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관
노병철
혹‘바버’란 말을 들어 보았는가. 머리 감는다는 말을 샴푸 한다고 한다. 면도하는 것을 세이빙한다고 하고. 바버숍은 이발관을 말한다. 바버는 이발사를 칭하는 말이다. 헤어샵을 미용실, 미장원을 세련되게 말하듯 이발소도 이렇게 부른다. 머리털 나고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고 하는 사람은 후진 동네 이발소에서 대충 깎는 사람이다. 나 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바버란 말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 굉장히 어색하다.
이발소가 없어져 간다. 동네 이발소는 할배 눈이 자꾸 어두워지는지 깎고 난 뒤 머리 상태가 고르지 못하다. 그렇다고 미장원에 가기엔 아직 많이 쪽팔리고 가기가 싫다. 그리고 기계로 미는 방식이 싫다. 머리는 바리캉과 가위로만 깎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래서 이발소를 바꾸었다. 목욕탕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은 지가 대충 오륙 년은 넘은 것 같다. 발가벗고 머리 깎고 덜렁거리며 나온다. 문학적 표현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머리를 깎는다.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걱정은 여기 이발사 사장님도 연세가 칠십이 훨씬 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자 이발사가 없다.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하는 청와대 구내이발관에서 일하면 '1호 이발사', 정부서울청사 구내이발관에서 일하면 '2호 이발사'라고 한다. 행정안전부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구내이발관의 운영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전부 미용실에 가지 누가 요즘 이발관에 가냐고 웃을 일이지만 아직 이발은 이발소에 가야 한다는 고루한 정신이 머리에 박혀 있는 나로선 영 개운 하지가 않은 뉴스다. 하나는 외로워 둘이랍니다‘ 이딴 액자 거울 위에 걸린 그런 이발관을 중국, 베트남에서 한 번씩 보곤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오곤 한다. 난로 위에 면도크림이 보글거리는 풍경이 이제는 촌으로 찾아다녀도 잘 볼 수 없다. 이발소가 사라져 간다. 배우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바버’가 없다.
요즘 미장원은 아직 많이 어색하다. 여자들이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머리를 뒤로 감는 게 영 불안하고 면도는 커녕 어떤 곳은 머리도 안 감겨주고 대충 털고는 그냥 가란다. 짜증 난다. 어릴 적 아버지와 머리 깎으러 가면 아버지가 편하게 누워 안마받는 모습이 매우 부러웠다. 빨리 커서 나도 면도하면서 안마도 받고 싶었다. 그때 이발소는 다 그렇게 했다. 당시 이발소엔 면도라는 걸 해주곤 몇 번 주물러서 보냈는데 그 행위 중 하나가 귀를 후벼주는 것이었다. 낙타 눈썹 같은 걸 귓구멍에 넣어 돌려댔으니 기분 죽였다. 근데 그걸 가지고 종일 몇 사람을 후볐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시 이발소에서 그거 말고 또 뭐 해줬냐고? 코털을 제거하고 손톱 깎아주고, 얼굴에 팩도 해주고. 여드름도 짜주고, 구두도 닦아 주었다. 그땐 퇴폐라는 건 잘 없었고 가끔 아가씨들이 잘생긴 남자가 드러누우면 사타구니 근처까지 손을 한번 스치고 가긴 했다. 그래서 애를 먹었다. 민망하게 바로 섰다. 구구단 팔단을 거꾸로 외워도 수습이 안 된다. 목욕탕에서 절대 때 미는 것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것은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민망한 사태가 발생하면 남사스러워서 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이 기회에 밝힌다. 옛날 이발소가 갑자기 그립다. 안마하는 아가씨가 그리운 것은 절대 아니다. 뜨거운 타월에 피부와 수염을 불린 뒤 습식 칼면도로 셰이빙하는 맛과 얼굴의 모든 근육을 풀어주는 얼굴 안마가 생각날 뿐이다.
첫댓글 바버
또 배우고 갑니다.
푸쉬킨의 삶이 있었지요.제가 다닌 이발소에는.
머리칼이 너무 매끄러워 가위가 미끄러져 자르기 힘들다던 그 바버 그립네요.그땐 머리만 자르면 덜렁 목만 길쭉한 제모습이 싫었는데 이젠 자꾸 목을 빼봅니다.는 건 나이숫자와 몸무게뿐이네요.호호.
저는 어릴 적에 아버지 따라 이발소에서 머리 잘랐는데
참, 옛날 예적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