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회원님들께!!!
다름이 아니라 어제 6일, 시청에서 북파공작원의 폭행 및 그들의 신분에 대한 의구심 있어 이렇게 제가 MBC 기자님들께 제보한 내용의 글을 까페에 올려봅니다!!!!
회원님들!!!! 우리 같이 하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 때 그 현장에 계셨던 분들 우리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 진실을 밝혀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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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날 찍은 동영상이 여러개 있는데 한 3기가 정도 됩니다!!! 빠른 시일내에 편집하여 올리겠습니다.
이건 그 일부 중에 한 장면입니다.)
존경하는 MBC 기자님들께!!!!
다름이 아니라 북파공작원 및 사복 입은 젊은이 2명이 경찰서로 이동하는 과정에 남대문 태평로 지구대에 함께 있었던 시민 중에 한사람입니다.
방금 너무 어이없는 기사를 보고서 이렇게 취재요청을 하는 바입니다.
북파공작원의 폭행으로 인하여 오늘 3명이 불구속입건이란 말에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하고 답답합니다.
저는 다음 안티이명박 까페 회원으로서 8시 반경 시청 잔디밭에 회원들과 함께 자리를 하던 중에 까페 운영진 중에 한 분이 북파공작원들로부터 시민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리에 그 자리에서 부랴부랴 일어나 그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도착했을 때는 시민들과 그 북파공작원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을 애워싸면서 사과를 요청하고 경찰에게 연행요청을 크게 외쳤으나 오히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경찰들은 우리들의 소리에 아랑곳 안하고 오히려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시민이 맞고 시민을 향해서 욕을 하고 그리고 달려들려는 데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히 있고 오히려 그 많은 경찰들이 왜 그들을 보호해주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첫 번째 저의 의구심입니다.
왜 그 많은 경찰들이 왜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의 도망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는지?
6월 5일에 갑자기 북파공작원들이 시청 광장을 접수하여 위패를 모시는지 그리고 왜 갑작스레 하루 전날 장소 변경 된 것 등등 여러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에 대한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과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6월 5일에도 촛불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일명 북파공작원이라는 사람들은 그 시청광장에서 수많은 전경과 경찰들의 테두리 안에서 삼삼오오 수다 떨고 추모하고 위패를 모신다는 사람들이 그 곳에서 침을 뱉고 담배를 피는 행동들.
전 솔직히 북파공작원 즉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북파공작원이란 한국전쟁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사람들은 40대 전 후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50년생이신데 훨씬 더 젊고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북파공작원이라고 말하는지요???
도망가는 북파공작원 및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주고 경호해줬던 사복 젊은이들은 경찰들이 수수방관하고 나 몰라라하는 사이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뛰었습니다.
함께 도착한 곳은 서울 남대문 태평로 지구대였습니다.
무언가 해결하는 기미가 보일 것 같아 한숨을 돌리고 있는 찰나에 오히려 그 지구대 남자경찰들과 여경은 그들을 자신들의 차를 태우면서 그 곳을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저희는 지구대에서 그들의 신원요청하였으나 빠져나가려던 경찰을 막아서 그들을 그 곳에서 우리들의 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란 사람이 그들에게 신분증 요청을 하지 않고 종이 한 장을 건네면서 주민번호를 적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는 이미 북파공작원에게 폭행당한 민변소속인 한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밖이 너무 시끄러워 어찌된 경위를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허나 그 변호사가 하는 말은 그들이 말하는 집주소와 지문조회하여 나오는 주소가 맞으면 그들의 신분이 확인되는 것이 아니냐구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폭행을 한 증거와 혐의가 없기 때문에 아무 혐의가 없다고만 말하는 것입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솔직히 그들이 폭행을 했는지 안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분을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사복 입은 젊은이들 중에 한 사람이 그랬습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제가 여기 올 상황과 입장은 아니였는데 어제 갑작스레 선배님의 요청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선배님들이 시민들에게 목덜미 잡히고 맞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들의 말하는 그 선배가 어떤 선배냐구 물어봤더니 말을 못하고 그리고 직업도 없다고 말하고 나이는 말해주지 않고 그리고 군대 제대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추정하건데 그 분의 연령이 한 20대 중반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또 의문이 듭니다. 누구의 부름으로 그곳에 어린 친구들이 오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한참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동안 어디선가 방송촬영 기자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그때서야 그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경찰차에서 지구대가 아닌 경찰서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병 밝혀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북파공작원이라는 사람들이 갑자기 하루 전날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의 나이가 그렇게 어리고 젊은지?
북파공작원이라고 보호해주는 사복 입은 젊은이들은 누구인지 말입니다.
MBC 한 젊은 기자분이 목격자를 찾는 중에 제가 진술하겠다고 제 연락처를 알려드렸으나 연락이 없었습니다. 저도 경황이 없었던지라 명함 받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부디 이 부분을 취재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제발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32살의 9월에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입니다.
제가 처음에 촛불집회에 나오게 된 이유는 내가 아닌 엄마, 아빠, 내 동생 그리고 내 친구들 맞습니다. 그러나 그 더 큰 이유는 제가 미래에 만나게 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참여했습니다. 살리고 싶습니다.
그게 제 목적입니다.
그러나 지난 5월 24일부로 저는 지금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다시 찾고 싶습니다. 왜 우리가 어린 전경동생들과 맞서서 그리고 왜 그들이 발걸음에 두려움을 떨고 뒷걸음치고 뛰어다녀야 하는지 말입니다.
참으로 무섭습니다. 제 개인 문제로 봤을 때 우리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민가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전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난 우리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제발 기자님들 취재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2008.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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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발췌!!!!!
북파공작원이란 한국전쟁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을 말한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서로간에 무장공작원을 파견하지 말자'고 약속한 뒤 북파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북파공작원들은 최초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있는 지리산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됐다. 적 생포 및 사살, 적군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을 주임무였다.
이들을 선발, 양성한 부대는 '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 로 불리는 '육군첩보부대'가 모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48년께 만들어진 이 부대는 60년대말부터는 'AIU(Army Intelligence Unit)'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곳 말고도 `실미도' 부대 등 북파공작원을 관리하는 특수 침투부대는 여러 곳 더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군이 아닌 미군 정보부대에 소속돼 북파공작에 종사했던 요원들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공작원 양성기능은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직후 창설된 공군 특수부대를 거쳐 국군정보사령부로 이어졌다.
북파공작원들은 원래 군인 신분이었으나 1953년 정전협정이 남과 북의 무력도발을 금지한 까닭에 군과 군의 공개적 전투행위는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훈련받고 북파되었다.
■ 북파공작원 실체 공개
군 당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해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으나 1999년경부터 유족들이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0년 10월 민주당 김성호 의원이일 북파공작원 양성·파견부대였던 HID(첩보부대) 소속 북파공작원 가운데 53∼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기∼3기 366명의 명단을 생존 공작원중 1명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북파공작원 실체가 처음 공개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72년 남북 공동성명 때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1만여명에 달하며 그중 사망.실종된인원은 모두 7726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첫댓글 우리 정말 위험합니다.. 왜 아무도 관심을 안가지시죠? 전 이 개새들과 미친듯이 싸우고 왔습니다. 진실은 밝혀야 합니다.
이거 공지로 해주시면 안되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