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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세 개의 눈(三眼).
시뻘겋게 충혈된 세 개의 눈은 광기에 불타고 있었다.
"흐흐흐흐... 애송이 놈! 연령을 내게서 빼앗아 가다니... 감히 내게서......."삼안수사 호불위의 전신에서는 짙은 혈무(血霧)가 피어올랐다.벌써 며칠째 그는 식음을 전폐했다. 비밀 동굴이 공격을 받고 만연령이 납치된 이후 그는 거의 반미치광이의 상태였다.
"으하하하핫... 네놈이 한 짓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일깨워 주마! 크하하핫...! 너의 그 건방진 콧대를 네 머리와 함께 납작하게 눌러 주마!"우우웅......!
분노와 광기에 찬 호불위의 음성에 대번에 무너질 듯 진동했다.
"길문안!"
"네......!"
총문안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는 몇일째 호불위의 근처에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언제 호불위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때가 온 것이었다.
호불위의 마령안이 무서운 불을 뿜었다.
"하순영에게 전해라! 중양절(重陽節)에 원로회의(元老會議)를 개최하되 전 도인이 모인 자리에서 본좌의 취임식을 선포하라고 말이다!""그... 그것은......!"
길문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호불위가 너무나 큰 충격으로 인하여 잠시 판단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핫핫핫...! 이제껏 너무 오래 기다렸다... 노도주가 오년 간 의식불명인 상태라 더 이상 도주 자리를 비워 둘 수가 없다고 말이다!""그... 하나... 반대자들은 극력 저지하려 들것입니다.""흐흐흐... 길문안, 지금 본좌에게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가? 본좌가 그 애송이 천가 놈을 두려워하기라도 해야한단 말이냐?"길문안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속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 수백 년간 사소한 분쟁 하나 없던 본도에 엄청난 피의 혈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훗훗훗...! 그대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모르는가? 만일 그날 반대자들이 본좌를 방해한다면, 흐흐흐... 새로운 도주는 결코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길문안의 가슴에서 쿵! 하고 무엇인가 부딪친 듯한 충격파를 냈다. 그는 내심 경악하고 있었다. 호불위는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무모하고 패도적인 마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아! 마침내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겠구나.......'구월 구일 중양절 오시(午時).
장소는 중원전(中元殿) 연무장(鍊武場).
마침내 오 년동안 공석이나 다름없던 남천신도의 도주를 정식으로 원로원의 회의와 전 도인의 의견을 거쳐 선포하게 된다.
그 취지는 원로원에서 전 도인들에게 통고되었다.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도인들의 마음은 이 선포로 인해 공포심으로 촉각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고 있었다.
드디어 지리한 암투의 결판이 나는 것이다.
오년 간 끌어온 도주의 와병은 어느 정도 도민들의 마음에 갑갑함을 심어 주었다. 새로운 도주의 탄생은 그들의 마음에 한 가닥 혁신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한데 갑자기 나타난 도주의 혈육이라 나선 인물로 인해 후계자 승계에 차질이 발생했다. 자칭 소도주라 주장하며 남천신도에 들어온 천우와 사년 간 부도주로서의 실권을 행사해 왔던 삼안수사 호불위는 지금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두 사람 중 과연 누가 정식 도주로 인정될 것인가를 놓고 남천신도는 명백히 두 패로 갈라섰다. 소도주의 지지자들과 부도주의 지지자들은 모두 서로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정통과 혁신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첨예한 대결구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신목가는 오랜 세월동안 남천신도의 강호출도를 막고 있어서 은연중 불만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 시기에 사고였지만 강호에 나갔다가 돌아온 삼안수사 호불위는 그들에게 대리만족과 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었다.
어쨌든 구구중양절의 대회전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섬은 알게 모르게 긴장감으로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삼안수사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섬을 장악하려 들 것이다. 원로원의 칠인 원로들은 원주인 하순영을 제외하고 모두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은 결정난 것이다.
더욱이 수에 있어서 도인들의 지지도에 있어서나 대세는 이미 부도주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하나 도인들은 막연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소도주 천우를 보고 난 다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끌리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본 천우는 호불위를 능가하는 것 같았다. 신선도 반할 준미한 용모도 물론이거니와 그를 따르는 만기서군과 십무광사를 부리는 그의 태도로 보아서도 도인들은 그에게 작지 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중양절은 중원 전래의 명절이었다.
그런데 경사로워야 할 명절을 앞두고 남천신도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거센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 째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폭우와 무시무시한 낙뢰로 집과 가축이 떠내려가고 인명이 피해를 입었다.
도인들은 이 기상이변을 놓고 불안과 공포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쿠쿵!
무서운 폭풍우가 섬을 온통 뒤덮었다. 해변가에 위치한 가옥과 전답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했다.
뇌성벽력이 남천신도를 온통 갈갈이 찢어놓을 기세였다. 닥쳐올 앞날에 대한 예고인양 무자비하게 남천신도를 덮치고 있었다.
드디어 도인들이 기다리던 구구중양절이 되었다.
-중원전(中元殿).
남천신도에서 가장 큰 대전은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대전 안에는 오백여 명의 인물들이 있었으나 무서울 정도로 적막이 감돌았다.
먹구름이 잔뜩 덮인 하늘에서 시퍼런 뇌섬이 일자 순간 대전 안이 음산하게 밝아졌다. 대전 안의 모인 도인들의 얼굴이 괴기스럽게 비춰졌다. 뒤이어 대전이 온통 뒤흔들릴 정도의 벽력음이 울렸다.
우르르.......
중인들의 마음은 터질 듯 긴장되었다. 본래 연무장에서 벌어질 행사는 폭우와 해일로 대전 안으로 옮겨졌다.
대전의 상단부로 중인들의 시선은 집중되어 있었다. 중앙에 태사의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은 도주의 자리였다. 하나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아래 칠인의 원로들이 나란히 앉았다. 그들의 낯빛은 한결같이 긴장되어 있었다.
또한 더 아래에는 좌우로 두 개의 의자가 있고 그 의자에 바로 남천신도에 바람을 일으킨 두 장본인이 앉아 있었다.
소도주(少島主) 천우(天羽)와 부도주(副島主) 삼안수사(三眼秀士) 호불위(胡佛韋)가 바로 그들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도주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 도인들은 모두 으스스 한기를 느낀다. 오늘 오랫동안 끌어오던 긴 싸움(?)은 무조건 결단이 나는 것이었다.
쏴아아아아......!
남천신도는 무서운 폭풍우에 흡사 고립된 듯하다. 따라서 중인들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윽고 중인들의 긴장된 시선 속에 원로원의 수석 원로인 화순영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여러분, 알다시피 본도는 그 동안 도주님의 와병(臥病)으로 인해 오랫동안 여러 가지 사안(事安)이 공백상태가 되었던 것이오.""......."
좌중은 그의 발언으로 더욱 긴장되었다. 하순영은 중인들을 서서히 둘러보며 말했다.
"그 동안 부도주께서 본도를 이끌어 나가신 바 본도는 평온을 유지할 수가 있었소이다.""와-- 와--!"
"그렇소--! 모두 부도주님의 공이시오!"
조용하던 중원전이 일시에 함성과 외침, 그리고 박수 소리로 인해 요란해졌다. 그것은 삼안수사의 지지자들이었다. 화순영은 손을 흔들어 소란을 제지시킨 다음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부도주께서는 당연히 도주를 승계함이 원칙일 것이라고 사료되오이다."그 말에 지지자들은 다시 일제히 함성과 갈채를 터뜨렸다. 삼안수사 호불위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모든 일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원로원은 이미 자신의 대변자였으며 도 전체의 삼분지 이는 이미 자신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도주의 자리는 당연히 내 차지지.......'호불위는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천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천우는 그의 시선을 받자 히죽 웃어 보였다.
'네놈이......?'
호불위의 가슴에 증오와 살기가 끓어올랐다. 문득 만연령을 빼앗긴 일에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찰나기간이었지만 그의 마령안에서 엄청난 살기가 쏟아져나왔다.
하나 도인들은 흥분과 기대로 들떠 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하순영의 창노한 음성이 이어졌다.
"하나 예상치 못할 변수가 일어났소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섬을 떠나셨었던 도주님의 직계인 공주(公主)의 친자께서 회도(回島)하심으로써 도주의 승계 문제에 논란의 여지가 발생한 것이외다."중인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시선은 천우에게 향해졌다. 사실상 천우는 그 동안 공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
그들은 천우를 보는 순간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도주의 혈족 신목가는 대대로 남천신도의 문주였다. 이제 신목가의 혈족이 돌아온 것이다. 하나 지난 오 년간에 공백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일종의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전통과 관습에 대한 혁신의 갈등이었고 구세습에 대한 신진세력의 갈망이었다. 하나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남천신목가에 대한 뿌리깊은 충심이 있었다. 군중들의 마음은 흔들렸다.
"본 원로원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원로회의를 개최하였소이다.""......!"
장내가 엄숙해졌다.
"천 공자께서 공주님의 친자지 아닌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외다. 공자께서는 비록 공주님의 신물 및 표식을 가지고 계시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외지물(身外之物)인 것이오."중인들은 가슴에 의혹이 일었다.
'그렇다. 신물쯤이야 얼마든지 얻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무엇으로 신목가의 후예임을 증명한단 말인가?'하순영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원로원에서는 공자께서 직계임이 증명할 수 없다면 그 분은 소도주로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도주 승계도 거론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소이다."중인들은 술렁거렸다. 특히 애당초 충직한 신목가의 지지자들의 당혹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물은 신목가의 증표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신목가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삼안수사 호불위의 얼굴에는 이제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끝은 보나마나한 것이다. 그는 천우를 보았다.
그런데 천우는 여전한 안색 하나 변치 않은 채 빙글거리고 있지 않은가?'미친 놈......!'
호불위는 어떻게 보면 조금 멍청해보이는 천우를 비웃었다.
좌중을 집중시키려는 듯 하순영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원로원은 이 자리에서 그 동안 끌어오던 문제를 확정지으려 하오."이때였다.
문득 중인들의 귓전에 괴소성이 들려 왔다.
"잠깐! 킬킬킬...! 이의가 있소이다. 원주!"
그 미소에 중인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그것은 한 괴인의 등장 때문이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행색의 미치광이 같은 봉두난발에 맨발의 괴인이 좌중을 가르며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도인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고 또한 꺼려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십무광사 태을부였다.
하순영은 물었다.
"태태사(太太師), 무슨 의견이 있소이까?"
"컬컬컬...! 있고 말고! 어째서 이 자리에 도주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오? 뿐만 아니라 노부는 도주의 병이 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원주는 그 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소?"그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아니 누가 도주에게 독계를 쓸 수 있단 말인가? "......!"
장내는 큰 충격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순영의 안색도 시뻘겋게 변했다.
"태태사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무슨 증거라도 있소이까?"태을부는 때가 시커멓게 낀 손톱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것은 내 확신이오. 헐헐헐... 당신들은 오년 전 일어났던 연쇄적인 살인사건과 그때 흉수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오. 그리고 도주님의 와병은 그것과 연관이 있소.""......!"
태을부는 좌중을 휘익 둘러보더니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일 흉수가 음모를 꾸몄다면 이것은 마땅히 이 자리에서 밝혀 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소?"하순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째서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느닷없이 한 가닥 심금을 울리는 옥음(玉音)이 흘러나와 중인들은 모두 흠칫했다.
"근거가 없다고요? 소녀가 근거예요!"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집중했다. 곧 그들의 얼굴에는 일종의 몽롱한 기운이 떠올랐고 모두 아련한 공상의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는 숱한 여자가 있고 그 중에는 흔히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미녀는 부지기수다. 하나 이런 종류의 미녀는 흔치 않았다. 아니 지상에 존재하기가 여의치 않은 일이다.
좌중을 헤치고 나타난 미인은 바로 만연령이었다.
중인들은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그들의 공통적인 연인이 아닌가? 연령의 어린 시절을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고 그녀가 자라면서 요정(妖精)에서 점차 감미로운 여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만연령을 아끼고 있었다.
만연령은 도인들의 가슴 속에 만인의 연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만연령은 단 위에 나타났다. 그녀는 평범한 마의를 입었고 항상 그런 차림이었다. 색이 단조하고 불투명하며 질감이 거친 옷이었다. 하나 사람들은 이 세상에 그 어떤 옷보다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연령은 구름 같은 머리채를 자연스럽게 등뒤로 흘려 내리고 중인들을 그 신비한 보석 같은 눈으로 한 차례 조용히 응시했다.
어느 특정인을 쳐다본 것도 아니었으나 오백여 명의 도인들은 모두 달콤한 느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흡사 그녀가 오직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연령은 작약같이 붉은 입술을 열었다. 그러자 젖어 드는 듯 속삭이는 듯한 음색의 말이 흘러나왔다. 좌중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얼마 전 소녀의 조부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 계시나요?"물론 중인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남천신도는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었고 그 어떤 작은 사건도 모두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씨족사회와 비슷했다.
"집은 불타고... 조부께서는 돌아가셨어요."
사람들은 가슴이 시큰해진다. 그들 중에서 한 번이라도 만생우의 의술에 도움을 받지 않은 자는 없었다.
그녀의 음성에는 절제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낮은 흐느낌이 섞여 있었다.
"왜 돌아가셨는지도 아시나요?"
그녀의 음성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살해되신 거예요!"
음성은 높았고 사람들은 모두 몸을 떨었다.
"흐흐흑...! 조부님은 살해되신 거예요. 왜 인줄 아세요? 조부님의 입을 막아 비밀을 지키려는 자에게 당하신 거예요."장내는 금시 소란이 벌어졌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만생우는 편작이나 화타에 비견될 정도로 남천신도 내에서 도주와 버금가는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삼안수사 호불위는 그녀가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보기 딱할 정도로 여러 차례 변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이 번져 있었다.
'연령... 연령......!'
그는 끊임없이 내심 그렇게 외치고 있었으며 정작 그의 입밖으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와 같이 뱀처럼 사악하고 차가운 잔혹성을 지닌 인물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왜?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아시겠어요? 조부님은 오 년 전...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의인(醫人)으로서 병을 고쳐 주는 본문을 저버린 채 도리어 한 사람은 불치(不治)의 병에 빠뜨렸어요!""......!"
"조부님은... 당시 어린 소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협박에 못 이겨 그 같은 무서운 일을 하셨어요......!"중인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충격 그리고 분노가 일어났고 서서히 장내가 흔들리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의 소음 따위는 이미 들리지 않는지 오래였다.
"조부께서 괴질을 뿌린 분은 바로... 바로... 도주님이셨어요."그것은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좌중은 일제히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 만연령을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번--. 쩍!
섬광이 작렬한 순간 경악으로 일그러진 중인들의 표정이 구석구석 남김없이 드러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역모자(逆謀者)에게 엄청난 살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신목가에 대한 충심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콰르릉! 쾅--
도인들의 분노를 알기라도 하는 듯 우레 소리는 더 크게 대전을 내리치고 있었다.
장내는 수라장이 되었다. 모두가 흥분하여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주먹을 흔들며 외쳐 대고 있었다. 하나 그것은 뒤죽박죽이 되어 하나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만연령은 멈추라는 듯 섬섬옥수를 흔들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소녀는 조부님이 돌아가신 후 바로 그 원흉에게 납치되었어요.""......!"
만연령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호불위를 스쳐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웃... 웃다니.......'
적어도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호불위는 조금이라도 당황하는 기색이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눈이 부딪친 순간 반가운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그 미소를 접하자 그녀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을 느꼈다. 이때 원로원주 하순영이 침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소저, 너는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
그 말에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물론이에요."
만연령은 또박또박 말했다.
"누구보다도 도주님께서 가장 잘 아시니까요."
중인들은 술렁였다. 남천신도의 도주 송일기는 오 년째 의식불명이 아닌가?하순영은 침통하게 말했다.
"하나 불행히도 도주께서는 입을 열지 못하시오. 만소저!"바로 그때였다. 문득 한 가닥 힘이 없으나 은은한 현기가 어린 음성이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하순영, 누가 본도주(本島主)더러 입을 열지 못한다고 하는가?"장내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고 모두들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이... 음성은......!'
이때 중원전 내전으로 통하는 안이 열리며 바퀴 달린 의자가 서서히 굴러 나왔고 의자 위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전신에는 하얀 천이 칭칭 감겨 있었다.
얼굴 피부는 온통 주름투성이었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엄청난 고통과 병마에 시달렸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를 모시고 나오는 예쁘장하고 앳띤 얼굴의 여인은 초초였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성숙한 자태로 변화하고 있었다.
"도... 도주님이시다......!"
누군가가 부르짖었다. 중인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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