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순정은 얼마나 대단한가.
여인은 경기도 감악산 깊은 산줄기 자락 아래 살았다.
복사꽃같이 붉은 수줍음과 목련꽃 같이 순수한,
純情을 품은 여인은 서울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2년도 안 돼 버림을 받았다.
혼자 시집살이는 가혹했다.
시어머니는 때때로 여인의 뺨까지 때렸다.
함께 사는 시누이, 손윗동서도 호된 시집살이를 거들었다.
남편의 첩은 상술이 뛰어나 남편 사업을 많이 도왔다.
그리고 교활한 술수와 말재주로 시집 식구들의 비위를 잘 맞췄다.
여인은 감히 첩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여인의 곱된 얼굴은 시집살이에 더께가 껴 색을 잃었다.
하지만 품성만은 늘 우아했다.
여인에게 아들 하나 있었다.
아들은 해맑았다.
여인은 저녁이면 새근새근 잠자는 아들을 보며 하루의 고달픔을 잊었다.
하지만 아들은 어렸을 때 백일해를 앓아 늘 기침을 했다.
여인은 부처님께 빌고 온갖 좋은 약을 쓰나 아들의 병은 낫지 않았다.
여인의 남편은 가끔 본가를 찾았다.
여인은 어쩌다 보는 남편이 낯설었다.
그러나 애절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도 당신 아들이니 한 번만이라도 눈길 주기를 바랬다.
어느 한겨울 날.
아기가 숨이 끊어질 것 같이 기침을 하자
여인은 눈에 푹푹 빠지면서 아들을 업고 첩의 집을 찾아가 여보를 부른다.
남편은 울고 섯는 여인의 어깨를 다독이며 돈을 준다.
세월이 흘렀다. 여인의 아들은 몸이 약했지만 조촐한 직장을 얻어 생활했다.
첩의 아들도 최고 학벌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다.
집안 어른들의 사랑은 모두 첩의 아들한테 쏠렸다.
첩의 아들이 이 집안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그런데 어쩌랴.
신의 장난을.
그렇게 잘난 첩의 아들이 눈 쌓인 돌계단에서 미끄러져 젊은 나이에 죽었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여인은 못난 자기 아들이 살아있는 것이 죄가 되는 것처럼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그러나 여인도 인간이다.
여인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을 구박한,
눈물 속에서 살게 한 인간들에게 신이 해준 통쾌한 복수를 즐겼다.
그래도 여인은 청춘에 간 영혼이 극락 가도록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또 세월이 갔다.
이번엔 오직 엄마만을 위하던 금쪽같은 여인의 아들이 중년 나이에 죽었다.
여인은 기가 막혔다.
여인은 슬픔으로 심하게 앓는다.
그때 첩이 살그머니 다가와 손을 잡는다.
“형님. 형님 아들, 내 아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네요.
이제 집안에 형님과 나뿐, 우리도 그렇게 가겠지요”한다.
그 후 두 여인은 인생무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지난 일을 사죄하고 용서하며
서로 사심 없이 친동기처럼 의지했다.
고즈넉한 늦가을 저녁.
의자에 앉은 노인인 어깨에 흘러내린 숄을 첩이 올려주며 농을 한다.
“형님 무슨 생각하세요,” “그이 생각하세요?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요. 가슴 두근거리고 그랬어요” 첩이 계속 묻는다.
여인은 “무슨 그이 생각을.”
하지만 여인은 18살 때 감악산 자락에 시골 농촌 총각만 보다가
처음으로 서울의 부잣집 아들, 훤칠한 미남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날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실개천 가, 자잘한 꽃들에게
잠깐 본 남자와 단 며칠만 살아도 유감없다는 말 한것을 생각하고
지금도 설레는지 노인은 볼을 붉힌다.
여인은 병든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고
남편의 아내라는 이름만 갖고 세찬 생의 물살에 휘둘리며 살아 냈다.
그것은 짧았지만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한 순정 때문이다.
여인은 지금도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는지
입가에 미소가 흘러내린다.
호르르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는다.
떨어지는 붉은 낙조가 넋 나간 여인의 혼을 곱게 싸안는다.
( 이 여인이 저의 이모, 요양원에서 96세 까지 사셨습니다.) 낭만 씀
첫댓글 아~
실화군요
그여인은 행복했을까요?
순정을 다 바친 그여인이
불행한 삶이 아니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잘 읽고 갑니다~늘 건강하세요~
아.~
옛날엔 왜 그리 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