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은 이세벨의 치마폭 속에 있었습니다. 아합은 눈앞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입니다. 450명이나 되는 바알의 선지자를 엘리야 한 명이 어떻게 죽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눈으로 목격하고 엘리야 편에 서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이 일을 이세벨에게 말하자(1절) 이세벨은 대노(大怒)하며 내일 이맘때에는 엘리야를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2절). 죄악에 깊이 빠진 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役事)를 보고도 회개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더 악한 마음으로 가득해집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도망갑니다(3절). 엘리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기보다는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천하의 엘리야가 왜 그랬을까요? 3절은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이 형편을 보고” 자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형편을 보면 매우 힘들거나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정말 난감한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멜 산에서의 그 당당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엘리야는 잔뜩 주눅 든 모습입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이 갈멜 산에서의 엄청난 일을 목격했으니 이젠 아합이 자중(自重)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것이라고 예상했을 텐데 오히려 죽이겠다고 달려드니 당황했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많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일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뭔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진중(鎭重)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이 회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사역자에게 찾아오는 것 중 하나는 탈진(脫盡, burnout)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그러한 상태에 놓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떠나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로 도망합니다(3절).
엘리야는 브엘세바에 사환을 그곳에 두고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소망합니다(4절). 탈진한 사역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뎀나무를 쉼을 누리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로뎀나무 팬션, 로뎀나무약국 등으로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사실 로뎀나무는 그늘이 많은 나무가 아닙니다. 광야에서 그저 햇볕을 가릴만한 정도의 나무인데, 해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그늘이 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을 것입니다. 로뎀나무는 그저 삭막한 광야에서 아주 열악하게 의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그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로뎀나무라도 있다는 것은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고마운 일입니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고, 놀라운 기적적인 일을 행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무기력함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탈진한 엘리야를 다시 소생(蘇生)시키십니다. 천사를 보내어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주시고 먹게 하십니다(5절). 이 떡과 물을 먹고 마신 엘리야는 다시 눕습니다(6절). 그러자 천사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시며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7절). 엘리야가 신체적으로 회복하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어루만지셨다는 것은 엘리야의 마음까지도 만지셔서 회복하게 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7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엘리야가 뭔가 또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위해 길을 떠나야 함을 의미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로뎀나무 아래 있는 엘리야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로뎀나무는 과정일 뿐이지, 종착지가 아닙니다. 로뎀나무를 지나 호렙 산까지 가야 합니다. 로뎀나무 아래서의 회복은 호렙 산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준 음식을 먹고 마시고, 사십 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으로 갑니다(8절). 호렙 산은 시내 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산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에게 계명을 주셨던 산으로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호렙 산의 한 굴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13절에도 나타나는데, 이 질문은 엘리야가 무엇 때문에 지금 이런 상태에 있는지를 물으시면서, 엘리야가 해야 할 사역과 사명에 대해 말씀하시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질문에 엘리야는 10절에서도, 14절에서도 같은 답을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열심이 유별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단을 헐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아합과 이세벨을 비롯한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젠 자신만 남았으며, 자기도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음을 호소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이 죄악에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한탄하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만 홀로 외롭게 싸워왔는데 이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이야기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엘리야는 굴 밖으로 나오게 하셔서 산에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 앞으로 행하시는데, 바위를 부술 정도의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자연현상이 일어나게 하시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고, 지진이 일어나지만, 그 지진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11절). 그리고 불이 있지만, 그 불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12절). 엘리야가 경험했던 갈멜 산의 엄청난 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현상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엄청난 현상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에게 다가오십니다(12절).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役事)는 초자연적 현상들이나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일하시기도 하시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에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13절). 영광스런 하나님 앞에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아람 족속의 하사엘을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15절), 이스라엘으로 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붓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로 삼아 엘리야의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입니다(16절). 이 세 명은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을 심판할 도구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7절). 실제로 아람 왕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의 왕이 된 하사엘은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히는 왕이 됩니다. 그리고 예후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아합과 이세벨을 비록하여 아합의 자손 70명을 죽여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代行)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적적인 역사(役事)에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엘리야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바알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신실하게 지킨 칠천 명을 남기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18절)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실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엘리야는 길을 떠나 엘리사를 만났는데,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19절). 한 겨리는 두 마리의 소로 형성되니, 24마리의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인데, 엘리사가 꽤 부유한 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던집니다(19절). 그 당시 겉옷을 던진다는 것은 자신이 하던 직무를 맡긴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엘리야가 하던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엘리사에게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곧바로 소를 버리고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고 오게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엘리야는 허락합니다(20절).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라는 20절의 말씀은 “내가 뭐라고 했느냐? 가서 인사하고 돌아오거라”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엘리사는 돌아가서 한 겨릿소(두 마리의 소)를 잡아 소의 기구를 불살라 삶아서 백성에게 먹게 하고 엘리야를 따르게 됩니다(21절). 엘리사가 농사를 짓던 소를 잡고, 그 기구를 불살라 고기를 삶았다는 것은, 지금까지 하던 가업(家業)이었던 농사짓는 일을 단호히 그만두고, 엘리야를 따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새로운 사명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연(決然)한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새로운 국면(局面)을 열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끊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이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심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일을 계속 이뤄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서 이뤄갈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도 계속 이어 나갈 사람들을 세우게 하십니다. 지금의 상황에만 몰입하여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귀한 삶과 사역이 되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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