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발간하는 월간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5년 3월호(2025년 3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어떻게 기여할지 조명했다. 우제민씨(석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북·러 동맹, 한반도의 독인가 약인가?'이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aa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윤석열 정부의 외교 'ABC' 정책
2022년 5월, 이미 전쟁의 화마(火魔)가 우크라이나를 뒤덮었을 무렵,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대한민국에서는 권력 변동이 발생했다. 윤석열 신정부는 즉각 전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정반대로 바꾸는 소위 'ABC'(Anything But Clinton, 전임 클린턴 대통령 정책을 무조건 뒤집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뜻하는 말/편집자) 정책을 펼쳤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가 그랬다. 문재인 전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러 제재에 대한 접근에서 신중한 태도를 견제했다면, 윤석열 새 정부는 북·중·러와의 관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동맹국인 미국, 일본과의 공고한 연대를 중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한 '가치 외교'는 '균형 외교'의 포기를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용산 대통령실은 한·미·일 연합 체제의 강화와 군사 협력의 확대를 본격화했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실시간 미사일 정보 공유, 연합훈련 확대, 확장 억제 강화 등이 추진되었다. '힘에 의한 평화' 기조 하에 '대북 킬체인'(Kill Chain)과 선제 타격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반도에는 신냉전이 도래했고, 한·미·일 대(對) 북·중·러 대결 구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북·러가 쏘아올린 울린 한반도 신냉전
한·미 동맹의 강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러의 밀착을 야기했다. 2024년 6월 푸틴 대통령은 전격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이하 신우호조약)을 체결했다. 신우호조약은 북·러 관계의 질적 발전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국이 보인 반러시아적 행보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띤다.
북·러 신우호조약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제4조의 유사시 상호 군사 지원 조항이다. 안보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제4조는 1961년 조소동맹 조약의 자동 군사 개입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북·러 군사 동맹의 복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우려는 한·러 관계의 긴장과 남북 갈등의 고조와 맞물려 더욱 증폭되었다. 북한과 러시아의 외교 안보적 결착은 동아시아에서 모호하던 진영의 경계선을 더욱 선명히 드러냈다.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에 서명한 푸틴 대통령-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약안을 교환하는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북·러 신우호조약 어떻게 볼 것인가?
북·러 관계의 재조정이 최근 동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북·러의 전략적 연대 강화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적 경직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북·러 신우호조약을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성격이라고 설명한 점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우려와는 반대로 러시아가 한반도 군사 긴장의 완충 역할을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국내 정치적 권력 투쟁에서 추동되는 남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일정 수준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우호조약을 면밀히 검토해 볼 때 북한에게 러시아는 '전략적 헷징'의 핵심 파트너로서 다양한 국익을 제공해 준다. 세계적인 권력 보유자 러시아의 배후 세력화는 북한의 안보에 도움이 되고, 김정은의 한반도 정세 주도권 장악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 또는 무력화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에게는 숨통을 죄어 오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디기 위한 '산소호흡기'로서의 가치도 있다.
식량과 에너지 확보가 절실하고 재정 확충을 위해 노동자 파견이 급한 북한의 현 상황에서는 러시아가 구세주로 다가온다. 또 대러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임박한 트럼프 신정부와의 북핵 담판에서도 몸값을 높일 수 있다.
◇한러 관계의 훈풍을 기대하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가속화되는 진영화와 심화되는 군사적 긴장이 남북한 대화와 협력의 여지를 좁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북·러의 밀착이 우리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북한 중심으로 쏠리는 것을 막는 가운데 훼손된 한·러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라고 본다. 러시아 역시 우리 정부와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만큼 대화와 소통의 채널을 폭넓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한국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은 변수보다는 상수에 가깝다. 국력의 총합으로 볼 때 러시아가 '갑'이고 한국이 '을'인 바 한·러 관계에서 꼬인 매듭은 우리 스스로가 먼저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한·미 동맹에 편성한 '쉬운 외교'는 한국의 국익과 한·러 관계에 적지 않은 손상을 가했다. 이제는 특정 강대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이고 스스로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면서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어려운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의 이치처럼 기회는 항상 어려움 속에 있기 때문이다.
북극 항로 개황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국경선을 맞댄 쉽지 않는 '이웃'이다. 그렇지만 싫든 좋든,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영역에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숙명성을 지닌 세계적 강대국이다. 러시아는 에너지, 북극 개발 및 항로, 식량 안보, 수산물, 철의 실크로드 등 미·중·일과는 차별화된 영역에서 21세기 한국의 국가적 번영에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심지어 통일도 러시아를 배제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한·러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올 1월 출범한 트럼프 미국 새정부의 대러 포용 정책이 한·러 관계에도 훈풍을 몰아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