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이다. 천 개의 눈이란 무수한 계층의 눈높이를 가졌다는 것이고, 천 개의 손이란 무수한 처방 비법을 가졌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사명을 가졌다. 그는 무수한 계층의 눈높이와 무수한 계층과 소통할 수 있는 처방을 가지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새하고도 소통하고 개, 여우하고도 소통해야 한다. 물고기하고도 소통하고 악마, 권력자, 사형수하고도 소통해야 한다
오만하면서도 결벽증이 있는 갑이란 스님이 있었다. 그는 불교의 모든 경전, 유교의 경전, 기독교의 경전, 노장의 경전을 읽고, 선지식들을 찾아 오랜 동안 참선을 한 결과 부처님 같은 깨달음을 증득(證得)했다고 자부했다. 스스로를 생불이라고 자처하고 한 암자에서 혼자 기거했다.
을이라는 스님은 갑처럼 달통했지만 소탈했는데 갑의 암자 옆에 암자를 짓고 기거하고 있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오래 전부터 그 두 스님을 주시하고 있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오만한 갑 스님을 제도해주기로 작정했다. 번개 치고 천둥이 울고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밤 관세음보살은 아리따운 처녀의 모습으로 비를 흠뻑 맞은 채 갑의 암자로 찾아갔다. 문을 두들기면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하룻밤 자고 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갑은 한 마디로 거연(巨然)하게 말했다. “여기는 불자가 수도하는 암자이므로 여자가 밤을 보낼 수 없습니다. 다른 인가를 찾아가십시오.” 처녀가 애원을 해도 갑은 문을 쾅 닫았다.
처녀는 그 옆에 있는 을 스님의 암자로 찾아갔다. 문을 두들기자 을이 내다보고 깜짝 놀라 “이 비를 맞고 얼마나 추우십니까. 어서 들어오십시오” 하며 안으로 들였다. 그는 자기가 자려고 준비해놓은 따스한 방으로 처녀을 안내하고 거기에서 자라고 말하고, 자기는 문 쪽 마루로 가서 잤다. 밤중에 그가 잠을 깨어보니, 처녀가 들어 있는 그의 방 문틈으로 금빛이 새어 나왔다. 안을 엿보니 관세음보살이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환해지고 그의 몸에서도 금빛이 나기 시작했다. 엎드려 절을 하자 관세음보살이 모습을 감추었다.
을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갑 스님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통곡하면서 참회하고 오만을 버리고 소탈하고 소박하고 자비로운 스님이 되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오만한 스님을 제도할 때는 처녀의 모습을 하고 접근하듯이 시인은 적당한 에로티즘을 도입할 수도 있다.
내 탐진(探眞)의 강에 성스럽고 풋풋한 여신이 살고 있다. 어느 틈에
입 맞추고 언제
춤추며 노래하고 어느 결에
수다를 떨고 언제
침묵할 것인지 어느 때에
슬퍼하고 언제
앙칼지게 울부짖을 것인지 아는 여신은
밤마다 우렁각시 되어 내 침실로 찾아와 질퍽한
사랑의 담금질로 나를 영원의 심연 같은 잠에 빠지게 해놓고 강으로 돌아간다
그 맨살의 향 맑고 달콤한 맛에 환장한 나는
바람 되어 그녀의 물살을 철벌철벅 밟아대고
해오라기 되어 여울물목에서 은어사냥에 몰입하고
먹구름 되어 천둥을 토하며 그녀의 몽실몽실한
은빛 가슴에 비를 뿌리고
산그늘 되어 그녀의 심연에 나를 담그면
아, 타오르네, 우리 사랑
술 익는 해질녘의 타는 노을처럼.
개와 소통하려면 개하고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개는 사람보다 눈높이가 낮은 까닭에 낯선 사람을 보면 으르렁거린다. 어린 아이와 소통하려면 내가 눈높이를 더욱 낮추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개망초꽃과 소통하려면 눈높이를 개망초꽃에 맞추어야 한다. 물론 별과 소통하려면 별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바다와 소통하려면 바다와 눈높이를 맞추고, 사형수와 소통하려면 사형수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시인의 눈이다. < ‘나 혼자만의 시 쓰기 비법(한승원, 도서출판 푸르메, 2014)’에서 옮겨 적음. (2019.07.27.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