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청산의 포효
해풍이 코 간질여 갈기 세운 수사자
으르렁 포효소리 득량만(得糧灣)을 깨울세라
산꾼아 꼬리 밟지 마 아차 하면 물리리
* 사자산(獅子山 666m); 전남 보성 장흥, 호남정맥. 사자앙천형(獅子仰天形)으로 하늘을 향해 도약한다. 여기서는 꼬리인 미봉(尾峰, 일명 간제봉)을 지칭하며, 소위 ‘탐진지맥’의 시작점이다, 바람에 날리는 능선(허리)의 억새군락은 흡사 사자갈기 같다. 서쪽에 머리 부분인 두봉(頭峰 560m)의 경관이 오히려 뒤진다. 일제 때 장흥에 살던 일본인들은 후지산(富士山)을 닮았다 하여, ‘장흥 후지산’이라 부르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산에서 바라본 바다풍광(특히 일출)이 좋다.
* 득량만(得糧灣); 글자대로 풀이하면 ‘양식을 얻는 만’이다.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만의 입구는 남서쪽으로 열려 보성만과 연결되며, 고흥군·보성군·장흥군 등의 일부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남양면 동쪽 연안에는 유인도인 우도와, 무인도인 각도섬·구룡도 등이 있다. 바다비늘이 반짝이고 포근하다.*
* 장흥의 삼합; 한우, 키조개 관자(貫子), 표고버섯.
* 졸저 산악시조 제2집 《산창》 제 46쪽 ‘사자능선의 바람’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46면.
22. 용의 발톱을 뽑고
산비늘 날카로워 삐죽 나온 용 발톱
뺀찌로 몽땅 뽑아 배낭에 담아오니
씩 웃는 자주달개비 내 어깨를 툭툭 쳐
* 용조봉(龍爪峰 635m); 경기 양평. 암릉미가 뛰어난 숨은 보석으로, 용문산의 작은 용아릉이라 불릴 만큼 날카롭다. 삐죽삐죽 나온 바위들이 재미있다. 현지 안내판은 신선봉으로 돼있다. 남빛이 짙은 산속의 청초한 자주달개비꽃이 등산객을 반긴다.
* 뺀찌; 원래 소공구를 가리키는 일본말에서 유래되었으나, 근래 ‘거부나 거절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335면.
23. 용문에 올라
여의주 품은 청룡 솟은 뿔 늠름한데
오르다 박치기한 돌잉어 밉다 않네
낙방한 수험생이여 인생길은 구만리
* 용문산(龍門山 1,157m); 경기 양평, 한강기맥.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주봉은 가섭봉(迦葉峰)인데, 현재 군부대 철조망이 쳐져 볼품없다, 먼데서 바라보는 산이라, 막상 오르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천년 거목의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龍門寺)를 비롯해, 윤필암(潤筆庵)ㆍ상원사(上院寺) 등의 사찰이 있다. 광주(廣州)산맥 계(系)에 속하는 독립된 산괴(山塊)로, 동서 8km, 남북 5km에 걸친다. 주봉을 중심으로 동북동 5.5km의 도일봉(道一峰 864m), 동쪽 4.5km의 중원산(中元山 800m), 남서 3.5km의 백운봉(白雲峰 940m) 등 지봉(支峰)이 용립(聳立)하고 있다. 북쪽에 봉미산(鳳尾山 856m), 서쪽에 대부산(743m)이 있다. 당당한 청룡의 기상으로 눈빛이 그윽해, 뭉게구름이 머물면 신비감마저 든다.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 등용문(登龍門); 중국 황허 중류의 급한 여울목. 현재 산시성 하진(夏津, 일명 孟津)현에 있다. 잉어가 이곳을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용문점액(龍門點額)은, 이 아래 모인 물고기가 뛰어오르지 못하면, 이마에 상처만 입게 된다. 즉 과거에 낙방한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낙방거자 落榜擧子).
* 심모원려(深謀遠慮); 깊이 도모(꾀)하고, 먼 장래까지 생각함.(손자병법)
* 졸저 산악시조 제1집 《山中問答》 제33, 142쪽 ‘운칠기삼’(춘분)-용문산 시조 참조. 2001. 6. 10 ㈜도서출판 삶과꿈.
* 졸저 『仙歌-신선의 노래』 선시조집 제81면 ‘용맹정진 1’ 시조 참조. 2009. 7. 30 ㈜도서출판 삶과꿈 발행.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438(332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4. 성스런 봉우리
맛깔 난 오징어섬 동해의 흑진주지
뿌리는 우뚝 솟고 음모(陰毛)인양 빽빽한 숲
무릉원(武陵源) 나리분지엔 섬백리향 그윽타
* 울릉도 성인봉(聖人峰 984m); 산이 높긴 해도, 유순하게 생겨 세인들이 말하기를, “마치 성인들이 노는 곳 같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해저에서 성인봉까지의 높이는 약 3,000m에 달한다. 섬 중앙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미륵산·관모봉·두리봉·나리봉·송곳산·형제봉 등이 있다. 산정에 화구가 따로 없는 외륜산(外輪山)으로, 북쪽에 거대한 칼데라인 나리분지(羅里盆地)가 있고, 그 사이에 중앙화구인 알봉이 솟아 있다. 북쪽 사면의 원시림지대에는 특산식물 36종을 포함 3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해, 1967년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도동리-관모봉-정상-나리분지-천부리, 도동리-관모봉-정상-관모봉-봉래폭포-저동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옛날에는 무릉도라 불렀다.
* 섬백리향; 꿀풀과에 속하는 낙엽반관목이다. 울릉도에서 자라는 특산식물로 형태는 백리향과 같으나, 원줄기가 보다 굵어 지름이 7∼10㎜에 달하며, 잎의 길이 15㎜, 꽃의 길이 10㎜이다. 진해·진경(鎭痙)·구풍·구충의 약으로 쓰고 있다.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한다.
* 졸저 풍치시조집 『명승보』 울릉도8경 시조 중, 제7경 ‘나리금수‘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341면.
25. 붉은 치마 두른 산
사방은 온통 절벽 붉은 치마 두른 요조(窈窕)
산상엔 맑은 호수 사고(史庫) 감춘 항전의 땅
안렴대(按廉臺) 단풍을 꺾어 선인 슬기 맛보라
* 적상산(赤裳山 1,029m); 전남 무주.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주변에 단풍나무가 많다. 그래서 치마바위라고 한다. 가을이면 “온산이 빨간 치마를 둘렀다”하여, 적상산이라 부른다. 동안·서안·북안에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放射狀)으로 발달했다. 소나무 등이 우거져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며, 인근마을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추경(秋景)이 뛰어나다. 명소인 안렴대 암반은 절벽 위에 있고, 그 밑에 큰 석굴이 있다. 고려 말 거란이 침공했을 때, 3도안렴사(三道按廉使)의 관속들이 이곳에 피난했다. 멀리 마이산이 가물거린다. 4대 사고지가 있고, 산상호수가 아름답다. 상산(裳山), 또는 상성산(裳城山)이라 달리 칭한다. 한국100경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제 1-486번(363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발행.
26. 우뚝한 선녀
산속에 숨었기에 겹옷을 벗겨봤지
바위는 알몸 선녀 내 넋마저 앗는데
아찔한 낭떠러지에 펼쳐지는 신천지
* 올산(兀山 858m); 충북 단양. 글자그대로 우뚝 솟은 화강암 산으로 석문바위, 거인얼굴바위, 고래등바위, 히프바위 등 멋진 바위들이 즐비하다. 서쪽의 황정산(黃庭山 959.4m)과 마주한다. 절벽 아래로 끊어질 듯 산길이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광이 시원하다. 등산로는 올산리와 마노교쪽으로 모두 2개 있는데, 어느 쪽으로 올라도 좋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328면.
27. 삼도 화합
큰 줄기 마루금은 세 도를 가른다만
삼룡(三龍)이 손을 잡고 신나게 춤을 추니
벽옥 빛 물한계곡도 여민락(與民樂)을 부르네
* 삼도봉(三道峰 1,177m);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김천. 3도의 경계로,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일명 초점산(焦點山)이라 한다. 3도를 상징하는 용 세 마리가 여의주를 품은 석조물이 있다. 북서쪽의 민주지산(眠周之山 1,242m)을 향해 산줄기가 하나가 더 뻗어, 정상을 중심으로 Y자 형태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북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북쪽으로 흘러,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초강천의 상류이자, 원시림에 속하는 물한계곡을 이룬다. 남동쪽 사면인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일대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부항천이 되어, 감천에 유입된다. 남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미대천이 되고, 무주군 설천면을 지나 남대천으로 흘러들어간다. 1989년부터 매년 10월 10일에 삼도 주민이 모여 ‘만남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삼도의 문화를 서로 교류하고, 지역감정을 없앨 목적으로, 산신제, 삼도 풍물놀이, 터울림 사물놀이 등이 펼쳐진다. 좌표값은 동경 127〬 53′ 20″, 북위 35〬 54′ 40″ 로 경남 거창의 극북점이다.
* 여민락;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으로 〈세종실록〉에 악보가 실려 있다. 이는 ‘봉래의’ 중 2번째 음악이다. 〈용비어천가〉의 일부를 노래로 부른 것으로, 그것의 1·2·3·4·125장의 가사를 얹어 불렀다. 음계는 황·태·중·임·남·무의 6음계를 썼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여민락은 세종 이후, 행악(行樂)으로 사용된 여민락·여민락만·본령·해령 등의 4가지가 있다.(다음 백과사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50면.
28. 수원의 모태(母胎)
푸짐한 뱃살에다 옥문(玉門) 숲 무성한데
두 개천 발원지라 실계류 조잘대고
화성(華城)에 젖줄을 대니 입김마저 달고녀
* 광교산(光敎山 587m); 경기 수원(옛 지명 화성). 이곳의 진산(鎭山)이자, ‘水原’이란 이름 그대로 물줄기의 근원을 이루는 곳이다,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안양천과 탄천의 발원지다. 후덕한 여인을 닮은 육산(肉山)인데, 우거진 송림에 눈이 수북이 쌓이면 보기 좋다. 옛적엔 광악산(光岳山), 광옥산(光獄山)으로 불렀으며. ‘광교적설’(光敎積雪)은 수원8경 중 으뜸으로 친다.
* 필자는 예전 한전보수연합산악회 소속 고(故) 양희명 선배 등과 함께. 서울 청계산에서 광교산까지 2번 종주하고, 거꾸로 광교산에서 청계산까지 1번 종주했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78면.
29. 섬강의 아홉 룡
산길은 헷갈려라 아홉 룡 숨바꼭질
간현암(艮峴岩) 거미인간 배꼽에서 실 뽑을 적
청강(淸江)에 황금두꺼비 시끄럽게 울어대
* 구룡산(九龍山 479.4m); 강원 원주 판대. 상수리, 떡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길 찾기가 까다롭다. 동쪽은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절찬한 아름다운 섬강(蟾江, 月川)을, 서쪽은 삼산천을 끼고 있다. 합수점인 남쪽 간현(艮峴) 천연암장은 바위꾼들로 붐벼 왁자지껄하다. 중앙선 철도산행 4산은 원주역 치악산, 양동역 고래산, 구둔역 삼각산, 판대역 구룡산이다. 모두 가본 산이다.
* 섬강(蟾江); 운치 있는 ‘두꺼비 강’으로, 횡성군과 원주시를 남서류한다, 총길이103.5㎞, 유역면적1,478㎢. 한강의 제1지류이다. 횡성군 청일면 율실리 봉복산(1,022m)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태기산(1,261m)에서 시원(始原)한 계천, 대관대천과 합류한다. 하류인 간현유원지 부근에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강 이름이다. 맑고 푸른 물, 넓은 백사장, 병풍을 두른 듯 기암괴석이 함께 조화를 이룬, 경관이 뛰어난 피서지다.(다음 백과사전)
* 두꺼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끄럽게 울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닭은 새벽에 한번 울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말을 많이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때에 맞게 해야 할 뿐이다. (묵자)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85면.
30. 무수천(無愁川) 구슬
매끈한 유리구슬 잡으면 뱅글 돌고
검은 룡 노는 계곡 장송곡(葬送曲) 부른 매미
반짝인 현무암장에 헤엄치는 바위꾼
* 제주도 무수천(無愁川); 제주 광령계곡을 지칭한다. 한라산 백록담 서북벽 끝점에서 발원하는 이 개천은 조공천의 상류가 된다. 울창한 숲과 괴기하고 험한 석벽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근심을 잊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는 달리 머리가 없다는 의미의 無首川, 물이 없는 건천이라는 의미의 無水川, 분기점이 많다는 의미의 無數川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여기에 암장이 많은데, 벽이 유리알처럼 미끄러워 손에 잘 잡히지 않아, 바위를 기어오르는 동작이 하는 마치 헤엄치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이면 말매미 울음소리가 청량하고, 수명을 다한 녀석들의 주검이 사방에 널려있다. 풍광이 수려한 ‘광령8경’을 차례로 소개한다. 해발 200m 지경(地境)에 위치한 제1경인 보광천(오해소)을 시작으로, 100~200m 간격을 띄고 고지대로 올라가면서, 제2경 응지석, 제3경 용안굴(용눈이굴), 제4경 영구연(들렁귀소), 제5경 청와옥(청제집), 제6경 우선문(창꼼돌래), 제7경 장소도(진수도), 제8경 천조암 등이 이어진다.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1653년 탐라지에 쓴 한시.
무수천가찬(無愁川佳讚)
登高南嶽擧深觴(등고남악거심상); 남악(南嶽)에 높이 올라 대폿술 마시고
川上歸來興更長(천상귀래흥경장); 냇길 따라 내려오니 흥이 절로 새로워라
滿眼黃花如昨日(만안황화여작일); 들국화는 만발하여 예와 같으니
一樽仍作兩重陽(일준잉작양중양); 한 동이 술이 두 중양(重陽)을 이루네
* 자료는 강정효의 한라산 통신/광령팔경으로 전해지는 무수천의 아름다움. 월간 마운틴에서 인용함.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497(371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31. 옥발 친 벽류
백옥 발 쳐진 폭포 대금(大笒) 분 암반 청류
오공(悟空)이 놀던 동천(洞天) 나타(那吒)도 범접 못해
등짐 속 번뇌 털어야 들어올 수 있느니
* 설악산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 가야동계곡과 함께 내설악의 대표계곡이다. 여기에서는 용아장성 시작점인 구곡담계곡을 포함한다. 쌍룡·관음·용담·용손·용자 등의 폭포와 기암괴석 등 절승이 자리하고 있으며, 끝까지 오르면 남한의 암자 중 가장 높은 곳(1,224m)에 위치한 봉정암에 이른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설악일기(雪岳日記)』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금강산의 수렴보다 설악산의 것이 더 광범위한 공간을 뒤덮은 ‘큰 발’에 비유하였다. 2013년 3월 11일 명승 제99호로 지정되었다.
* 오공; 동양의 4개 기서인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을 뜻한다. 출가하기 전 활동무대가 수렴동이다. 변덕스런 인간의 마음을 은유하지만, 나를 깨치는 공(空) 사상이기도 하다.
* 나타태자; 탁탑이천왕의 셋째 아들로 손오공과 싸워 패했다. 삼두육비(三頭六臂)의 모습으로 변한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75면.
32. 생황(笙篁) 분 구곡
심설로 덮인 산정 해돋이 맞는 인파
마루금 초원 갈긴 된바람 매서워도
아늑한 죽계구곡엔 생황소리 은은타
* 소백산 국망봉(國望峰 1,421m); 경북 영주, 충북 단양, 백두대간. 정상은 둥글고 초원이 좋다. 신라 말 경순왕이 고려에 자진 항복하자, 이에 반대한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속세의 영예를 버리고, 은거지를 찾아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 봉에 이르러 도읍지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겨울철 시베리아 칼바람이 매서우나, 신년 해맞이 때는 인파로 붐빈다. 죽계(竹溪)계곡은 소백산의 백미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참살이’의 공간이다. 영남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사색의 장이자, 자기반성의 도구였다. 그들은 아름다운 경관 아홉 곳을 선정하여, 바윗돌에 일곡(一曲, 첫째 구비)부터 구곡(九曲, 아홉째 구비)까지 사유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봉우리 남서쪽 초암사 아래 계류는 이외로 포근하다. 고려 충숙왕 때, 근재(謹齋) 안축(安軸 1282~1348)이 지은 경기체가 ‘죽계별곡’이 전한다.
* 《동방문학》 제 98호 특집 ‘일출’ 단시조 3수.
* 《농민문학》 제125호(2024년 봄) 테마 기획 ‘해맞이’ 시조 1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365(288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33. 고씨굴 풍염(豊艶)
약초 향 풍긴 능선 돌이끼 짙은 산성
잔잔한 남한강에 비취가 내리꽂고
선녀가 노닌 고씨굴 황금 석순(石筍) 불끈해
* 태화산(太華山 1,027m); 강원 영월. 태백산맥의 줄기인 내지산맥(內地山脈)에 속하는 산으로,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다. 산나물 약초 등이 많이 자라고, 정상에는 산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북서쪽에 국지산(菊芝山 626m), 동북쪽에 응봉산(鷹峰山 1,013m), 동남쪽에 마대산(馬垈山 1,052m) 등이 있다. 서쪽을 제외하고는 남한강이 삼면을 감싸 흐른다. 고기를 쪼려 급강하 하는 물새만 바쁠 뿐, 평화롭기 그지없다. 강가 각동리 길촌마을 밑 절벽에는,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된 참굴맛 고씨동굴(高氏洞窟)이 있다.
* 비취(翡翠); 파랑새목(目) 물총샛과(科)에 속한 새. 몸길이는 17cm, 등은 암녹색을 띤 하늘색, 목은 백색, 배는 밤색, 부리는 흑색, 다리는 진홍색으로 물가에 사는 여름새이다. 쇠새, 어구(魚狗), 청우작(靑羽雀)이라 한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420면.
34. 학(鶴)이 되물어
속리산 서쪽 가지 단정(丹頂)이 깃든 암봉
날개 편 하얀 산릉 파노라마 엮어내니
꺼벙한 스핑크스가 잔대꽃색 물어봐
* 상학봉(上鶴峰 862m); 충북 보은. 이름 그대로 옛날에는 이 암봉에 좋은 학이 많이 모였다 한다. 속리산 북서쪽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암릉이 날개를 편 형국이다. 기묘한 바위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고, 공룡바위를 위시해, 돼지바위, 애기업은바위, 문바위 등이 연이어져, 지루한 줄 모르고 등산할 수 있다. 정상은 동남북 삼면이 수직절벽이다. ‘스핑크스바위’가 묘한 표정을 짓고, 길옆에 핀 잔대꽃이 남빛을 뽐낸다. 가까운 남동쪽에 토끼봉(묘봉)과 북가치가 있다.
* 단정(丹頂); 붉은 머리라는 뜻으로, 두루미를 달리 이르는 말. 일본의 유명한 남성용 머릿기름(포마드) 상표다. ‘경마’(競馬)와 쌍벽을 이루는 좋은 제품이다.
* 스핑크스(Sphinx); 희랍 신화에, 고대 보이오티아(Boeotia) 지방의 테바이(Thebae) 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스핑크스 수수께끼’ 이야기가 전한다. 몸은 사자, 날개는 독수리, 꼬리는 뱀, 얼굴은 아름다운 여자인, 요상한 이 괴물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틀린 답을 말하면 잡아먹었다. 그러나 현철한 영웅 ‘오이디푸스’(Oedipus)가 정답을 맞히자, 분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아시아의 것은 사자의 몸에 날개만 덧붙였으며, BC 15세기에 등장한 여성 것은 대개 한 발을 든 채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다.(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요약)
* 잔대; 일본인들이 좋아한다. 더덕은 우리 것보다 훨씬 크지만, 대신 풍미와 향기가 떨어진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60면.
35. 뽐내는 미남
잘 생긴 사내 보러 홈통을 오른다만
머리통 짱구에다 천년 우는 고사목
영화(榮華)도 한 때 뿐이니 자만(自慢) 말라 청춘아
* 미남봉(美男峰 610m); 충북 보은. 속리산 문장대에서 가지 친 서북릉이다. 서남쪽 아래의 산정리와 상갑리에서 바라볼 때 ‘잘 생긴 남자 얼굴의 옆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해서, 예부터 이곳 주민들에 의해 불리어진 이름이다. 평범한 육산 쯤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1백여m의 암장이 매끈하게 흘러내려,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인다. 홈통바위와 통천문(석문)은 뻐기기에 쥐어박고 싶으나, 고사목은 왠지 처량하다...
*예전의 은행원은 남자기생이라 했다. ‘간’은 출근할 때 다락에 놔두고, 퇴근 후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185면.
36. 청산의 덮개
각연사(覺淵寺) 산길 뒤는 더덕향 스쳐가고
바람 분 솔숲 아래 두릅가시 팔 찌르나
능선을 뒤덮은 바위 유리(琉璃)인양 반짝여
* 보개산(寶蓋山 709m) 충북 괴산. 도마재서부터 오르면, 보배산(750m, 전에는 이름이 없었음)을 경유한다. 천년고찰 각연사로 오를 경우, 일반적으로 칠보산(七寶山 778m)과 같이 등산한다. 이 사찰에는 보물 제433호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통일대사탑비가 있다. 산은 암릉과 소나무가 좋다. 바위는 칠보 중 하나인 유리처럼 빛난다. 보개란 탑에서 보륜(寶輪) 위에 덮개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을 뜻한다.
* 산나물의 제왕! 봄에는 두릅이요(잎)! 가을에는 더덕(뿌리)이라!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10면.
37. 삼태성 빛나
깊은 골 하 맑구려 세 봉(峰)이 가지런해
안식향(安息香) 짙은 잣숲 청설모는 동분서주
삼태성 총총히 빛나 밤 놀이꾼 덩더꿍
* 삼태봉(三台峰 683m); 경기 가평군 설악면. 세 봉우리가 삼태성, 혹은 삼태기를 닮았다. 서쪽 명달리 삼태골이 깊고, 피톤치드(Phytoncide-안식향)가 넘쳐나는 잣나무숲에 청설모가 마음껏 뛰논다. 남쪽으로 중미산, 서너치고개와 연결된다. 속칭 중미단맥(仲美短脈)이라 부른다.
* 삼태성(三台星); 국자모양을 한 북두칠성의 물을 담는 쪽에 길게 비스듬히 늘어선 세 쌍의 별로, 동양의 태미원(太微垣)에 속하는 별자리이다. 서양 ‘큰곰자리’의 발바닥 부근에 해당되며, 초저녁에 떠오른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띠인 가지런한 새벽별 셋과 전혀 다르다.(위키 백과)
* 가평군 설악면 5산; 마유산(유명산), 소구니산, 중미산, 삼태봉, 통방산. 모두 피서산행지로 알맞다.
* 산줄기(산맥)에 대해;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 3종류로 간략하게 분류했는데, 오늘날 재야산인은 이 말고도, 임의로 기맥(岐脈), 지맥(支脈), 분맥(分脈), 단맥(短脈), 여맥(餘脈) 등을 덧붙여 8가지로 복잡하게 나누어 부른다. 용어도 문제이려니와, 산의 기준점과 흐름(맥)의 길이가 모호해 객관적인 설득력이 없다. 북한은 외국과 마찬가지로, ‘산줄기’ 개념 하나로만 통일해서 부른다. 사실 좁은 땅, 2천m급 산이 단 한 개도 없는 남한에서, 마치 구릉(丘陵)과 같은 야산들까지 포함해, 세분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하다. 우선 조국이 분단되어 산맥 자체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판에, 이쪽 산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그 것부터 난센스다. 통일 후, 남북공동학회에서 정식토론을 거친 다음, 결정해도 늦지 않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56면.
38. 지옥과 통해-禪詩
죽 뻗은 잣나무 숲 담쟁이 감아 올라
수북이 쌓인 갈비 골물을 덮은 이끼
가마솥 끓는 물에다 발을 담근 흙소여
* 통방산(通方山 650m); 경기 가평. 일명 청화산(靑華山)이라 부른다. 전사면(全斜面)이 급경사라 사방이 쉽게 조망된다. 계곡과 잣숲이 좋아 유원지가 조성되었다. 봄철 철쭉도 괜찮다. 동북쪽 자락 곡달계곡의 명소 가마소는 피서객들로 들끓는다. 바위가 물을 가둬 가마솥을 닮았다. 용문산에서 발원하여 이산 북쪽으로 흐르는 수입천(水入川, 일명 벽계천)에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가 지은 ‘벽계구곡’이 있다. 이시는 선시(禪詩)라, 풀이는 독자에게 맡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421면.
39. 붉은 촉대
방화선(防火線) 나 몰라라 산딸기 바지 찢어
황금빛 촉대 우뚝 가리개 펼친 고봉(高峰)
지린 땀 씻어낸 골로 붉은 촛농 떨어져
* 화악산 촉대봉(燭臺峰 1,125m); 경기 가평. 촛대처럼 우뚝해 멀리서도 보인다. 여름이면 방화선에도 풀이 우거져 운행하기 힘들다. 정상 가까이 바위들이 가리개로 펼쳐졌고, 남동쪽 홍적이골이 맑고 시원해, 지린 땀을 씻어준다.
* 방화선; 산에 불길이 더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에 탈 만한 것(예 나무, 풀 등)들을 없애고 빈터로 둔 긴 띠 모양의 지역(공간)을 이른다. 산길 구실을 한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448면.
40. 꽃망울 뫼
철망에 갇혔어도 산꽃은 피고 지리
거한(巨漢)이 웅거(雄據)하는 경기도 으뜸 뫼에
몽우리 활짝 터지면 푸른 구름 머무리
* 화악산(華岳山 1,468m); 경기 가평.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거대한 산군이다. 경기 오악(五嶽)중 으뜸으로, 산정에 큰 꽃봉오리 하나 맺혀있다. 주봉인 신선봉, 서쪽 중봉(1,450m), 동쪽 응봉(1,436m)과 더불어 ‘화악 삼형제’라 일컫는다. 정상은 철망이 쳐진 군부대가 있어, 중봉이 사실상의 주봉 구실을 한다.
* 젊은이여! 방에서 신세타령(수저 운운)하지 말고, 뛰쳐나와 저 거인을 보며 청운(靑雲)의 꿈을 키우라!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615번(44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