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햐아~"
엄지 실장석 하나가 노랑과 빨강의 단풍으로 물든 세상을 보며 탄성을 내지른다.
"레훙! 엄지챠 즐거운 레후? 구더기 프니프니도 즐거울 것인 레후!"
엄지의 품에 안긴, 제법 덩치가 큰 저실장 하나도 흥분해서 꼬리를 파닥거린다.
둘의 뒤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이 열린 골판지 상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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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친실장은 보존식인 밤과 도토리 따위를 줍기 위해 근처 숲으로 나갔다.
자실장 셋은 교육을 위해 모두 데려간다.
하지만 엄지와 저실장은 방해만 될 것이 뻔하기에 집에 남겨두었다.
"아직 오마에에게 밖은 위험한데스. 마마가 올 때까지 절대 집 밖으로 나오지 마는 데스."
물론, 친실장은 집을 떠나기 전에 엄지에게 '골판지 안에만 있으라' 신신당부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엄지의 미숙한 사고는, 그저 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녀석이 집을 나서게 만들었다.
그러는 중에도 구더기에 집착하는 본능 때문일까, 엄지는 저실장을 품에 꼭 안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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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 앞의 공터에서 엄지는 저실장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그러던 중 엄지는 근처에서 작은 피리 소리 같은 것을 듣는다.
[피이- 피이-]
소리의 주인은 주황색의 작고 동그란 새, 딱새다.
자그마하지만, 활기차고 당돌한 새.
늦가을을 맞아 풍성하게 털을 부풀린 형상이 마치 탁구공과도 같아서,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맘때의 딱새를 딱구공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한다.
"레치?"
실장석의 관점에서도 무척이나 귀여운 그 모습이 엄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엄지는 저실장을 내려놓고, 양 손을 팔딱이며 [레치- 레치-] 울면서 새를 향해 달려간다.
'저것이 마마가 말했던 고무공이다.'
엄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친실장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고무공에는 꼬리와 발 따위가 달려있지 않았음에도, 엄지의 빈약한 두뇌는 멋대로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믿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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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딱새도 엄지를 요리조리 피하며 관찰한다.
그렇게 엄지를 약올리던 딱새의 눈에, 바닥에서 꼬물거리는 저실장이 들어온다.
딱새는 작은 열매류도 곧잘 먹지만, 주식은 단연 벌레의 유충이다.
겨울에는 작은 씨앗이나 열매를 먹으며 버티지만, 봄부터 가을 사이에는 애벌레 따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나 겨울에 대비해 고지방의 먹이를 섭취해야 하는 딱새에게, 이맘때의 애벌레는 무척이나 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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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가 저실장을 향해 통통 튀어나가면서 엄지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레? 공씨는 어디간 레치?"
저열한 동체시력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 엄지가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 사이, 딱새는 저실장 바로 앞에 도달하여 아래를 내려다본다.
"레후? 공씨는 구더기와 놀고 싶은 레후? 프니프니의 예감이 드는 레후~"
저실장이 하늘을 향해 돌아눕더니, 꼬리와 짧은 발을 파닥거린다.
초록색의 꿈틀거리는 작은 생물.
딱새의 본능을 자극하는 애벌레의 형상이다.
딱새의 부리가 저실장의 꼬리 끝을 집어올린다.
"레훙! 공중 프니프니는 처음인... 레헤?"
저실장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딱새의 머리가 회전하며 아래로 휘둘러진다.
"레뺫!"
저실장은 머리부터 바닥에 부딪히며 비명을 지른다.
저실장의 두건 사이로 빠르게 피가 스며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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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는 저실장의 비명을 듣고서야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열심히 저실장을 패대기치는 딱새를 향해 달려가며 외친다.
"레에에!? 공씨는 그만두는 레치! 구더기챠를 괴롭히면 안되는레치이!"
그러나 울면서 딱새 앞으로 달려간 끝에 엄지가 본 것은, 머리가 뭉개져 죽은 저실장과 그것을 물고 있는 딱새였다.
"레히이이! 공씨는 무슨짓을 한 레챠아! 구더기챠를 돌려내는 레챠아아!"
엄지가 짧은 두 팔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딱새는 재빠르게 피해서 나무 위로 올라간다.
엄지는 또 다시 시야에서 새를 놓쳐버리고는 두리번거린다.
실장석, 특히 엄지는 머리와 목의 구조상 높은 곳을 바라보기 어렵다.
말 그대로, 딱새는 엄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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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레치...'
발을 동동 구르던 엄지는 본능에 따라 비장의 수를 쓰기로 결정한다.
자신을 거둬줄 닝겐상을 위해 아껴왔던 그 동작을 준비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딱새를 향해, 엄지는 한 손을 볼에 대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외친다.
"레츄웅~ 공씨는 아타치에게 메로메로 되는 렛츙. 어서 돌아와서 구더기챠를 돌려주는 레츙~"
물론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부질없는 짓을 하는 엄지 따위는, 겨울을 앞두고 살을 찌워야 할 딱새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그렇게 엄지는 자신이 돌보던 저실장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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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아! 마마아아아!"
그날 저녁.
먹이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친실장과 자실장 무리는, 그들을 보자마자 울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오는 엄지를 마주한다.
"데데?! 오마에, 왜 우는데스?"
친실장은 자신의 다리에 들러붙으며 훌쩍거리는 엄지를 들어올렸다.
"마마아! 공씨가... 공씨가.... 레끅..."
"오마에 침착하는데스! 대체 무슨 일인데스?"
친실장이 엄지를 어르고 달래는 동안, 집 안에 들어갔던 차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뛰쳐나온다.
"마마! 우지 오네챠가 없는 테치!"
"뎃? 엄지 오마에, 구더기는 어디에 두고 혼자 있는데스?"
친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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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의 한 끼 식사가 되어버린 저실장.
그 저실장은 친실장이 올 봄에 독립하자마자 처음으로 얻은 소중한 자였다.
이어지는 여름에 자실장 셋과 엄지 하나, 그리고 약간의 구더기를 더 얻었지만, 친실장은 그 저실장을 여름의 장녀 자실장과 동등하게 대우해주며 아꼈다.
어미의 당부 덕분에 자실장들도 그 저실장을 언니라고 부르며 아껴주었다.
머리가 부족한 엄지는 저실장을 자신의 놀이상대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저실장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저실장도 엄지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엄지의 건방진 생각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끼던 저실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엄지만 남아 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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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에... 구더기챠는 어디에 둔 데스?"
친실장이 한번 더 묻는다.
어미의 험악한 표정을 본 엄지는 레끅거리면서 불쌍한 목소리로 답한다.
"집 앞에서 주황색 공씨가 물어간 레치. 아타치가 손쓸 새도 없이 물어간 레치.."
엄지를 들고 있는 친실장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공씨가 나쁜 레치! 아타치가 다가가서 놀아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은 레치! 구더기챠에게 슬픈 일을 한 레치! 아타치의 귀여운 애교도 무시한 레치! 마마가 당장 가서 혼내주는 레치야!"
어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엄지가 나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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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이모토챠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 있는데스."
친실장이 장녀에게 명령한다.
장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다가 포기하고는, 차녀와 삼녀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평소에는 되바라진 차녀 조차도 어미의 분위기에 눌려 조용히 장녀를 따라간다.
자들이 모두 골판지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친실장은 엄지를 들어올리더니 바닥을 향해 내던진다.
"오마에에에에!"
"레규봇!"
거칠게 바닥에 내리쳐진 엄지의 두 다리가 박살이 나 버린다.
"레? 레레? 마...마마아?"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힌 엄지가 고통도 잊은 채, 색 눈물을 흘리며 어미를 쳐다본다.
빵콘을 한 듯, 엄지의 사타구니가 초록빛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윽고 친실장이 넘어진 엄지 위에 올라타더니, 뭉툭한 손으로 사정없이 엄지를 후려치기 시작한다.
"오마에! 와타시가! 절대! 나가지! 말라고! 말하지! 않은! 데스까!"
"레귯! 레뷁! 레챳! 마맛! 마마아!"
분노한 친실장의 주먹이 스칠 때마다 엄지의 옷과 피부가 터져나간다.
한참을 두들겨 팬 친실장이 씩씩거리며 일어선다.
그녀의 발치에는 완전히 곤죽이 된 엄지가 신음하고 있다.
"레..... 마마아..."
친실장은 엄지를 집어올린다.
이쯤 되면 모자란 엄지라도,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아타치 솎아지는 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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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에 몰린 엄지는 이번에도 비장의 수에 목숨을 걸어본다.
잘 올라가지도 않는 손을 볼에 대려고 노력하면서 웅얼거린다.
"레츄웅...."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분노한 어미에게 통하지 않는다.
친실장은 그나마 남아있는 엄지의 머리카락과 넝마주이가 된 옷을 거칠게 뜯어낸다.
그리고는 뭐라 항변하려는 엄지의 입을 주먹으로 쳐서, 남은 이빨을 모두 부러뜨린다.
"레히...."
친실장은 축 늘어져 가늘게 경련하는 엄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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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떨고 있던 자실장들은, 뭉개진 찰흙덩이 같이 되어버린 엄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나 그 뿐.
어미의 위세에 눌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떨기만 할 뿐이다.
친실장은 겨울을 대비해 마련해 놓은 실내 운치굴에 엄지를 던져넣는다.
"마지막 자비인데스. 오마에는 운치굴에서 평생 속죄하는데스."
사지가 꺾인 채 떨고 있는 엄지의 머리 위로 친실장의 냉랭한 목소리가 떨어진다.
"구더기를 먹지 못하게 이빨을 부쉈으니 허튼 생각은 마는 데스요. 한번 더 구더기들이 슬픈 일을 겪게 되면, 그때는 오마에를 산채로 다리 끝부터 먹어주는데스."
엄지는 색눈물을 흘리며 운치굴 뚜껑이 덮이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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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덮은 친실장은 뒤돌아서서 아직 딱딱한, 그러나 조금은 풀어진 표정으로 자들을 바라본다.
"이제 된 데스. 오마에들 잘못이 아닌 데스. 이리 와서 함께 저녁을 먹는 데스."
그제서야 자실장들은 쭈뼛거리며 어미를 향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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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 친실장은, 그날의 수확물 중 가장 좋아 보이는 초콜릿 조각 하나를 자신의 곁에 둔다.
[테챱 테챱] 소리를 내며 먹이를 먹던 자실장들이 궁금한듯 그것을 바라보자, 친실장이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이것은 첫째 구더기챠의 것인데스. 오늘 밤 까지는 구더기챠가 마마의 곁에 있는데스."
차가운 바람 소리가 골판지를 때리는 가운데, 숙연해진 가족은 조용히 먹이만 오물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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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차가운 어둠 속, 엄지의 희미한 울음소리가 운치굴 벽에 스며든다.
엄지의 부족한 머리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저 앞으로 저실장들을 잘 돌봐야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다.
엄지는 생각한다.
'여기서 구더기챠들을 열심히 돌보면 마마가 운치굴에서 꺼내어 머리도 붙여주고, 옷도 입혀줄 것이다.'
'그러면 마마도, 오네챠들도 세상의 보배인 아타치를 다시 예뻐해 줄 것이다.'
물론 친실장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위석으로부터 스며나온 망상에 물든 엄지는, 그렇게 믿어버린다.
아니, 믿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레...."
축 늘어져 희미한 소리로 우는 엄지의 곁으로 저실장 몇마리가 모여든다.
"오네챠 프니프니 노예인 레후? 잘 부탁하는 렛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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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늘도 실장석 일가에서 엄지 하나가 솎아내어진다.
흔한 늦가을의 풍경이다.
- 끝 -
첫댓글 역시 똥엄지오네챠는 운치굴이어울리는 레후~
똥 랭글리챠는 얼른 렉싱턴 우지챠를 프니프니 해 주는 데샷.
우마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