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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목요일 가람작은도서관에서
고진실, 김상진, 이예림, 이효정, 최규호가 만났습니다.
김승철, 심선진은 책 나눔을 보내왔습니다.
9월 책사넷의 알고리즘은 '잘 사는 것'에 대한 힌트들 같아요.
-죽음을 준비하며 현재를 사는 것
-작은 집에서 오히려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것
-다정하게 사는 것
-좋은 관계와 자연을 누리며 사는 것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사는 것
-공정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사는 것
-공간을 장소로 바꾸어가며 사는 것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며 사는 것
더 자세한 내용으로 만나보시죠~
이효정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유성호, 21세기북
Memento Mori,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두 개념을 연결하면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 하라.는 의미가 된다.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그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지 질문을 건네는 구절이다. 75쪽
유언노트의 저자인 법의학자 유성호는 매일 죽음과 마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을 마주하면서 저자는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이 있어야 가능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자연인으로 사회복지사로 사는 직업인으로 나 역시 삶에 있어 죽음을 생각해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에게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 부모님의 삶 안에 죽음을 함께 생각하고 나눠보지 못함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 책이다.
유언노트에서는 삶은 끝이 있기 때문에 현재를 더 값지고 의미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부터 준비하는 것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79~87쪽
*오늘의 삶을 잘 준비했으면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 재정적 건정성)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정리해보자.(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발전시켜 새로운 경력이 되도록 하자.
*식탁위에서 죽음을 이야기 하자.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해보자.
*죽음과 관련된 서류를 미리 작성해 두자.
*의료문제를 의논할 주치의를 정하고 의료대리인 제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유언노트를 읽는 순간순간 분명 이 책에서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내가 원하는 마지막 모습을 그려볼때마다 난 잘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과 조금 더 섬세하지 못했던 삶의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이 아니라, 지금을 조금 더 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이 책의 표지에 있었던 ‘죽음을 떠 올릴때마다 삶은 선명해진다.’라고 했던 저자의 말이 끄덕여졌다.
마지막으로 유언노트에서는 ‘기록’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전 ’나’를 기록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는 소통임을 말하며 ‘엔딩노트’의 별책부록으로 나에게 기록의 틀을 주었다. 책은 덮었지만 엔딩노트의 30가지 질문을 마주하면서 좋은 삶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김상진 [작은 집을 권하다] 다카무라 토모야, 오근영 역, 책읽는수요일
아이들과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저의 로망이 담겨 있는 내용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스몰하우스는 세 평 안팎의 상시 거주용 작은 집입니다. 아래층에 거실과 주방, 욕실을 배치하고 지붕 바로 밑에 침실용 로프트를 두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셰퍼는 자신의 설계 방식을 ‘뺄셈 스타일’이라 부른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며 원하는 걸 자꾸 보태고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적당한 집을 상상하고 거기에서 불필요한 설비나 공간 따위를 가능한 만큼 최대한 제외해나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뺄셈 설계에 관해 설명하면서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입니다."
뺄셈 설계라는 말에 마음이 동합니다. 책 전체에는 빼고 남은 여백을 충만한 것으로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은 집은 고스란히 소박한 삶과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생활로 이어집니다. 스몰하우스의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전자 기기를 멀리한 만큼 고전을 작가별로 읽으며 삽니다.
스몰하우스 운동을 설명할 때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라는 말과는 다른 뜻에서 ‘개인정신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마디로 사람들의 정신적 측면과 관련해 개인주의적 성향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개인정신주의가 결과적으로 지구환경이라는 가장 대대적이고 거창한 문제의 해결로 이어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것을 중심으로 묵묵히 일을 진행하다 보면 결국 환경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가시적인 효과를 발휘했던 예가 지금까지 얼마나 있을까?
개인정신주의는 개인의 마음속이 평온하고 자유로운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너무 적지도 않고 너무 많지도 않게 균형이 잡힌 부(富)라는 것은, 그 상태를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개인의 내적 균형이 지구 전체의 균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몰하우스는 지금까지 문제로 생각됐던, 전체와 개인이라는 딜레마 구조를 뒤엎는다.
사실 스몰하우스를 선택할 때 좁다거나 불편하다는 물리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우선해요. 책에서는 이걸 '개인정신주의'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자신을 먼저 위하는 개인정신주의가 지구를 살리는 생태주의로 흐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무엇이든 어렵기 보다 재미있게 판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지속적일 것 같습니다.
벨은 건축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에 불과하다. 엄청난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남겨준 땅이나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건축이나 농업에 관해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벨의 에피소드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스몰하우스 주민들처럼 지속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간소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뭔가의 달인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만약 특수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살벌하고 지루한 분업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귀중한 삶의 방식에 다시 전문성이라는 주술을 거는 것과 같을 것이다.
처음부터 면밀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벨은 우선 땅을 샀다. 그러고 나서 구체적으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다음 밭농사를 하면서 벌이를 고민했다. 앞으로 이걸 계속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는 그런 답답한 역산형 루트가 아니라, 그때그때 시행착오로 생활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벨은 우선 땅을 조금 사고 이것 저것 부딪히며 그때그때 시행착오를 즐기자고 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시작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벨도 했으니 나도 해 볼수 있지 않을까. 세 아이 다 크고 나면 작은 집에 도전하고 싶어요.
링크를 따라가면 스몰하우스 실물을 볼 수 있어요.
제이 셰퍼의 스몰하우스 https://jayshafertinyhouses.com/
작은집연구소 기사 https://www.mk.co.kr/news/culture/6298533
이예림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이해인, 필름
매년 초가 되면,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을 한다. 더 구체적이거나 포괄적인 다른 수식어도 없이 말이다. 너무 마냥이긴 하다 사실.
작가는 살아가는 모습 안에서 다정한 사람들 이야기를 유심히 보고 마음으로 새긴다. 내 경우에도 다정이란건 우선 어느정도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거창한 여유보다, 내가 마음을 더 유연하게 먹고, 조금 더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왔고, 지금 일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대부분 만났고, 얼마쯤은 어떤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나름 기준도 있다.
앞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외로워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고,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천천히 대답해 줄 수 있는 어른. 그렇게 다정함이 전해지고, 또 전해지는 골목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다정함은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 골목의 어른들이 그랬듯, 말없이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다정함이 내게서 시작되어 다음 세대의 골목으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37쪽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건 더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부디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 사람, 참 다정했지'라고 남고 싶다.
언젠가 내 앞을 걸어가는 사람이 지나가는데 좋은 향이 난 적이 있다. 문득, '나도 저 뒤를 따라가면 좋은 향이 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다정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뒤를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48쪽
계속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는 물음엔 무언가 하나둘씩은 생기고 있다. 일단, 올해말까지는 조금 더 다정해지기.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기. 아주 조금이라도 실천해보려 한다. 10월 책사넷 때 공유할 수 있을 만큼 :)
고진실 [눈물꽃 소년-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느린걸음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흘렀다. 맑고 순수했던 어린시절, 소박하고 정겨운 사람살이.
그 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괜히 그립다.
가난하고 고단했을 때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회고할 수 있는 저자가 놀라웠다. 책을 보고 나니 그의 작품들이 새로 보이고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책 속 일화들에는 지금의 박노해 시인을 있게 한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 그에게는 모두가 살아있는 책이고 거리의 학교였다. 그 가운데 인상깊었던 것은 스승으로 삼은 것이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기를 둘러싼 세상 모든 것에서 배우고 성찰하는 겸손한 삶의 태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자극이 되었다.
그 여름날 이후 나는 솔찬히 변한 것만 같았다. 내가 무언가에 집착할 때, 악착같이 이기려 할 때, 빛나고 좋은 건 내가 한다고 욕심이 들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 여름의 비밀한 일이, 소스라치게 바닷물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퍼뜩, "힘 빼! 온 몸에 힘을 빼! 얼른 놓아버려!" 하는 소리와 함께 제정신을 차리곤 하는 것이었다. 비밀한 그해 여름, 시퍼런 바다의 가르침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사회사업이 떠올랐다. 사회사업가로서 사람을 도울 때, 결국 관계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또 확인한 듯 반가웠다.
사회사업가에게 무조건 권하고 싶은 책이다.
고진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이순학 역, 더스토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알은 때가 되어 그냥 깨지는 것이 아니다. 알을 깨기 위해 들이는 새의 노력은 실로 어마하다.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동안 나를 안전하게 감쌌던 껍질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가. 투쟁이라는 표현이 참 적당하다.
껍질 밖 세상은 어떤지 알 수 없다.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한다면 그동안 보지 못한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그동안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는 것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현재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미 어른이 되는 과정에 수많은 알을 깨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아닐까.
어미새는 알을 대신 깨주지는 않지만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옆자리를 지킨다. 기다리되 외면하지 않는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다른 세상을 열어준 것처럼, 나 역시 혼자 자라지 않았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돌봄과 보호를 받았고, 학교에서는 친구와 선생님을, 직장에서는 상사 동료 선후배를 만났다. 그동안 스쳐간 관계와 소중한 인연들 덕에 내 세상은 조금씩 넓어지고 지금의 내가 있다.
알을 깨고 나올 용기는 나로 시작하지만, 그 힘을 발휘하게 하는 건 타인이 아닐까.
삶에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갈망했으나,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데미안이라고 생각했다.
최규호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이 책은 우리들 대부분의 가치관과 사회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서입니다. 능력주의가 불러오는 커다란 부작용을 이해하고 능력에 우선하는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사업가들의 필독서가 되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능력주의를 설명하는 말들
-능력과 재능에 따라 자원과 지위를 배분한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우리 운명의 책임자다.
-성공은 나의 덕, 실패도 나의 탓.
-각자의 재능, 능력, 야심만큼 시장이 주는대로 보상을 받아 누릴 자격이 있다.
-“우리는 개인이 각자의 출생이나 특권이 아닌 자신의 재능으로 성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토니 블레어)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기
분명 능력주의는, 과거 출신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던 방식에 비하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불평등의 원인이 출신에서 능력으로 바뀌었을 뿐(그런데 그 출신은 여전히 중요한. 명목상 인종, 성별, 계층의 영향은 줄어들고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좌절과 굴욕을”
책에서 반복되고 강조되는 문구입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 실패가 개인의 노력 부족 때문(만)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수저론’ ‘개천용 불가론’ 이런 표현들이 지겹도록 유통될 정도로요.
그런데 우리의 논의는 여전히 기회를 더 균등히 만들기, 더 공정한 경쟁 시스템 만들기, 즉 능력주의를 더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만약 실제로 모두가 동일한 출발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더 커집니다. 그런 완벽한 ‘공정’ 경쟁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네놈이 못나고 노력이 부족한 탓’이란 비난과 책임을 더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계층 이동(상승)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다”
능력주의는 그 속성상 자연히 ‘엘리트주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한 자들과 유력 정치인들은 ‘하면 된다’는 말만 외치게 되고 때로는 공개적인 연설에서 대놓고 저학력 유권자들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인식되는 미국과 유럽의 중도좌파, 중도우파 정권들은 불평등의 해결이나 사회통합에 힘쓰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이념에 따라 거대 금융 자본의 보호와 강화에 주력하면서 엘리트들의 눈치만 보았고 평범한 국민들을 향해서는 ‘여러분도 대학에 가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십시오!’......
또한 입시지옥과 혹독한 경쟁을 뚫고 서울대, 의료계, 법조계를 장악한 엘리트들의 오만한 행태를 우리는 늘 보고 있습니다. (경쟁의 과정도 파시즘적이니, 후에 그들이 내어 놓는 결과물들도 파시즘적인 것 같습니다)
입시경쟁은 ‘능력주의적 군비경쟁’이며 “능력주의적 경쟁은 침략적” (279쪽)
이렇게 양극화 심화, 불평등의 문제와 함께 또다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 있으니, 바로 ‘포퓰리즘의 반격’입니다.(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극우세력 득세)
도대체 요즘 왜 이렇게 극우가 미쳐 날뛰는 걸까? 이 의문에 대한 한가지 답이 이 책에 있습니다.
“하위 9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아메리칸 드림 머신은 자동화, 해외 아웃소싱, 다문화 정착민들의 위력 등등으로 작동이 멈춰버렸다... 아메리칸 드림의 차례를 기다렸다고 여긴 사람들이 (흑인 이민자 난민 등등에게)‘새치기를 당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과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인들에게도 분노했다” (317쪽)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계층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예전엔 흑인과 이민자와 여성들이 더 멸시받거나 못났었는데, 이젠 우리가..? 이것이 이들의 분노의 핵심이며, 극우 정치인들은 이 분노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상황도 여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차별주의를 지지하고 억울함을 혐오로 표출하는걸 어떻게 정당화 해주냐? 이럴수록 반대 진영에서는 이들을 답 없는 꼴통 취급하게 되고, 그러면 이들의 분노는 더 커지고.....이런 악순환이 또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능력의 폭정[횡포](The Tyranny of Merit)’입니다. 저는 여기에 주목하고 싶은게, 능력주의(Meritocracy)가 아니라 능력(Merit)이라고 쓴 건 저자의 담대한 도전이 아닐까 합니다. 능력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사회가 능력주의의 힘이 약하다 해도 어떤 사람의 능력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될테니까요. 개인, 사회, 심리, 구조에 이르러 보다 철학적이고도 ‘신학적’인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가진 능력이 누군가에겐 횡포가 되지는 않을지, 내 성공엔 어떠어떠한 감사의 대목들이 있는지, 실패했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타인의 실패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모든 사람이 능력을 키우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이 상황이 과연 맞는건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이기적으로 이득을 좇고, 상승의 욕망으로 쾌락과 도파민을 추구하는 그런 ‘당연한’ 것들에 대한 반성이 그 인간 본성의 당연함 만큼이나 당연하게,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그런 위기의 상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게 아닐지.
(분량 관계로 대안과 결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룰 예정입니다.)
심선진 [모든 장소의 기억] 박성진, 문학동네
공간은 단순히 좌표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이는 물리적 차원이다. 하지만 사람이 머물고 경험을 쌓으면 그곳은 의미와 기억이 담긴 장소가 된다. “지하철역 출구 앞 20미터”가 공간이라면, “그곳에서 친구와 매일 만나던 자리”는 장소다. [모든 장소의 기억]은 바로 이 순간, 공간이 장소로 바뀌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책은 자동차, 휴게소, 카페, 공중화장실 같은 일상의 공간 36곳을 안내한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드러난다. 특히 비 오는 날 자동차 안 장면은 오래 남는다. 차창 너머 빗방울, 내부의 고요, 그 사이를 잇는 음악은 한 사람의 기억이자 시대의 풍경으로 재현된다.
읽는 동안 나 역시 내 장소들을 떠올렸다. 부산 산복도로에서 스친 청소년기의 기억, 성북구 보문역 골목에서 느낀 이방인 감각이 책 속 풍경과 겹쳐졌다. 책과 나의 기억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아쉬움도 있다. 때로는 감성에 치우쳐, 특정 장소가 왜 그런 기억을 낳는지에 대한 사회적 맥락이 부족했다. 제목이 주는 깊이를 기대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게 묻는다. “당신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그곳은 어떤 기억을 담고 있습니까?” 덕분에 내 삶의 장소성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김승철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해냄
독일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러니까 글자를 깨우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교육을 받습니다.
독일은 자기 생각, 관점을 글로 쓰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실행하는 비판 교육을 합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상황 문맥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는 자기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우리 사회사업 현장에서 적용한다면.. 신입 직원 '자기 글쓰기 훈련' 과정으로 풀어볼 수 있겠습니다.
입사 후 수습을 마치는 3개월 간 꾸준히 자기 업무에 대한 글을 쓰고 3개월 수습을 마칠 때 시설장님 이하 전직원들 앞에서 자기 글을 발표합니다. 발표를 들은 직원들은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적용해봅니다.
이렇게 기관 입사할 때부터 글쓰기 훈련을 하고 수습을 마치는 때에 자기 글 발표를 한다면, 수습 이후의 과정도 더욱 성의 있게 하게 되고 나아가 복지 현장의 문맥, 상황도 보다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5년 10월 서울 책사넷 모임 안내
일시 : 10월 23일(목) 저녁 7시 30분 ~ (16일에서 변경했습니다)
장소 : 가람작은도서관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1층)
참여자 : 참여를 원하는 당신!
준비물 :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 1~2권
신청 : 기존 참여자 외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비밀 댓글 혹은 연락책에게 문자 남겨주세요.
연락책 : 김상진 010-7308-2433
첫댓글 '능력주의'라는 '지배적인 지식'의 '알을 깨고' '다정한' '개인정신주의자'가 되어 바로 지금 이 '장소'에서 '사람과 바다로부터 배우는' '죽음을 기억하는 삶'을 살기
최규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정보원 선생님께서 주선, 독려해주신 덕에 매달 즐겁게 모임합니다
잘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