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우일모(九牛一毛)의 어원(語源)과 뜻은 사마천(司馬遷)의 임안(任安)의 서(書)에 아홉 마리의 소털 중의 하나로서 다수(多數)중의 극히 소수(少數)로 대단한 것이 못 된다는 의미로 쓰이고,
생사관을 두고 말할 때는 죽음은 때론 태산보다 중(重)하기도 하고 목숨을 구우일모(九牛一毛)나 홍모(鴻毛)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목숨은 누구나 하나뿐이기에 매우 중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죽음” 자체를 아주 소중(所重)하게 보고 가볍게 죽지 못할 때도 있고, 중하지만 아주 가볍게 보고 귀중한 한 목숨을 버릴 때도 있다. 문제는 어떤 때 죽느냐가 문제이다.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 집현전 학자가 십이명뿐이었겠습니까? 생육신이 먼저 정해지고 사육신이 나중에 정해졌습니다. 생사관에 있어서 두 그룹이 어떻게 다릅니까? 신숙주와 정인지의 생사관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자를 택한 사람들이 보통 역사에 남은 의사(義士), 열사(烈士)등이다.
그러나 후자를 택한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서 목숨이 붙어 있기 때문에 기회를 도모하여 자기 몫을 챙겨 출세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살아 있는 자(義者)의 관점에서는 지워지고 없다.
살아도 죽은 자가 있는가하면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는 자가 있다. 비록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의기(義氣)와 패기(覇氣)는 영원히 죽지 않은 사람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복해서 돌아가고 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오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가고 없듯이“ 때론 잠시 멈추기도 하지만 시대가 영웅호걸(英雄豪傑)을 만들고 그 영웅호걸이 다시 억조창생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제 겨우 백년이 지났으니 절망은 없다.
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하! 구우일보!
<살아도 죽은 자가 있는가하면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는 자가 있다. >
비록 육신은 사라지지만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고 싶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삭제된 댓글 입니다.
덕화만발의 김덕권(길호) 선생님이
그런 분으로 만인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아부성 발언이 절대 아닙니다
@여포-취람 답댓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삭제된
것이오니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0
"죽어도 살아야 한다"-1977년 6월 광주보병학교 16주 OBC(장교기초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거여동 특전사령부로 가기 위해 용산 용사의 집을 출발하며 마음 속으로 다짐햇던 절규(?)! 살아 있음과 죽음의 간격을 느끼지 못함이 행복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