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에 젖고, 눈에 젖고, 땀에 젖고, 멍으로 남은 북알프스 산행기]
한국땅을 밟은 뒤 북알프스에 대한 생각은 떠올리기도 싫었고,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다면 차라리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떠남을 그다지 요란스럽게 하진 않았을지라도 오랜만의 외출이다 보니 주변의 관심은 적잖이 형성되어 있었던 터라 잘 다녀왔느냐는 인사조차 모른 척 할 수 없기에 주절주절 적어본다. 마침 가상이 글도 올라왔고...그러나 아직 멍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우.
<출발: 6월 29일>
아침 5시. 전날 여장은 어느 정도 꾸렸지만 마음의 무거움 탓인지 잠을 설친 채 겨운 눈꺼풀을 떼고 일어났다. 배낭을 메고, 여행가방도 끌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니 저 멀리 공항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신호등이 제때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린 뒤 다행히 공항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가는 도중 앞차가 고장난 탓에 승객을 이어받느라 잠시 지체하게 되자 맘속으론 조급함이 밀려왔다. 약속시간 7시에 겨우 댈 수 있을 듯해서다.
간밤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다보니 전화가 울린다. 시간은 6시 45분. 그냥이다. 자기는 지금 도착했는데 어디쯤이냐고.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있다고 했다. 대략 20분 뒤면 공항청사에 도착할 수 있다.
도착해보니 역시 휴가철의 시작인지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낯익은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가상이와 연락하여 만남의 장소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가상이는 공항버스를 놓쳐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같이 가는 가이드 심재칠씨에게 여권을 건네고 일행인 김봉규 선배와 서울신문사 서승교 선배, 정태만 씨와 인사를 하고, 이러저러 입국수속을 밟고 나니 아침을 먹을 시간마저 부족했다. 해서 김밥을 사서 게이트 앞에서 짧은 식사를 하는데, 봉규 선배의 사위(아시아나 항공 조종사)가 아침으로 하라며 김밥을 잔뜩 사와선 건넨다. 짧은 비행시간(1시간 40분)이라 밥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또 비행기에서 식사가 간단하나마 나왔다. 일단 배부른 출발이다.
10시 45분 도야마 공항에 도착하자 장마 탓인지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우리를 맞아준다. 12시 무렵 미치노에키(道驛)라는 국도변 휴게소 林林에서 돈가스로 점심을 먹는데, 비로소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든다. 도시락과 한국식의 숟가락이 없는 식사에서다.
다시 40분쯤 달려서 나카무라칸(中村館)이라는 호텔에 도착하는 동안 푸른여행사 사장이 이번 산행에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 그룹의 대표가 일어나 집단으로 소개를 하고 이름이 호명된 사람은 간단히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 결과 이번 산행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23명으로 우리 일행이 6명, 대구 K2산악회에서 모두 8명(2쌍의 부부와 2명의 남자, 2명의 여자), 강원대와 삼척대 산악회 소속으로 5명(남자 4명, 여자 1명), 홀로 온 남자 2명(1명은 올해 환갑을 맞으신 김천시청에 근무하는 어르신, 1명은 은령회라는 산악회 소속의 푸른여행사 사장의 친구)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내가 제일 미숙한 것 같아 슬며시 걱정이 스친다.
호텔에서 산행을 위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비가 오는 가운데 가마고지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로 40분쯤 달린 뒤 마침내 가마고지 들머리에 도착했다. 비는 오지만 공기는 청량하고 마음도 한쪽에 걱정은 있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으로 씩씩한 산행을 다짐해본다.
그로부터 평지를 2시간 정도 걸었다. 나무는 죽죽 뻗어 잘생겼고 도열한 모습은 씩씩했다. 곳곳에 펼쳐진 자갈밭이 설악산 백담사 계곡 오르는 길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 도쿠사와 롯지에 도착했다.
새 신발을 사서 처음 신었던 터라 내심 평지를 걸으면서 적응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혼자서 하면서 과연 이번 산행이 잘될까 아닐까를 틈만 나면 운에 비춰보기도 했다. 저녁은 맛있었고, 가져간 김치랑 깻잎이 있어 한맛을 더했다. 그리곤 일본식 목욕탕에서 간단하나마 목욕도 했다. 저녁엔 다함께 모여 술을 한잔하면서 산행의 앞날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남녀 혼숙이었지만 상으로 교묘한 칸막이(?)를 세우고는 다들 피곤한 탓에 곯아떨어져 이국의 첫밤을 그런대로 달콤한 잠으로 채웠다.
<6월 30일>
새벽 빗소리에 잠시 불안했으나 아침의 상쾌함으로 불안을 누르고 밥을 먹은 뒤 도시락도 챙겨들고 길 나설 준비를 하니 비는 더욱 굵어졌다. 덧바지를 미쳐 준비못한 나는 우의를 꺼내입고 마음을 다지면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시간은 7시 15분. 평탄한 산길을 계곡물 소리를 음악삼아 걷는데 빗줄기는 좀처럼 가늘어지지 않는다. 안개 탓에 산 봉우리들도 가물가물. 도대체 가야할 곳이 어느 멘지 가늠이 안된다. 앞에서 걷는 사장은 우산을 쓰고 있는데도 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11시 30분 무렵. 잠시 해가 나는 틈을 타서 우비도 걷고 점심 식사를 했다. 가상이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사장에게 앞으로 산행이 힘들어지느냐고 물으니 사장은 “열라, 빡쎄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속으로 불안했으나 이제 엎질러진 물. 퇴로는 없었다. 점심 뒤 다시 출발을 하자 곧 설사면이 나타났다. 다들 아이젠을 하라고 하니 맘속으로 긴장감이 넘친다. 위로 올려다보니 아득한 설산. 목표로 정한 봉우리는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 만만치 않은 산이 내려다보며 우리(특히 나!)를 압도한다. 아이젠을 챙겨신고, 과감히 눈밭으로 한걸음 내디디니 아니나 다를까 간담이 서늘하다. 나의 비실비실함을 미리 눈치챈 사장이 나더러 자기 뒤에 바로 붙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연히 리더 뒤를 따르는 두 번째 사람이 그날의 폭탄. 경사가 진 눈밭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며 12시 30분부터 시작한 산행은 끝이 날 줄 모른다. 중간중간 아찔한 기분에 제대로 주위 풍광을 즐길 여유도 없고, 간간히 비는 다시 내리고, 과연 오늘 산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일상의 두려움은 아랑곳없이 자연은 무심하기만 한데, 괜히 나 혼자 수선을 떠는 것 같기도 하지만...무서운 건 사실! 그래도 알이 떠나기 전 신신당부한 덕에 서울신문사의 두분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앞에서 눈도 다져주고 힘들 땐 서슴없이 손도 내밀어 준다...
아무튼 기신기신 어렵게 야리카다케 산장에 도착을 하니 대략 5시 무렵이다.
저녁 식사는 6시 30분이란다. 일단 숙소를 배정받고 잠시 뻗었다. 산장의 소등은 8시 30분. 어제보다 30분 빠르다. 일행 6명이 함께 모여 술을 가볍게 한잔 하고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밖을 내다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밤에는 구름이 내려가서 산 위는 맑아진단다. 빽빽한 구름바다 위로 솟아오른 달님은 한없이 부드러운 빛을 내려주고 있어서 내심 내일은 편안해지리라는 여유를 맘 한구석에 부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천만의 말씀이었다.
기숙사식으로 된 방에 누웠으나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바깥에서 들리는 바람 한점까지 귓속을 파고들어 심란하게 만들었고, 내일의 산행을 위해 반드시 자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중간에 일본인 종업원이 와서 누군가 넘어졌다고 했는데도 일어나면 설핏 찾아올 잠을 놓칠까봐 그냥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고 계속 누워있었다.
<7월 1일>
아침엔 간만에 맑은 하늘. 더 일찍 일어난 사람들은 두 번째 봉우리 야리카다케에 올라가 아침해를 보고 왔다. 조금 늦어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맑은 아침, 넓은 시야를 조망하고선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나도 가고 싶었지만 남은 산행을 생각해서 가능하면 무리하지 않으리라는 방침을 세웠기에 그냥 전해듣는데 만족했다. 오전은 평탄한 산행이라고 했기에 더욱 부담없이 여장을 차리고 나서니 사장이 발이 괜찮으냐고 묻는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길을 나서니 오전의 평탄하다고 말한 산행은 끝없는 너덜지대로 나타났다. 높낮이는 급격하지 않았어도 발끝에 부닥치는 바위들은 예사롭지 않고, 초반에 잠깐 미끄러질 때 뒷사람들에게 낙석의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멀리 내다보니 일단 하늘은 맑아 시야가 넓다. 그러나 도착할 봉우리는 어디 쯤인지 가늠조차 안되는 상태. 다시 불안해지고. 애써 떨치고 일어나자 11시 무렵부터 서서히 급경사의 암릉들이 나타난다. 사장의 격려를 받아가며 끙끙거리고 올라서니 1시 무렵 기타호다케 산장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는데 힘이 든 탓인지 밥은 그런 대로 맛있었으나 별 감흥은 없었다. 가상이가 머리가 아프다더니 밥을 먹고 나선 나아졌단다. 2시출발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제부터 진짜 힘들어질텐데... 생각하니 잔뜩 긴장이 밀려온다. 어쨌든 가야만 하는 길. 맘을 다잡고 나서보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시간이다. 안경이 비에 젖으면서 앞은 안보이고, 바위는 미끄러워 발가락 하나하나에 긴장감이 서린다. 나 땜에 전 대열이 지체되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장 뒤를 따르지만 자꾸 힘이 빠진다. 게다가 자주 나타나는 쇠사슬을 잡아가면서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알려주는 대로 발을 디디려니 온몸이 저려드는 것만 같다. 도저히 못견디겠기에 사장보고 그 자리에 선 채로 3분만 쉬자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그때마다 사장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호흡과 함께 침을 삼키라고 말한다.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다. 과연 내가 오늘 밤 머물 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까. 미심쩍은 마음만 커진다.
내면의 나와 싸우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였는지. 정작 산장에서 돌리는 발전기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끝을 실감할 수 없었다. 마침내 호다카다케 산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대략 오후 5시 20분 무렵. 3시간 이상을 바위와 싸웠다. 사장에게 나에게는 현재 4가지 액체가 흐른다고 푸념했다, 눈물, 눈물, 빗물, 땀...
산장은 포근하고 넓었다. 성수기 때는 사람이 많아 칼잠을 자야한다고. 다시 여성들만의 방을 배정받고 건조실에 비에 젖은 우의 등을 말리러 가니 내부가 후끈해서 너무 좋았다. 더구나 이쪽은 물 사정이 좋아서 세수도 할 수 있단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양치질도 못한 터라 다들 환호성이다. 저녁은 6시 30분에 먹고 소등은 9시. 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 간단하게 술 한잔을 하자고 한다. 맘으로는 꺼렸지만 한잔은 어떠랴 싶어 마시고 사장이랑 가이드에게도 몇 잔 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8시 40분 무렵 자리에 들었다. 가상이는 내일 아침 정상에는 안가겠다고. 나도 그러마고 했는데 다들 왔으니 함께 가자는 소리에 또 마지못해 끄떡.
자리에 들고 얼마 있지 않아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숨도 못자고 차라리 비가 계속 오면 나도 정상에는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밤새 뒤척이기만... 일부 사람들은 산을 떠나기 아쉬운 탓인지 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술을 마시고 노래도 한자락씩 거나하게 불러 젖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부럽다...젊어서 좋겠다...
<7월 2일>
5시 무렵에 일어나니 역시 비가 내린다. 정상에 갈 사람들은 일부 올라가고 전부 각자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와 가상이는 그냥 6시에 주는 밥을 먹고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 일행들은 길을 나섰다가 중간에 돌아온 봉규 형님만 빼고는 다들 올라가서 정상을 밟고 왔다. 일단 올라간 모든 사람이 내려와서 식사를 하자 사장이 7시에 출발할테니 여장을 단단히 갖추라고 한다. 나가면서부터 눈밭이니 아이젠도 하라고... 세상에... 속절없니 두려움이 밀려오고. 다들 함께 가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무겁게 산장문을 밀치고 나선다. 나가자마자 사장은 눈밭으로 발길을 성큼성큼 옮긴다. 아이구머니나...아득히 먼 아래로 펼쳐진 눈밭을 보면서 난 절대로 못간다고 외쳤다. 나의 강경함에 사장은 그러면 아이젠을 벗고 돌길로 오라고 한다. 눈밭을 따라 옆으로 난 돌길을 걸으니 이것 또한 만만치는 않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눈인지 비인지 모를 정도로 줄기가 굵어진다. 바위를 헤치며 가는 길도 쉽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고 사장이 눈밭으로 가잔다. 아이젠도 무겁다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갔는데...사장은 자기가 손을 잡고 갈테니 따라오라고 한다. 별 수 없이 손을 잡고 몇걸음 떼보지만 발바닥이 간질간질 진땀이 절로 난다. 그러다가 결국 미끄러졌다. 가상이가 내가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조심하라고 말하는 순간도 잠시. 그만 나자빠지면서 뒹굴뒹굴 굴러간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이 아이쿠 큰일이네, 굴렀어! 하더니 나를 길가 돌쪽으로 급히 데려다놓곤 내려가기 시작한다. 나 또한 얼른 가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손을 놓는 즉시 나도 거대한 눈덩어리가 되어 굴러갈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매달려야 할 형편이다. 그러다가 다행히 가상이가 멈추었고,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 정작 그냥이 다치는 모습은 보질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젠을 받아서 신고 이젠 눈밭으로 나섰다. 돌무더기를 헤치며 내려가는 일이 시간도 더 걸리고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앞에서 길을 만들어주는 대로 발자국을 오롯이 포개면서 한발한발 내려갈 수밖에. 아침 7시 30분경에 출발하여 중간 산장에 도착한 것이 10시 20분 무렵. 무려 3시간이나 눈밭을 헤매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전혀 없고 이젠 스패치를 타고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가 발까지 푹 젖어 걷기만 해도 철벅이기 시작했다. 중간 기착지인 산장에서 11시에 다시 출발하여 눈밭으로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도가 다소 낮아진 탓에 마음은 다소 안도가 되었고, 이젠 오후 5시까지 가미고지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는 목표가 앞에 있었다. 점심은 올라올 때 들렀던 요코오 산장에서 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줄였다. 다행히 요코오 산장부터는 평지였으므로 산장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사장을 따르면서 부지런히 발을 놀리니 어느 덧 눈길을 벗어나고 길은 조금씩 평탄해지면서 여유롭게 산에 오르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마침내 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 점심 도시락을 꺼내면서 따뜻한 라면을 3개 시켰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사장은 나보고 아주 잘 따라온다고 한마디 건넸다. 이제 평지만 남은 것을 알기에 다소 건방진(?) 태도로 이 정도는 신작로라고 농담도 했다. 점심을 마친 뒤 결국 정상에서 찍으려고 했던 사진을 대구 K2 산악회원들에게 플래카드를 빌려서 증명을 남겼다. 이제 2시에 출발하여 11킬로미터를 3시간에 주파해야 한다. 다들 걸음을 재촉하니 이제 내 걸음이 처진다. 그동안 따라온 것도 장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쉬지 않고 따를 테니 다들 먼저 가라고 했다. 중간 휴식 때 사장 뒤에 붙어보지만 다시 처진다. 평지라고 그냥에게 맡겼던 짐을 받은 탓인지 배낭의 묵직함이 나를 더디게 내모는 것 같았다. 아무튼 중간에 두 번을 더 쉬고 가미고지 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 45분. 다들 날라서 왔다!!!
호텔에 도착하는 즉시 그냥과 가이드, 중간에 손을 접지른 여성 한명은 대절해둔 택시를 타고 병원행. 가상이도 보내려 했으나 일단 뼈가 다치지는 않은 듯하여 그냥 호텔에 있기로 한다. 방으로 가기전 사장이 우선 찬물에 찜질을 한 뒤 샤워를 하라고 하기에 찬물을 먼저 받아 들어간 가상이가 질급을 한다. 다친 곳을 보니 정말 처참(?)하다. 돌아와 출근길에 눈물 흘린 심정도 짐작이 간다. 그리고 내가 어리버리한 탓이라는 일말의 책임감으로 지금도 미안하다. 억지로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니 그냥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전화로 뼈는 다치지 않았고 몇 바늘 꿰매고, 다리쪽 엑스레이를 찍은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저녁을 마치고 방으로 가면서 그냥이 오면 연락을 해달라고...이불에 들어가 누워있으려니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누른다. 얼마나 잤을까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그냥이 붕대를 감고 사장과 왔다. 시간은 밤 10시 20분. 치료는 잘 받았다고...다들 무사했으면 마지막 결산 파티라도 열어야 했는데, 이젠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축배 삼아 각자의 맘음에 새길 수밖에.
새벽에 일어나 가상이와 노천온천에 들어갔더니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집을 떠난 며칠이 흔히 말하듯 꿈만 같았다. 가상이와 그냥이 더 심하게 다쳤으면 어쨌을까하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아울러 산행 내내 신경써준 봉규 형님, 서승교 선배, 정태만 씨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비가 그치면서 얄미울 정도로 깨끗했다.
한국에 도착한 뒤 햇살 가득한 대낮거리로 나서니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첫댓글 지금까지 산행기 중에 단연 압권.한 편의 서스펜스 스릴러를 보는 듯한 착각.훌륭합니다.그리고 장하십니다.
웃으면 안되는데 회장님 글 읽으며서 왜 이렇케 웃음이 나오는지. 곳곳에 회장님의 맴이 잘 느껴집니다. 보통은 "빗길속의 산행시작,꽃이 곱지요" 인데 빗길속의 산행시작,꽃은 곱지요".....그래도 울산악회를 대표하는 회장님이신데....ㅠ.ㅠ 송구스럽지만 귀중한 경험이 될겁니다.
어제는 '트랜스포머' 보고 오늘은 '해리포터' 보고... 살아있기에 가능한 거겠죠? ^^ 앉기가 아직은 마이 불편합니다, 영화 한 편 보는 동안 허리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힙에 부담 덜 주려고 허리에 힘을 줬더니...
정말 큰일 날 뻔 했군요. 모두 활짝 웃는 사진이어서 작은 사고였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위로를 드리며 빠른 쾌유를 빕니다.
북알프스팀의 글들을 보며 역시 즐거움은 나눌 수 있지만 고통은 나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네요...굴렀다, 아펐다, 두려웠다 등에서는 응 그런가 보구나 하구선, 회장님이 에구머니나, 4가지 액체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아주 실감하며 웃습니다..정말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서두 한 편의 씨트콤을 보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습니다. 어차피 끝난 일, 웃어줘야 예의일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모두들 장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