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에 ‘초소형 잠수함’투입… 암세포 찾아낸다
나노와 바이오기술 결합…손톱만한 장비로 질병진단
조선일보가 국내 언론사 최초로 기자 대신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들이 직접 만드는 과학면을 한 달에 두
번 선보입니다. 임지순(任志淳·51)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나노 세계의 비밀을 벗기고, 황우석(黃禹錫·50)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와 김선영(金善榮·47)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생명의 신비를 전합니다.
이제 우리 귀에도 익숙하게 들리는 나노 기술(NT·Nano Technology)과 바이오 기술(BT·Bio
Technology)이 최근 행복한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초소형 반도체 개발 등 무생물을 다뤄 온 나노 기술이 어떻게 생명체를 다루는 바이오 기술과 밀월(密月)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연구 대상의 크기가 일치한다는 데 있다.
나노 기술의 길이 단위인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고성능 전자현미경을 동원해야 간신히 볼 수 있는 크기다.
또 바이오 기술에서 궁극적인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DNA·RNA·단백질 등의 크기도 2~10나노미터(㎚)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바이오 기술이 생명체의 근본
구성단위인 DNA나 RNA 수준에서 연구를 진행하려면,
나노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한 것이다.
나노 기술과 바이오 기술의 만남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 두드러진다. 나노기술을 질병의 진단에 도입하면, 극히 소량의 혈액이나 조직을 가지고
손톱만한 장치를 통해 순식간에 이상 유무를 알아낼
수 있다.
현재 나노·바이오 연구성과는 ‘랩온어칩(Lab On A
Chip)’이라고 불리는 초소형 진단치료 장치에 잘 나타나 있다. 머지않아 상품으로 나올 예정인 ‘랩온어칩’은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지만, 거대한 실험실에서 여러 값비싼 실험 장비를 동원해 이뤄졌던 복잡한
검사와 분석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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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임지순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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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노리터(10억분의 1ℓ)의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고
백혈구와 세균을 파악하기 때문에 잦은 채혈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소식이다. 이밖에 영상
진단에서도 나노기술의 발달로 초소형, 초고감도의
진단 기구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2000년 1월 국가 나노기술
구상(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암세포가 생기자마자 곧 감지할 수 있는 장치의
개발을 나노기술 3대 장기목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것은 자신의 건강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치료 분야에서 나노기술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이용된다. 먼저 암세포만 공격하는 약물 전달 캡슐을 만들 수 있다. 약물이나 방사선을 이용한 항암 치료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타격을
입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나노기술을 이용해 항암 약물을 담은 초소형 캡슐을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약물을 열에 약한 플라스틱과 금(金)을 섞어 만든 캡슐 속에 넣고 이것을 암세포와 잘 붙는 성질을 가진
항체에 매단다. 이 캡슐이 신체에 들어가 암세포에
접근하면 적외선을 쬐어준다. 적외선은 몸 속에 잘
스며드는 성질이 있으며, 적외선을 흡수한 금 분자는
열을 내뿜는다. 이 때 금 분자의 열 때문에 플라스틱
캡슐이 녹으면 약물이 방출된다. 약물은 암세포 근처에서만 작용하므로 독한 약을 써도 정상 세포엔 해를
덜 미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금 입자로만 제작된 캡슐을 이용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금 캡슐을 암세포에 접근시킨 후 적외선을 쬐면 플라스틱을 섞은
캡슐보다 훨씬 많은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이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이처럼 개개의 세포를 선택해서
공격하는 방법은 나노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약물 캡슐을 이용한 나노기술을 ‘내과적 치료법’이라 부른다면 ‘외과적 치료법’도 존재한다. 혈관에
투입된 초소형 로봇(일종의 무장 잠수함)이 암세포를
절단하고 싣고 간 약들을 발사하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같은 이야기가 바로 ‘외과적 치료법’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과학자들 사이에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초소형 로봇의 필수 부속품인 나노
동력장치와 프로펠러는 이미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밖에 나노기술은 인공 관절, 인공 팔 등 인공 장기
개발에 적용되고 있으며 인간 수명 연장에 큰 기여를
할 것임에 틀림없다.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이 접목한 나노·바이오 기술은 커다란 가능성을 갖고 우리 생활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혁명적인 기술’이 도래할 때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노기술은 다행히 그 특성상 자원과 에너지의
소모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다.
물론 인간의 수명 연장이 일으킬 2차적인 생태 문제는 논외(論外)로 해야한다. 그리고 나노·바이오 기술은 현재까지 생명체의 발생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오기술 가운데 배아 복제 등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나노·바이오 기술의 영역이 확대되어 유전자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가 있게 된다면, 나노·바이오 기술도 인류에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 집필진
△ 임지순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반도체 및 탄소나노튜브 이론 전공) △ 하택집 (미국 일리노이대 물리학과 조교수, 나노-바이오 광학 실험 전공) △ 서수원 (삼성 서울병원 의공학과 연구 책임자 및 성균관의대 전임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