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은)
박제가(朴齊家:1750~1805)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재선(在先)·차수(次修)·수기(修己), 호는 초정(楚亭)·정유(貞蕤)·위항도인(葦杭道人).
박제가는 1750년(영조26) 11월 5일 우부승지를 지낸 박평(朴玶)의 세 번째 부인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서자 출신이다. 열한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779년에 정조의 특별한 배려로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사관으로 출사했다.
박제가 학자로 우뚝 서게 된 데에는 어머니와 충무공 5대손인 장인 이관상의 도움이 컸다.
박학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탁월했던 그를 사위로 삼은 것이다.
네 차례에 걸쳐서 중국 사신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801년 신유사옥 무고 때문에 함경도에 유배 갔으며, 2년 후에 풀려나 1805년 서울로 돌아와 그 해 4월 25일에 56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누구보다도 중국을 잘 알았고 조선의 부강을 꿈꾸었던 정치가이며, 외교관이었고, 통역관이었으며, 북학파의 거두(巨頭)이다.
저서로는 『북학의(北學議)』 · 『정유집(貞蕤集)』 · 『정유각집』 등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我國 아국
해마다 수만 냥의 은을 중국에 수출하여
歲輸銀累萬兩於燕 세수은루만량어연
약재와 명주, 비단 따위를 무역해 온다.
以貿藥及紬緞 이무약급주단
그런데 우리나라 물건으로 저쪽 은(銀)을 바꿔 오는 것은 없다.
而無以我物易彼之銀者 이무이아물역피지은자
은(銀)은 천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는 물건이다.
夫銀爲千年不壞之物 부은위천년불괴지물
그러나 약은 반나절이면 소화되어 버리고,
藥攸人半日而化 약유인반일이화
비단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데 써서
紬緞葬人 주단장인
반년이면 썩어버린다.
半年而朽 반년이후
이와 같이 천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물건을
以千年不壞之物 이천년불괴지물
반나절, 반년이면 없어지는 물건과 바꾸면
易日月消磨之具 역일월소마지구
한정된 산천의 재원을
以山川有限之財 이산천유한지재
한 번 내보내면 돌아오지 않는 지역에 수출하니
輸一往不返之地 수일왕불반지지
나날이 귀해질 수밖에 없다.
宜乎銀之日貴也 의호은지일귀야
무릇 화폐란 것은
凡泉貨 범천화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이다.
取其圜轉而不窮 취기환전이불궁
그렇지 못하면 진흙으로 만든 소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否則何異於入海之泥牛也哉 부즉하이어입해지니우야재
『북학의(北學議)』, 옮긴이 이익성, 을유문화사,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