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다리, 돌아오다
그가 돌아왔다. 1루에서 다리를 쭉펴며 공을 잡던, 시원시원한 모습을 기억하는 야구팬들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 원년 멤버 신경식이 바로 그다. 비록 버젓한 감독이나 코치는 아닐지라도 신경식은 ‘원정기록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프로야구 현장으로 돌아왔다.
지난 1월17일, 두산 구단으로부터 전자우편 한 통이 날아들었다. 제목은 ‘두산 베어스 프런트 채용’이었다. 대개 보도자료는 제목에 핵심내용이 들어있기 마련인데 너무 밋밋한 것이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보도자료였다. 내용을 훑어보니, 신경식의 채용에 관한 것이었다.
보도자료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두산베어스(社長 金珍)는 17일(수), 前 OB 베어스 원년 멤버인 신경식(46세) 씨를 운영팀 원정기록원으로 채용했다. 신경식 씨는 82년 OB베어스에 입단 83년 올스타 MVP,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96년부터 97년까지 2년간 쌍방울 레이더스팀의 2군코치로도 활약한바 있다.
- 신경식 원정 기록원 약력 -
소 속 팀 기 간 비 고 OB베어스 82년 – 89년 선수 쌍방울 레이더스 96년 – 97년 2군 타격코치 자양중학교 03년 – 06년 감독
2007. 1. 17. 두산베어스 프로야구단
신경식은 OB 베어스가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우승 축배를 들 때 박철순(22연승 신화의 주인공), 김유동(1982년 10월12일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전에서 만루홈런을 날린 주인공), 윤동균, 김우열, 양세종 등과 더불어 큰 활약을 했다. 최종 6차전에서는 9회 초에 밀어내기 결승 득점을 올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1983년에는 1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탔고, 그 해 올스타전에서는 미스터 올스타(MVP)로 뽑히며 그의 선수생활의 최절정기를 누렸다. <1984년 한국프로야구 연감>을 보면 신경식은 스타플레이어로 선정돼 연감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올스타전의 MVP 신경식, 애교만점의 발레리나 프로야구 최대의 수확’이라는 작은 제목이 눈길을 끈다.
야구하는 사람이 야구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가 친정 구단인 OB로 돌아온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원정기록원이라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낯익지 않은 직책이어서 얼핏 의아한 느낌이 든다. 원정기록원은 프로야구 현장에서는 통칭 ‘스파이’로 부른다. 팀과는 별도로 움직이는 행동대원으로 다른 팀끼리 경기하는 곳으로 찾아가 기록을 하고 움직임을 관찰하는, 이를테면 사전에 적정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는다. 기록을 종합, 정리해서 통계로 뽑아 맨 나중에 1군 감독에게 보고하는 그런 직책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OB 베어스 김태룡 운용홍보부문장은 “마침 원정기록원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신경식 씨가 (서울)자양중에서 코치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나왔다는 얘기가 들려서 채용하게 됐다. 본인이 뭐든지 하겠다며 선뜻 받아들였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신경식은 이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투로 “야구하는 사람이 야구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9년간 여기(OB 구단)에 몸담았고, 선수들의 생활을 도와준다는 일을 한다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우연찮게 친정에서 불러준 것이 고맙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야구인이 야구밥을 먹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학다리의 유래
신경식은 현역시절 OB 베어스의 1루수로 명수비수 소리를 들었다. 특히 그의 ‘학다리 수비’는 일품이었다. 1루를 밟은 채 다리를 ‘쭈욱~’ 뻗으며 공을 낚아채는 모습이 늘씬한 학의 다리를 연상시켰다.
신경식의 키는 188㎝.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190㎝였던 김용희(전 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키였다. 요즘에야 190㎝가 넘는 꺾다리 선수들이 흔하지만 그 때만 해도 보기드문 장신이었다.
신경식이 학다리 수비를 하게 된 것은 당시 OB 베어스 김영덕 감독의 권유를 따라서였다. 그의 큰 키를 눈여겨봤던 김 감독이 “키가 크고 다리가 긴데 기왕이면 다리를 쭉 뻗으면 남들보다 한 발 먼저 공을 잡을 수 있겠다”하자 신경식이 그에 따라 한 번 자세를 취해보니 “다리가 땅에 닿았는데도 아프지도 않고 잘잡는 바람에”그 길로 계속나가 학다리 수비가 그의 전매특허처럼 굳어져버렸다.
학다리 수비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섣부르게 따라하다가는 시쳇말로 ‘가랑이가 찢어질’수도 있다.
원년 OB 3인방이 뭉쳤다
두산 구단에는 프로야구 원년 OB 3인방이 있다. 김경문(49) 감독, 김광수(48) 수석코치에 이어 신경식이 자리를 잡았다.
신경식은 공주고를 나왔다. 김경문 감독이 그의 공주고 1년 선배, 김광림 두산 코치가 1년 후배로 공주고 전성기를 이끌었다. 신경식의 원래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동성중을 거쳐 부산고로 진학했으나 2학년 때 공주고로 전학했다. “운동을 잘 못한다며 야구를 그만두라고 해서 (공주고로) 옮겼다”며 신경식은 웃었다.
신경식(1982~1990년 OB, 1991~1992년 삼성, 1993~1995년 쌍방울)은 은퇴 후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를 거쳐 줄곧 학생야구를 가르쳤다. 분당중앙고, 경기고 코치와 자양중에서 감독 노릇을 했다.
신경식은 입단 후 컴퓨터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두산 구단 원정기록원은 한 명이다. ‘나홀로’ 기록을 하고, 통계를 내고, 분석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기술을 습득해야하기 때문이다. 틈나는대로 2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이천 구장에 내려가 배팅볼도 던뎌준다.
원정기록원이나 스카우트가 선수단 지도자(코치 등)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원정기록원이나 스카우트를 거쳐 코치로 발탁된 사례가 많다. 원정기록원은 현장감각을 익히는데 첩경이다.
10년 세월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학다리’ 신경식의 행보를 눈여겨 보는 까닭이다.
|
첫댓글 코칭스태프는 아니지만 돌아오신 거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그래도 야구가 좋아 돌아 오셨답니다.친정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