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과 병목안 등산 안양으로 이사오고부터 수리산을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시간이 잘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가기로 하고 안양역 앞에 남부시장앞에 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10번, 11-3번 버스가 병목안에 간다고 한 것같았다. 기다리고 있는데 15번 버스가 왔다. 버스기사아저씨에게 병목안 가냐고 물으니 간다고 한다. 타고 나서 보니까 안양1번가에 한번 쉬고 성원아파트쪽으로 꺽어져 가는 가는 것이다. 길을 살펴보니 성원아파트 옆으로 해서 계속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면서 보니 도시를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옆에 하천도 보였다. 아마도 몇 정거장 가지 않은 것같은데 병목안에 도착했다고 한다. 병목안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병의 목안에 있는 것처럼 넓게 보였다. 안양시가 병목안에 시민공원을 만들어 놓아 별천지를 이루었다. 언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화장실도 근사하고 올라가면서 꽃들도 많이 심어 놓았고 공원으로서 손색이 없게 만들었다. 수도권 어디에도 이렇게 근사한 공원을 없을 것같았다. 우선 수리산 등산하는 것이 시급하므로 수리산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사계절 정원을 지나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살펴보니 자연학습장을 만들어 형형색색의 꽃들을 심어 놓아 꽃구경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날씨는 그렇게 좋은 날씨가 아니어서 흐리면서 가끔 조금씩 비가 내리기도 하였다. 비가 오니 올라가는 등산로에 물이 내려 오고 있었으며 정상에 가까이 가니 길이 가파라서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또는 철제 기둥을 설치하고 밧줄을 메어 놓아 등산객들이 손을 잡으면서 올라가던지 내려가던지 하게 하겠다. 중간부근에 유명한 병목안 탑이 2개 있고 근처에 휴식을 위한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상부근에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 곳은 산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곳이었다. 벤치도 있었고 쉬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 곳은 관모봉과 태을봉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했다. 먼저 관모봉으로 가보기로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미리 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은 안양시내, 산본, 군포 등이 다 내려다 보이는데 간날은 날씨가 흐려서 선명함을 맛볼수가 없었다. 태극기도 꽂아 놓아 그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학생들도 많이 왔는데 그 곳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외상되냐고 농담으로 묻기도 하였다. 반대쪽으로 가보니 태을봉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군포제1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상에 헬리곱터 착륙장도 있었고 많은 분들이 태을봉이라는 글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런데 태을봉 주변은 나무가 많아서 시야가 그리 좋지 않아 관망은 안 좋은 편이었다. 생각보다 그곳에서 서해가 잘 보이지는 않는 것같았다. 그곳에서 서해가 잘 내려다 보일 것같는 예감이 있었는데 예감이 빗나갔다. 내려오다 푸른 산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서 김밥도시락을 먹고 군포와 안양의 갈림길을 통해 내려오던 길로 내려왔다. 비가 와서 내려오는 길은 위험한 듯 느껴져서 옆에 있는 밧줄을 꼭 잡으면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안양시에서 그랬는지 길에 물이 내려오면서 돌이 쓸려 내려오지 않도록 철망으로 돌을 묶어 놓기도 했다. 자연학습장에서 각종 꽃들을 찍으면서 내려왔는데 도중에 폭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폭포로 갔다. 그런데 정말 병목안 시민공원을 잘 꾸며놓은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도 만들고 기차길도 만들어 놓았으며 인공폭포에서 물이 내려오게 하여 볼만한 경치를 보여 주었다. 잔디광장도 크게 만들어 놓아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의 훌륭한 휴식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훌륭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근처에 살면 이 공원이 사는 사람의 놀이터가 될 것같았다. 안양시내와 가까운 이런 곳에 이런 자연친화적 공원이 있다는 것이 복받은 것같았다. 그간 안양시에서 시민을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수 있는 것같았다. 안양이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시민들이 살기에 평안한 곳이 되는 것같았다. 내려오는 것은 차에서 내렸던 병목안 삼거리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안양중앙시장까지 와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 왔다. 앞으로도 시간이 되면 자주 갈 것이라고 다짐을 하였다. 아래 내용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입니다. 수리산 개요 : 군포 시민은 물론이고 안양, 안산 시민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로 사랑받고 있는 수리산은 군포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군포市의 진산이다. 수리산 명칭 유래는 수리산의 빼 어난 산봉의 방위가 마치 독수리같아 "수리산"이라 하는 설이 있고, 또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현재 속달동에 위치하고 있는 절이 신심을 닦는 성지라 하여 수리사라고 하였는 데 그 후 산명을 "수리산" 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조선조 때에는 왕손이 수 도를 하였다하여 "수李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리산 지형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등 광주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 중의 하나로, 군포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산으 로 태을봉(해발 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해발 451.5m), 북쪽으로는 관모봉 (해발 426.2m), 북서쪽으로는 수암봉(해발 395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계는 수리산 (태을봉 489m, 슬기봉 451.5m)이 군포시 서측에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산시,안양시와 경 계를 이루며 수리산 능선이 동서로 뻗어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으며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듯한 산계를 이루고, 봉우리 및 절벽은 대체로 규암이고 계곡지대에는 풍화에 약한 흑운모호상 편마암이나 안구상 편마암이 많으며,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 운모 편암이 협재되어 있다. 수리산의 임상은 활엽수림 45%, 혼효림29%, 침엽수림 26%로 구성되어 있으며, 속달동에 는 경기도유림 327ha가 있어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에서 각종 수목에 대한 연구 . 조사 를 하고 있으며, 속달동 '구릉터 당숲'은 지금도 음력 10월 1일이면 이틀간 동제(洞祭) 가 치러지는 아름다운 마을 숲이다. 약 100년에서 300년 가량 된 고목들이 우거져 있는 이 숲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재륜(鄭載崙,1648-1723)과 그의 부인 숙정(淑靜)공주의 무 덤 부근에 조성한 숲이라는 역사적인 배경 말고도 민속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주의 를 끌고 있다.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당집이 자리잡고 있고, 이곳은 중부지방 서해안 일대에 발달된 '터줏가리당'이며, 2002년에는 생명의 숲 및 산림청에서 주최한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의 아름다운 숲이 있다. 병목안 개요 : 새마을교에서 안양 채석장에 이르는 지역으로,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초입(새마을교)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谷)이 깊고 넓다고 하여 병목안이라 부르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뒤띠미(後頭尾洞)라 칭했고, 행정규역 명칭으로는 과천군 하서면 후두미동으로 불리웠다. 그런데 후두미동의 두 자는 豆와 頭를 함께 사용하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頭로 통일된 것으로 보이며, <<晋州 柳氏世譜>>(1982)에는 後屯으로 기술되어 있으나 頭의 誤記로 보인다. 병목안에 사람이 최초로 살기 시작한 것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촌로들의 증언과 이 곳에 소재한 묘소 등을 살펴보면, 대체로 조선조 숙종 년간에 진주 류씨에의해 세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인조년간에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낸柳詢(1597-1638)의 둘째 아들인 柳命才 (1623-1703)의 묘를 이곳에 쓴후부터인데, 류명재는 자가 有道, 호가 思齋 로 통정대부에 올라 안산군수와 영천군수 및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후 81 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 인물이다. 진주류씨의 묘는 류명재외에 류명재의 아우 柳命雄(1636-1722, 돈지돈령부사 역임. 1973년에 화장)을 비롯 하여 류명재의 큰 아들, 손자 및 조선조 영조 때의 화가인 姜世晃 (1713-1791)의 처(晋州柳氏) 묘(후에 진천으로 이장) 등이 있었다. 그 중 류석의 誌石을 이곳 토박이인 邊源信이 수습, 현재 안양시 문화공보실에 의해 보존.관리 되고 있다. 진주류씨 이후 병목안에 세거한 성씨는 원주 원씨, 순창 조씨, 달성 서씨 등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병목안을 기점으로 서쪽지역을 새마을, 서남쪽 지역을 창박골, 남쪽지역을 담배촌이라 각각 칭한다.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에 진주 류씨가 부자로 살았는데, 날마다 찾아오는 食客으로 고민하고 있던 차, 하루는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그 방도를 물었다고 한다. 이에 스님이 이르기를 마을초임(새마을교)산밑에 묘를 쓰고 탑을 세우시오 라고 이른 후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가다고 한다. 그 후 류부자의 하인이나 가족이 죽으면 스님이 일러준대로 묘를 쓰고, 그 옆에 탑(돌탑)을 세웠다는 것인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자 과연 류부자 집에 찾아오던 손님(식객)의 발길이 끊겼을 뿐만 아니라, 진주 류씨가 일 거에 패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병목안 동쪽에 있는 뉴골든아파트 뒷산이 풍수로 보아 배형국(舟形局)이므로 산 끝에다 묘와 돌탑 등 무거운 것을 쌓았으니 배가 뒤집혀 패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새마을교 옆에 있던 돌탑은 손을 대거나 치우면 병목안 주민들이 위해 를 당할지 모른다는 속설 때문에 그래도 있었다가, 한국전쟁 때 미군들에 의해 어디론가 실려갔고, 묘는 1980년대 초에 대부분 화장되었다. 마을 동남쪽에 있던 안양채석장은 1930년대 초에 개장되었다가 1989년에 폐장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차응설이 이곳에 야학을 세워 문맹퇴치에 헌신 하기도 하였다. 안양3동 15통.17통.18통.24통에 속해있는 병목안에서는, 일제 중엽까지 만 해도창박골 주민들과 함께 해마다 음력 7월 1일이면 창박골 앞산(약수 터 입구)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
출처: 금수강산 원문보기 글쓴이: 청초호
첫댓글 안양팀들이 많아지네요. 반갑습니다.
수리산 안양의 허파같은 곳이더군요. 시민공원도 참 좋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