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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학(經學)의 무게와 복서(卜筮)의 옷을 걷어낸
이토록 쉬운 주역, 이토록 매력적인 주역 읽기
‘주역’에 대해 우리는 보통 두 가지로 말한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로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읽었다던 경전으로서의 주역과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복서로서의 주역이다. 고전에 약한 일반인이 읽기에 난해하기는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중국 고대인의 암호 같은 64괘의 모양을 해석해야 한다거나, 음양이니 괘사니 효사니 점사니 하며 괘상을 풀이한다고 달아놓은 일관성 없는 내용의 한문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보통의 내공이 아니고서는 해내기 어렵다. 세상사의 변화를 담고 철학ㆍ윤리ㆍ정치상의 해석을 덧붙인 주역이 그동안 우리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유다. 한마디로 주역은 주역 자체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읽기 어렵고 까다로운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파고를 넘고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삶에 어느 정도 문리(文理)가 트이고 나면 그도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주역이 담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와 세상사의 은밀한 은유를 삶에서 몸소 체득한 이들은 주역의 64괘 중 어느 괘에 멈춰 담담히 위로를 받고 자신을 다독일 수도 있으며, 우연히 희망을 얻기도 할 것이며, 무릎을 치며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주역은 그렇게 삶의 정서와 이야기를 품은 문학적 성격도 띠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주역, 나를 흔들다』에서 그동안 주역이 보여온 현학적 모습을 걷어내고, 점서라는 미신적 오명을 벗겨낸다. 내공이 쌓인 자만이 비약을 통해 단순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듯 저자는 64괘의 각 괘상을 순서대로 짚어가되 그중 고갱이만을 추려 해설한다. 과거에 만들어진 주역을 오늘의 삶으로 변환해 던지는 저자의 짧은 메시지는 덤이다.
■ 저자 소개
이지형李知炯
왜 그렇게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며 사느냐 물어온 분들이 몇 있었다. 그런 적 없다. 살다 보니 그리됐을 뿐이다. 남들처럼 주류를 지향했지만, 성정 탓인지 부족한 노력 탓인지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략 난감한 기분으로 살지만 한두 가지 좋은 점은 있다. 변방으로 또 경계로 물러서 있으면, 중심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비애 속에서 가끔씩 삶의 본질 같은 걸 포착한다. 그 정도가 소외당한 존재들의 특권이다. 소외나 마이너리티의 측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주·풍수·주역으로 세상과 사람을 읽어보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게 얘기가 좀 된다.
『강호인문학』, 『꼬마 달마의 마음 수업』, 『공간 해석의 지혜, 풍수』, 『사주 이야기』,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 『소주 이야기』를 썼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를 번역했다.
■ 목차
프롤로그 | 붉기도 해라, 주역이 건넨 홍매화 한 송이
살다 보면 최소한 64개의 상황
하늘의 뜻을 묻다
01 중천 건완벽·순수는 매력 없다
02 중지 곤논리·사유보다는 낌새로 파악
03 수뢰 준머뭇거릴 땐 빈둥빈둥
04 산수 몽모든 시작은 미약하고 어리석으나
05 수천 수내가 찾지 않으면, 그가 나를 찾아온다
06 천수 송싸움의 절반은 지기 마련
07 지수 사갈매나무처럼 굳고 정한 그를 기다리며
08 수지 비어깨를 나란히 할 때, 그 아름다움
압박은 하더라도 퇴로는 내줘야지
09 풍천 소축먹구름 감상법
숫자 9와 6에 담긴 뜻
10 천택 리그러면 안 되겠지만,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면
하늘과 땅을 뒤엎을 기세
11 지천 태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후
12 천지 비수치를 품고
13 천화 동인“혼자서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14 화천 대유태양신 아폴론의 괘
남는 건 역시 자연
15 지산 겸이름을 떨친 후의 겸손
16 뇌지 예시작하는 즐거움
17 택뢰 수마키아벨리의 효사
18 산풍 고재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19 지택 림낮은 데로 임하는 다섯 가지 방법
20 풍지 관바람, 세상을 관조하다 성찰하다
21 화뢰 서합직설과 구체의 힘
22 산화 비붉은 노을에 관한 단상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자, 아주 가끔만
23 산지 박무너지기 마련이다
24 지뢰 복그래도 남은 불꽃 하나
25 천뢰 무망2천 년 전의 ‘렛 잇 비!’
26 산천 대축큰 축적은 큰 몰락의 징후
27 산뢰 이주역, 다이어트를 권하다
28 택풍 대과연상연하에 관한 그들의 견해
4대 난괘
29 중수 감솔라 피데sola fide
30 중화 리눈부신 것들은 아름답지 않다
경계는 무의미할 때가 대부분
31 택산 함19금(禁) 괘
32 뇌풍 항회한이 사라진다
33 천산 둔가끔은 숨는다
34 뇌천 대장힘은 위험하다
35 화지 진서서히, 묵직하게
36 지화 명이어둠의 마음
잠깐, 용 소환
37 풍화 가인말이 꼭 사물을 가리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38 화택 규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괘
39 수산 건파행의 끝에서 반전
40 뇌수 해해결 말고 해소
41 산택 손내가 잃고 그가 얻을 수 있다면…
42 풍뢰 익이기(利己)에 대한 강력 경고
43 택천 쾌은밀하게, 과감하게
44 천풍 구여자가 드세다고 취하지 말라니…
45 택지 췌정情은 사람들 사이로만 흐른다
46 지풍 승한 걸음씩 가도 늦지 않는다
47 택수 곤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48 수풍 정늘 한자리를 지키는 우물처럼
49 택화 혁기다리는 동안, 상황도 나도 변한다
50 화풍 정우주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카오스라서
51 중뢰 진군자연(君子然)은 시대를 막론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
52 중산 간그 자리서 멈춰라, 흔들리지 않는 저 산처럼
53 풍산 점스며들다, 하나가 되다
54 뇌택 귀매때로는 은둔
55 뇌화 풍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사라지는
56 화산 려누구나 떠돈다
57 중풍 손바람의 거처
58 중택 태오랜 자폐와 둔감을 떨치고
59 풍수 환강풍이 바다를 뒤흔들 듯이
60 수택 절현명한 제약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점(占), 너무 믿지 마라
61 풍택 중부당신과 오래도록 술을 나누리라
62 뇌산 소과스칠 뿐, 만나지 않는
63 수화 기제돌이킬 수 없다
64 화수 미제돌이킬 수 있다
걱정하지 않는다
■ 책 속으로
주역은 그런 공간이다. 2,500년 세월로 깊어진 신비로운 담론의 공간. 세속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지만, 세속과는 절연된 심연이다. 새벽의 전동성당, 이역만리 쾰른 대성당의 예배 공간처럼 숙연한 곳이다. 소음 없는 곳, 번잡 없는 곳. 주역을 들추는 순간, 우리는 다른 시간으로 이동한다. 나만의 은밀한 아지트로 진입한다.
(중략) 주역도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 저 멀리로 펼친다. 64개의 괘로 세상사를 집약해, 한눈에 조감하게 해준다. 주역을 펼쳐 드는 순간, 우리는 단숨에 백운대에 오른다. 백운대뿐이랴. 찬바람 떨치며 저 하늘 밑 에베레스트를 넘어가는 독수리의 눈을 갖게 해준다.
(중략) 매혹과 혼돈. 주역은 느릿느릿, 이런저런 점사들을 던지다가 어느 한순간, 예상치 못한 매혹의 메시지를 ‘툭’ 하고 내던진다. 홍매화 한 송이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순간의 매혹은 바로 닫히고 다시 어눌하고 모호한 말들이 펼쳐진다. 한줄기 바람의 소행이다. 주역은 매혹했다가, 바로 혼돈하게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아무 때라도 나를 내려놓고 그 ‘나’란 것을 주역에 한번 맡겨보라. 유·불리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살다 보면 갖가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상황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게 주역이다. - 본문 16쪽
선택보다 중요한 게 절실한 마음이고 절실한 행동이다. 선택은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선택했으면 밀고 나가야 뭐가 이뤄지든 말든 한다. 물론 ‘이건 아니다’ 싶어 선택을 물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차선이든, 차차선이든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가면 대부분은 무언가 이뤄진다. 중요한 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다. 선택보다 선택에 대한 믿음이 훨씬 요긴할 때가 많다. - 본문 27쪽
살다 보면 누구나 여러 번 머뭇거린다. 그럴 땐 그냥 머뭇거리는 게 가장 좋다. 준비가 안 되었거나, 실행할 시기를 못 만났거나, 일을 이미 그르쳤거나 하면 누구나 그런다. 어찌할 줄 모른다.
그런 일 생기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빈둥거리고, 아무 생각 없이 서성일 뿐이지 더 무얼 하겠나. 대안이란 게 빈둥거리고 서성이던 중에 나오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 본문 39쪽(03 수뢰 준)
그 기다림의 이야기는 아주 멀리 교외에서 시작한다. 기약 없는 일이지만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모래사장에서 기다리고, 진흙탕에 빠진 채로도 기다려야 한다. 급기야 피를 흘리며 기다리는 경우까지 이야기한다. 아마도 전쟁의 와중에 뽑은 점사였을 것이다. 물론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즐기면서 기다리는 행복한 경우도 있겠다. 주역은 수천 수 괘에 그런 온갖 기다림의 경우를 망라한다.
그래서 결론은? 기다림을 괴로워하지 말란 얘기다. 저 위 하늘 뜬구름들을 보면서 ‘저게 언젠가는 비로 변해 내리겠지!’ 자신을 위로할 따름이다. 구름이 비가 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 본문 43쪽(05 수천 수)
굳고 정함이 리더의 덕목이 돼야 한다는 데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대중 안에서 대중의 심정을 체득해야 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 괘가 제시하는 리더의 덕목은 ‘땅에 스며든 물’이라는 ‘지수’의 괘상 자체에 있는 것 같다. 땅속의 물은 온몸으로 나무들을 살린다. 나무에 온전히 흡수되는 물의 행동 방식은 자기희생이다. 자신을 버려야 무리가 자신을 따른다. 큰일은 늘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 자기를 버리면, 사람들이 따른다. - 본문 47~48쪽(07 지수 사)
난세를 바꿀 사람은 자고로 이래야 한다. 저 멀리 황량한 변방에 버려진 것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오래된 흙탕의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는 일도 마다치 않아야 한다. 내 주위를 둘러싼 친숙한 것들을 단번에 잊어야 한다. 하늘과 땅을 뒤엎어 평안을 얻으려는 자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 본문 71쪽(11 지천 태)
눈앞의 화려함에 현혹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이렌 요정들의 노랫소리에 빠진 오디세우스의 수하들이 그 옛날 이미 맹목적 취미(趣味)의 치명성을 몸소 보여주지 않았던가.
산화 비의 괘는 아름다움에 던지는 찬사인 동시에 경계다.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은 숭고하면서도 퇴폐적이다. 몰락한 태양의 빛이 주는 느낌은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소박해야 진짜 아름답다- 본문 100쪽(22 산화 비)
살다 보면 무너지기 마련이어서 늘 고생이다. 시인의 말마따나 오늘 저녁이 살기 싫고 내일 아침이 먹기 싫다. 그런 사람 수다하고, 그런 사연 허다하다.
산지(山地) 박(剝)의 괘는 그걸 아주 위태위태하게 괘상으로 쌓아놓았다. 두 동강 난 음의 막대가 아래로 다섯 개 위태롭게 놓였는데 그 위로 양의 막대 하나가 걸쳐 있다. 곧 무너질 거다. 흔들흔들하다가 주저앉을 것이다. 폐허가 되리라. 가냘픈 생 힘겹게 떠받쳐온 기둥 몇 개 널브러진 채로 황량할 거다. - 본문 105쪽(23 산지 박)
주역의 점사에는 숱한 단어와 성어와 문장이 등장한다. 그중 개인적으로 아끼는 단어가 회망(悔亡)이다. ‘회한이 사라진다.’ 후회 없는 삶, 아쉬움을 남기지 않은 삶, 안타까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은 이 세상에 없다. 없어서 더 회망의 경지를 사랑하게 된다. 끝내 이루지 못할 경지이므로, 언제까지라도 마음속에 염원으로 둘 수 있는 영역이므로…. - 본문 137쪽(32 뇌풍 항)
‘득실을 걱정하지 않는다. 가면 길하다. 불리할 게 없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묵직함과 여유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아닐까. 득실 따위 걱정하지 않고, 그래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면 불리할 게 없지 않겠느냐는 낙관이야말로 한 인간을 태양으로 우뚝 세우는 비결 아니겠는가 싶다. - 본문 148쪽(35 화지 진)
진정으로 멋있는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고도 다시 일어나 절뚝거리며 제 갈 길 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파행(跛行)하다가 다시 우뚝 일어나 동지들을 얻고, 명예를 얻고, 잃었던 친구들을 얻고, 마침내 꿈꾸던 한 가지, 불가능할 줄 알았던 그 한 가지를 쟁취하고 마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에서 반전하는 사람이다. 파행의 괘, 절뚝거림의 괘 수산(水山) 건(蹇)의 효사들은 그런 내용이다. - 본문 162쪽(39 수산 건)
꼬인 상황을 푸는 가장 절묘한 자극은 진심이다. 현란한 말과 선물로는 누구도 자극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사람의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일 때가 많다. 나의 진심이 물속에 서서히 퍼지는 한 방울의 자줏빛 물감처럼 다른 이의 마음을 적시고 나면, 나를 괴롭히던 문제도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진다.- 본문 166쪽(40 뇌수 해)
혁명은 됐다 치자. 살다 보면 신경 써야 할 ‘거사’가 꽤 많다. 그런 일이 닥치면 일단 은밀해야 한다. 앞발에 힘 팍 넣고 얼굴 근육 굳히면, 저 멀리서 편하게 졸던 상대방도 발소리에 경직된 분위기에 놀라 무슨 일 있나 점검하게 된다. 몸에선 힘 빼고, 얼굴에선 긴장을 풀어야 한다.그러나 마음가짐은 독할 만큼 결연해야 한다. 그래야 택천 쾌의 메시지에 부응한다. 효사 중에 이런 말도 등장한다. ‘과감하고 과감해야 한다. 홀로 가는 길에 비를 맞더라도.’ 주위에 자기편 하나 없어도, 암울한 상황이 예견되더라도, 필요하면 사지로 튀어나갈 줄 아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추위 속의 소나기로 온몸이 젖고 얼어붙어도 내친걸음 멈추지 않고 돌진하는 저돌 없이 완고한 구체제가 타파될 리 없으니.- 본문 1754~175쪽(43 택천 쾌)
‘만나지 말고, 슬쩍 지나치라’는 말은 은유다. 작은 일(슬쩍 지나치는)은 하더라도, 큰일(직접 만나는)은 삼가야 한다. 괘의 이미지가 점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벼락[雷]이 산(山) 위로 내리치는 중이다. 벼락이 지나갈 때까지 최대한 웅크리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버티는 게 상책이다. 어쩌면 비바람의 와중일 수도 있다. 무리해서 만나려 하지 말고, 슬쩍 지나치는 편이 훗날을 위해 현명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살짝 스쳐 지나간다고, 훗날의 만남 그 개연성이 증발되는 것은 아니다. 만날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라도 만난다. 10년, 20년을 스쳐만 지내고도 끝내는 만나는 사람이 있다.- 본문 238쪽(62 뇌산 소과)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게 우리가 사는 곳 우주다. 그 안팎으로 아무것도 없었을 블랙홀이 터지면서 천변만변으로 세상이 펼쳐졌다. 몇 가지 원소가 융합하고 폭발하면서 수를 불리고, 그게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엮이면서 자연도 만들어내고 사람도 만들어냈다. 자연은 쇠락하고 사람도 사멸하지만, 그걸 이루던 우주의 원소들은 모양을 바꾸고 예상치 못한 결합을 선보이며 이곳저곳에 출현한다. 그래서 사라진 모든 것들은 다시 나타난다. - 본문 244쪽
■ 출판사 리뷰
난세에 읽는 책, 우리 삶의 축소판 64개를 품은 주역의 매력
우리 삶엔 변화에 맞서거나 관조하거나 휘어지거나 포용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언제고 앞에 펼쳐진다. 오래전 사람들은 삶에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주역을 펼쳐 답을 구했다. 주역이야말로 난세의 책이기 때문이다. 주역 64괘는 극악한 고통 속에서 탄생했다. 주역 64괘를 만든 이는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를 창건한 문왕(文王)이다. 은(殷)의 폭정을 뒤엎기 전, 문왕은 은의 주왕(紂王)에 의해 아들을 삶은 곰탕을 억지로 먹어야 했고, 세상과 격리된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감옥 안에서 주역의 64괘를 만들었다. 64괘라는 카테고리 안에 인생의 갖가지 상황을 묶어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난세에 주역을 읽고 답을 구하고자 했다.
과거뿐 아니라 오늘도 다를 바 없다. 견고하다고 믿던 삶이 일순간 흔들리려 할 때, 움켜쥔 것들이 흩어지려 할 때, 손에 닿을 듯한데 닿지 않아 간절함이 더할 때, 저자의 말처럼 내일이 안 왔으면 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거나 진흙탕 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난세를 통과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 혹은 전진을 위해 한 수를 두어야 할 때나 주어진 상황에서 이끗을 생각할 때,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을 듯 화려한 상황에서 주역을 펼쳐 답을 구할 수 있다. 복잡다단한 삶이 고작 64개로 함축될 수 있을까마는, 주역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역은 난세를 타계할 방법도 불고 있는 이 바람에 함께 흔들려 흔들리지 않는 위로와 위안의 자리도 안내한다. 주역은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지천명(知天命)에 주역을 읽고 하늘의 뜻, 만물의 뜻을 터득한 독수리의 눈을 얻다
주역의 본질은 변화에 있다. 하지만 세상사의 역동적인 변화를 말하다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도 말한다. 모순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인생을 좀 산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젊어선 들리지 않던 인생사 소소한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작은 생명에 감동하고, 변함없이 뜨는 태양의 아침과 지는 해의 저녁을 맞으며 변화와 변하지 않는 것, 하늘의 뜻과 만물의 뜻을 깨우쳐 흔들리며 피는 꽃에 주목하게 된다. (이를 저자는 한 송이 홍매화의 개화에 비유했다.) 그러면 그때를 준비한 듯 주역의 64괘는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상황을 자연의 모습이나 현상에 비유하고, 때로는 신비로운 동물들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이야기들로 삶의 지침을 건넨다. 그게 주역이 혜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하늘의 뜻을 어슴푸레 하게라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고도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누적된 인류사가 주역에 실려 있고, 오랜 역사가 누적된 주역은 우리네 삶의 상황을 해석하고 예측하고 버티고 나아갈 혜안을 준다. 그것은 지혜이기도 하고, 계도이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에게 찬바람 떨치며 저 하늘 밑 에베레스트를 넘어가는 독수리의 눈을 갖게 해준다. 주역을 찾는, 주역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문학으로 만나는 주역 해설과 주역 입문
주역 해설서는 딱딱하고 난해한 한문 풀이나 음양오행의 명리(命理)로 파악해 풀이를 한 책, 점괘를 뽑는 복잡한 순서와 해석들이 기본이다. 이러한 주역 해설서를 읽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음양의 두 가지에서 한 가지를 각각 한 번씩 선택해 아래에서부터 위로 세 개를 쌓아 자연을 나타내는 하늘ㆍ호수ㆍ불ㆍ우레ㆍ바람ㆍ물ㆍ산ㆍ땅의 8괘를 만들고, 이 8괘를 아래위로 한 개씩 쌓아 64괘를 만들었다. 복잡한 세상사를 표현하기에는 64괘가 부족할 만도 한데, 주역은 64괘에 모두 정리했다. 이들 64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주역의 해설이다.
이 책은 이런 주역의 괘들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풀어나가지만, 기존의 해설서들처럼 원문을 싣고 괘상의 설명을 모두 달아 해설하는 방식이 아니다. 각 괘에서 대표할 만하거나 특이한 효사, 현대의 삶에서 일어나고 겪는 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효사, 한 번쯤 겪어보거나 주변에서 보았을 법한 효사 들을 뽑아서 이를 문학적 문체로 풀어나간다.
저자는 전작 『강호인문학』에서 이미 주역을 이 세상, 삶의 한복판으로 호출을 시도한 바 있다. 이 책은 그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예민한 독자라면 저자가 64괘를 해설하며 각 행간에 숨겨놓은 위로를 주고받고, 자신을 추스르는 방법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역이 주는 지혜의 중량감에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처음 주역을 읽는 독자를 위해 주역에 대한 기본 소개,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배경지식, 주역을 이해하는 맥락, 용어 등을 중간중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64괘도 괘마다 쉽게 읽고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해설들을 선택했다. 주역이 처음이라 어렵다면 이 책 『주역, 나를 흔들다』에서 주역이 가진 고갱이를 어렵지 않게 읽고 주역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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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역이 쉽다니 저도 흔들릴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