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위기 속 있는 불교계
대법당이라 하는 큰 사찰에 있는 스님이 아니라,
시골 작은 허접한 토굴에서 글을 옮기고 있는 토굴승은
방문객 하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토굴승입니다.
불교계가 지금 처해 있는 위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시대가 어렵거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주 옛 어른들의 지혜나 생활을 이야기 합니다.
왜냐 하면 그 분들의 삶의 행적이
바로 해결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불교계가 처한 상황도
총체적 위기라고 말하여도 무방할 정도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완전히 뜯어 고치지 전에는
답이 안 보일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큰 사찰에 있으면 큰 소님,
큰 스님 하는 불자에게도 문제는 비켜갈 수 없습니다.
무엇이 큰지도 모르는 오늘날의 불교계의 흐름은
같은 수행자라서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니기 부끄럽습니다.
큰 사건, 사고가 터지면
타 종교 쪽에서는 옳코구나 하고 있는
소문 없는 소문 만들어 내지만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자숙,
혹은 자자로 반성도 하지 못하면서
더 크게 막는 것에 급급할 게 아니라
부처님께서 우리 곁에 지금 계심을 잊지 말고
부처님 앞에서 그런 막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죄의식도 없이 겉잡을 수없이 정말 수행자일까 할 정도로
난잡한 행위들로 인하여
대대적인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곪아 커지고 곪아 커진 이 상황을
단호히 제거해야 만이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승이 매일 불자님들께는
‘이러지 마시고 저렇게 하며 삽시다.’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큰 절, 큰 스님소리 듣는 수행자들은
먹물들인 옷 입고 있는 모습조차도 밉상으로 보인다 하니
세인들 앞에 얼굴을 들고 활보 할 수 없는 겁니다.
불자님들께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제발 어디 가서든
큰 스님, 큰 스님! 하며 아부 좀 하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닌 것입니다.
뭐가 큽니까?
승이 보기에는 탐욕 덩어리가 크거나,
아니면 집착 덩어리만 크게 보이는데
왜 불자님들은 큰 스님, 큰 스님! 하며 쫒아 다니십니까?
그러니 승려들이 자연히 우쭐거리는 겁니다.
그렇게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그 소리에 저절로 자신이 진짜 큰 걸로 착각을 하는 바람에
수행자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후손들에게 떳떳한 불교를 전해 주려면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중생들에게 다가서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바라시는 수행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지도 뻔히 알면서도
큰 사찰에 주석하고 있는 똥보다 못한 자부심 때문에
하릴없이 도량 어슬렁거리는 수행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무엇으로 제도해야 할 것이냐 하는 매일매일 자자하여야 합니다.
빳빳하게 풀 먹인 승복 걸치고
좋은 차타고 다니며 허세로 보내는 것 보다
정말 중생을 위하여 이내 몸을 내려놓고
매일 도량을 오체투지로 종일 보낼 수 있는 각오로
수행자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는
불자들 많다는 것을 알아차림을 깨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불자님들은
빳빳하게 풀 먹인 승복 걸치고
좋은 차타고 다니고 다니는 스님들만 보면
저절로 큰 스님이라고 하는지 다시 짚어 봤으면 합니다.
옷거리가 좋으면 좋은 옷이고
그런 옷을 걸치면 저절로 수행자다운 모습이랍니까?
빈껍데기 뿐입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진정 수행자라 할 수 없습니다.
안 보이는 몸속을 잘 다듬고 정신을 맑게 하면서
중생들에게 추앙 받겠다는 의식도 없이 수행자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크던 작든 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도 진정한 용기가 수반되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불교계의 모습도
서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할 때가
더 나은 세계로 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지만
왜 그 일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오해를 할까요?
그냥 자연스럽게 내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그리도 아깝고 버릴 수 없답니까?
고승 중에는 기 기득권을
아무런 조건 없이 포기하신 분을 이야기 하라면
주저 없이 원효 스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입장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세상에 오셔야 할 분이십니다.
불자님들이시여!
앞으로는 스님, 큰 스님하는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풀 먹인 승복만 걸치고 있으면
아무나 보고 큰 스님, 큰 스님 소리 때문에
스님이 망가지고 사찰이 망가지고 불교계가 망가집니다.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어디에서 볼 수 없는 단어며 말입니다.
그런 이 아름다운 말을 좋은 곳에 사용하십시오.
세계에서도 유일한 독보적인 글이 한글뿐입니다.
지금은 곳곳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국가들이 많아 졌습니다.
어떤 글자든 갖다 맞추면 단어가 되고 글이 됩니다.
마법 같은 글이 한글입니다.
이런 한글을 빳빳하게 풀 먹인 승복 걸치고
좋은 차타고 다니면서 호사스레이 멋내고 다니는
빈껍데기 같은 수행자에게는 큰 스님이라는 호칭은 안 어울립니다.
약속 합시다.
앞으로는 그런 수행자를 지칭하여
큰 스님 말 하지 않기로 하자고요.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말입니다.
2024년 10월 09일 오전 05:54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