턴 와인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훌륭하고, 또 일정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 와이너리가 있었으니, '생 미셸 에스테이트' 소속의 와이너리인 '콜럼비아 크레스트' 입니다. 이 와인은 오히려 불황을 타고 급성장을 하는데, 과거 와인 스펙테이터의 최대 광고주였던 와인 머천트 컨스텔레이션이 로버트 몬다비를 인수하고 빈코 인터내셔널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출혈을 하고 결국 와인 스펙테이터 광고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됩니다. 이때 생 미셸 에스테이트가 WS 최대 광고주로 등극하고, 결국 이같은 상황은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2005년 빈티지 리저브 카버네 소비뇽을 '세계 1위 와인'으로 선정되게 하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당연히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인지도는 초국적으로 성장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 와인 전체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지요.
아무튼, 워싱턴 와인이 저렴하고 마실만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꽤 많은 이야길 했는데, 지금부터가 본론입니다. (어머, 미안해요) 코스트코에 갔더니, 가장 작은 포장의 등심 스테이크가 16달러 조금 안 되기에, 얼른 집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포장이 나오는 경우가 없어서... 그리고 와인 섹션에 갔더니 늘 뻔한 코스트코식의 셀렉션이긴 하지만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고든 에스테이츠... 이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와인메이커가 자기 밭에서 직접 포도를 재배해서 와인을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와인 이름에 Estates 란 말이 나오면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와이너리의 오너 제프 고든은 2005-2007년까지 워싱턴주 와인 커미션의 위원장을 지내던 사람입니다. 노스웨스트 와인 아카데미에서 열었던 특강에 강사로 나오기도 했던 인물이라 얼른 그 사람이 만든 와인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가격은 14달러 정도. 이 정도면 마실만 하지 싶어서 집어왔습니다.
늘 그렇듯, 불 피우고, 그 시간에 아스파라거스 데쳐 놓고, 그리고 포타벨라 버섯을 큼지막한 놈으로 사 왔습니다. 이 버섯을 사실 뭘 좀 다져 넣고 하면 스테이크 대신 먹어도 되는데, 저는 그냥 구워 먹는 걸 택했습니다.
워싱턴주 와인이 널리 알려진 것은 샤토 생 미셸의 리즐링과 멀로 덕이 큽니다. 그만큼 멀로 품종이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와인 포도 재배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고, 또 이 품종이 여기에 잘 맞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기후 변화 탓으로 워싱턴주에서도 진판델과 시라 같은 것이 잘 될 정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워싱턴주의 대표 레드 품종'은 멀로입니다. 이 와인의 구성은 93%의 멀로, 5%의 시라, 그리고 카버네 소비뇽 2%. 알콜 13.9%의 꽤 무거운 와인으로 29개월간 프랑스산/미국산 오크 배럴 숙성입니다. 어지간한 리저브 급 와인들보다도 숙성을 더 오래 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태닌은 꽤 가볍고, 산미는 풍부합니다. 오크통에 숙성을 오래 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태닌의 중화가 더 일어났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듯 합니다만, 구조가 질박한 것만은 아닙니다. 꽤 복합적이고, 장미 꽃잎 같은 냄새가 인상적입니다. 뭐, 음식이야 스테이크인데, 더 이상 좋은 짝은 없겠지요.
두 장은 먹고, 두 장은 랩으로 잘 싸서 냉동실에 넣어 놓습니다. 이 방법으로 하면 숯불의 내음을 그대로 간직한 스테이크를 나중에 데우기만 하면 또 즐길 수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 혼자 사는 놈의 호사로는 이만한 호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동안 당연히 옆에서 낑낑대며 왜 난 안주냐며 난리치는 강아지도 오랜만에 개밥이 아니라 스테이크를 얻어 먹는 호사를 누립니다. 그리고 두어 시간에 걸쳐 식사를 마치고 나서 전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설겆이 하고 강아지 끌고 나가야겠구나. 혼자 있으니 이렇게 현실이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아내가 없는 빈 자리, 아들들이 없는 빈 자리의 식사는 솔직히 허전합니다. 아내에게 반 강제로 "이 와인 맛있지?"라고 물어보는 그 재미가 없는 것이 좀 그렇네요. 그래도 저는 이렇게 잠깐의 일탈 후에 다시 새로 발견한 제 강박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아, 잔디 물도 줘야 하고... 집안 화초들에 물도 줘야 하고... 집안 일이 보이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강아지는 다시 나가자고 낑낑댑니다. 월요일 다시 일 가기 전에 내일은 도시락을 쌀 빵도 새로 사야 하고... 할 일들을 다시 정리해 적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를, 그리고 어머니께서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는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집 정리 해 놓고 나면 내일 저녁엔 다시 어머니 집으로 올라가 출근 준비를 하게 될 겁니다. 다음주 주말이 될 때까지, 오늘의 일탈은 아마 에너지가 되어 주겠지요.
시애틀에서... |
출처: Seattle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권종상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