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8:1-3)
갈릴리호숫가 티베리아스(Tiberias)에서 2박 3일을 머물며 갈릴리의 주요 지역을 오갈 때마다 빠짐없이 지나쳐야 했던 도시가 ‘망대’ ‘고기잡이의 망루’를 뜻하는 막달라(Migdal)입니다. 성경에는 달마누다(Dalmanutha, 막8:10) 지방으로도 알려진 막달라는 주요 상업 무역로인 지중해 연안 ‘해안 도로(Via Maris)’와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을 잇는 길목에 위치하며, 어부와 상점 주인 그리고 마을 사람들로 가득 찬 활발한 도시였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건설된 막달라는 AD 67년 1차 유대인 반란 때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과 맞서 대패하고 크게 파괴될 때까지 번성하는 어촌 마을로 성장했습니다. 염색과 직물공장, 생선 저장 및 가공업 등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 막달라에는 갈릴리호숫가 여러 도시의 치안과 안전관리를 위한 로마군 진영이 위치했습니다.
‘막달라’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인 마리아(Mary the Magdalene)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 그녀만큼 착각과 오해로 얼룩진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나요? 아니요, 그것은 편견일 뿐입니다.
로마군 진영이 있던 막달라에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 속에 막달라 출신인 그녀를 창녀로 낙인찍는 것은 지독한 편견일 뿐입니다. 59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가 그녀를 ‘회개한 창녀’로 설교한 것을 시작으로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설교와 예술작품에서 창녀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증편향의 일방적인 왜곡일 뿐입니다. 로마 교황청조차도 1988년 그녀를 ‘사도 중의 사도’로 격상시켰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연인(戀人)이었나? 아니요, 그것은 상상일 뿐입니다.
영화 [팬션 오브 크라이스트]나 [막달라 마리아:부활의 증인]과 같은 작품 속에서 드라마적 상상과 재미를 위해 그녀를 예수님의 연인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소설(Fiction)일 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역사를 담을 수는 있어도 영화는 영화일 뿐 역사(Fact)는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나? 아니요,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고정관념 속 착각으로 많은 설교자나 성도들이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었던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 요한복음 12장에 나타나는 사건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으로 보이며, 향유를 부은 여인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였습니다. 다만 여러 정황이 다르게 기록된 누가복음 7장의 ‘죄를 지은 여자’가 누구냐가 문제입니다. 명확한 증거 없이 죄를 지은 여자를 막달라 마리아로 추론하는 것은 그녀를 창녀로 여기는 왜곡에 근거가 빈약한 착각일 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였나? 네, 그렇습니다. 그녀는 헌신된 제자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세 장면에서 언급됩니다. 예수님 덕분에 일곱 귀신이 나간 후에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기는 막달라 마리아(눅8:1-3),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지켜낸 막달라 마리아(마27:56,61, 막15:40,47, 요19:25)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부활의 목격자적 증인 막달라 마리아(마28:1, 막16:1, 눅24:10, 요20:1,11-18)로 등장합니다.
이 세 장면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삶을 재구성해본다면 그녀는 자신의 정신질환을 고쳐 준 예수님을 열렬히 따르며 섬긴 제자였으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외면하고 도망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십자가 아래 머물렀던 용기 있는 제자였으며, 부활한 예수님께서 부활의 증인으로 뽑아 자신을 제일 먼저 보이시고 다른 사도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도록 세운 가장 신뢰할만한 제자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제자 중의 제자입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제자 됨을 의심하고 왜곡하는 것은 무지한 폭력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또 다른 막달라 마리아들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해하고 상상하고 착각하며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지 않은지요?
*사진1) 아르벨산(Mount Arbel)에서 내려다본 갈릴리 서편 막달라(Migdal) 지역
사진2) 고대 도시 막달라 유적(by.위키백과)
사진3) 2009년 발굴된 갈릴리에서 가장 오래된 막달라 회당(by.인터넷 갈무리)
사진4) <Touch Me Not (Noli me tangere)>, Tiziano Vecellio, 1514, National Gallery, London.
사진5) 여전한 예장 합동 총회 풍경(by.국민일보), 언제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르심과 소명을 제한받아야 한단 말인가?
아르벨산(Mount Arbel)에서 내려다본 갈릴리 서편 막달라(Migdal) 지역
고대 도시 막달라 유적(by.위키백과)
2009년 발굴된 갈릴리에서 가장 오래된 막달라 회당(by.인터넷 갈무리)
<Touch Me Not (Noli me tangere)>, Tiziano Vecellio, 1514, National Gallery,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