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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앞 능선 오른쪽은 지봉(못봉)
산 빛은 원근을 구별하지 못하고 山色無遠近
산을 보며 종일토록 걷는다 看山終日行
만나는 산봉우리 모양이 달라서 峰巒隨處改
길손은 그 이름마저 모르겠구나 行客不知名
―― 구양수(歐陽修, 1007~1072), 「먼 산(遠山)」
▶ 산행일시 : 2019년 1월 27일(일), 맑음
▶ 산행인원 : 햇빛산악회 26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3.2km
▶ 산행시간 : 5시간 23분
▶ 교 통 편 : 햇빛산악회 40인승 대형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7 : 10 - 전철 3호선 신사역(5번 출구) 출발
08 : 28 ~ 08 : 50 - 경부고속도로 옥산휴게소
10 : 25 - 도마령(刀馬嶺, 都馬嶺, 800m), 산행시작
11 : 08 - 각호산(角虎山, 1,202.0m)
11 : 20 - 안부
11 : 37 - 1,176.8m봉
12 : 06 ~ 12 : 45 - 민주지산(岷周之山, △1,241.5m), 점심
13 : 00 - 1,115m봉
13 : 30 - 석기봉(石奇峰, 1,242.0m)
14 : 00 - 1,127m봉
14 : 12 - 삼도봉(三道峰, 1,177.7m)
14 : 34 - 삼마골, ╋자 갈림길 안부
15 : 37 - 황룡사
15 : 48 - 물한계곡 주차장, 산행종료
16 : 48 - 후미 도착, 출발
17 : 38 ~ 17 : 50 -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19 : 50 - 전철 3호선 신사역, 해산
1-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
2. 산행 고도표
▶ 각호산(角虎山, 1,202.0m)
각호산을 도마령에서 오르기가 약간은 낯간지럽다. 너무 쉽게 각호산을 가서다. 오전 10시가
훨씬 넘은 대낮인데도 도마령은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등산객들로 장날인 듯 북적인다. 민주
지산 7시간 산행이라는 말에 혹해 따라 나선 햇빛산악회는 선두나 후미대장이 없으니 각자
알아서 능력껏 산행하시라고 한다. 산행마감은 17시다. 산행 인솔은 바람성 님이다.
도마령은 황간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준령이다. 해발 800m. 옛날에 ‘말이 다닐 수 있는 고
개’라 하여 답마령(踏馬嶺)이라고 하였다가 ‘어느 장군이 칼 차고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었
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이 도마령은 12년 전 이후 두 차례 왔었다. 그때는 무박산행
인 캄캄한 밤중이라서 주변 풍경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너른 주차장과 데크 깐 전망대가 있다. 경점이다. 별안간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에 덕유산과
그 위성봉인 거칠봉의 웅장한 위세를 맞닥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진다. 아울러
발걸음이 급해진다. 햇빛이 익기 전에 운무 드리운 첩첩 산을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을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한계령이나 운두령처럼 108개 계단일까?
오르다 보니 문득 계단을 세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내려가서 다시 오른다. 172개다. 오르막이
잠시 주춤하고 상용정(上龍亭) 정자가 있다. 정자에 올라도 키 큰 나무숲속이라 별다른 조망
이나 경치는 없다. ‘상용정’이라는 이름은 이 정자가 상촌면과 용화면의 면계에 위치한 까닭
으로 그 두 개면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상용정 오른쪽의 통나무계단을 잠깐 오르면
△842.7m봉이다. 삼각점은 ‘영동 456, 1980 재설’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각호산 산행이 시작된다. 줄줄이 열을 지어 간다. 앞뒤 사람간의 간격이
길게 떨어졌다고 해도 불과 수십 걸음이다. 이렇게 각호산 아니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까
지 이어진다. 대단한 행렬이다. 미리 말하자면 산행 후 물한계곡 주차장에 모여 있는 대형버
스를 세어 보았더니 35대나 되었다. 1대에 평균 30명이라고 하면 1,000명이 훌쩍 넘는 인원
이다.
그 인원이 모두 나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지는 않겠지만 절대 다수가 같은 방향이다. 산행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저마다 호흡에 맞추는 힘든 발걸음일 텐데 바짝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스텝을 꺾고 먼저 가시라 얼른 길을 비켜 양보한다. 개개인도 그러하고 산악회 리
더는 일행들에게 길을 비켜줄 것을 종용한다. 산행흐름이 원활하다.
각호산은 다섯 피치로 오른다. 각각의 피치는 숨이 가쁘도록 가파르고 곳곳이 빙판이다. 먼
지가 뽀얗게 덮여 맨땅인 줄로 알고 함부로 가다가는 미끈하여 엎어지기 일쑤다. 앞사람 발
걸음의 그런 자국이 조심하시라 안내한다. 마지막 피치 끄트머리.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앞에
서는 ‘이제 그만 방을 빼라’고 야단이다. 사연인즉 여태 수렴에 가렸던 조망이 훤히 트이는
각호산 턱밑이라 덕유산을 위시한 산첩첩 가경이 바로 눈앞이기에 그 배경하여 너도나도 사
진을 찍고자 몰려들었다.
이럴진대 암봉 사이의 다리 건넌 각호산 정상 표지석은 인파에 둘러싸여 온전히 들여다보기
조차 어렵다. 옅은 운무가 골골을 채운 만학천봉의 진경을 목도한다. 석화성 가야산, 백두대
간의 장릉 대덕산, 삼봉산, 발군의 위용 덕유산, 그 수문장 지봉, 거칠봉, 그 너머 열도 운장
산, 복두산, 구봉산, 변방의 맹주 계룡산 …….
각호산 이름의 유래에 따르면, 이 산은 뿔과 같이 두 봉이 솟아 있고 옛날에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12년 전 봄날이었다. 오지산행은 각호산을 그 북릉 끄트머리인 선화 마
을에서 배걸이봉을 넘어 올랐었다. 도상 9.4km. 오늘 도마령에서는 이정표 거리 겨우 1.5km
이다. 그때는 나도 산행로 만큼이나 패기만만했다.
3. 거칠봉
4. 왼쪽은 덕유산, 오른쪽은 거칠봉
5. 덕유산
6. 가야산
7. 거칠봉, 그 왼쪽 뒤는 운장산, 구봉산, 복두봉
8. 가운데는 각호산 북릉 △1,030.6m봉
9. 멀리 가운데는 곤천산, 오른쪽은 황악산
10. 멀리 가운데는 구미 금오산
11. 가야산
12. 거칠봉, 그 왼쪽 뒤는 운장산, 복두봉, 구봉산 연봉
13. 거칠봉
▶ 민주지산(岷周之山, △1,241.5m)
각호산에서 민주지산을 가는 등로는 정상에서 온길 뒤돌아 다리 건너고 설원인 북사면을 길
게 돌아 내려간다. 등로는 빙설로 덮였다. 등산객들 줄줄이 서행한다. 아이젠은 게으르기보
다는 발바닥에서 재미를 느껴보고자 매지 않았는데 앞서가는 등산객이 넉장거리하는 바람에
놀라서 넘어진다. 남릉으로 돌아서고 직하로 쏟아져 내린다. 갈지자 코너링과 제동하느라 등
산화 다 닳는다.
쏟아져 내린 여세를 살려 안부 바닥 치고 1,176.8m봉을 대깍 오른다. 여러 등산객들과 섞이
다 보니-햇빛산악회는 고유의 표지도 없다-내가 일행 중 어디쯤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어디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얘기도 없었다. 홀로 가는 산행이다. 그저 걷는다. 완만한 오르막
의 넙데데한 오른쪽 사면에 대피소가 있다. 어쩌면 1998년 4월 1일 특전사 대원들의 민주지
산 참사의 사후조치시설이 아닐까 한다.
그날 5공수특전여단 대원들이 야간에 천리행군을 하던 도중 민주지산 800m쯤 되는 고지에
서 갑작스러운 악천후로 고립되어 결국 저체온증과 탈진으로 대위 1명과 부사관 5명이 사망
하였다. 이정표에는 대피소에서 민주지산 정상까지 0.3km라고 하는데 그쯤 가면 다시
0.3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 주변을 감쌌다.
정상 주변을 도는 데크 잔도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취사하는 등산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찼
다. 그들이 끓이는 라면 냄새를 맡으니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몇 해 전에 올랐던 스위스 융
프라우 정상 아래 휴게소에서 입맛만 다시던 생각이 난다. 농심은 서울에서 미리 쿠폰을 받
아오면 거기에서 컵라면을 무료로 주었다. 우리 가족은 쿠폰을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그 컵
라면을 날로 먹을 수 없는 노릇이고, 유료로 제공하는 뜨거운 물 값이 컵라면보다 훨씬
비쌌다.
정상 바로 옆의 암봉을 나 혼자 차지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가경을 안주 삼아 탁주를 마신다.
이런 경치를 맨입과 맨눈으로 보기는 아깝다. 탁주 1병을 비운다. 여느 산에서는 20분 남짓
이던 점심시간이 40분 가까이나 걸린다. 중국 송나라 때 문신이었던 구준(寇準, 961~1023)
이 읊은 「화산(華山)」이 민주지산을 똑 닮았다.
하늘만 위에 있을 뿐 只有天在上
더불어 다시 겨룰 산이 없네 更無與山齊
머리 드니 붉은 해에 가깝고 擧頭紅日近
고개 돌려보니 흰 구름만 낮게 깔려있네 回看向雲低
대동여지도 등 고문헌에서는 이 산의 이름이 백운산(白雲山)이라 나온다고 한다. 원래 지역
주민들은 이 산을 민두름산(밋밋한 산)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음차하면서 민두름을
민주(岷周)라 하였다고 한다. 한때 고문헌을 근거로 백운산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운동이 있
었으나 별 호응이 없어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햇빛산악회에 낚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적설을 예상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민
주지산 7시간은 너무했다. 도마령에서 민주지산까지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가 걱정이다. 가급적 천천히 걷되 조망 좋은 곳
에서는 오래 머무르자고 마음먹는다.
14. 백두대간 대덕산과 삼봉산(오른쪽)
15. 멀리 가운데는 계룡산(?)
16-1. 민주지산 정상
16-2. 덕유산, 그 오른쪽 뒤로 적상산이 살짝 보인다
17. 백두대간 대덕산과 삼봉산(오른쪽)
18. 덕유산, 그 오른쪽 뒤는 적상산
19. 대덕산, 삼봉산, 덕유산, 앞은 민주지산 남릉
20. 가야산, 그 오른쪽 앞은 석기봉
21. 멀리 오른쪽 하늘금은 지리산 천왕봉
22. 삼봉산
▶ 석기봉(石奇峰, 1,242.0m), 삼도봉(三道峰, 1,177.7m)
민주지산에서 석기봉까지 이정표 거리 2.2km. 중간에 굴곡이 심한 봉우리가 없는 건 아니지
만 한달음 거리다. 많은 등산객들과 마주치다보니 일일이 수인사 나누기는 무리다. 다행히
등로가 교행이 가능하다. 시간을 죽이자 하고 사면을 누벼 덕순이의 행방을 알아보고 싶지만
오가는 등산객들이 많아 유별난 짓으로 보일 것 같고, 또 땅이 스틱으로는 어림없게 꽁꽁 얼
었다.
먼 데서 바라보면 석기봉은 그 이름에 걸맞게 바위가 뾰족하게 솟았다. 그 왼쪽 뒤로 가야산
또한 석화성이니 서로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약간 도드라진 1,115m봉을 넘고 야트막한 안
부 지나 Y자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세웠다. 오른쪽이 사면을 빙 돌
아 오르는 주등로다. 내 앞에 가던 일단의 젊은이들이 오른쪽으로 가려다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 뒤를 따른다.
설벽인 암벽과 마주친다. 굵은 고정밧줄이 달려 있다. 그래도 그네들은 아이젠을 차야겠다고
서성이고 내가 앞질러간다. 두 차례 가파른 설벽을 오르고 암봉 밑을 돌아 주등로와 만난다.
오늘 산행 유일의 밧줄 슬랩구간이었다. 즐거움은 짧았다. 석기봉.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 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두산백과의 설명은 이해부득이고,
이름 그대로 ‘돌덩어리가 기묘하게 쌓인 봉우리’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등산객들이 물러나기를 한참 기다려 석기봉 정상 표지석을 카메라에 담는다. 석기봉 정상도
전후좌우가 탁 트인 최고의 경점이다. 특히 삼도봉에서 백수리산, 대덕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장릉은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오후 들어 칼바람이 슬슬 일고 추워서라도 움직이기 된다. 삼
도봉 1.2km. 아껴 걷는다. 석기봉을 오른 터수 그대로 뚝뚝 떨어져 내린다.
1,127m봉 올랐다가 수림에 자맥질을 한 번 더하고 나면 삼도봉 정상이다. 삼도 화합의 탑을
너른 데크광장 한가운데 세웠다. 세 마리의 석룡이 입에 여의주를 물고 각도를 향하여 날아
오를 듯하다. 등로 살짝 비킨 삼도봉 암봉에 올라 덕유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장릉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삼마골을 향한다. 완만한 슬로프 눈길이다. 발바닥이 간지럽게 미끄럼 타며 내린다.
╋자 갈림길 안부인 삼마골은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백두대간 삼도봉이나 석기봉, 민주지
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쉬어가기 마련인 양광 가득한 명당이기도 하다. 데크 통로 따라
물한계곡을 향한다. 등로는 대로다. 눈 녹은 데는 먼지가 풀풀 인다. 6.25. 전쟁 때 시체가 즐
비하게 버려졌었다는 무덤골을 지나고 하늘 가린 낙엽송 숲을 내린다.
음주암폭포도 물한계곡 계류도 겨울잠을 곤히 잔다. 석기봉 갈림길을 지나고 민주지산 갈림
길을 지나자 등산객들은 점점 불어나 임도인 등로를 꽉 채운 거대한 행렬이다. 숫제 군중에
떠밀려간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출렁다리로 계류를 건넌다. 황룡사 절집을 드나드는 다리
다. 황룡사가 아담한 절이다. 절집은 삼성각, 대웅전과 관음전뿐인데 주련이 걸리지 않았다.
황룡사 절집을 나선 대로에는 이곳 영동의 특산물인 곶감을 파는 좌판이 늘어섰다. 물한계곡
주차장에 당도하니 15시 48분이다. 산행마감까지는 1시간 12분이 남았다. 하산주나 하려고
근처 몇 군데 음식점을 들렀으나 단체손님을 받느라 개인손님은 사절이다. 일행들이 속속 도
착한다. 모두 하산하게 되면 산행마감시간에 불구하고 서울로 출발하겠단다.
날이 추워지고 있어 산에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테고 하산을 서두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산행마감시간 17시가 가까워서야 하산이 완료된다. 별 도리 없이 이대로
서울에 가서 우리 집 근처의 순대국집에서나 뒤풀이 할 수밖에.
23. 멀리 왼쪽은 가야산, 앞 능선은 삼봉산을 향하는 백두대간
24. 앞은 백두대간, 오른쪽은 대덕산
25. 멀리 오른쪽에 지리산 천왕봉이 조금 보인다
26. 멀리 가운데가 지리산 천왕봉
27. 가야산
28. 석기봉 정상 표지석
29. 멀리 가운데가 가야산
30. 삼도봉을 향하는 백두대간, 그 끄트머리는 대덕산
31. 물한계곡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