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유물론의 등장 배경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존의 서구 철학은 인식론이나 주체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중심에 두고 논의를 전개했다는 공통된 흐름을 보였다. 예를 들어 관념론의 대표 주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생명체를 괴롭히는 것이 인간의 이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물론의 대표 주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이 고도의 생산력을 통해 자연의 숙명을 끊어내고 주체적인 해방을 이루어낸다고 보았다. 이처럼 플라톤, 아우구스티노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 사르트르까지 서구 철학의 주류 흐름은 인간중심주의를 전제로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1960년대, 68혁명 이후 대두된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alism)는 휴머니즘으로부터의 탈피라는 구호 하에 처음으로 인간을 논의에서 배제한 논의를 전개했다.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 프랑스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흐름은, 어떠한 진리나 작용이 인간의 자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 언어의 구조, 역사의 구조 등 각종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신유물론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후기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강조된 "인간 중심성의 탈피"를 배경으로 하여 등장했다. 신유물론이라는 용어는 질 들뢰즈가 1960년대 스피노자의 유물론적 관점을 정리할 때 처음 사용한 것이다. 이 용어는 들뢰즈에 의해 가끔씩 사용되었는데, 들뢰즈의 사후 멕시코의 철학자 마누엘 데란다(Manuel de Landa)가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신유물론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20세기의 끝자락과 21세기의 초창기에 형성된 신유물론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쇠락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2010~2020년대의 주요한 철학적 사유로 자리매김하였다.
신유물론은 여러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질 들뢰즈와 그의 철학적 파트너였던 펠릭스 가타리의 입장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신유물론이라는 기준 자체가 정형화된 것은 아니고, 때로는 신유물론으로 묶이는 철학자들의 범위가 크게 달라지곤 하지만, 신유물론자라고 칭해지는 철학자 대다수가 질 들뢰즈의 주장에 자신의 철학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신유물론은 21세기적 들뢰즈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4. 왜 신유물론적 시인가
신유물론적 시가 요청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늘날의 세계가 단일한 주체나 시점으로 포착될 수 없는 다층적 얽힘의 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시가 흔히 자아의 내면, 개인적 감정, 사회적 의식을 중심축으로 삼았다면, 신유물론적 시는 인간만의 목소리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과 더불어 동물, 사물, 식물, 기술, 환경이 동등한 존재자로 등장하며, 각각의 발화와 작용이 시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이때 시는 단일한 서정의 고백이 아니라, 다중성(multiplicity)의 울림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다중성의 시학은 단순히 다양한 소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간의 관계망과 긴장을 드러내는 데 의미가 있다. ‘나’의 감정은 더 이상 고립된 내면에서만 형성되지 않고, 빛의 흔들림, 사물의 촉감, 비인간적 존재의 움직임과 결합해 형상화된다. 이로써 시는 단일한 정서의 발화가 아니라, 여러 시점과 감각의 교차를 통해 생성되는 다층적 장면을 구축한다. 독자는 그 속에서 한 가지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의 감각과 사유가 동시에 충돌하고 공명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창작론적 차원에서 보면, 시인은 다위성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자의 전환을 통해 인간의 목소리를 동물이나 사물의 관점과 교차시킬 수 있고, 시선의 분산을 통해 하나의 장면을 여러 관점에서 동시에 비추며 복합적 서사를 형성할 수도 있다. 또한 사물의 발화나 비인간적 화법을 도입함으로써 사물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행위자로 세워낼 수 있다. 이런 기법들은 시를 다층적이고 관계적인 세계의 축소판으로 만들며, 독자에게 새로운 존재론적 감각을 제공한다. 따라서 신유물론적 시는 단순히 형식적 실험이나 참신한 주제의 도입을 넘어서, 세계와 존재를 재인식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된다. 인간 중심의 시학에서 벗어나, 다중적 행위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장을 그려내는 것, 이것이 바로 신유물론적 시가 지닌 절박하고도 필연적인 이유다. 시는 이제 고립된 자아의 언어가 아니라, 다중적 존재들이 공진화하는 생명망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4-1왜 신유물론적 시인가: 다위성 구현의 방법
다중성을 구현하는 시는 기존의 서정시가 담아내지 못한 세계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차원이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을 반영하는 창작 행위다. 신유물론적 시는 우리에게 “세계가 말하는 방식”을 새롭게 듣게 하며, 시를 생명망적 감각으로 다시 쓰게 만든다. 신유물론적 시가 요청되는 이유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넘어,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얽히고 작용하는 다중성(multiplicity)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더 이상 고립된 화자의 독백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울리는 다중적 목소리의 장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화자의 전환: 다중적 목소리 열기
신유물론적 시는 ‘나’라는 단일한 화자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대신 시 속에서 인간 화자가 사물, 동물, 식물, 기계 등 다양한 행위자와 자리를 바꾸며 목소리를 나누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바람이 말하고, 돌이 느끼며, 강물이 화자가 되어 사건을 바라보는 식이다. 이러한 화자의 전환은 독자에게 세계를 새롭게 체험하게 만들며, 존재의 평등성을 언어적으로 구현한다.
2. 시선의 분산: 다층적 장면 구축하기
다중성의 시학은 하나의 장면을 단일한 각도에서만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러 시점과 관점이 교차하면서 풍부한 층위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한 꽃을 ‘인간의 눈’, ‘벌의 시선’, ‘바람의 흔들림’이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 이때 시인은 시선을 분산시키면서도, 정서적 긴장과 리듬을 통해 장면을 응집시켜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다층적 감각이 교차하는 장으로 재구성된다.
3. 사물의 발화: 비인간 행위자 활성화하기
신유물론적 시에서 사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시인은 사물에 동사를 부여하고, 감각을 활성화하며, 그것이 정서를 전달하는 주체로 등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돌이 침묵을 흔들었다’, ‘나무가 시간을 흘려보냈다’와 같은 발화는 사물을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 격상시킨다. 이는 시를 인간의 언어가 아닌 세계의 언어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전략이다.
4. 정서의 다중화: 공존적 감정 체계 구축
다중성의 시는 하나의 감정만을 고집하지 않고, 양가적이거나 상충하는 감정을 공존시킨다. 예를 들어,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엮여 흐르는 방식이다. 이는 세계를 단일한 해석으로 환원하지 않고, 복잡한 정동의 결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정서의 다중화는 독자에게 더 풍부한 체험을 제공하며, 시를 단순한 감정의 전달이 아니라 정서적 네트워크의 장으로 만든다.
5. 관계망 드러내기: 존재들의 얽힘 표현
신유물론적 시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세계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 얽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인은 인간-사물, 사물-환경, 인간-비인간 등 다양한 관계망을 언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이때 시는 단일한 중심에서 전개되지 않고, 관계와 흐름 자체가 시의 핵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