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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낙양(洛陽).
천년 고도의 영화로운 자취가 역력히 낙양의 화려하고도 번창한 시가에 배어 있었다.
낙양은 고도(古都)이면서 천하에서 손가락 꼽는 거대한 도시였다. 시가지는 온통 사통팔달된 넓고도 큰 대로(大路)로 연결되어 있었고 고관대작들의 웅대한 저택들과 흥청거리는 상가는 끝없이 추녀와 추녀를 맞대고 이어져 있어 언제나 휘황찬란했다.
특히 밤이면 등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낙양은 밤이 없는 성, 불야성(不夜城)을 이루곤 한다.
그 중에서도 낙양의 환락가는 유명하다.
일명 야화로(夜花路)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천하에서 이름높은 기루(妓樓), 홍루(紅樓), 청루(靑樓)가 즐비하다.
밤이면 오색등이 걸리고 길 가는 행객들을 유혹하는 기녀들의 손짓이 지친 나그네의 춘심에 한바탕 욕념의 불을 지른다. 야시(夜市)의 소음과 더불어 주악소리는 더욱 환락을 부채질한다.
천하에서 가장 큰 주루(酒樓), 객점(客店), 도박장(賭博場), 기원(妓院)등이 거의 모두 이곳 야화로에 몰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객점을 꼽으라면 누구나 그곳을 말하리라.
천화대숙전(天華大宿廛).
그곳은 낙양은 물론 천하에서 가장 큰 객점이었다. 객점의 안의 상 중 하급으로 정해진 방들만 해도 근 삼천 여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무엇이든 일류였다.
요리에서 술맛 그리고 객방의 화려함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최상이다. 그만큼 이곳을 이용하려면 부호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천하대숙전에 들어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최상급의 미녀(美女)가 득실거리고 기루도 겸하며 도박장도 겸하고 있었다. 술을 먹고 도박을 할 수 있었으며 늘 최상의 미녀를 품에 안고 잘 수도 있었다.
천하대숙전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의 전주(廛主)는 이병산(李兵山)이라는 인물이었다.
그에 관해 아는 자는 없었고 어떻게 그토록 큰 객점을 운영할 수 있었는지, 그의 과거가 어떠한 것인지, 또한 그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다.
다만 그가 지독한 구두쇠라서 자신은 그저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마의 같이 허름한 옷을 입고 자신을 위해 단 일문도 쓰기를 아까와 한다는 정도만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간간이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장사수완의 대가(大家)라는 것만은 제법 크게 알려져 있었다.
그는 황금의 치부 능력이 일국의 재상(財相)을 능가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나 그는 좀체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에 그에 관한 소문은 중구난방이었다.
어떤 자는 그가 뚱뚱한 노인이라고 했고, 어떤 자는 창백한 안색의 중년인이라고도 했고, 어떤 자는 혈색 좋은 화복의 거구 노인이라고도 했다.
하나 그것이 사실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황제(皇帝)의 아방궁만큼이나 화려한 곳이 있다.
천화대숙전 깊은 별원(別院).
말이 별원이지 그 규모만 해도 대부호의 저택을 방불케 한다.
백여 개에 가까운 상방(上房)과 별채, 정원, 그리고 훌륭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인공 연못, 가산, 정자 등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대화별원(大和別院).
그렇게 불리고 있으나 정작 천화대숙전의 점원들조차 그곳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대화별원의 넓은 방.
치장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움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속이 은은히 비치는 휘장 안쪽에 놓인 태사의만 해도 그것이 능히 황금 십만 냥은 넉근히 나가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실명을 대신할 테니까!이병산.
그는 발등이 묻힐 정도로 푹신한 양탄자가 깔린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아니 천하의 천화대숙전 전주가 엎드려 있다니 기이한 일이다.
그는 놀랍게도 이제 겨우 삼십 정도에 불과한 나이였다. 일신에는 수수한 백의를 입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그의 몸은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다. 거리에 나가 보면 그런 인물은 무수히 만날 수가 있다. 아무런 특징이 없기에 몇 번을 봐도 잘 기억에 남지 않는 그런 무특정한 용모였다.
이런 인물이 천화대숙전을 이끄는 거물이라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태사의에는 한 화삼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의 등뒤에는 한 명의 남복을 입은 소녀가 있었다.
"이병산, 그대는 역시 훌륭한 역할을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군."태사의에 앉아 히죽 웃는 것은 바로 천우였다. 그는 여전히 예의 그 웃음을 허물없이 흘리며 말했다.
"군방원주의 말씀에 의하면 그대는 군방오화(群芳五花)에 도전한 인물들 중 유일하게 삼관(三關)을 통과한 인물이라더군."이병산에게는 그런 과거지사가 있었다.
"그대가 통과한 관은 천문(天文), 만상(萬像), 욕망지관(欲望之關)이었다고 알고 있네. 맞는가?"그 말에 이병산은 약간 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자님."
천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총주(總主)라 부르게, 병산."
"......?"
이병산은 물론 그의 등뒤에 서 있던 초초까지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우는 여전히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세상에는 숱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네. 하나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나는 기인(奇人)을 좋아하지. 자네 같이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나 세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진귀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기인의 부류에 들지. 나는 세상의 기인들을 모을 참이네. 후후... 그래서 당분간 우리의 모임을 기인총(奇人總)이라 부르기로 했네.""......!"
"......!"
이병산과 초초는 눈을 크게 떴다.
- 기인총(奇人總).
그들은 처음 그 말을 들었다.
하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그들의 가슴에는 야릇한 의지가 샘솟듯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 얼마나 색다르면서 무한한 마력을 지닌 말인가?
"호호... 공자님... 아니 총주님, 정말 멋진 이름이예요."초초는 박수를 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천우는 반문했다.
"정말이고 말고요! 이대협(李大俠)께서도 그렇게 느끼실 거예요. 그렇죠?"이병산은 멋쩍은 듯 말했다.
"초초낭자, 그런 칭호는 듣기 거북합니다. 소생을 그저 이형(李兄)이라고 불러 주시오."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될 말일세, 그대에게는 부를 칭호가 따로 있네."
"......?"
"그대를 이제부터 기인총의 기사보(奇士譜)로 임명하겠네.""......!"
"후후... 기사보는 기인총의 기사(奇士)들을 영입, 충원하며 인사(人事) 및 재무(財務)를 담당하는 직책을 말하네. 서열은 일등급이네."이병산은 얼굴에 당황기가 어렸다.
"속... 속하가 어찌 그런 중임을......."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지. 나는 그대에게 반년 전 금은동목(金銀銅木) 사화(四花) 중 금화를 주었네. 그것은 부에 관한 모든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금화를 얻은 지 반년만에 본 기인총의 재산을 배로 늘렸으니 그 능력이 충분하고도 남네."이병산의 얼굴에는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고 다만 그의 평범한 눈빛 속에는 한 가닥 몽롱한 추억의 빛이 어렸다.
이병산.
만일 그의 과거를 들추어본다면 그가 이런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리라.
본래 그의 부친은 대명(大明)의 재상(財相)이었는데 부친은 명조의 재정을 관리하는 중책에 있어 중대한 실수를 했다.
그것은 이국과의 무역 거래에서 큰 손해를 입었으며 특히 공물 관리상 증발 사건이 발생함으로 인해 끝내 봉고 파직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썩어빠진 환관들의 모함과 시기도 끼어 있었다.
그의 가문은 몰락했고 이병산은 어릴 적부터 숱한 고생 속에 자랐다. 하나 타고난 이재 능력이 그를 범인으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천하제일의 부호가 되는 것이었고 이제 그대로 되었다. 그리고 그는 천성적으로 극기와 인내, 검소함 몸에 배어 있어 자연스럽게 이를 실천하는 인물이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나 사실상 그의 손은 천하의 황금의 반을 주무를 능력이 있는 기재(奇財)였다.
"기사보의 냉철하고 적절한 판단 능력을 믿는 바이네, 그 동안 중원 각처에서 보고된 사항을 정리한 자네의 공문을 읽고 그 정보처리의 완벽함에 감탄했네.""과찬이십니다."
"후후... 조만간 천하는 엄청난 풍운에 휩싸일 걸세. 자네가 할 일은 무척 많네.""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곳을 당분간 기인총의 총단으로 삼겠네. 연락 및 거점으로써 기사보의 탁월한 지휘를 당부할 셈이네.""......."
"남천신도에서 중원으로 건너온 그들로부터의 전서(傳書)를 면밀히 검토하여 수시로 상황 분석을 해 주게. 무림판도에 특히 유의할 것이며 기사보는 중원의 기인이사들에 대해 파악하여 그들은 영입할 방안을 강구하게.""명심하겠습니다."
"그 일은 초초와 상의하게."
그 말에 초초는 깜짝 놀랐다.
"공... 총주께서는 소녀를 떼어놓으시렵니까?"
천우는 빙긋 웃었다.
"눈치는 빠르군. 그렇다. 초초, 나는 할 일이 있다."
"아... 안돼요. 초초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어요."
천우는 눈을 찡긋 했다.
"그곳은 네가 갈 곳이 못되기 때문이다."
"......?"
초초의 얼굴에 의혹이 어렸다.
"후후... 왜냐면 나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환락가 볼 생각이거든."순간 초초는 순간 안색이 붉게 변했다.
"정말 그곳으로 가실 생각이군요?"
"후후... 그렇다. 초초, 나는 그 동안 중원전역에서 보고된 것을 검토했지. 그 결과 그곳에 필시 중대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 그래서 직접 가 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초초는 울상이 되었다.
"저도... 남장을 하면 되잖아요."
"후후... 그건 안 된다."
"왜요?"
"모르겠느냐? 나는 사내다."
천우의 얼굴에는 바람둥이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초초는 멍해졌다.
"정... 정말 그곳으로 가 즐기실 셈인가요?"
"후후... 왜? 안된단 말이냐?"
"그럴 수가... 만일 만(萬) 언니가 아시면......."
천우는 히죽 웃었다.
"연령은 모를 것이다. 하나 설혹 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공처가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기... 기가 막혀!"
"하하하...! 남자란 그런 것이다. 안그런가 기사보?"
이병산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렇고 말고요, 총주님."
초초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흥! 장단이 잘도 맞는군요! 두고 봐요! 이 일을 만언니께 꼭 이를 테니!"초초는 정말 화가 난 듯 발을 구르며 휘장 뒤로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사라지자 천우는 문득 정색을 하며 말했다.
"기사보, 이번 길은 꽤 시간이 걸릴 것이네. 그 동안 자네에게 맡길 일이 있네.""하명(下命) 하십시오. 총주님."
이병산은 숙연히 말했다.
천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당금무림의 상황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네. 그 중 가장 기이한 것은 봉황성의 동태이며 지옥삼겁천 또한 심상치 않네.""......."
"지옥삼겁천은 서로간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이 틀림없네. 또한... 나는 그들의 배후엔 상상외의 무공을 소유한 인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네.""......!"
이병산의 안색이 변했다.
"그것은 육감이네. 배후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들을 움직일 정도라면 어쩌면... 봉황성주를 능가할 인물일지도 모르지.""그... 그럴 리가!"
"후후... 내 육감은 한 번도 틀린 경우가 없지. 어쩌면 그 인물이 바로 호불위를 조종하는 자일지도 모르고.""......!"
"호불위를 조종한 인물이야말로 무서운 자네. 나는 남천신도에서 그 자의 수하 두 명을 사로잡았지. 그 중에는 당문(唐門)의 암기술을 익힌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서 배후자의 윤곽을 어느 정도 알아냈네. 하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자는 자살했지. 그로 미루어 배후자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네.""......!"
"자네는 지옥삼겁천의 관계와 그 배후 세력에 대해 은밀히 조사하게. 그리고......."천우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녹혈림에 침투시킨 새제갈(塞諸葛)에게 이렇게 전하게. 녹혈림을 끌어내어 고루혈사교( ?血死敎)와 충돌시키라고."이병산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어렸다.
"정말... 총주님의 계략은 하늘도 놀랄 정도입니다. 녹혈림과 고루혈사교를 묶어 버리면 그들은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다음은 독황교네. 독황교는......."
천우의 밀실 거사는 계속되었다.
그 지시를 듣는 순간 이병산은 수없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 천우의 손은 이제 천하를 주무르고 있었다. 이병산은 점점 더 그에 대해 감복하는 마음이 커져 가다가 종내에는 그저 넋을 잃고 말았다.
'무... 무서운 분이시다. 만일 총주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천하를 정복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이다!'사천(四川) 검문(檢問).
사천은 서북무림에 속한다.
서북무림은 광풍사가 장악하고 있었다. 하나 기이하게도 이곳 사천일대만은 별다른 혈겁을 입지 않았다.
사천일대의 패주로는 촉중 당문(唐門)이 있었으나 오래 전부터 사실상 무림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사천 당문은 항상 당가(唐家) 직계로만 이어 내려 왔다. 더더욱 기이한 것은 실질적인 당문의 전통과 문중을 이어가는 것이 여인들이라는 것이었다.
현 당문은 천수나희(千手羅姬) 당옥교(唐玉嬌)가 문주였다.
그녀는 불과 십 팔세 때 남편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 건쾌도(乾快刀) 갈황천(葛皇天)은 사냥을 나갔다가 급작스런 호환(虎患)을 당했다고 한다.
한데 무림고수인 그가 어찌 한낱 호환을 입을 수가 있단 말인가? 기이한 일이다. 하나 사람들은 오래 궁금증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어쨌든 천수나희는 과부였고 그녀가 당문중을 이끌었다.
하나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젊었다. 현재 나이 이십 칠세로 여인으로서는 이제 절정을 지나 농염하게 익어가는 완숙기라 할 수 있었다.
한창 무르익을대로 농익은 여인이 과부였다.
"아아... 흑......."
여인의 신음은 뜨거웠다.
흐느낌 같기도 하며 괴로움을 한껏 참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 허공을 몇 번 휘젓던 아름다운 옥수는 이내 금침 자락을 붙잡고 파르르 힘을 준다. 신음만큼이나 여체는 뜨겁게 끓고 있었다.
당옥교와 한 청년이 밀실 안에서 뒤엉켜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세운 채 침상 위에 엎드려 금침 자락을 잡아뜯고 있었다.
"아... 학......!"
그녀는 머리를 얼굴을 비단금침에 파묻고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둔부를 공중에 치켜올린 자세로 연신 뜨거운 교성을 지르며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사내는 이윽고 절정에 도달한 듯 손을 앞으로 뻗어 그녀의 유방을 거세게 움켜주었다. 그의 허리가 일순 부르르 떨렸다.
이윽고 절정은 그녀의 섬세하고 육감적인 나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유방의 흔들림이 일순 경직되었으며 그녀의 입술은 한 순간 크게 벌어졌다.
그녀는 엄청난 쾌감이 전신을 ㅎ고 지나가는 듯 온몸이 뻣뻣해졌다.
우문천릉은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당옥교가 열기가 가시지 않은 뜨거운 나신을 아무렇게나 펼친 채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
당옥교는 손으로 젖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약간 벌어진 채 뻗어 있었고 발끝은 오므린 채 침상을 누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육신에는 땀이 흥건하다. 그녀의 밀림도 젖어 있었다. 몇 차례의 희열이 휩쓸고 지났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아직도 환락경을 헤매는 듯했다.
우문천릉의 영준한 얼굴에는 땀 한 방울도 없다. 그는 무심한 눈으로 당옥교를 내려다 보고 있다.
당옥교는 문득 감았던 눈을 뜨다가 그의 무심한 표정을 보고 갑자기 몸이 식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운우지정을 맺었던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냉정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천릉......."
우문천릉은 돌아섰다. 그러자 당옥교는 심한 수치감을 느꼈는지 다리를 오므리며 외쳤다.
"천릉......!"
"가야 돼."
우문천릉은 단지 그렇게 말할 뿐 걸음을 멈추려 들지 않았다.당옥교의 얼굴에 표독한 빛이 어렸다.
"당신... 당신은 언제나 똑같군요, 흥! 또 그 계집을 생각했겠죠. 당신의 머리 속에는 오직 고 계집밖에 없죠? 흥! 나와 방금전 잠자리를 같이 할 때에도 그 계집 생각만을 했겠지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걸음을 멈추고 그가 돌아섰다.
"닥쳐."
우문천릉은 짤막하게 내뱉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비로소 그 예의 냉막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너에게는 그녀를 말할 자격이 없다. 한번 더 거론하면 그때는... 당가는 문을 영원히 닫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번뜩! 당옥교에게 무엇인가 빠른 속도로 쏘아져 왔다. 그녀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적중되고 말았다. 당옥교는 코 앞에서야 그의 흰 손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설마 그것이 자신에게 격중되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짝!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녀는 아직도 땀으로 얼룩져 있는 침상 위로 나동그라졌다.
어느 새 그녀의 뺨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그건 경고다."
우물천릉은 그 말만 내뱉듯 던지고 예의 냉정한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이... 이럴 수가......."
당옥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비참했다.
아름답고 농염한 육체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이제는 늙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늙고 추해져서 버린 받은 여자라고 여겨진 것이었다.
하나 그녀는 이를 뽀드득! 갈며 일어섰다.
"흥, 두고 봐! 단목가영(丹木可英)이라는 계집... 기어코 내가 죽여 버릴 거야!"당옥교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옷매무새를 다시 고친 후 그녀의 눈에서는 서슬이 퍼런 원독(怨毒)이 흘렀다. 그녀는 자신을 한낱 노리개감으로만 상대하는 우문천릉 때문에 생긴 자괴감으로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호호홋...! 남편을 죽인 것도 모두 천릉 당신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당문의 모든 비예조차 넘겨주었는데 나를... 이렇게 대접할 수 있어요? 호호호홋...! 이 당옥교, 이렇게 물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오산이예요. 호호홋... 호호호홋......!"사랑을 위해 자신의 남편까지도 살해한 여인의 처절한 광소가 내실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는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다.
당옥교는 사실 진정한 사랑이란 걸 느껴보지 못했다. 그의 모친은 평생을 새로운 암기와 독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녀는 어린시절 고아처럼 혼자 자랐다.
그런 그녀가 혼까지 빼앗길 정도로 사랑하게 된 우문천릉을 만난 것은 이미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한 이후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우문천릉을 따라나서고자 했다.
하나 그녀의 정인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다른 여인에게 벌써 마음을 빼앗긴 상태여서 당옥교까지 마음에 담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기엔 그의 야망이 너무 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우문천릉이 자신의 육체를 요구할 때마다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가 더욱 적극적으로 그를 요구했다.
환락의 끝부분에서 그는 꼭 당문의 독문암기와 독공을 요구했다. 그녀는 한 문파의 장문인의 신분이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너무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우문천릉은 그렇게 당옥교로부터 빼낸 당문의 암기와 용독술(用毒術)으로 무슨 계책을 꾸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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