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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법과 윤리
1. 코란의 역사 - 전기 10년(무거운 분위기, 종말론), 후기 10년(밝은 분위기, 천국)
코란은 신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내려준 계시를 직접 기록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신의 계시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형태 그대로 한꺼번에 내려온 것이 아니고, 약 20년에 걸쳐 조금씩 단편적으로 내려왔다. 즉 계시 자체에 시간적 전개가 있다는 말로, 서양의 이슬람 학자는 이것을 '코란의 역사'라 부르기도 한다. 20년, 역사치고는 매우 짧은 기간이지만 그사이에 일
어난 시간적 전개와 변천 내용은 이슬람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은 것이다. 보통 이 20년간의 역사를 전기 10년, 후기 10년으로 나눈다.
전기 10년은 한갓 상인에 지나지 않던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고향 메카에서 갑자기, 대체로 서기 610년, 그가 40세 무렵일 때라고 전해지는데, 최초의 계시를 받아 예언자가 되고 사도가 돼 종교의 길에 들어선 무렵부터 시작된다. 스 무개가 메카이기 때문에 코란의 메카 시기라고 부른다.
전기 메카 시기는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가 이상할 정도로 종말론적이며, 생생한 종말의 전망이 빚어내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각 개인의 신앙이 심각한 실존적 문제로 부상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인간이 홀로 신 앞에 선다. 여기서 종교는 신 앞에 홀로 선 인간, 그 실존의 근원적 존재방식을 의미한다. 메디나 시기와 비교해서 말하자면, 종
교는 생생한 인간적 체험이며 아직 조금도 제도화되지 않았다.없다. 종말의 날과 심판의 날을 기억하는 마음의 근본적 존재 방식이 '두려움', 타쿠와다. 바로 그것이 현세에 사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 도덕적 진지함의 원동력이어야 한다. 메카 시기에 종교로서의 이슬람을 압도적으로 지배한 것은 이 종말론적 두려움, 어두운 형상을 동반한 실존적 감각이고, 그것이 이 시기 종교의
밑바탕이자 신의 윤리에 대응하는 인간의 윤리였다.
이에 비해 후기 10년은 서기 622년 메카의 정세를 절망적이라 본 예언자 무함마드가 활로를 찾아 야스리브라는 도시(훗날 이 도시는 메디나, 좀 더 정확하게는 '예언자의 도시 메디나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는다)로 이주해서 632년에 세상을 떠나
기까지의 기간으로, 보통 메디나 시기라고 부른다. 전기와는 달리 이슬람이 사라센 제국 건설이라는 영광스러운 길을 걷기 시작한 빛나는 시기였다.
메디나 시기가 되면 이슬람은 현실주의적이고 현
세를 중시하는 종교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슬람의 현세주의는 내세를 최상의 가치로 인정하고 난 뒤의 현세 중시이다. 내세가 최상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는 현세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우선 신 자신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때까지 신은 주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측면으로 인간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분노의 신, 복수의 신, 무서운 심판의 날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메디나 시기에 들어서면, 좀 더 정확히는 메카 시기에서도 점점 메디나 시기에 가까워지면, 신은 자비와 자애, 은혜의 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신은 신앙 깊은 사람들, 착한 사람에게는 내세에 천국의 환락을 줄 것이라 약속한다. 종말론적인 광경이 감각적으로 밝아진 것이다.
2. 신과 인간의 계약
사실 종교를 계약이란 개념으로 여기는 것은 이슬람뿐만 아니라 셈 민족 종교의 일반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구약성경』에 전형적인 형태로 구체화돼 있다. "나는너희의 신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구약의 신은 엄숙히 선언한다. 이스라엘적 종교의식이 이스라엘 백성과 그 신 야훼 사이의 계약에 대한 의식이다.
그리고 지금 이슬람도 같은 길을 걷는다. 구약의 신 야훼나 『코란』의 신 알라나 이슬람은 완전히 동일한 하나의 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아, 내(신)가 일찍이 너희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기억해라. 나와 맺은 계약을 이행해라. 그렇게하면 나도 또한 너희와 맺은 계약을 이행하리라.(코란 2:38/40)
그러나 『코란』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시나이산에서 예언자 모세를 대표자로 세워 신과 계약을 맺었지만 그것을 배신하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메카 시기에 종교, 즉 이 계약은 한 명 한 명이 신과 맺는 실존적인 계약이었다. 신과 인간이 일대일로, 종적 일직선으로 맺는 계약관계이다. 하지만 메디나 시기에는 이 계약이 횡적으로 넓어져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된다. 우선 그 전까지는 신과 인간 사이의 직
접적 인격 관계였으나, 이제 인간은 일차적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이 예언자와 맺은 계약을 통해서 비로소 신과 계약관계에 들어가는 구조이다.
이 경우 일반인과 무함마드가 맺는 계약이 무엇이냐 하면, 예언자 무함마드를 신의 '대리인khalifan'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무함마드는 사람들의 절대적 지도자가 되는 것이고, 여기서 사람들은 신의 명령을 따르거나 혹은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게 무함마드의 명령을 따른다는 계약이 성립된다.
요컨대 처음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개인적, 실존적, 종적 계약이었는데 시간과 더불어 예언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과 인간의 동포적 관계, 순수하게 인간적인 횡적 계약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슬람이 사회성을 띠고 하나의 사회적 종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사실 메디나로 옮기고 나서 무함마드 주위에는 그러한 횡적 계약으로 굳게 맺어진 강력한 집단이 형성돼 있었고, 이렇게 성립된 '신도 집단을 이슬람 '공동체', 아라비아어로 '움마'라 한다.
"오늘 이날 여기서 나(신)는 너희를 위해 너희 종교를 세웠다. 나는 너희들에게 은총을 내리고, 또한 너희를 위해 종교로서 이슬람을 승인했다."
(5:5/3)
"신이 보시기에 참된 종교는 오직 하나, 이슬람이 있을 뿐-----"(3:17/19)
3. 무함마드의 지위 격상
이슬람이 공동체 종교로서 성립됐다는 말은 무함마드의 세력이 절대적이 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 그는 일개 상인이 아니며 일개 종교인이 아니다. 종교인인 동시에 급속하게
팽창하는 공동체의 주권자로서 그것을 제어하는 권모술수에 뛰어난 정치가였다. 따라서 '예언자'나 '사도'라는 말의 의미도 당연히 변하게 됐다. 예언자, 사도는 이제 단순히 신의 계시를 받아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에.관한 일체의 일들을 신의 이름으로 재판하고 자유롭게 처
리하는 지도자였다. 이제 그는 이렇게 종교적 카리스마를 갖고 공동체를 다스렸다. 정치적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공동체에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란』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이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신도에게 내리는 그의 명령은 거의 신의 명령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그대로 신의 말에 따르는 것, 그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곧 신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4. 부족을 뛰어 넘는 이슬람 공동체
먼 옛날부터 아라비아에서는 부족이라는 것이 사회 구성이라기보다 인간 존재 자체의 기초였다. 한 사람의 공통된 선조의 자손이라는 자각, 정식으로 어떤 특정 부족의 일원이 됐다는 자각이 있고 나서야 사람은 비로소 제 몫을 하는 인간이 된다. 부족에서 벗어난 사람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아니다. 요컨대 모든 인간적 가치를 부족이 결
정한다. 부족에게는 각각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습관에 바탕을 둔 가치 체계, 순나sunnah(관습)가 있다. 그리고 부족의 가치체계를 밑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진한 피
의 연대감, 혈연관계의 엄중함이다. 신앙이든 윤리든 모두 피의 연대감을 기초로 성립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적으로 색채가 정해졌다. 자신의 부족이 예부터 좋다고 여겨온 것이 선, 나쁘다고 여겨온 것이 악이고, 그 외에 선악의 기준은 전혀 없다. 그것이 사막인의 도덕적 판단의 유일
한 기준이고, 최고의 행동 원리였다.
같은 부족에 속한 사람들 사이를 묶는 혈연, 연대감은 아라비아에서 사막인의 존재의 밑바탕이었다.
이슬람이 종교적 공동체 이념을 내걸고 정면으로 부딪쳐간 것은 바로 이러한 사막인의 정신이었다. 이슬람은 혈연의식에 바탕을 둔 부족적 연대성이라는 사회 구성 원리를 완전히 폐기해버리고, 혈연의 끈에 의지한 연대성이
무효임을 당당히 선언하며, 그 대신 유일한 신에 대한 공통된 신앙을 새로운 사회 구성 원리로 제시했다.
서기 630년 1월, 메디나로 자리를 옮기고 있던 예언자에게 메카 시민은 항쟁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무함마드는.활짝 열린 문을 통해 승자의 자격으로 당당히 입성한다.
그는 그대로 카바 신전까지 밀고 들어가 그곳에서 제사 지내던 수백의 우상을 부숴버리고 어지럽게 흩어진 그 잔해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이슬람 역사에서 유명한 연설이다.
“이제 무도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따라서 무도 시
대의 모든 피의 부채 (피의 부채'란 누군가가 다른 부족 사람에게 살해당한 경우, 가해자가 속한 부족이 피해자가 속한 부족에게 지는 책임을
가리킨다.) 모든 대차 관계, 기타 제반 권리와 의무도 이제 완전히 청산됐다. 또한 동시에 예전의 계급적 특권도 모두 소멸됐다. 지위와 혈통을 자랑하는 일은 이제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겠다. 여러분은 모두 아담의 후예로서 평등하며, 만일 여러분 사이에 우열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신을 두려워하는 깊이로 결정될 것이다."
이 공동체의 커다란 특징은 거기에 일단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서로 완전히 평등해진다는 사실이다. 앞에 인용한「코란』의 한 구절에서 “믿는 자는 모두 형제"라고 했다.
5. 이슬람을 정점으로 계전의 종교를 포함하는 다층적 공동체
그런데 이슬람 공동체가 대강 이러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순수하게 이슬람교도만으로 구성된 단층 구조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렇지는 않다. 이슬람 이외의 다른 중교 신자들도 그대로 포함하는 다층 구조체이다. 이슬람은 원칙상 다른 종교 신자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않고 선교도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서 '다른 종교'라고 해도 거기에는 한도가 있다. 신의 계시를 받은 종교, 이른바 계시종교, 특히 계시에 바탕을 둔 '성전聖典'을 가진 종교에 한해서라는 의미이다.
원래 이슬람의 바탕에는 근본적 종교 개념으로 '성전의 백성' 혹은 '계전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예언자라는 특수한 사람을 통해서 특별한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의 집단이라는 말이며, 이러한 집단은 이슬람 외에도 더 있다. 다양한 형태로 역사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유일 절대의 '영원의 종교'라는 개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숱한 종교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것이 모세의 계시에 바탕을 둔 유대교,그리고 예수의 계시에 바탕을 둔 기독교이다.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는 그 근본 교의인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이원론이 이슬람의 절대적 일원론과 정면에서 충돌하기 때문에 포함하기에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역시 '계전의 백성'의 하나로 인정하게 됐다. 조로아스터를 신의 예언자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아베스타Avesta』를 신의 계시라고
생각하는 한, 아무래도 조로아스터교 신자 역시 '계전의백성'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코란』에 열거된 많은 예언자 가운데 조로아스터의 이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밖에 이들만큼 대규모는 아니지만, 이미 『코란』에 ‘계전의 백성'으로 거론된 종교 교단이 있다.
이 '계전의 백성'이라는 개념의 특징은 이슬람교도가 아니더라도 '계전의 백성'으로 인정받기만 하면 훌륭하게 이슬람 공동체의 내적 구성원, 즉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을 신봉하지 않는, 「코란』이외의 경전을 떠받드는 다른 '계전의 백성'은 특히 그것에 반항하지 않는 한 모두 이슬람 공동체의 내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안에 일정한 위치를 부여받는다. 물론 그 위치는 이
슬람교도보다 낮고, '피보호자dhimmi'라는 종속적인 것이다. 그 표시로 특별한 세금도 부과된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그 세금은 경제적으로 이슬람교도의 주된 재원財源이었다. 이것은 '피보호자'에게 꽤나 굴욕적이었던 것 같지만, 그 대신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고 평화가 보장된다. 예
를 들어 기독교도의 경우, 교회 밖에까지 나와서 옥외 미사를 드리거나 교회 종소리를 울리거나, 십자가를 높이 들고 행진하거나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일 따위를 하지않는 한 각각 제 종교를 지키고, 자신의 독특한 전례 형식으로 신을 모시는 것이 허용된다. 더구나 그것이 모두 이슬람 공동체 내부 구조의 일부로 취급된다.
요컨대 이슬람 공동체는 단순히 이슬람교도만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아니라, 이슬람교도가 가장 위에 서고 그 아래에 이슬람 이외의 여러 종교 공동체를 포함하면서 하나의 통일체로서 기능하는 '계전의 백성'의 커다란 다층공동체이다.
6. 이슬람법의 성립-코란과 하디스를 근간으로 이슬람법 '샤리아' 성립
원래 이슬람법이 성립된 것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서거(서기 632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서기 8세기 초부터 9세기에 걸쳐 일어난 일인데, 이슬람을 실로 이슬람답게 한 이슬람법의 성립이란 대사업은 신의 의지를 탐구하는 데서 시작됐다. 신의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사물의 본성이 선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의지로 선악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행위 자체가 본성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나쁜 일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다. 신이 그것을 나쁘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그러나 코란은 모든 경우에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코란의 문장을 그대로 읽어봐도 신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아니, 실제로는 그러한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아무래도 제2차 성전이 필요해졌다. 그것이 바로 「하디스」이다. 「하디스」를 가지고 코란을 몇 겹으로 둘러싸, 그 전체를 신의 계시로 이뤄진 구조체로 제시한다.
하디스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다만 언행록이라고는 해도 예언자가 한 말과 행동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가 침묵한 것,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도 똑같이 중
요하게 기록됐다.
무함마드에게 누군가가 무엇을 질문하고, 그것에 대해 그가 대답한다. 이것이 보통의 형태이자 가장 간단명료한 경우이다. 그런데 질문이 아니라 예언자의 눈앞에서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에 대해 그가 의견을 말한 경우도 있다. 또는 말 대신에 몸짓이나 눈짓으로 자신의 반응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누군가가 무엇을 질문해도 예언자가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은 경우, 혹은 눈앞
에서 무엇인가 일어났는데도 그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경우, 그것을 「하디스」는 주의 깊게 기록했다.
이슬람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코란」과 「하디스」는 무오류성을 특징으로 한다. 오류가 없다. 절대로 틀림이 없고 절대로 확실하다. 절대로 확실한 신의 의지가 명확히 문장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코란」과「하디스」가 법률적 사변의 근원이 됐고, 이런 의미에서 이슬람법의 소재는 이 두 가지를 통해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됐다는 말이 된다.
이슬람법은 원어로는 샤르shar 혹은 샤리아sharah라고 한다. 아라비아어 원래의 의미, 법학 학술어가 되기 이전의 '샤르' 혹은 '샤리아'라는 말의 의미는 '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사막에서 물을 먹는 장소로 통하는 주요 도로라는 뜻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사막에서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이슬람법은 민법, 형법, 상법 등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서술한다.
그런데 이슬람 역사의 꽤 이른 시기에, 법률에 관한 성전 해석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성전 해석의 자유를 금지당한다. 구체적으로는 서기 9세기 중엽의 일이다. 그이래 현재까지 여전히 금지된 채로 있다.
이 사태를 이슬람 법학에서는 '이즈티하드의 문 폐쇄',즉 자유 해석의 문이 닫혔다고 한다. '이즈티하드의 문 폐쇄'에 이르러 이슬람법 체계는 완전히 고정돼버린다. 거기에는 유연성이 결여된, 냉혹할 정도로 정연한 체계가 있을 뿐이다. 성전의 자유 해석을 금지한 덕에 이슬람이 수습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러했지만, 대신 활발한 논리적 사고의 뿌리를 잘라버려 이슬람 문화적 생명의 고갈이라는 중대한 위기에 부딪히게된다. 사실 그것이 근세에 이슬람 문화가 조락하게 된 커다란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19세기 중반 이래, 폐쇄된 이즈티하드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계정세에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생존할 수 있는 생명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세계 전체의 진전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근대성을 지키기 위해 아무래도 성전을 다시금 새로이 해석해 새로운 사정에 적응하는 형태로 해석할 자유가 필요하다
는 소리이다.
처음부터 이즈티하드의 문을 닫지 않았던 시아파 이슬람을 제외하면, 아랍 세계에서는 여전히 이즈티하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