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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밀폐된 석실(石室).
가구라고는 한쪽 구석의 침상 하나 뿐이었다.
그 침상도 돌로 된 것이었다. 너무나 단조로운 분위기였고 답답했다. 만일 그 속에서 단 하루만 있는 다 해도 그 무거운 적막과 답답한 중압감 때문에 반쯤 미쳐 버리리라.
더욱이 석실 전체는 온통 회색이었다.
그곳에는 방 분위기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청순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한 소녀가 침상에 길게 누워 있었다.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은 투박하고 평범하기 만한 마의였다. 하나 오히려 그 투박하고 평범함 때문에 소녀의 미모는 더욱 강조되었다.
사람의 피부가 그토록 흴 수가 있을까? 만지면 그대로 은가루가 묻어 날 듯했다. 마치 미의 여신을 ㅇ겨다 놓은 듯한 얼굴이며, 보석같이 영롱하며 흑진주를 연상시키는 눈망울과 갸름한 코, 붉은 입술은 작약 꽃잎을 붙인 듯했다. 길고 우아한 목은 마의(麻衣) 옷깃 사이로 마치 학처럼 보이게 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했던가? 긴 머리카락은 심해(深海)의 해초(海草)처럼 부드러웠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데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십칠팔 세쯤 되었을까? 소녀는 길게 누워 있었다. 보석같이 영롱한 눈은 천정을 향해 있었는데 그렇다고 천정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기 만한 한쌍의 눈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그녀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칙칙하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각형의 회색 석실조차 한없이 아늑한 지상의 낙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딱딱한 돌침상도 화려한 상아 침상처럼 여겨졌다.
소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혼이 빠져나가 빈 껍데기 육체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나 그 육체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히 마력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우물(尤物).
흔히들 이런 경우를 놓고 우물이라고 부를 것이다.
천정에 뚫린 통풍구를 제외하고는 문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석실에 문이 생겨났다. 가볍게 돌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석벽 한 면에 틈이 벌어지며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한 청년이 나타났다. 전신을 붉은 홍의(紅衣)로 감싼 약간 음산한 느낌이 들긴 하나 준수한 삼십대 청년이었다.
삼안수사 호불위였다. 그가 들어오자 석벽은 다시 움직여 본래대로 환원되었다.
"연령......."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의외로 한없이 부드러운 것이었다. 또한 침상 위의 미소녀를 향한 그의 눈에서는 넘치는 정열과 사랑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미녀에게로 다가갔다. 미녀는 여전히 허공 중에 아름다운 눈을 던져 놓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그녀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호불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연령, 아직도 화를 내는 것이오? 나를 아직도 용서할 수 없단 말이오?"호불위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았으며 안타까운 빛이 어렸다.
"나의 실수였소. 당신의 조부를 애초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소. 다만 그가 너무 고집을 세웠던 것이오."미녀의 눈빛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호불위의 변명을 듣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영혼은 일반 사람이 알지 못하는 먼 세계를 헤매고 있는 것이리라.
호불위는 떨리는 손으로 아무렇게나 가슴에 얹어져 있는 섬섬옥수를 잡았다.
손(手).
인간의 손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일까? 여인의 손이 아무리 아릅답다 해도 종래에 흠을 잡으려면 무언가 하나씩의 흠은 있는 법이다.
살빛이 약간 검다든가 붉다든가 아니면 지나치게 희여 창백한 가운데 심줄이 비친다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손톱 모양이 조금 이지러져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녀의 손은 무결(無缺)이었다. 도무지 흠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희고 갸름한 손가락은 마치 옥(玉)을 깎은 듯했다.
호불위는 넋을 잃었다.
"연령, 그대의 신체의 어느 한 부분, 심지어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나는 사랑하오. 그것은 그대가 이 지상 최고의 완벽한 미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오. 그보다는......."호불위의 넋두리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인양 너무도 이전까지의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악한 위인에게도 이런 지순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 그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는 애당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연령, 실상 그대가 어렸을 적부터 나는 줄곧 그대를 지켜보았지. 코흘리게 때부터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에 취했었고 언젠가는 그대와 결합되리라 굳게 믿어 왔었지......."호불위는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비록 내가 가진 야망(野望)을 위해 그대의 조부를 어쩔 수 없이 해치기는 했으나 그것이 어쨌단 말이오? 내게는 오직 그대만이 중요할 뿐, 그 밖의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소. 당신은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단 말이오?"문득 호불위의 얼굴에 자아 도취적인 오만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후후후... 나는 연령, 그대가 있음으로써 항상 그에 대하여 한 가닥 승리감을 맛볼 수 있었소. 나는 세상에서 오직 단 한 사람 그에게만 굴복했소. 나 호부위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소. 하나 그를 만난 이후 내 자존심은 무참히 꺾여야 했었소. 하나 그런 중에도 내게는 당신이 있기에 내심 그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오."호불위는 마치 몽상에 빠져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최소한 그는 연령을 모르고 있소.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나는 아오. 하나 후후... 그녀를 당신에게 비한다면. 후후후... 안된 얘기지만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요."호불위는 문득 싸늘하게 외쳤다.
"그가 만일 당신의 존재를 알고 당신을 취하려 한다면 나는 아마 미쳐 버릴 것이오!"호불위의 태도는 도저히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는 홀로 정열에 불타고 홀로 질투심에 사로잡혀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마음의 병이 깊어져 급기야는 광인이 되고 만 것일까?"흐흐흐... 핫핫핫... 하나 안심하오, 연령. 그는 절대로 당신을 알지 못할 것이오. 또한 조만간 나는 그를 능가하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그가 보는 앞에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소. 흐흐흐흐...! 그렇게 되면 그는 아마 분에 못 이겨 자살을 하고 말 것이오."자기 혼자 떠들고 자기 혼자 웃고 화내던 호불위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왜 그대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오! 그 따위 늙어버린 늙은이가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이오!"부르르......!
분노한 듯 호불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동시에 그의 미간에서 홍광이 번쩍 일어났다.
눈(眼).
제 삼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것은 마안(魔眼)이었다. 마령최심안공이 시전되는 것이었다. 사자들을 빨아들이는 지옥의 입구처럼 벌어지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하하핫......!"
그는 미친 듯한 광소를 터뜨렸고 이어 누워 있는 미녀를 왈칵 안아 일으켰다.
"연령! 나는 오늘 기어이 그대를 굴복시키고 말겠소! 나의 노예로... 내 마령의 노예로 말이다! 핫핫핫...! 그렇게 되면 너는 영원히 이 호불위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었다.
"보아라! 내 눈을! 이 마령안을... 너는 빠져들 것이다. 깊고 깊은... 흐흐흐... 지옥의 바다 속에 너는 잠들 것이다. 피바다에 누운 너는 느낄 것이다. 어디에서도 너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들리느냐? 마령의 소리가, 마령의 부름이......."오오... 만일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 자신의 두 눈을 후벼 파내지 않으면 스스로 천령개를 내리쳐 자살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양미간 사이에 하나의 눈이 흡사 악마의 눈처럼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지옥의 불덩이처럼 보였다.
활활 타오르는 시뻘건 광구(光球)였다. 어떻게 보면 심연 속에 가라앉은 바다처럼 보였다. 그것은 핏물로 채워진 바다였다. 호불위의 저주받은 마령안(魔靈眼)은 세상을 온통 빨아들일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답해라... 나의 노예여! 너는 마령의 충실한 종일지니......."그것은 악마의 주문이었다.
"나... 는... 마령의... 종......."
드디어 미녀의 입이 열렸다. 그녀의 눈은 이상한 빛을 내기 시작했으며 창백하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에는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호불위는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러자 그의 마령안은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마령의 노예여... 너는 느낄 것이다. 마령은 너의 지배자... 마령은 너를 원한다. 너는 마령의 곁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마령의 품은 한없이 넓고 따뜻하다. 노예여... 흐흐흐... 어서 마령에게로......."순간 미녀의 입술이 가볍게 벌어졌다.
"으음......."
그녀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천진하고 정열적인 열기가 발산되고 그녀의 호흡은 뜨거워졌다. 그녀의 몸이 호불위에게로 기울어졌다. 하나 눈동자는 여전히 마령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령의 노예여... 마령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마령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다. 자... 이제 벗어버려라. 너의 그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마령에게로 오너라... 마령은 너를 극락으로 인도할지니... 어서 옷을 벗어 던져라.......""아......."
미녀의 표정이 황홀감에 젖었다. 그녀는 완전히 최면에 걸린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스스로 옷고름을 풀렀다.
사르르.......
앞섶이 열리면서 분홍빛 젖가슴이 드러났다.
순수한, 그 누구에게 보이지 않은 금단의 과육은 잘 익어 있었다. 그 속에 배인 달콤한 과즙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오랜 세월 익어 온 것이었다.
팔랑......!
옷이 날아갔다. 정말 그녀는 옷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오직 한 가지 일념밖에는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일념... 그 지고지순한 감정으로 인해 그녀는 온몸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마침내 그녀는 태초 본연의 나신이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아름다웠다. 더 이상의 표현은 도리어 그녀를 욕되게 할뿐이었다.
실 한올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그녀는 서서히 호불위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천상의 과일 같은 그녀의 젖가슴이 눈부시게 출렁거렸다. 호불위는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호불위를 향하여 오직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오직 순진무구함만이 있었다.
호불위는 흥분과 도취로 가볍게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잔 경련을 일으키다가 서서히 미녀가 다가옴에 따라 그의 몸은 흡사 파도가 치듯이 진동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 그가 그토록 손에 넣기를 갈망했던 미녀가 지금 알몸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다. 그것도 오직 자신에게 몸을 허락하기 위해서 말이다.
'헉!'
호불위는 흡사 천만 가닥의 뇌전이 자신을 강타했다고 생각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미녀가 그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그녀는 열에 들떠 뜨겁게 달아오른 육체를 그에게 마구 비벼대는 것이 아닌가?호불위는 너무나 기뻤다. 이제야 그의 마령최심안공이 성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마령안은 실패를 거듭했다. 하나 오늘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이제 그는 손만 뻗으면 그녀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를 수 있었고 침상에 눕히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다. 그는 오랜 숙원을 드디어 풀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나 그 순간이었다. 그의 희열에 들뜬 마음에 느닷없이 얼음장같은 전율을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타격이 그를 세차게 후려친 것이다.
"안아줘요... 마령......."
"안돼--!"
그는 미친 듯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미녀를 냅다 석벽을 향해 내팽개쳤다. 미녀는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호불위의 얼굴은 무서운 증오와 열패감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쓰러진 미녀를 노려보며 미친 듯이 퍼부었다..
"왜, 왜? 나여서는 안된다는 거지? 왜? 마령... 마령... 마령만이 너를 안을 수 있단 말이냐? 으하하하핫...! 치워라! 이 호불위는 그런 사랑은 원치 않는다! 기필코 너를... 너를... 나 호불위의 사랑으로 만들고 말겠다! 언제이든... 얼마나 시일이 걸리든 말이다! 으하하하... 으하하하하......!"호불위는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리며 옷을 미녀에게로 던졌다.그리고 그는 달아나듯 사라졌다. 회색의 방에 미녀를 그대로 두고 나가 버린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고금을 통틀어 보면 수많은 유형의 사랑이 있었고 그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그 중에서도 때로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이 경우의 삼안수사 호불위의 마음을 그대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진정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리라.
호불위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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