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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문방사우(文房四友), 우리 선조의 참 벗
ysoo 추천 0 조회 564 19.03.02 12: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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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피는 저녁
槿岩 유응교(시인)


차게 내려 앉은 회색빛 하늘 아래
잔설이 머뭇거린 시린 가지마다

벙긋이 여미는 꽃잎향기가 그윽하네.


매향이 번져오는 조용한 뜨락에서
찾아오는 벗이 없어 외로운 저녁나절
술잔을 사이에 두고 오는 봄을 재촉하네.


우아한 풍치와 기품있는 그 절개를
선비들이 한결같이 본받기를 바라더니
문방사우 묵향속에서 또 다시 피어나네



SPECIAL THEME | 문방사우


우리 선조의 참 벗, 문방사우(文房四友)


파릇파릇새 싹이 돋아나는 새 봄, 새 학기, 새 출발을 맞는 3월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배움을 가까이 하는 이들의 가장 친한 벗인 문방구(文房具), 그 중에서도 우리 선현들의 고매한삶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있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통해 ‘지혜로운시작’ 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에디터조민진

캘리그래피 강병인 사진김재이 어시스턴트이승헌 스타일리스트 최서윤

(da:rak) 어시스턴트손예희, 윤현숙

소품협찬 붓(캘리존유필무作), 백자벼루(우일요김익영作), 원형먹선접시(김순식作), 원형연적(정소영식기장), 목차에 책가도(오색채담강은명作,)



이재관(李在寬) 호: 소당(小塘).   파초하선인[芭焦下仙人] ⓒ국립중앙박물관



문방사우, 21세기의 새로운 벗


문방(文房)은 문사(文士)의 방이다.

문사는 학문을 닦는 선비, 문필 종사자, 문학적 재능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글을 공부하고 글을 짓는 사람들이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그런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로 요구되는 도구 모음을 일컫는 말이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가 그것이다.


문방사우는 시서화(詩書畵)를 가까이하고 살던 양반문화의 전유물이었다.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양반문화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이 쓴 ‘죽란시사서첩(竹欄詩社書帖)’이라는 글을 보면 나이가 서로 비슷하고 가까운 거리에 살고 뜻과 취미가 비슷한 사람 열다섯이 모임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한번 모이고,국화꽃이 피면 한번 모이고, 겨울이 되어 큰 눈 내리는 날에 한번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번 모이기로 낭만적인 약속을 한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각자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지참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술을 마시며 시가를 짓는 일이 양반문화의 핵심이라는결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규장각 서리를 지낸 장혼(張混)은 ‘평생의 뜻(平生志)’ 이라는 글에서 ‘깨끗한 물건[靑供] 80종’ 에 옛 먹[墨]과 단계(端溪) 벼루, 호주(湖州)의 붓을 꼽았다. 수백 년이 지나도 칠(漆) 같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먹, 중국 광동성 고요현(高要縣)의 단계지방에서 생산하는 벼루,그리고 저장성(浙江省) 호주에서 생산하는 붓이 당대 최고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뿐만 아니라 장혼은 ‘청아한 일[淸課] 서른네가지’ 에서 책 쓰기, 시 짓기, 그림 그리기 등을 꼽고 있다. 평생의 뜻을 펼치는 데서 문방사우의 덕목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명필 추사 김정희는 친구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글씨는 아직 말하기에 부족함이 있지만 나는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붓 1,000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吾書雖不足言七十年磨穿十硏禿盡千毫)”라고 썼다. 추사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모질고 혹독한 시련과 극기의 결과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추사체가 제주도 대정에서 보낸 9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완성되었다는 점, 다산 정약용의 주요 저작물이 전남 강진에서의 18년 유배 생활 동안 완성되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문화적 유산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문사들이 문방사우와 함께 만들어낸 인고의 산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문방사우는 시서화의 도구이나 그것이 한데 어우러지면 정신적 수양에 기여한다. 여유와 여백이 생기고 고요한 관조와 웅숭깊은 심도가 조성된다. 그래서 유배당한 사람들조차 마음이 어지러우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한지의 여백에다 마음을 압축하고 풀어 시를 짓기도 하고 글을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귀양살이를 할지라도 문방사우와 책만은 박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양반문화는 학예를 존중하는 바탕만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하겠다.


21세기가 된 오늘날, 현대인에게 과거의 문방사우는 낡고 고루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조용히 앉아 먹을 갈만한 여유도 없고 인내심도 없다. 우러난 먹물에 붓을 찍어 한자 한자 혼신을 다해 글자를 써나 갈 집중력도 부족하다. 현대인의 문방사우는 키보드와 마우스, 모니터와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집중과 인내보다 속도와 즉흥성을 중시한다. 느린 건 용납되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지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의미나 깊이보다 재미와 순간적 자극을 원하므로 사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여백과 여유, 깊이와 의미가 스러진 곳에 정신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투박하게 명멸하는 정신은 중심이 깨어지고,중심이 깨어진 정신은 허황하게 부유하고 분열한다. 이렇게 찬란한 디지털 문명의 낙원에 어째서 정신질환자와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가 늘어나겠는가.


문방사우와 벗하는 일은 21세기라서 더욱 새롭다. 그것은 즉흥성보다 근원성으로, 육체성보다 정신성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 안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먹을 갈고 천진한 마음으로 붓을 들어보라. 그리고 먹물을 찍어 마음에 떠오르는 단 한 가지를 종이에 표현해보라. 그것이 하나의 점이어도 좋고 하나의 선이어도 좋다.

시간에 쫓겨 무작정 쏟아내는게 아니라 내 안에서 우러난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다. 너무 쏟아내고 너무 토해내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이제는 차분하게 자리 잡고 앉아 문방사우와 함께 오랫동안 잊고 지낸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까지 친해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글 박상우(소설가)



책가도ⓒ서울역사박물관



옛 선현의 네 가지 벗과 조우하다


글방의 네 가지 벗, 종이ㆍ붓ㆍ먹ㆍ벼루는 일차적인 도구의 차원을 넘어 고결한 선비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이자,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이다.

전통 문방사우가 들려주는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붓끝에서 태어난 고결한 예술세계


먹물의 농담으로 표현되는 산수화, 문자를 씀으로써 창조되는 서예 등의 다양한 예술작품에 사용된 문방사우는 일차적인 도구의 차원을 넘어 고결한 정신세계를펼쳤던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다.


옛 문인들은 문방(文房)에서 문방사우를 늘 곁에 두고, 그것들을 통해 훌륭한 시서화(詩書畵)를 남겼다.

선조들은 시서화를 그리는 데서 그리는 이의 태도를 매우 중시했다. 문학적 소양의 바탕 없이는 대나무든 난초든 서체든 그 격이 상실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예는 ‘서여기인(書如其人)’, 즉 ‘글씨는 그 사람이다’ 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기인의 의미는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교양· 학덕 등을 합한 뜻이다. 즉, 글을 쓰는 사람의 됨됨이가 되어있지 않으면 주옥같은 글씨를 써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조선 시대의 문인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힘차고 생동감이 있으며,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추사체’ 와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세한도’ 가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그가 쉬지 않고 붓을 잡아 그리고 쓰는 일에 매진하며, 칠십 평생 10개의 벼루 밑을 뚫고, 1천 자루의 붓을 망가드릴 정도의 예술혼과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예가 예술로 발돋움한 데는 문방사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먹의 현묘한 빛깔, 그 먹이 종이에 일으키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효과, 원추형으로 생긴 붓의 강약의 조화,또 먹을 갈며 마음도 갈고 닦고 수장품으로도 한몫하던 벼루가 진나라 왕희지에 이르러 그 효능을 발휘하며 잘 어우러져 서예가 급속히 발달했다.

서예와 더불어 먹물의 농담으로 표현되는 수묵화는 문방사우와 벗하여 탄생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먹의 검은빛 하나로 다양한 색을 창출했던 선조들이 남긴 수묵화는 단순한 검정으로 보이는 먹물 하나로 삼라만상의 다채로운 색깔을 능히 표현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먹의 진하고 옅음, 물의 많고 적음 등 먹의 농담으로 표현된 옛 선조들의 글씨와 그림에는 알록달록한 원색과는 비견할 수 없는 은은함과 깊은 고요함이 깃들어있다.



정선(鄭敾). 하경산수도[ 夏景山水圖 ] ⓒ국립중앙박물관



지필묵연의 멋을 찾다


紙,문방문화를 담은 그릇


종이는 붓ㆍ먹ㆍ벼루의 멋이 깃든 문방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색상의 봉투와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다양한 간찰지(簡札紙)는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조선시대 선비가 시나 편지를 썼던 화전지라고 불리는 시전지(詩箋紙)에는 문양을 새긴 판을 찍어 장식하기도 했는데, 먹의 농담에 따라 각각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문양판은 손으로 그리는 시서화와 달리 인위적이지만,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선사하는 선비들의 멋을 헤아릴 수 있다.

또 천 년을 간다는 우리 종이, 한지의 생명력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김홍도와 신윤복과 같은 조선시대 최고 풍속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편, 서화용 종이를 선택할 때는 거칠지 않고 매끄러우며 앞뒤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 너무 얇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보존성을 지닌 것 등이 좋다. 먹의 번짐은 서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여러 등급의 화선지에 발묵을 시도하면서 먹의 농담과 종이와의 관계를 터득해야만 격조 있는 글씨를 쓸 수 있다.

종이를 보관할 때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습기가 없으며,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어 벌레나 곰팡이으로 인해 종이가 파손되지 않게 해야 한다. 조금 오래 보관하려면 비닐에 싸서 밀폐해두는 것이 좋다.



김정희필시구ⓒ국립중앙박물관.

「단성신선거(丹成神仙去), 정연한천식(井淵寒泉食)」



筆, 기개와 절조의 선비정신이 깃들다


전통 붓의 속성은 선비의 미덕을 따른다. 겉은 부드럽되 속은 강한 외유내강의 성질은 옛 선비들이 붓을 통해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전통문화를 이어오게 된 배경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붓을 필기도구로 사용한 것은 평양 근교에서 발굴된 붓대는 없고 필모만 나왔다는 낙랑필이나 의창 다호리에서 발굴된 칠기 붓을 근거로 볼 때, 벼루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와 비슷한 2,000년 전쯤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붓은 주로 동물의 털을 이용하는데, 드물게는 배냇머리나 수염 등의 인모(人毛)도 사용했다. 그중에서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은 조선시대 대표 명품이다. 그 외에 대나무를 두드려 만든 죽필(竹筆), 가죽으로 만든 혁필(革筆), 짚으로 만든 고필(藁筆), 나무를 깎아 만든 목필(木筆) 등 모양과 소재도 가지각색이다. 상감·조각·옻칠 등으로 갖은 장식기법을 구사한 붓대들도 색다른 개성을 뽐낸다. 붓은 민감하고 세심한 존재다. 풀을 먹인 붓을 처음으로 풀 때, 글씨를 쓸 때, 붓을 씻을 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글을 쓰는 선비정신이 오롯이 깃든 기본자세다.


좋은 붓은 몇 가지 덕을 갖춘 것이라야 하는데, 붓의 끝이 뾰족하게 모여야 하고 물이나 먹을 묻혔을 때 털의 길이가 모두 같아야 한다. 원추형의 끝 쪽에서 보았을 때 타원형을 이루거나 모가 있으면 붓이 꼬이거나 쪼개진다. 이런 조건을 고루 갖추고, 또 자기 생리에도 맞는 붓을 한 자루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 선조는 이미 그 사실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는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에나 맞는 말이 아니다. 중국 당대 서예가 구양 순의 ‘구성궁예천명’ 과 ‘화도사온선사탑병’이 적힌 작품 같은 것은 정호(精毫, 훌륭한 털)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라고 했고,“ 영ㆍ정조 때 서화에 능한 조윤형과 강세황이 모두 붓을 만들어 썼다”고 정학연의 <문방첩>에 실려 있다.


붓을 사용한 뒤에는 반드시 따뜻하고 맑은 물에 씻은 다음 연한 종이로 붓촉에 남은 먹즙을 깨끗이 닦아두어야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붓에 묻은 먹을 물에 빨지 않고 그대로 말리면 붓촉이 굳어지고 털이 부스러져서 수명이 짧아진다. 중국의 소동파는 황련을 삶은 물에 붓촉을 담근 후 말려서 보관했으며, 송나라 시인 황산곡은 후추와 황백을 삶은 물에 소나무 그을음을 갈아 물에 타고, 그 물에 붓촉을 담갔다가 말려 보관하면 좀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초충도[ 草蟲圖 ] 수박과 들쥐. 신사임당(Sin Saimdang, 申師任堂) ⓒ국립중앙박물관



墨, 정성을 들여 마음을 갈고 닦다


서예의 무대 위에서 고색 창연한 묵색을 자랑하며, 그윽한 묵향과 함께 많은 문인에게 사랑받아온 먹. 제 몸이 갈리면서 새로운 글씨와 그림을 세상에 뱉어내는 ‘먹’의 빛과 향기는 천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자 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문방사우 가운데 먹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먹의 종류에는 소나무를 태워서 생긴 그을음을 받아 사슴·노루·소·말의 아교(阿膠: 동물의 뼈나 가죽에서 추출한 것을 가열해 냉각한 농축액)와 배합하고, 사향(麝香: 천연 동물성 향료) 등을 섞어서 만든 송연묵(松煙墨)과 식물의 씨에서 얻은 기름을 태워 생긴 그을음을 받아 만든 유연묵(油煙墨)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송연묵을 많이 사용했는데, 아교가 적은 편이고, 광채도 덜 나며 묵색이 깊이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청홍색을 띤다. 반면, 가격이 비싼 유연묵은 궁궐에서 혹은 고관대작만이 쓰던 고급 먹이다.

순흑색을 띠며 광택이 나고 아교질이 많은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먹을 언제부터 만들어 썼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자료는 없다. 하지만 고구려 지역에 위치한 동수묘(冬壽墓)에 쓰인 묵서명(墨書銘)이나 원말(元末) 명초(明初) 때의 저술가인 도종의가 쓴<철경록>에 "당나라 때 고려에서 송연묵을 바쳤다" 라는기록과 일본 왕실의 유물 창고에 소장된 신라 묵 등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먹을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먹의 조건에 대해 서유구의<임원십육지>에는 붉은빛이 나는 먹을 제일로, 검은빛을 둘째로, 흰빛을 제일 하품으로 친다고 했는데, 여기서 흰빛은 먹빛이 흐리고 광택이 없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또 부피에 비해 가벼운 것이 좋으며 향기가 좋고 먹을 갈 때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먹의 표면은 매끄럽고 결이 고우며 광택은 화려한 윤기가 아니라 그윽하게 나는 것이 좋다.

좋은 먹이라도 가는 방법이나 사용법이 좋지 않으면 소용없다. 특히 먹을 가는 정성과 태도를 중시했는데, 먹을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마묵여병아파필여대장부(磨墨如病兒把筆如大壯夫)’, 즉 ‘붓을 쥐면 장사처럼 글씨에 기운이 가득 차야 하지만 먹을 갈 때는 병자나 노약자처럼 힘을 주지 말고 슬슬 갈라’ 고 했다. 그 뜻은 급하지 않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물론 먹물의 질에도 영향을 주는데, 먹을 갈 때 힘을 주면 먹이 거칠게 갈려 먹물이 걸쭉하게 되고 먹 빛도 좋지 않다. 먹을 쓰지 않을 때는쑥 속에 넣어 두면 좋고, 장마철처럼 습기가 많을 때는 종이에 싸서 석회가루에 묻어 두면 질이 변하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또 먹은 벼루의 석질에 따라 고르는 것이 좋다. 돌이 단단하고 날이 강하게 서 있는 해주석 벼루에는 단단한 유연묵을, 부드럽고 날이 약한 위원석 벼루에는부드러운 송연묵을 쓰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라 하겠다.



조식이 이황에게 보낸 편지ⓒ국립중앙박물관



硯, 완상의 즐거움을 누리다


'갈다’는 뜻의 연(硯)으로도 불리는 벼루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출토된 벼루에 의해 그 시기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 시대에 만든 원형 도연(陶硯)이다.


흙을 빚어 만든 도연 위주로 제작된 벼루는 고려 시대에 이르러 돌벼루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는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風’자 모양의 풍자연이 대부분이며, 화려한 도자문구(陶磁文具)에 비해 실용성을 중시한 질박한 형태를 보인다. 조각을 새겼다고는 하나 간소하고 순박하다.

문방사우 가운데 유일하게 소모품이 아닌 벼루는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형태ㆍ조각장식ㆍ문양 등이 화려하고 다양해졌으며, 차츰 글씨와 그림을 그릴 때만이 아닌 선비들이 오랫동안 곁에 두고 완상(玩賞)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소장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을 고를 줄 알아야 하는데, 벼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는 6가크지 요건이 있다.



포국문연 - 포도무늬 벼루 ⓒ국립중앙박물관


채석포도문일월연



첫째는 재질이다.

재질에는 예부터 도자와 천연석이 있어왔고, 이 외에도 옥·비취·상아·철·나무·옻 등이 있다.

옥 벼루는 옥연(玉硯), 옻 벼루는 칠연(漆硯), 기왓장으로 만든 벼루는 와연(瓦硯)이라고 한다. 보편적인 벼루의 재질인 돌은 먹이 곱게 잘 갈리고, 먹물이 피어나고 빛깔이 좋아야 한다. 우리나라 벼룻돌로는 빛깔이 검고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충남 보령의 남자 포석, 먹이 잘 갈리고 먹 빛 좋기로는 유명한 황해도 장산곶의 주석, 그 빛깔이 아름다운 평안북도 위원의 위원석이 손꼽힌다.


둘째는 석질이다.

먹을 대고 가는 부분인 벼루 바닥은 결이 곱고 부드럽되, 손톱을 세워 힘들이지 않고 금을 죽 그으면 희고 가는 선이 드러나고, 그 선을 손바닥으로 한번 문질러 곧장 사라지면 석질이 좋은 돌이다.

돌결을 잘 모르는 사람은 부드러운 것과 미끄러운 것을 혼돈하기 쉽다. 돌결이 부드러운 벼루는 먹을 갈 때 거품이 일지 않는다. 또 돌이 따뜻해 겨울에도 벼루의 물이 얼지 않고, 촉촉하게 윤기나는 것은 좋은 벼루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셋째는 모양이다.

벼루는 네모지기도 하고 둥글기도 해서 벼루를 만드는 장인의 디자인대로 갖가지 모양이 이루어진다. 가장 많은 것은 대개 일상에서 실용 연으로 사용하는 길쭉한 네모꼴인 장방형 벼루로 장방연 또는 사직연이다. 장방형이되 벼루 바닥과 물집이 따로 없이 민짜로 된 벼루를 ‘판자와 같다’ 고 해 판연이라고 한다.


넷째는 모양과 형식을 말하는 체식(體式)이다.

벼루는 모양새와 조각의 종류에 따라 수십가지로 나뉜다. 대나무 마디처럼 만든 죽절연(竹節硯), 포도 조각으로 된 포도연(葡萄硯), 바닥을 둥글게 하고 물집이 반달 모양인 일월연(日月硯), 산과 물을 새긴 산수원(山水硯), 소나무ㆍ대나무ㆍ매화를 조각한 삼우연(三友硯), 신령한 거북을 조각한 신구연(神龜硯), 구름 속의 용무늬를 새긴 운룡연(雲龍硯) 등이 있다.


다섯째는 기품이다.

좋은 벼루의 모양새와 형식은 기품과 격조가 높다. 기품이란 조각이 번잡하지 않고 단순하되 품위, 곧 귀티가 나거나 조각이 조밀하더라도 구도가 뛰어나고 정밀해서 격조가 높은 것을 말한다. 기품과 격조를 가늠하는 눈을 기르는 덕목은 좋은 벼루를 많이보고 미적감각을 높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문(斑紋)이다.

반문은 돌결에 나타는 무늬를 말한다. 평북의 위원석에 나타나는 자줏빛과 녹색이 어우러진 돌결과 보령의 남 포석에 나타나는 화초(花草) 무늬, 금사(金絲) 무늬, 구름무늬 등이 바로 벼룻돌의 반문이며, 반문의 아름다움은 벼루를 감상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알아두면좋은벼루상식


●용어


마묵(磨墨): 먹을 가는 일.
발묵(潑墨): 좋은 먹물을 일컬음.
발묵(發墨): 먹물이 번져 퍼지는 것을 일컬음.
하묵(下墨): 먹이 갈리는 것을 말함.
연수(硯水): 먹을 갈아쓰기위해 사용하는 벼룻물.
묵즙(墨汁): 먹물을 뜻함.
세연(洗硯): 벼루를씻는것.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물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벼루의 돌무늬를 감상하는

                데 일종의 의식으로 여김.
화연(和硯): 일본 벼루를 뜻하는 말로 왜연이란 말과 같음.
당연(唐硯): 중국벼루를 통칭하는 말.
명연(銘硯): 명문(銘文)을 새긴 벼루로, 석질·모양·조각이뛰어난 벼루의 명작, 명연(名硯)과다른뜻.
공연(貢硯): 조정에 만들어 바친 벼루를 말한다. 대개 석질이 뛰어나고 조각이 얇음.


벼루관리법


옛 선비들은 사흘동안 세수는 못해도 벼루는 씻었다고 한다.
또 자주 씻어야만 메마르지 않고 신기(神氣)가 있다고 믿었다. 벼루를 자주 씻지 않으면 먹속의 아교가 엉기어먹빛이 뿌옇고, 먹똥 때문에 글씨를 쓰는데 지장이 있게 마련이다.  벼루를 씻을때는 나무 대야가 좋고, 스펀지에 비누나 중성세제를 조금 묻혀서 씻어주면 좋다. 이때 뜨거운물로 씻지 말고 미지근한 물로 씻어줘야 발묵이잘된다.


에디터 조민진

참고도서<문방청완>(권도홍지음, 대원사 펴냄), <문방사우>(이겸노 지음, 대원사 펴냄), <서예>(선주선지음, 대원사 펴냄)

자료 협조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박한 선비의 서재풍경을 그리다


화려함보다 절제를 추구하는 선비의 맑은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서안과 사방탁자, 손글씨의 멋을 더욱 아름답게 묘사해줄 붓과 그윽한 묵향이 피어나는 명묵(名墨)을 비롯한 갖가지 문방구는 실용성을 넘어 장식품으로도 손색없는 집안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문방가구의 소박함에 매료되다


선비들이 학문을 닦는 데 집중력을 흐트러 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 책 한 권 정도 펼칠 수 있는 아담한 크기에 나뭇결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서안과 서책은 모두 반다지 고가구에서 판매.

매화가 꽂혀있는 도자기 꽃병과 서책 위의 복숭아 연적은 모두 토요에서 판매. 다양한 붓은 유필우 작가의 작품이며, 캘리존에서 판매. 갓끈 목걸이는 김영희 작가의 작품이며, 한국공예문화 진흥원에서 판매.



붓끝으로 세상을 담다


‘丹成神仙去井冽寒泉食(단성신선거정렬한천식)’ 이라는 서예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윽한 묵향에 물들다


다산정약용의 문헌에도 우수성이 기록된 남포석 가운데서 최상급인 백운 상석(白雲上石,원석에 흰 구름무늬가있고 단단한 돌)으로 조각한 매화, 봉황, 포도 무늬 벼루는 모두 무형문화재 제6호 김진한 명장의 작품이며, 한진 공예에서 판매.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는 연적은 선인들로부터 가장 아낌을 많이 받았던 문화유산으로, 백자청화목단문ㆍ전통문연적은 광주요에서 판매. 백자 무릎 연적은 김일영 작가의 작품이며, 우일요에서 판매.

백자사 각 연적과 복숭아 연적은토요에서 판매. 바닥에 놓인 유연묵(위)과 송연묵(아래)은 경상북도 지정무형문화재 제35호 이병조 경주 먹장의 작품으로 경일한지 백화점에서 판매.






책가도로 서재의 멋을 살리다


간결하고 절제된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구성미가 빼어난 사방탁자는 청빈한 삶을 살고자 했던 우리 선조의 정취가 조화롭게 묻어있는 최고의 예술품이다.


문방사우와 관련된 기물들을 그린 책가도 사방탁자는 강은명 작가의 작품이며, 두 짝 책거리 오브제는 박지윤 작가의 작품으로 모두 오색채담에서 판매. 달 항아리와 청자용 문필 통운 광주요에서 판매.

서책 노트와 문진 겸용도 자기 새 오브제는 북촌상회에서 판매. 다양한 종이가 담겨 있는 지통 겸용 도자기 꽃병은 허승욱 작가의 작품이고, 팔각 백자 필통은 함정용 작가의 작품이고, 정소영식 기장에서 판매. 바닥에 초충도 족자는 공예 사랑에서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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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 (李在寬)<초엽제시도(蕉葉題詩圖)>


이재관. '소나무 아래의 인물'.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18~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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