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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
이 범 선
수양산(首陽山) 하늘에는 반달이 하얗게 걸려 있었다.
늦가을 바람은 찼다.
어데선가 여우가 요사스레 울었다.
산 중턱 커다란 바우 밑, 머루 넝쿨로 뒤덮인 동굴(洞窟) 앞에는 화톳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 옆에 나무토막을 깔고 앉은 백이(伯夷)는 걸레쪽처럼 헤진 무릎으로 삭정이를 꺾 어 불 위에 던져넣고 있었다. 그때마다 탁탁 다른 나무가 타는 소리와 함께 한 고비찍 환히 불길이 일어서곤 하였다. 그는 마치 불을 부둥켜안으려는 것처럼 팔을 내밀어 너덜너덜한 옷 소매 끝에 두 손을 부채모양 펐다. 불빛에 멀거니 달은 얼굴에 퀭한 두 눈이 물끄러미 불을 지켜보고 있었다. 머리는 자랄대로 자라 어깨에까지 되는대로 늘어진 데다가 푹 끼진 눈망울에 콧날이 더욱 섰고, 앙상히 깎인 볼과 턱에는 수염이 징그럽게 자랐다.
동굴 속 거적자리 위에 누워서 형의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숙제(叔齊)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눈앞에서 커다란 형의 손그림자가 습기에 번들거리는 벽을 거물거물 쓸고 있었다. 시크무레한 머루 껍질 냄새에 으시시 등골이 추웠다. 그는 지고리 앞자락을 모으며 때에 절은 홑이불을 아랫도리에 감고 다리를 가슴에다 꼬부려붙였다. 볼을 쓸어보았다. 두 곳이나 밤알만치 부풀어올랐다. 손등도 여기저기 가려웠다. 낮에 삭정이를 꺾다 땃벌의 집을 건드리고 쏘인 자리다. 그는 오른손으로 왼손 등을, 왼손으로 오른손 등을 번갈아 긁었다. 따끔거렸다. 한참이나 그렇게 긁다말고 그는 눈을 감았다.
또 집 생각이 났다.
메주덩이처럼 곪아 썩은 발을 어루만지며 우는 어린 조카놈. 두붓자루 모양 부어 늘어진 아내.
이제 겨우 여덟 살 나는 놈이 짚신을 삼아줄 사람도 없어 맨발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루터기에 찔렸다고 하더란다. 또 한달 천에 아들을 낳은 아내는 산후가 깨끗질 못하더란다.
듣지 않고도 뻔한 일이었지만 오늘 마을엘 다녀 올라오던 저 웃 동굴 백발노인(白髮老人)의 이야기에 그들 형제는 그지 무릎 짬에 이마를 묻었을 뿐이었다.
지난 봄이었다.
“숙제. 이리 좀 와.”
밖에서 돌아온 형이 외양간 앞에 세워놓았던 보습(黎〕을 끌어눕히며 동생을 불렀다.
“아니 보습은 왜요. 우린 이제 다 갈지 않았어요.”
어쨌든 형이 하라는대로 보습 채 한 끝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응 이제 발(發)이 이 앞을 지나간다고 야단 들이다.”
형은 보습을 맞들고 대문 밖으로 뒷걸음을 치며 말했다.
“발이라면 지 주국(周國)의…….”
“그래.”
“그럼 기어이 거살(擧事)할 셈인가요.”
“그런 모양이다. 죽일 놈. 천자지국 (天子之國) 제왕(帝王) 이 서고야 지방(地方) 제후(諸侯) 소국(少國)들도 있는 법을.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다 쳐도 목을 걸고 간(諫)을 하는 게 아니라, 신하(臣下)된 놈이 감히 제왕을 쳐. 민심 (民心)이 그러하다고. 흉악한 놈.”
그들 형제는 집 앞 큰길 한가운데다 보습을 떡 가로 막아놓았다.
“그래 이렇게 하고 어쩌자는 겁니까.”
“응. 놈에게 정말 민심을 보여줄 셈이다.”
형은 손을 털며 지만치 산 모퉁이를 쏘아보았다. 동생도 형의 눈을 따라 돌아섰다.
바로 그때였다. 산 모퉁이 길을 말탄 무사(武士) 하나가 돌아 나타났다. 뚜벅뚜벅 이리로 향해왔다. 형은 쓱 보습 날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동생은 다가오는 무사와 형의 거동을 번갈아보며 보습 채를 쥐고 서있었다. 무사는 이제 가까이 왔다. 말을 끌어세웠다.
“이 보습을 치어.”
무사는 말을 탄 채 채쭉으로 보습을 툭툭 쳤다.
“왜 그러시오.”
형이 일어섰다.
“이제 곧 행차(行次) 하신다.”
“행차?”
“빨리 치어.”
“지금 보습을 손질하는 중이오.”
“잔소리 말어 . 행차하신단 말을 못 알아들어.”
“농가膿家)는 지금 바쁘오.”
“뭣이 어째. 그래 못 치우겠다는 거냐.”
말 잔등에 눈과 챵날이 번쩍했다. 형은 다시 보습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사람이 지나갈 여지는 얼마든지 있소. 길은 넓소.”
형은 앉은 채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이놈이. 하루걍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노한 소리와 함께 시퍼런 창이 콱 내리질러졌다.
“앗!”
동생은 날세게 창자루를 잡았다. 형은 그제서야 손의 흙을 비벼 털며 태연히 일어섰다. 동생에게 자루를 붙잡힌 창끝이 보습 채에 푹 박혔다. 여섯 개의 눈이 불을 튀겼다.
“이놈. 창(槍)으로 감히 보습〔黎〕을 찔러. 이 천하에 고약한 놈.”
형은 큰소리와 함께 발을 탕 굴렀다. 행차 하신다는 소문에 대문 뒤에 숨어 틈으로 내다보던 마을 사람들은 이 광경에 숨이 꽉 막혔다.
“목이 아깝거든 썩 놔.”
창을 붙잡힌 무사는 왼쪽 허리에 칼을 더듬었다.
“그래 언제부터 나졸놈의 칼이 농군의 목을 치는 세상이 됐단 말이냐.”
이번에는 창 자루를 붙든 동생이 짜릉짜릉한 목소리로 말탄 무사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이렇게 다투고 있는 사이에 벌써 거기 까지 소위 행렬이 다다르고 있었다. 말탄 무사들을 두 줄로 죽 저 산 모퉁이까지 거느린 행렬의 선두가 거기 머물렀다.
“무슨 일이냐.”
맨 선두에 흰말을 높이 타고 빨간 끈으로 해 투구를 등에 진 장수인 듯한 무사가 창을 붙잡힌 두 무사에게 물었다.
“이놈들이 감히 길을 막나이다.”
“길을 막아?”
장수의 흰말이 뚜벅하고 한 발 더 형제 가까이로 나섰다.
“음.”
눈썹이 꺼멓게 꼬리를 들었고, 수염은 길게 틱을 가리운 그 장수는 말 위에서 몸을 틀어 형제를 굽어보았다.
“무슨 까닭인고?”
형은 장수를 향해 마주섰다. 동생은 그제서야 창을 놓았다.
“보습을 고치는 중이오.”
“보습을. 길 복판에서? 음. 너희들은 무엇을 하는 젊은이들이지?”
후리후리 키는 크나 가는 허리하머 반듯한 이마에 정기 서린 눈들이 귀골답기만 한 게 어덴지 농부 같지 않아 그들 형제를 심상치 않게 본 장수였다.
“보습을 쥐었으니 농부인가 하오.”
“딴은. 이름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백이, 숙제. 형젠가?”
장수는 눈을 가느스름히 감고 무엇을 생각하논 듯 으젓이 물었다.
“그렇소.”
“나이는?”
“스물여덟. 스물둘.”
장수는 앞으로 나가려는 말의 고삐를 물러세우며 또 한번 형제를 내려다보았다. 어느 새 무사 몇 명이 말탄 채로 형제의 뒤를 빙 둘러섰다.
“음. 나의 이번 이 길을 막는 것을 보니 분명 선대(先代)에 벼슬한 자가 있으렸다?”
장수는 또 한번 스르르 눈을 감으며 고개를 약간 주억거렸다.
“벼슬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나리시는 것.”
“기특한 소리. 글은 읽었는가?”
“하늘 무서워할 줄 알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모르오.”
“하늘 무서워할 줄 알라. 음. 그대들은 나를 누구로 아는가?”
장수는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이제 그만 투구가 머리에 무거워진 장수인가 하오.”
“투구가 머리에 무거워져? 하하하하.”
장수는 호기있게 웃었다. 놀라서 발을 굴르는 말을 또 한번 끌어세웠다.
“다들 들었는가? 머리에 투구가 무거워진 장수. 하하하하.”
장수는 좌우의 무사들을 둘러보며 한 손에 쥔 채쭉을 뒤로 돌려 등에 진 투구를 뚝뚝 두들겼다.
“음 슬기롭다. 나를 보라. 그들 이제 한번 나서 나라를 위해 일해봄이 어떨고?”
“그는 제왕께서나 하실 수 있는 말씀.”
“하하하하. 아직 모르는 백성도 있을법한 일. 들으라. 오늘부터 내가 제왕. 그러면 되겠는가?”
“제왕께서는 흉악무도한 도적의 무리에게 돌아가셨단 소문은 들었소. 그러면 태자(太子)가 바로…….”
지금까지 떡 버티고 마주섰던 형제는 황급히 말굽 아래 끓어앉았다.
“묏이! 태자?”
말 위 장수의 눈썹이 한번 꿈틀하며 턱 밑에서 수염이 푸르르 떨었다.
“에잇. 발칙한 놈.”
형제의 뒤에 섰던 말 잔등에서 무사가 번쩍 칼을 빼들었다. 말을 두어 걸음 내세웠다.
“두라…….”
흰말 위 장수의 조용한 소리였다. 그는 한번 더 형제의 끓어앉은 모습을 내려다보다 말고 고삐를 채어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행렬은 흰말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두 필씩 두 필씩 말들은 등을 맞부비며 보습이 가로놓인 길 한편을 비좁게 빠져 지나갔다.
느릿느릿 마을 앞을 지나 행렬은 이윽고 산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아깝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볼 줄만 알았던들.”
멀어져가는 행렬을 지켜보고 있던 형은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마을 사람들이 와르르 큰길로들 달려나왔다. 그들 형제를 겹겹이 둘리싸고 제각기 제말에 장터처럼 떠들었다. 형제는 다시 보습을 맞들어올렸다. 사람들은 그들 둘을 둘러싼 채 움직였다.
“야 또 온다.”
누군지가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지금 행렬이 지나간 곳으로 일제히 돌아섰다. 과연 거기 산 모퉁이를 네 필의 말이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먼지를 차 일으키며 달려오는 네 필의 말 가운데 뒤에 두 필은 사람을 태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황급히 길 아래로 내려섰다.
두 무사는 보습을 맞든 채 길에 서있는 형제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동작으로 획 땅에 내려섰다.
“백이 숙제 형제에게 전하오.”
몹시 급하게 달려온 모양으로 숨 가쁜 소리였다. 형제는 보슴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이오.”
형이 한 걸음 나섰다. 동생도 형의 옆으로. 나갔다.
“제왕께서 두 분을 곧 모시라 하시오.”
“…… 알겠소. 돌아가 전하시오. 백이 숙제 형제는 도적질한 땅의 낟알은 안 먹겠노라 하며 어데론가 떠나는 길이더라고.” 형제는 돌아섰다. 다시 보습을 한 끝씩 들어올렸다.
두 무사는 멍멍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말고 말을 돌려세웠다. 두 필 빈 말을 끌며 그들은 지만치 사라져갔다.
“아 원 제왕이 모신다는데 마대 나 참.”
잠잠하던 길 아래에서 누군지 큰 소리를 쳤다. 형제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바로 웃집 아들 왕정(王精)이었다. 자기에게 쏘아진 형제의 시선을 느끼자 왕정은 길기만한 얼굴에 멋적은 웃음을 띠우며 넓적한 뒷머리를 극적극적 긁었다.
그길로 이 수양산에 올라와 벌써 반 년.
그까짓 허무하기 꿈보다 더 한 인간사, 차라리 철따라 꽃과 구름과 새소리가 좋아 이 산에서 육십 년을 동굴에 혼자 사노라는 요 위 백발노인처럼 아직 달관하지는 못했어도, 이제 그 입을 쥐어매는 도토리 밥에 고사리를 먹는데도 얼마만치 익었고, 또 밤이면 요사스레 우는 여우 소리와 굶주린 이리떼들의 이를 갈며 짖는 소리도 그리 무서울 게 없이 습기 챤 동굴에서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꿈길만은 뜻대로 할 수 없어 밤마다 마을로 되돌아 내려가 따스한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곤 하는 동생은, 이제 마지막 정기가 그리로만 쏠린 듯 이상한 빛을 발하는 형의 푹 꺼진 눈을 자꾸 피해 앉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화톳불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간간이 코를 들이키는 형의 시선을 등에 느끼며 동생은 또 한숨읕 내쉬었다.
고집(固執).
고집이라면 애당초부터 지독한 고집들이었다. 아직 마을에서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지방제후(地方諸侯) 소국이나마 왕자로 태어나 비단옷 속에서 자라났다.
고죽(孤竹)의 왕위(王位)를 물려받으라신 아버지의 유언을, 형이 둘이나 있는 세째 아들로서 어찌 유언이라하여 그대로만 쫓을까부냐고 피한 숙제. 그러면 순리대로 장자가 왕위에 오르라는 신하들의 의견을 이 또한 어찌 선왕의 뜻을 어기리 하며 동생을 따른 백이. 결국에는 둘째동생에게 백성을 맡기고 그들 형제는 세 칸 농막(膿幕)에 호미를 들었던 것이었다.
동굴 안이 환해졌다. 형은 또 삭정이를 꺾어넣는 모양이다.
동생은 한 번 눈을 떴다 다시 감었다. 벌에게 쏘인 볼이 또 가렵다. 그는 손을 올리기가 귀찮아 얼굴 가죽을 씰룩 씰룩 움직여보았다.
이번엔 맞은쪽 산꼭대기에서 이리가 짖었다. 피비린내를 풍기는 그 흉한 소리가 다래넝쿨을 흔들며 지나가자 달이 구름 속으로 숨었다. 다음은 저 밑에 바우 잔등을 구르는 물소리 뿐 산 속은 고요했다.
밤은 깊어갔다.
동생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끄무릭하던 달이 다시 구름 사이로 솟아나왔다. 형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로 머리 위에서 부엉새가 울었다. 그는 재채기를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괴물 같은 머리가 되는대로 이마에 흐트러졌다. 부엉새가 놀라 울기를 그쳤다. 그는 손 잔등으로 콧물을 닦으며 옆에 삭정이 단에서 굵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빼 들었다. 그 나뭇가지로 불을 헤쳤다. 불 밑에서 빨랫돌만한 돌이 나타났다. 그것을 나뭇가지로 들추어 불 밖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들었던 나뭇가지를 꺾어 뜨겁게 달은 그 돌을 받쳐들었다. 그는 허리를 꾸부리고 어깨로 머루넝쿨을 들치며 굴 속으로 들어갔다. 벽을 향해 다리를 꼬부리고 누워 잠이 든 동생의 등 뒤에 가 우두커니 섰다. 또 한번 콧물을 들이켰다. 그는 동생의 발부리에 돌을 내러놓았다. 동생의 다리를 가만히 저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거적자리를 들췄다. 그 밑에 들고 들어온 돌을 밀어넣었다. 다시 거적을 덮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동생의 다리를 끌어다 그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동생이 낑하고 이리로 돌아누웠다. 희미한 불빛에 미간이 괴롭게 찌프려졌다. 볼의 벌 쏘인 자리가 유난히 부어올랐다. 형은 동생의 머리맡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손끝에 침을 발라다 동생의 볼에 가만가만 문질렀다. 밖에서 불이 확 일어날 때마다 침 칠한 자리가 번들거렸다. 형은 몇 번이나 동생의 볼과 가슴 위에 올려놓은 손등에 조심스레 침을 발랐다. 동생은 군입을 다시며 다시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대로 한참이나 동생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앉았던 형은 홑이불 자락을 끌어 올려주고 일어서 밖으로 나왔다.
달이 또 구름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삭정이를 듬뿍 불 위에 던져넣었다. 머루넝쿨을 제지고 한번 더 굴속을 살펐다. 그리고는 도망이나 치듯 황황히 소나무 사이 어두운 길을 더듬어 저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골짜기에는 벌써 저녁 그늘이 깃들기 시작했다. 어데선가 멀리 철 아닌 뻐꾹새 소리가 들려왔다.
뻐 ㅡ꾹ㅡ 뻐 ㅡ꾹ㅡ 뻐 ㅡ꾹ㅡ 뻐 ㅡ꾹ㅡ .
굴 앞에서 꿩고기를 굽고 있던 동생은 으쓱 고개를 들어 건닛산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뻐국새 소리였다. 그들 형제가 이 산에 올라오던 봄에는 그렇게도 종일 목 쉬게 울어대던 것들이 가을철 접어들며부터는 어데론가 다 날아간 모양으로 잠잠해졌었다. 그런게 이제 단풍도 거의 다 져가는 늦가을에 문득 또 운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어쩌다 짝을 잃고 철이 늦도록 갈 데를 못 가고 찾아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동생은 오래간 만에 뻐꾹새 소리를 흉내내 보았다.
“삐 ㅡ꾹ㅡ뻐 ㅡ꾹. 아니 꾹ㅡ뻐 ㅡ꾹ㅡ뻐 .”
동생은 뻐꾹새 소리를 내보다말고 혼자 피식 웃었다.
봄내 심심하면 늘 그 소리를 두고 형과 다투던 그 ㅂ머꾹새 소리와 꼭 같았다.
진달래 분홍 물이 고인 샘에 형제가 마주 앉아 고사리를 씻거나, 지녁때 굴 앞 바위 잔등에 하염없이 나란히 앉아있을 때면 곧잘 이 뻐꾹새가 울곤 하였다. 그러면 동생이
“저것 보슈. 형님. 꾹뻐ㅡ꾹ㅡ뻐一꾹ㅡ뻐ㅡ 하지 않우.”
하며 형을 향해 웃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한참씩 귀는 뻐꾸기 소리로 모으고 눈은 서로의 눈을 마주 들여다보며 앉아있는 것이었다.
“뭐가. 역시 뻐 ―꾹―뻐 一꾹一하는데 .”
형의 말이었다.
“어데요. 저것 보―슈. 저것. 꾹―뻐 ―꾹―뻐 ㅡ꾹―뻐ㅡ꾹ㅡ뻐 ㅡ .”
“그 봐. 자기도 뻐 一꾹ㅡ삐 一꾹ㅡ하면서 뭘.”
“제가 어데 뻐 ―꾹이랬어요. 꾹―뻐 ㅡ꾹一뻐 ― 했는데 .”
“그봐 뻐 ―꾹―뻐 ―꾹― .”
“어데요 형님두.”
“어쨌든 뻐꾹새가 왜 꾹―뻐 하겠나. 그럼 꾹뻐새라지 왜 뻐꾹새래.”
“이 그야 그저 옛날부터 뻐꾹새라고 해왔으니까 모두들 그래두는 거지요 뭐.”
“그러게 말이다.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온 걸 이제 새삼스레 꾹뻐한다면 되나.”
“그렇지만 제겐 암만해도 꾹ㅡ뻐로밖엔 안 들리는 걸 어떻게해요. 그럼 뻐꾸기니까 꼭 뻐꾹하고 울어야 한다면 참새나 종달새는 뭐라 울어야해요.”
“허참. 하하하하.”
“하하하하.”
결국엔 둘이 다 웃어버리는 수밖엔 없었다. 사실 그건 맨 처음을 ‘뻐’와 ‘꾹’ 어느 소리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이 다를 뿐이고 벌써 두 번만 계속하면 꼭 같은 소리가 되어머리는 것이었다.
그는 오래간 만에 들은 뻐꾸기 소리가 반가워 또 들릴까하고 귀를 모으고 기다렸다. 그러나 어쩌다 한 가락 울었읕 뿐 다시 울지는 않았다.
그는 불을 불기 시작했다. 무릎을 끓어 화톳불 좌우 땅바닥에 시꺼먼 손을 짚고는 눈은 감은 채 후 불면 삭정이가 숯이 되어 뻘겋게 된다.
그는 숨껏 내불다 허리를 늘씬 바로 세우며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불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두 개의 꿩의 다리를 뒤집어놓았다.
한번 더 불을 불어놓고 동생은 일어섰다. 형이 늦는다고 생각하며 그는 샘으로 내려가는 소나무 사이 길을 내려다보았다. 저녁 햇살에 몇 닢 안 남은 단풍이 정말 핏빛이었다.
“어 네가 먼지 왔구나. 일찍 온다는 게 그만.”
등 뒤에서 형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웃길로 왔수. 그런 걸 난 아랫길만 봤지요.”
형은 어깨에 망태를 무죽히 걸머진 채 굴 위의 큰 바위를 돌아 내려왔다. 불 곁으로 와서 망태를 철썩 땅에 내려놓았다. 도토리다.
그는 나무 토막에 걸터앉았다. 불 위에 것을 보았다.
“이게 뭐냐.”
“뭐 같소.”
동생은 형의 얼굴과 불 위의 꿩의 다리를 번갈아보며 사뭇 자랑스러웠다.
“글쎄. 아주 땃있는 내가 난다.”
“시장하지요.”
“응.”
동생은 까맣게 구워진 꿩의 다리를 집어들어 하나를 형에게 내밀었다. 동생은 입으르 고기를 뜯으며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펄썩 주저앉았다. 형도 한 입 고기를 뜯어물었다.
“음 맛있구나. 그런데 뭘까. 닭?”
형은 꿩의 다리를 눈앞에서 돌렸다.
“꿩이야요. 꿩. 맛있지요.”
동생은 꿀떡 고기를 삼켰다.
“꿩?”
“네, 꿩.”
“꿩.”
형은 먹던 고기를 무릎 위에 든 채 멀리 저 산 밑에 지녁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하러 갔다 작대기로 쳐 잡았어요.”
“…….”
“아 고놈이 바로 발부리로 기어들지 않아요.”
“…….”
동생은 열심히 고기를 찢어먹으며 혼자 신이 나다말고 잠잠히 대답이 없는 형을 힐끔 쳐다보았다. 형은 여전히 저 밑을 굽어보며 멍청히 앉아있었다.
“왜 안 잡수시우.”
“응? 응.”
그제서야 형은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은 또 한 입 고기를 찢었다.
“어서 잡수세요. 오래간 만에 먹으니까 참 맛있어요.”
형은 슬그머니 고기를 옆에 놓인 망태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굴 안에 들어가 다래를 한줌 들고 나왔다.
“꿩도 안되우?”
동생은 비로소 형이 꿩고기를 먹지 않는 까닭을 알아차렸다. 형은 다래를 씹으며 대담 대신 소리없이 웃어보였다.
“원 형님두―.”
동생은 또 한 입 뜯어물었다. 그러나 두어 번 뜯다말고 그는 물끄러미 형을 건너다보았다. 형의 두 눈에는 분명 눈물이 징 솟아오르고 있었다.
도적질한 땅의 낟알은 내 한 톨이라도 안 먹을 게다, 하며 이를 악물고, 요전에 동생이 벌꿀을 떠다놓고 이것은 낟알이 아니니 부디 떫은 도토리밥에 버무려 잡수라고 했을 때, 벌이 무슨 죄있을리 없지만 그도 역시 저 들의 꽃을 핥지 않았겠느냐고 기어이 밀어놓던 형이었다.
동생은, ‘그렇게까지’하는 생각에서 일부러 크게 한 입 고기를 뜯어물었다. 그러나 곧 그는 슬며시 돌아앉았다. 입 안의 고기를 땅바닥에 배앝아버렸다. 그리고 쥐었던 꿩의 다리마자 거기 바우 위에 가만히 던쳤다.
그때 건닛산에서 아까 그 뻐꾹새가 또 울었다.
삐 ㅡ꾹― 뻐 ― 꾹一 뻐 ― 꾹― 뻐 ㅡ꾹― .
이번엔 뒷산 마루터기에서 받아 울었다.
꾹ㅡ뻐 ―꾹― 뻐 ㅡ꾹一뻐 一꾹ㅡ뻐 ㅡ .
그러나 둘이는 말이 없었다.
형은 여전히 노을 저가는 들을 내려다보고 앉아있었고, 동생은, 저놈의 뻐꾸기는 철도 모르나 하고.
“허 어떻게 저녁들은 자셨소.”
동굴 위에서 백발노인의 소리가 났다. 형제는 동시에 일어섰다. 바우 위에 홑이불 같은 흰 천을 두루마기 모양 어깨에서 내리 드리운 백발노인이 서 있었다. 넘어가는 저녁 햇살을 받아 눈처럼 흰 머리칼이 길게 흘러내려 양 어깨를 덮었다. 노인은 구십이 가깝다면서 아직 허리도 굽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키보다도 더 긴 등(藤)나무 지팽이를 앞세우고 두텁게 이끼가 앉은 바우 잔등을 주춤주춤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형제는 바우 아래로 가서 백발노인의 팔을 한쪽찍 겉들었다.
“고맙소이 다. 하도 갑갑하기에.”
노인은 양쪽에서 형제가 인도하는대로 불 앞의 나무 토막에 가 앉았다.
“음. 불도 젊은이들의 불은 더 뜨겁거든. 하하하하. 그런데 참 철 아니게 오늘 뻐꾹새가 울었어. 들었소?”
“네.”
형이 대답했다.
“그래 이번엔 어떻게들 들었소. 하하하하.”
“철수는 틀리지만 우는 소리까지야 달라졌겠습니까. 하하하하.”
형제가 봄내 뻐꾸기 소리로 해서 다투던 것을 아는 노인의 농올 형은 받아 웃었다.
“그럴테지. 하하하하. 여전히 형 뻐꾸기는 뻐꾹 울고, 동생 뻐꾸기는 꾹뻐 울고. 그런데 둘이 함께 울다보면 어느 새 둘다 같은 소리로 울고. 허허허.”
노인은 불 위에 손을 구우며 또 웃었다. 참으로 잘 웃는 노인이었다.
“아닙니다. 오늘은 건닛산 뻐꾸기는 뻐꾹 뻐꾹 울었고 뒷산 뻐꾸기는 꾹뻐 꾹뻐 울었습니다.”
동생도 삭정 를 꺾어놓으며 웃었다.
“하하. 그래요. 참 재미있는 소리야. 흐흐흐흐.”
노인은 긴 눈썹 밑의 두 눈을 가늘게 감으며 동생을 쳐다보고 또 웃었다.
노인은 흐트러진 옷 앞자락을 끌어 여몄다‘ 그바람에 옆의 망태 위에서 꿩의 다리가 툭 떨어졌다.
“오. 이거 웬 고기가. 내가 이거 끼니때에 왔나보.”
노인은 형제의 얼굴을 한꺼번에 살폈다.
“아니올시다.”
형이 얼른 대답했다.
“그래요. 오늘은 아주 성찬이었구려. 하하하하.”
“네. 동생이 꿩을 잡았습니다. 이게 제가 좀 뜯어낸 것이어서. 여기 한 번 다시 구워볼까요.”
“으 그 좋지요. 좋지요. 그런데 왜 안 자셨소.”
“네. 예의 고집인가 합니다. 꿩도 들의 낟알을 쪼았을 것인즉.”
“오. 그래서. 충성(忠誠) 충성. 음 충성.”
노인은 지팽이를 쥔 두 주먹 위에 긴 수염을 깔고 턱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꿩고기를 불에다 놓고 뒤적이는 형을 한참 보다가는 또 눈을 들어 불 건너편에 두 무릎을 안고 앉은 동생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꿩도 발(發)의 녹(祿)을 먹은 놈이란 말이렸다. 음. 딴은.”
노인은 혼잣만로 느릿느릿 중얼거렸다.
“그러나 놈은 이 수양산에서 잠은 놈. 그런데 꿩이란 놈은 나는 놈이라. 음. 수양산은 수양산. 수양산 꿩은 주(周)나라의 꿩. 허허허허. 알 것도 같소. 음. 그러나 저 해에도 계철이 있어 춘하추동(春夏秋冬). 땅에는 왕대(王代)가 있어 은(殷) 주(周). 그 따스한 봄만이 되풀이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허허허허. 군(君) 신(臣). 어찌 생각하면 지극히 의(義)롭고. 또 어찌 생각하면 맹랑하고. 해와 달과 산과 들. 어찌보면 므든 것이 내 것. 또 어찌보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그저 나고(生) 죽고(死) 나고 죽고.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허(虛) 또 허. 허허. 이제 그만치 구웠으면 되었소.”
노인은 형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좋은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저 더러운 것을 받아먹고 자라는 개도 키워준 주인은 알아보는 것. 하물며 백성으로 태어난 몸이 어찌 드디고 선 땅의 제왕을 저바리리까. 실은 동생이 애써 형을 위한 이 꿩. 미물이 무슨 주나라의 녹을 먹었으리오만, 그저 잠시 지 옛날의, 임금이 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영천(穎川)에 귀를 씻은 허유(許由)와 그 물은 염소에게도 먹일 수 없다하여 끌고 거슬러 올라갔다는 소부(巢父)의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형은 꿩고기를 두 손으로 공손히 노인에게 마치며 말했다.
“옳은 말. 옳은 말. 지금 내 말은 내 혼잣소리. 허허허허. 음. 꿩은 참 진미거든. 음.”
노인은 우물우물 고기를 뜯었다. 형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곰곰이 파헤치면 충(忠)이란 밑바닥은 우직(愚直)한 자기 고집. 어데서부터가 산이고 어데서부터가 들인지도 모르는대로 산과 들을 가름부터 애매하거니와, 수양산의 꿩을 굳이 주나라의 꿩 이라 물리침은, 주나라의 수양산을 수양산의 수양산이라 억지로 여겨보자는 비리 (非理)의 리(理). 이는 인간으로 태어난 까닭에 지녀야만 하는 안타까운 괴로움인가 합니다.”
형은 한번 노인을 쳐다보았다.
“음. 고집 고집. 화냥년의 가랑이를 찢고도 오히려 분을 못 참아 어린 자식마자 목을 눌러죽이고 일생읕 짐승처럼 산에서 혼자 사는 고집. 충(忠)이란 글자 하나를 위하여 사랑스러운 아내와 귀여운 자식을 버리고 사슴처럼 풀만 먹는 고집. 허허허허.”
노인은 뜯던 꿩의 다리를 든 채 수염을 내리쓸며 크게 웃었다. 형과 동생의 눈이 한 번 맞부딪쳤다.
“어 이거 젊은이들의 고집 덕에 내가 잘 먹었소. 허허. 지금 내 그 쓸데없는 소리는 다 잊으시오. 응. 허허허허. 그럼 이제 올라가 보아야지. 음.”
노인은 두 무릎에 손을 짚으며 무겹게 일어섰다. 어느 새 어두웠다.
늘 하던대로 동생이 따라나섰다. 달은 있었으나 소나무 밑의 길은 침침했
다. 동생은 노인의 팔을 붙들고 조심조심 걸었다.
“수양산 꿩은 주나라의 꿩. 주나라의 수양산은 수양산의 수양산. 충이란 우직한 자기 고집. 허허허허 .”
노인은 동생에게 끌려 비틀비틀 위태롭게 걸으면서도 여전히 웃었다. 노인의 동굴 가까운 잔디밭에 들어섰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무엇을 말이오.”
“죽은 제왕과 산…….”
아까부터 묻고 싶었으나 형의 앞에서는 차마 못한 말이었다.
“흙과 피. 허허허허 .”
“…….”
“충(忠)과 애(愛). 리(理)와 정(情). 낸들 어찌 다래넝쿨 머루넝쿨이 뒤얽힌 수양산의 뻐꾸기 소릴 알겠소. 허허허허. 어찌 들으면 뻐꾹 우는 것 같고, 또 어찌 들으면 꾹뻐 우는 것도 같고. 그런데 함께 울면 둘다 삐꾹뻐꾹 같은 소리로 울고. 그러니 꾹뻐 울건 뻐꾹 울건 두 놈 다 뻐꾸기는 뼈꾸기. 하하하하.”
노인은 어둠 속에 젊은이의 손을 더듬어 쥐고 너털웃음과 함께 몇 번 흔들었다.
동굴로 돝아온 동생은 불을 가운데 두고 다시 형과 마주앉았다. 굴 안으로 길게 누운 형의 그림자와, 굴 앞 바우에 허리를 걸친 동생의 그림자는 둘 다 한참 말이 없었다.
“이젠 제법 추워졌어요.”
이윽고 동생이 나뭇가지로 불을 헤치며 임을 열었다.
“시월도 반이나 지나갔는데 그럼.”
형은 하늘에 한 쪽이 약간 이지러진 달을 쳐다보았다.
“이제 눈이 오겠지요.”
“그렇지 낼이라도 올지 모르지.”
또 한동안 잠잠했다. 불만이 둘레를 빨갛게 물들이며 탔다.
“형님.”
“……?”
새삼스러운 동생의 소리였다. 둘은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형님.”
“응―.”
“이제 겨울이 오면 집에서는 어떡해요.”
“…….”
형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떨어진 짚신 코로 내민 발가락에 티눈이 굳게 박혔다.
“우선 나무부터가.”
“…….”
“형님!”
“응.”
“…….”
이번엔 동생이 형의 시선을 피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또 불을 들추었다. 확 불길이 일어섰다. 그는 뜨거운 불기운을 옆으로 피하며 낯을 찌푸렸다.
“허유는 귀를 씻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었지만 우리는……. 저는 차츰 의심스러워져요. 누구를 위한 고집인지.”
“…….”
“상대가 없는 싸움. 따라서 이기지도 지지도 못하는 싸움.”
“도시 인생이란 상대 없는 싸움. 제가 제 멱살을 틀어쥐고 싸우다 죽는 것.”
형은 불길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싸움인 이상엔 반드시 승부(勝負)가 있어야 할꺼야요. 그런데 수양산엔 그 승부가 없어요.”
“승부? 있지. 사슴처럼 죽느냐. 개처럼 죽느냐.”
형은 물끄러미 동생을 건너다보았다.
“그렇다면 제 싸움은 이미 승부가 났어요. 개처럼. 네, 개처럼. 이 산은 형벌(刑罰)이야요. 왜, 저희가 벌을 받아야할 까닭이 어디 있어요. 더구나 아내와 애들까지.”
동생은 흥분했다. 전에 없이 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동생의 이마에는 핏줄이 죽 뻗쳤다.
“그만둬.”
형은 또 한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나뭇가지에 달려 반짝거렸다.
“전, 전 보고싶어요.”
“그만둬!”
동생의 울음소리에 형의 음성은 컸다. 동생은 푹 고개를 수그렸다. 나뭇가지를 쥔 손등에 주루루 눈물이 떨어져 굴렀다. 한참 말없이 앉았던 형은 일어서 굴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동생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두 무릎으로 삭정이를 꺾었다.
여울에 달빛이 부서져 반짝이었다.
동생은 성큼성큼 칭검 다리를 밟고 건너갔다. 거기서부터는 들길이었다. 십 리(十里).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새벽까지는 넉넉히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걸음은 거의 뛰었다. 형이 물으면 어데를 갔었다고 할까. 집엘 가보고 왔다면 뭐라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발길은 여전히 집을 향해 바빴다. 눈앞에 환히 아내가 웃었다. 먼발치로 한번 보고라도 와야 건널 수 있었다. 형의 책망은 내일. 그는 당장 이밤을 그냥 재울 수가 없었다. 그는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총이 떨어진 짚신이 철덕철덕 끌렸다. 양 손에 한 짝씩 벗어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그는 길 가 바우 잔등에 짚신을 던졌다.
수수밭 사이 길을 끼고 나갔다. 웃마을이었다. 달빛 아래 초가집들이 착 땅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는 마을 앞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났다. 뒤에서 개들이 짖었다. 그는 도적처럼 밭이랑으로 달렸다. 맨발에 잔돌들이 따가웠다. 앞에 지만치 소나무가 자욱히 들어선 언덕이 보였다.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더 바빴다. 그는 거의 단숨에 뛰어올랐다. 바로 밑에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그는 설레는 가슴으로 소나무 밑에 서있었다. 초가지붕 위에 반득거리는 것은 분명 달빛만은 아니었다. 서리가 내린 것이었다. 그는 마을 저 끝에 자기집을 찾아보았다. 그래도 앞 마당에 낟가리가 두 무더기 쌓여있었다. 그는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도깨비처럼 머리가 너울너울 어깨 위에서 흔들렸다. 또 개가 짖었다. 그는 멈칫 섰다. 개는 더욱 야단스레 짖으며 바자 틈으로 기어나왔다. 한집 개가 짖으니까 이집 저집에서 개들이 따라 짖어대었다. 그는 돌아섰다. 다시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는 마을 가운데를 질러나가기를 단념하였다. 그리고 소나무에서 소나무로 숨어가며 언덕을 따라 저 앞의 큰길로 나갔다. 거기서 자기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텃밭 모서리 뽕나무 밑에 가 섰다. 멀리서는 미처 몰랐던 것이 자기 집에는 아직 빨가니 불이 켜져있었다. 그는 조심조심 집 가까이로 갔다. 싸립문 밖에 섰다. 잠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틈으로 손을 넣어 싸립문을 벗겼다. 소리가 나지 않게 가만히 밀고 들어섰다. 그때였다. 무엇이 그의 발부리를 가로막고 섰다. 껌뎅이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꼬리를 쳐 그의 발부리를 빙빙 돌았다. 그는 얼른 쭈그리고 앉았다. 개의 이마를 긁어주었다. 개는 그의 해진 무릎에 턱을 비비며 손바닥을 핥았다. 뜨거운 개의 혓바닥을 손에 느끼자 그는 어둠 속에서 확 낯이 달아올랐다. 개도 주인을 안다. 형의 말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개의 허리를 한번 쓸어내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가만히 싸립문 밖으로 되돌아 나서고 말았다. 개도 따라 나왔다. 꼬리가 자꾸 무릎을 두둘겼다. 그는 허리를 구부려 다시 개의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집 안에서 애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우뚝 돌아섰다. 방 안에 불이 빤히 돋우어진다. 다음은 두런두런 어른의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아내의 목소리였다. 그는 집 뒤로 돌아갔다. 개도 따라왔다.
“애기가 깼나.”
“네. 형님까지 깨워놓았네.”
“깨워놓긴. 잠도 안들었던 걸 뭐.”
“아직 못 주무셨수.”
그는 뒷창문에 바싹 다가섰다. 뚫어진 문구멍에 눈을 가져다대었다. 조그마한 기름불이 접시 가장자리에 졸고 있었다. 웃목에 아내가 모으로 누워 팔꿈치를 세우고 애기에게 젖을 물렸다. 스르르 내리깔은 긴 살눈섭. 빨간 입술. 또 애기의 얼굴을 그에게서 가리우고 있는 탐스러운 젖통. 그는 오금을 부르르 떨며 눈을 문구멍만치나 크게 떴다.
“암만해도 이상해 .”
“뭐가요.”
“나무말이야.”
“그러게요.”
“꼭 떨어질만 하면 밤 사이에 대문 밖에 져다놓곤하니.”
“제 생각엔 산에서…….”
“그러게 말이야. 나무 단 위에 머루 다래를 소복히 한 줌씩 놓고 가는 걸 보면.”
그는 눈앞이 아찔하였다. 간신히 한 걸음 물러나 펄썩 그 자리에 주지앉았다. 가슴이 꼭 미여올랐다. 옆에 쭈그리고 앉았던 개가 손등을 핥았다. 그는 개의 머리를 쓸어주며 속으로 형을 불러보았다. 형님.
개의 귀가 갑자기 쭝긋하였다. 쓱 일어섰다. 그리고 굴뚝께로 빠져나갔다. 컹컹 짖었다.
“밖에 누가 왔어요?”
아주머니의 소리였다. 그는 얼른 일어섰다. 가만히 뒷걸음을 쳤다.
“네. 저 웃집 왕정입니다.”
분명 앞문에서였다. 그는 벽에 몸을 착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개는 더욱 악을 써 짖었다.
“무슨 일이신지.”
“저. 문을 좀 열어주십시오.”
“무슨 일이신진 몰라도 내일 낮에 오셔서…….”
“급한 일입니다. 문을 좀 여슈.”
“여자들만 있는 집. 급한 일이라면 그대로 말씀하셔도…….”
“저. 다른게 아니라 산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두 형제가 다 그만…….”
잠깐 잠잠하였다. 개만이 마당에서 요란스레 짖었다.
“두 분은 봄에 이미 돌아가신 분.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떨리는 아주머니의 소리였다.
“자 문을 좀 열어주슈.”
“소식을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밤도 깊었는데.”
또 다시 잠잠해졌다. 가늘게 흐느끼는 소리가 문구멍을 새어나왔다.
개가 대문께로 나가며 짖었다. 그는 굴뚝 쪽으로 나갔다. 막 왕정이 싸립문을 젖히고 나서는 중이었다.
“흥. 충신에 열녀란 말이지. 어디. 이 개새끼까지.”
왕정은 발뒤꿈치를 물을 듯이 달려들며 짖는 개의 배를 걷어찼다. 개는 한번 컹 하더니 더욱 악을 썼다. 방 안에선 또 애기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두 주먹을 꽉 부르쥔 채 애기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가슴 뛰는 고동 소리를 뒤섞어 들으며 사라져가는 왕정의 뒷모습을 쏘아보고 서 있었다.
그는 다시 큰길로해서 마을 뒤 언덕으로 올라갔다. 껌뎅이가 설렁설령 따라왔다. 그는 가다가는 돌아서 돌을 던지고 또 가다가는 돌아서 돌을 던지고 하며 달빛 아래 산을 향해 걸었다.
그날 밤에 대하여 형은 아무 말도 묻지 않았고 또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열홀이 지났다. 그날은 아침부터 흐리던 하늘에서 낮이 기울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산으로 갔던 형제는 일찌감치 돌아오고 말았다.
형제가 낮에 마주 앉기는 지난 여름 장마철 이후 처음이었다. 불을 굴 입구 가까이로 옮겨 피워놓고 형은 오른쪽에 동생은 왼쪽에 각각 벽에 기대어 무릎을 세워 안고 마주 앉아있었다. 얼굴은 둘이 다 밖으로 돌려 펄펄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멍히 눈발만 보고 있노라면 앉은 채로 쓱 하늘도 떠오르는 것 같았다.
“기어이 눈이 오는구나.”
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눈 위에 나무를 지고 밤길 이십 리는 무리지요.”
여전히 눈은 눈발을 바라보는 채의 동생의 말이었다. 형은 흠칠 놀라는 듯 한번 동생을 쳐다보았으나 아무 말도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뿐 그들은 거의 반나절이나 그 자세로 마주 앉아있으면서도 망부석처럼 말이 없었다.
형은, 그지께밤, 허리띠로 목을 졸라매어 자살을 한 것처럼 소나무 가지에 달아놓고 올라온 왕정의 그 긴 목과 축 늘어졌던 사지를 생각하고 있었고, 동생은, 그 낮에는 얼굴도 못들게 수줍은 고것이 밤에는 그렇게도 불처럼 타오르는 알몸뚱아리를 뒤틀며 팔을 벌리는 아내의 젖가슴 위에 자기 아닌 왕정의 흉한 몸뚱아리를 올려눕혀 보며 어금니를 꽉 맞무는 것이었다.
저녁때까지 눈은 멎지 않았다.
골짜기에서 여우가 울었다.
형과 등을 꼭 맞대고 굴 속에 누워서 머루넝쿨 사이로 밖을 내다보던 동생은 불 위에 날아내리는 눈송이가 참 곱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밤이 어느 때쯤 되어서인지 모른다.
“형님!”
자기 소리를 멀리 들은 것과 동시에 형이 흔드는 바람에 잠이 깨었다. 흉악한 꿈이었다.
이젠 불빛에 눈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 대신 지금 깬 꿈이 눈앞에 어렸다.
자욱히 안개가 낀 봄날이었다. 형은 밭 저쪽 머리에서 씨를 뿌리고 그는 이쪽에서 삼태기에 거름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멀리서 애들의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아버지!”
안개가 무럭무럭 몰러가 그의 집을 휩쌌다. 풀썩풀썩 솟아올랐다. 그건 안개가 아니라 검은 연기였다. 그런데 그 연기에 휩쓸려 검불처럼 빙글빙글 돌며 올랐다 내렸다 하는 덩어리. 알몸뚱아리로 벗은 아내와 조카애와 젖먹이. 그는 삼태기를 내던지고 밭두둑으로 뛰어올랐다. 형을 불렀다. 그러나 형은 한번 그를 돌아다보았을 뿐 다시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또 한번 크게 형을 불렀다.
동생은 마침내 일어나 앉았다. 홑이불을 형의 등에 겹쳐주고 불 앞으로 나갔다. 내리기는 멎었으나 꽤 많이 쌓인 눈이 불빛에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어데선가 호―호― 부엉새가 울었다.
형은 잠이 깨었다.
아침 햇빛을 받은 눈이 어두운 동굴 안에서 더욱 눈부셨다.
그는 으시시 떨며 불 앞으로 나왔다. 불이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그는 눈 위에 샘으로 내려간 동생의 발자국을 보며 삭정이 단을 헐었다.
도토리를 씻고 고사리를 다듬노라면 꽤 오래니까 하고 생각하며 그는 불 위에서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쫑 쫑 쫑 산새들이 눈에 몰려 울며 머리 위를 날아 들을 향해 내려갔다.
잠이 아직 덜 깬 얼굴로 한참이나 불 앞에 앉아있던 그는 일어서 동생의 발자국을 골라 디디며 샘이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큰 바위 위에 올라섰다. 거기서 샘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그런데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숙제. 숙제.”
그는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숙제 ―― 숙제.”
이번엔 좀 더 크게 불렀다.
…… 숙제 …… 숙제 ……
앞산에서 메아리가 떨며 돌아왔다.
“아침에 벌써 나무를 하러 갔나.”
그는 중얼거리며 바우 밑으로 내려섰다. 샘에까지 왔다. 그는 멈칫 섰다. 퀭한 두 눈이 샘 바로 옆의 바우 밑으로 파고들었다. 두 눈이 점점 커지더니 그는 쓰러지듯 풀썩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숙제 ― .”
거기 바우 밑에 눈없는 곳을 골라 동생의 겉옷이 차곡차곡 개켜져 놓여있었다.
“숙제 ― .”
그는 한 번 더 크게 동생을 부르며 옷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실신한 사람 모양 멍하니 눈 위에 앉은 채 소나무 아래 숫눈길의 발자국을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발자국은 저만치 내려가다 말고 무슨 생각에 이 바우 밑에까지 되돌아올라왔다 다시 내려갔다.
“겉옷을 벗구서 이 눈 속을, 저는 안 춥나.”
기어이 형의 여윈 볼을 주루루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쫑 쫑 쫑 쫑. 또 한 떼 산새들이 울며 그의 머리 위를 날아 들을 향해 내려갔다.
-끝-
2017년 5월 2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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