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술, 혹은 책)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흔히 말한다.
제법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진리는 아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비록 그런 기록물들일지라도 "어리석지 않다면".. 팩트를 추구하고 진실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학인(學人)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기록을 기록 그대로 보는 법이 없고, 독자 혹은 학인의 필요에 따라 "깊이" 읽고
분석하고, 비교/대조를 하는 "독해"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패자도 기록을 남긴다. 패자가 남긴 흔적을 찾아내
승자의 기록과 비교하고... 무엇이 팩트이며 진실인지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 학인의 도리이다.
다만, 나관중이 "소설"로 편집한 "삼국지"는 다르다.
우매한 민중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필명을 얻고 돈을 벌려는 잔재주와,
민중을 더욱 우매하게 만들 필요 때문에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목적으로 유행하게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복군주들이.. 종교를 이런 식으로 이용해 먹기도 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런 식으로 이용해 먹기도 했다.
인도의 "아쇼카" 왕이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중부까지도 정복하여 결과적으로, 많은 나라와
민족들과 문화 그리고 종교를 아우르는 복잡한 '나라'의 통일성을 이룩하고
자신의 제국을 안정화하기 위해... "불교"를 받아들여... 국책으로 불교화 사업을 추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는 후한 말기의 "영제" 시대 때에
국정을 농단한 10여명의 환관 무리들이 난국 그리고 망국의 원흉이라고 단정하고 시작한다.
환관 무리들을 "탁류"라고 하고, 이에 대항하는 이들을 "청류"라고 부르며,
이들을 토벌하고 황제를 중심으로 국정을 쇄신하자는 봉기를 "서막"으로 삼아 시작한다.
그러나 민중이 도탄에 빠지고, 살길이 막막해진 민초들이 도적떼가 되고
이른 바 "황건적"이 횡행하여, 전국의 군웅들이 토벌대를 조직하여 전쟁을 치르게 된
배경에 대한 면밀한 비판은 ... 그리고 단서라는 것이 .. 나관중의 "서술"에는 박약하다.
위키백과 등도 마찬가지다. "황건적의 난"(혹은 황건의 난)이나 "장각"을 찾아보면
환관 외척의 전횡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들이 장각의 "태평도"를 중심으로
후한 타도를 외치며 봉기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환관과 외척이 "황건" 무리가 봉기한 목적이라면, 황실 재건을 목표로 하는 법이다.
(후)한을 타도하자는 것은.. 후한의 "국가통치" 시스템을 뒤엎자는 것인데.. 환관과 외척을 겨냥해서는 후한 타도가 도무지 이뤄지지 않으니, 이 서술에 문제가 있다.
장각에게 와서, 병을 고치려고 했다가.. 장각의 태평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교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환관과 외척의 전횡이라는 단순한 명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후한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에 문제가 크게 생겼고, 후한이라는 체제 내의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타도"/'전복'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법이니,
환관과 외척을 타도하려고 봉기한 지역 토호(군벌)들 자체도 문제가 있다.
후한의 통치 시스템은... 지역 토호들의 연합과 견제에 의한 통치시스템이다.
지역 토호들이 중앙 정계의 관직에 진출하되, 그 지위를 대물림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민중"은 한낱 소모품들이며, 세력 기반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며
거대한 산업을 구성하는 생산력을 구성할 뿐이다.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정이란,
지방 토호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그 직을 대대로 대물림하는 체제로서,
유력한 가문은 실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다.
형주의 자사 유표의 배후에 있던.. 형주의 호족 '채모'의 경우는 별장이 수백채였다고 한다.
그 인맥 또한 막강해서.. 형주의 자사 유표가 그 군웅할거 시대에 ... '황제'를 칭하여
거병하고 자웅을 겨룰만한 배경을 갖췄음에도 임의로 행동하지 못한 것은 형주의 사실상의
주인은 뜨내기 지방권력가 유표가 아니라 실질적인 주인들인 형주의 호족들, 특히 그 우두머리인 채모 때문이었다.
'삼국지 연의' 서술의 이면을 들춰보면, 십상시라는 10여명의 환관들이 벌인 전횡이라는 것도
그 잘난 청류(호족세력)의 파벌 게임, 그 틈바구니에서 자력으로 '권력'과 '생존'을 도모한 짓거리에
다름 아니고, 청류들의 짓거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직접 뇌물을 받아.. 그 뇌물로 세력을 도모하는 ... 흙수저들과,
누대에 걸쳐 차지한 .. 거대한 "봉토"와 "이권"을 기반으로,
대물림하는 국가 고위직에서 국가정책을 동원하여 그 이권을 극대화하여 세력을
더욱 거대하게 펼쳐온.. 그리고 펼쳐나가는.. 소위 "청류"들 즉, '금수저'와 비교하면서
뇌물을 받아먹는 환관들은 악의 축이고,
뇌물을 받지 않는 청류들은 애국자들이라는... 단순 도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한낱 "소설"에 대한 입장이 결코 아니다.
민중이 그런 식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때.. 과연 누가 쾌재를 부를 것인가?
저 엄혹한 시절에 "임꺽정"이 금서가 되고
"장길산"'이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것은 ... 무슨 까닭이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역사는 "과거지사"가 아니고.. 오늘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우리가 어디로 가며,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밝혀주는 "이정표"이다.
나 역시 멋 모를 때는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나누지 말라는 말이 진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삼국지"는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흥미본위와, 기득권 옹호 이데올로기로 찌든
"소설" 삼국지였기에, 삼국지 연의를 세 번 읽으면, 그 이데올로기에 갇혀 버릴 뿐이니
소설 삼국지만 읽은 사람과는 말도 나누지 말아야 마땅할 것이다.
소설 삼국지만 읽은 사람의 특징은,
실제 역사를 추동하는 힘과, 흐름에 대해 아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모른다.
강한 자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패배주의적 역사관에 찌들려 있고,
약한 자를 무턱대고 조롱하고,
실패를 패배로 단정하고
약점을 패인으로 예단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머리를 비우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