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1 – 버트란드 러셀

[bhlee]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가운데 윤리학 관련 저술 셋이 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 중 둘은 현재는 일반적으로 제자들의 저술로 여겨진다. 셋째 저술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은 대부분 그 출처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이 저술에 대해서도 일부(5, 6, 7권)는 제자들이 쓴 작품 가운데 하나가 편입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는 무시하고, 『니코마코스 윤리학』 전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로 다룰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제시한 견해는 주로 당시 교양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된 의견을 대표한다. 그의 견해는, 플라톤과 달리 신비 종교가 스며들어 있지 않으며, 『국가(Republic)』의 재산과 가족에 관한 논의에서 나타난 정통에서 벗어난 이론을 장려하지도 않는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예의바름의 정도가 떨어지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원칙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이상을 바라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품행이 건실한 중년층에게 호소하며, 그들에 의해 활용되어 왔고, 특히 17세기 이래 젊은이들의 열정과 열광을 억제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깊은 데서 우러나는 강렬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이른바 선(The good)은 행복(happiness)이고, 행복은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영혼을 두 부분, 곧 이성적 부분과 다른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눈 점에서 옳았다고 말한다. 그는 다시 비이성적 부분 자체를 ‘생장 부분’(the vegetative, 식물에서조차 발견되는)과 ‘욕구 부분’(the appetitive, 모든 동물에서 발견되는)으로 나눈다. ‘욕구 부분’은 그것이 추구하는 선이 이성에 의해 승인될 때처럼 어느 정도 이성적 특성을 가진다. 이 점이 덕에 대한 설명에서 본질적인 요소인 까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이성은 혼자서는 순수하게 명상적이고, 욕구의 개입이 없으면 어떤 실천 활동으로 인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덕(virtue)은 두 가지 종류, 즉 영혼의 두 부분에 상응하는 지적인 것(intellectual)과 도덕적인 것(moral)이 있다. 지적인 덕은 교육을 통하여, 도덕적인 덕은 습관을 통하여 얻게 된다. 시민들이 좋은 습관을 길러서 선량해지게 하는 일은 입법자의 직무이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워지며, 다른 덕들도 그와 같이 실천함으로써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의하면, 강제로라도 좋은 습관을 들이면, 때에 맞게 좋은 행동을 하면서 기쁨을 느낄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햄릿이 어머니에게 말한 대사를 떠올린다.

「미덕이 없다면 있는 척이라도 하세요.

관습(custom)이란 괴물은, 모든 감각을 먹어치우는지라,

악마 같은 습성(habit)에 대해서라면, 천사가 되지요.

정당하고 착한 행동을 버릇 삼아 행하면

똑같이 성직자복 또는 제복을

어울리도록 입혀주니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유명한 중용 학설(the golden mean)에 이르렀다. 어느 덕이나 양 극단의 중용이며, 양 극단 각기 악덕에 속한다. 이 학설은 갖가지 덕을 검토한 끝에 입증된다.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다. 후함은 방탕과 인색함의 중용이며, 적당한 긍지는 허영과 비굴의 중용이고, 재빠른 기지는 저속한 익살과 상스러움의 중용이며, 겸손은 수줍음과 파렴치함의 중용이다. 그러나 어떤 덕은 양 극단의 중용이라는 도식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예를 들면 ‘진실성(truthfulness)’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성’이 허풍과 거짓 겸손의 중간이라고 말하지만(1108a), 이 말은 단지 자신에 관한 진실성에만 적용된다. 넓은 의미의 진실이 어떻게 양 극단의 중용이란 도식에 맞추어지는지는 모를 일이다. 한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학설을 취한 시장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시장 임기를 마치는 자리에서, 한편의 불공평과 다른 한편의 공평무사 사이의 좁은 노선을 조종하려고 애썼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진실성을 중용으로 설명하는 견해는 시장의 연설 못지않게 불합리해 보인다.

도덕적 문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은 언제나 그가 살던 당시의 관례에 속한 것이다. 몇 가지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주로 일종의 귀족정치가 행해지는 우리 시대의 견해와도 다르다. 우리는 적어도 윤리 이론 속에서는 인간 존재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정의가 평등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평등이 아니라, (약간의 경우에만) 가끔씩 평등을 의미하는 ‘정확한 비례(right portion)’를 뜻한다고 생각한다(1131b).

주인이나 부친에 속한 정의는 시민에 속한 정의와 다른 것인데, 노예나 아들은 재산으로서 자신이 소유한 재산에 대한 불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1134b). 그런데 노예에 관해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예와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앞서 말한 원칙을 약간 수정한다.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노예는 살아있는 도구이다. …… 그렇다면 노예로서는 그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법체계 안에서 함께 살거나 동의하에 같은 당에 소속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정의가 존재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가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우정을 맺을 수도 있다(1161b).

부친은 아들이 사악한 행동을 일삼으면 의절할 수도 있으나, 아들은 자기 아버지와 의절할 수 없다. 아들은 어떻게든 갚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 특히 ‘존재(existence)’를 아버지에게 신세지고 있기 때문이다(1163b). 불평등한 관계에 있어서는, 누구든지 각자의 가치에 비례하여 사랑받아야 하기 때문에, 열등한 사람은 우월한 사람이 열등한 사람을 사랑하는 정도에 비하여 더 많이 우월한 사람을 사랑해야 옳다. 그러니까 아내, 어린이, 신하는 남편, 부모, 군주가 그들을 사랑하는 정도보다 더 많이 남편, 부모, 군주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결혼관계에서는, ”남자는 그의 가치에 따라 남자가 해야 하는 일들을 지배해야 하지만,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들은 아내에게 맡겨야 한다(1160b). 남편은 아내의 영역까지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아내는, 이따끔 상속녀일 경우에 일어나듯, 남편의 영역을 지배하려 해서도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가장 훌륭한 개인은 그리스도교의 성인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가장 훌륭한 개인은 적당한 긍지를 지녀야 하며 자신의 공적을 낮추어 평가해서도 안 된다. 또 경멸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경멸해야 한다(1124b). 긍지에 찬(proud) 또는 대범한(magnanimous) 사람에 대한 서술은, 이교도 윤리와 그리스도교 윤리의 차이,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노예 도덕으로 평가한 의미의 정당성을 확보해주기 때문에 흥미롭다.

주) 대범한(magnanimous). 여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문자 그대로는, ‘위대한 영혼을 지닌’이라는 뜻이고, 보통 ‘대범한’으로 번역되는데, 옥스퍼드 번역본은 ‘긍지에 찬(proud)’으로 해석한다. 현대의 용법을 따른다면 어느 번역어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의미를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나는 ‘대범한’이라는 표현을 선호하기 때문에 옥스퍼드 번역본에서 가져온 위 인용문에서 ‘긍지에 찬’이란 번역어를 ‘대범한’으로 대체했다.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by Bertrand Russell, Chapter XX

ARISTOTLE’S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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