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를 쉬운 우리말로
손 원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선 매일 새로운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특히 TV 드라마, 특정 콘텐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발생한 신조어와 은어, 줄임말이 널리 사용되면서 새로운 용어에 익숙하지 못한 시니어 세대의 소통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 성향, 취향, 교육 수준 등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한의 소통은 이뤄져야 마땅하다. 외래어 위주의 신조어에 대한 국민 평균 이해도는 14%, 70세 이상 평균 이해도는 2%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사업홍보에도 신조어가 많아 국민적 소통에 문제가 많다. 최근 정부발표에 사용된 신조어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재부는 "근로여건 개선과 외국 인력을 활용해 현장의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소하겠다." 최근 취업자 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선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업종에 따라 노동시장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스매치를 우리말로 바꾸면 '부조화'로 쓸 수 있다. '일자리 미스매치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는 말보다 '일자리 부조화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로 쓰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정부는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쿼터도 5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쿼터(Quarter)'는 '한도량', '배당량', '수출입 한도량', '할당' 등의 우리말로 다듬어 쓸 수 있다.
기재부는 지역 투자 대비 활성화 효과가 미비하다고 하면서, 중앙정부의 '톱다운(Top-down)' 방식 사업 추진을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이에 지자체와 민간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발굴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톱다운을 '하향식', 보텀업을 '상향식'으로 다듬었다.
정부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지역 실정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겠다고도 했는데, 사행성 도박 등 일부 부적합한 사업을 제외하고 가능한 모든 사업을 발굴하겠다는 것으로 '소극적인 규제'를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상대편의 부정적인 점을 부각하는 전략을 네거티브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로 '부정적인', '소극적인', '흠집 내기' 등으로 바꿀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네거티브 규제'는 '최소 규제', '사후 규제' 등으로 쓸 수 있다.
일부 새마을금고 지점이 부실해져 예·적금을 해지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이른바 '뱅크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뱅크런(Bank run)'은 거래 은행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국립국어원은 '인출 폭주'의 우리말로 다듬었다. 언론들도 '대규모 예금 인출', '예금 대량 인출'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은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간담회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딥테크 기업에 관심이 많고 대화하고 싶습니다." ''딥테크'는 '기저 기술', '원천 기술'의 우리말로 쓰면 된다. '스타트업(Start-up)'은 '새싹 기업'·'신생 기업'·'창업 초기 기업' 등 우리말로 풀어쓰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해양수산부는 "더 많은 세계인이 K-블루푸드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 블루푸드는 김·굴·전복·미역 등을 비롯해 생선과 조개류, 해조류 같은 수산 식품을 말한다.
'푸드테크(Food tech)'도 정부에서 많이 쓰는 말 중 하나다. 이는 식품(food)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식품 산업에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한 신산업이다. 국립국어원은 이 단어를 '첨단 식품 기술'의 우리말로 순화했다.('유니콘 기업'도 '거대 신생 기업'으로 다듬어 쓰도록 권하고 있다)지난 2월 발표한 '제2차 해양수산과학기술 육성 기본계획'을 사례로 보면 10대 중점 기술 개발 분야로 '그린 쉼(Green ship)-K', 'K-오션 워치(Ocean watch)', '스마트(Smart) 양식' 등을 내세웠다. '그린 쉼'은 친환경 선박을 뜻하며, '오션 워치'는 신기술 개발로 해양 예측 정확도를 높이겠다는 사업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양식은 유사 단어들과 비교해 '지능형 양식' 등 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디지털 챌린지: 2023 메타버스 개발자 경진대회에 참가하세요."라는 공고를 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으며 각종 분야에서 쓰고 있는 단어다.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가상 인물(아바타) 등을 이용해 교류·활동하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말한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확장 가상 세계', '가상 융합 세계'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도 지난 2월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 확장 현실(XR) 등을 적용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때 '튜터링(Tutoring)'은 '강의', '지도', '개인교습' 등으로 쉽게 쓸 수 있다.
확장 가상 세계 등 온라인을 활용한 청소년 상담도 이뤄지고 있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은 '온라인 괴롭힘'을 뜻한다. 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위해 여성가족부는 '사이버 아웃리치'를 운영하고 있다. '아웃리치(Outreach)'는 '현장 지원 활동', '현장 봉사', '거리 상담' 등으로 순화되며 이 경우엔 '온라인 상담', '온라인 지원 활동' 등으로 풀어 쓸 수 있다.
신산업에 신조어는 어쩔 수 없지만 적절한 우리말로 변환하든지 병용한다면 신산업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고 국민적 호응도 얻을 수 있다. 외국에서 쓰이는 신조어를 국내에서 그대로 쓰고 있다. 외국의 산업이나 기술이 유입되면 우리에게 적합하게 변형되어 정착하게 된다. 신조어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정부 발표 시 외래어와 우리말을 병기하면 어떨까? 마치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세련된 용어인 것처럼,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했다. 외래문물이라면 우리 것으로 다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일류 국가의 초석이 된다. (2023.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