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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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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도요장군, 요수 도하군의 총사령관이다. [제1편]
문 무 추천 1 조회 578 18.11.08 13:52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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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11.09 10:01

    첫댓글 上谷郡(상곡군)
    <조양(造陽)은 오원(五原) 북방 900리에 있는데, 상곡군의 屬縣(속현)이다.>라는 고전 주석에 따르면, 오늘날의 하수(河水) 북방에 있는 오원과 조양 모두 상곡군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21세기 현재의 지명에 의한 것이다.
    '규수와 규주'는 하천으로 인하여 지명(규주)이 된 것인 만큼, 규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이런 하천과 지명은, 21세기 오늘날의 하수 북방엔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사에서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된다.
    규수는, 아랄해로 들어가는 '아무다리아강'이기 때문이다.
    오원은 시황제때의 구원으로 거대한 릉과 같은 원(原) 아홉개가 있어 구원(九原)이었는데, 이게 갑자기 다섯개로 오원이 되었다.

  • 작성자 18.11.09 10:06

    이런 거대한 원(原)이 어느 날 갑자기 4개가 없어져, 오원(五原)이 되어버렸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다.
    시황제 때의 구원(九原),
    서한(西漢) 때의 오원(五原), 그리고 그 북방 900리의 조양과 상곡군.....이에 따른 의문을 풀 수 있다면 "조선사의 절반은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고전에 많이 등장하는 구절이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약속한 것처럼 말이다.

  • 18.11.09 23:11

    오원(五原) '구원(九原)의 하천(河川) 지대는 곧 요수(遼水) 지대이라는 기록에 대하여 공감합니다..
    문무 선생님께서 앞서 설명하셨던 그대로 감숙성(甘肅省)의 평량(平凉)에서 북쪽에 위치하는 녕하성(寧夏省)의 하천(河川) 지대는 역시 요해(遼海) ' 송화강(松花江 : 본시 만주의 흑룡강이라고 불리우는 강) 지대였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 작성자 18.11.10 09:31

    안녕하세요. <玄朝>님!
    오랫만입니다. 이 공간에서 보게 되니, 건강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우리의 조선사 연구가 무엇이 잘 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나 하나를 체크해 보고 중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널리 알려져 있는 것부터 정리를 해보고자 한 것인데, 실제로는 너무나 잘못된 역사해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강단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해설들을 실제인 냥 부풀려 발표하고 언론과 함께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죠.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게 사실(史實)인 냥 하지만 거짓이 대부분입니다. 위정자들의 역사인식은 보수나 빈보나 똑같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 작성자 18.11.10 09:41

    九原(구원)과 오원(五原)의 지명도 이와 똑같은 거라고 보는데,
    시황제(始皇帝)의 구원과 전한(前漢)의 오원은 같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걸 후대인들이 같은 곳으로 만들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되었다고 봅니다.
    진실된 조선사 복원 염원....아마도......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위정자들의 머릿속에는, 세뇌된 일제시대의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꾸려면 획기적인 유물유적의 발견이 있어야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 당국은 이를 철저하게 극비(極秘)로 취급, 외부인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 작성자 18.11.10 09:43

    대륙에서 모종의 혼란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분열이 심화되어 획기적인 권력들이 새로 태어난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염원은 영원히 숨겨질 수도 있다는 거죠.
    희망은 있다?
    건강하시길 바라며, 자주 뵙기를 청합니다.

  • 18.11.10 12:42

    사기에서는 오원 북쪽으로 九里되는 곳을 조양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索隐】:案:太康地记“秦塞自五原北九里,谓之造阳东行终利贲山南汉阳西也”。汉,一作“渔”。筑四十四县城临河
    오원(구원)은 만리장성의 끝과 가까운 지역으로 요동지역이고 고조선과 멀지 않은 곳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 작성자 18.11.10 14:05

    안녕하세요. <고고아리랑>님!
    님의 말씀대로입니다만, 사기(史記) 주석(註釋)에서 말하는 "조양(造陽)"은 오원(五原) 북방 9리가 아니라 : "북방 900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후대의 사가(史家)들이 "900리"를 9리로 만들었다고 보아지는 대목입니다.
    다른 역사서 (통전이나 자치통감등의 또 다른 역사서)에서는 모두 "오원 북방 900 리 떨어진 곳에 조양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오원으로부터 900리 라면 오늘날의 내몽고 땅을 지나 외몽골 땅이죠.
    이곳이 상곡군이 관할하고 있던 땅이다라는 것이 원전에서 말하는 내용입니다.
    관심과 성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 18.11.11 09:11

    지금은 출장중이여서 가능한 다음주내로 百衲夲 사진을 올리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 18.11.10 21:14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요하는 대략 남북으로 흐른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이에대한 이견은 별로 없어보입니다. 요수의 동쪽이 조선땅인가...하는데에는 일부만 동의할수 있습니다. 요수는 중국에 있고 중국은 지금의 일개 성 크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 남, 서쪽 모두가 조선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런데 조선과 이른바 중국(현 중국)은 서로 국경이 있고 대륙조선(지금의 동아시아일대) 저편에 중국의 여러나라들이 있었다고 설정한다면 절대 풀릴수 없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의 신강지역과, 천산일대, 중앙아까지가 수,당,원,명,청등 중국의 여러나라가 있어야 하며 이는 동쪽에는 조선이, 서쪽에는 중국이 있어야 하는 지금의

  • 18.11.10 21:14

    반도사관의 확장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역사와 이른바 중국의 역사는 모두 동아시아 일대가 그 무대이며 중앙정부인 중국을 누가 차지 하는가에 따라 친목도하고 반목도 해 왔던 것입니다. 대체로 태항산맥 동쪽과 황하 이남이 반도조선으로 축소 왜곡되었고 고비사막 이남과 황하 이북, 태항산맥 이서(西)가 중국의 역사로 변한것이라 생각됩니다.

  • 18.11.10 21:16

    또한 중국(현 산서성 일대)의 작은 하천이나 산 ,지명들이 대륙조선의 빈 자리에 분산되어 마치 본래부터 그곳이 중국의 땅 인 양 행세하고 있습니다. 이 산서성 일대의 중국땅에 평양이나 해주 원주 함흥 백두산 등등의 지명도 있었는데 역사 왜곡과 더불어 반도조선으로 함께 와 있게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례로 고려말 ‘홍건적의 난’이나 근대 ‘태평천국의 난’과 ‘동학농민운동’ 의 사건을 보면 그 활동무대는 같은 곳 임을 직감할수 있습니다.

  • 18.11.11 09:37

    산서현지(山西县志)에는 요양,요산,기성등이 산서성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고 청나라 말기 학자인 양수경이 편찬한 수경주 지도를 보면 현 산서성지역에 고려하를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산서성은 실제 고구려가 있었던 지역이였을 것으로 추측을 하지만..그 이전에는 요양,요산등이 서쪽에 있는 현 감숙성,섬서성에서 산서성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 18.11.10 21:17

    동아시아 일대의 대륙조선, 그 변방 북,서,동쪽에 있던 여러 종족들의 이야기가 조선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에 중첩돼 더욱더 혼란을 가중시키어 우리를 혼란케 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도요장군도, 한(漢)나라가 가령 천산서북에 있었다라고 한다면 그들과 마주했던 흉노는 더 서북에 있어야 하고 요하 역시 더 서쪽인 그 어딘가에 있어야 하니 요하가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조선의 강역도 그와 연동되어 서쪽으로 확장되어 역사가 풀리지 않고 미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규수가 아무다리아다....하는것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 18.11.10 21:21

    고구려 왕들의 장지가 원으로 끝나는 경우(두곡동원, 대수촌원, 모본원, 고국천원, 시원, 중천원....등등)가 많은데, 이는 결코 진(秦)의 구원이나 한(漢)의 오원과 무관치 않다 (즉 같은 장소다....)생각되고, 문무님께서도 ‘우연의 일치일까’ 의아해 하신적이 있습니다...

  • 18.11.10 21:29

    <무오연행록 6권 1799 2 11>이날로부터 이어서 연수(煙樹)를 보니, 계문을 지나 나산(螺山), 별산점(鱉山店) 사이가 극히 영롱하니, 대개 들의 낮은 곳은 기운이 흔들려 이상한 모양을 만들되, 은 바다와 옥 꽃이 눈에 황홀하여 언덕이 은은하게 비치고 초목이 움직여 여기로부터 심양까지 날마다 보이니,......
    위의 무오연행록에 계문을 지나 심양까지 날마다 연수(煙樹)가 보인다 하니 같은 지형임을 짐작할수 있고.......

  • 18.11.10 21:32

    요동에서부터 길 좌우에 버드나무를 심어 북경까지 갔는데, 모든 큰 길은 다 그러하였다. 버드나무 사이는 수레 10대가 지날 만했다. 매년 여름철이면 장마로 물이 온통 들을 덮어도 이 버드나무로 인해서 길을 잃지 않게 된다고 했다.<담헌서 8집 연도기략>
    에서 보듯 북경까지 버드나무를 심었다 했으니 버드나무는 개울가 물이 많은곳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즉 북경까지가 하천으로 연결되었다라고 짐작할수 있는곳입니다.

  • 18.11.10 21:35

    유연(幽燕) 지방은 모래 개천의 불모지이므로 토지의 소출이 없는데, 황경(皇京)은 사방의 재물이 모두 모여드는 도회이므로, 이에 의지하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승정원일기 고종9년 1872 4 4>
    즉 유연지방은 모래개천으로 쭉 이어진 땅으로 이 개천이 바로 요하라는 것이죠....

  • 작성자 18.11.10 23:05

    안녕하세요. <맑은영혼>님!
    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주장하시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요수를 확정하기에 앞서, 나라와 종족들과의 전쟁터, 거점지, 지세등을 차례 차례 원전에 기록된 것들을 번역,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나라와 종족간의 싸움터나 접경지대가 수천리씩의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또 과거의 해수면과 하수(河水)의 물길의 이동등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관심과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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