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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빗방울 추천 1 조회 246 13.08.31 12:3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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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사랑 >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기에

언제나 새로우며

최상의 호기심으로 배움에 임하지만

결코 지식을 쌓지 않으며

무엇이 되려고 한 적이 없기에

없음이라고 불리며

끝이 없고 깊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며

 

앎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모름이라고 불리며

그의 힘은 무한하나 한없이 부드러우며

보지 않는 구석이 없고

듣지 않는 소리가 없으며

그의 덕은 높고도 크나

겸손은 한없이 낮으며

 

우리의 사고가 끝나는 곳

단어의 의미가 끝나는 곳에서

어쩌면 만날 수도 있는 그것은

실체로서의 사랑.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 詩-

 

 

<사랑의 길>

 

우리들은 지식의 길은 알지만 사랑의 길은 알지 못한다. 사랑의 길은 知力(지력)을 통해서는 찾아내지 못한다. 온갖 욕망과 야망과 추구를 향한 지력이 끝나야만 사랑이 나타나게 된다. 사랑을 할 때에는 협동하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우월한 개체로서 또는 네가 좋은 위치에 있을 때 사랑한다는 것은 두려움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런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인 것이다.

이익을 추구할 때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공포에서 파생된 착취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성이 없을 때만 사랑이 태어날 수 있다.

 

따라서 너는 이성의 모든 작용, 이성의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할 줄을 알게 된 다음에야 협동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문제에 봉착해도 함께 힘을 모우는 이지적인 기능이 있게 된다.

그 다음에야 하나님이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지금 우리들은 지력을 통해 우상숭배나 마찬가지인 모방을 통해 진리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해를 통해서 자아의 전체구조를 철저하게 버린 다음에야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게 된다.

네가 그것을 찾아갈 수 없고, 비로소 그것이 너를 찾아온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이성의 기능/사랑)-

 

 

 

<개인과 사회>

 

부정적인 사고(思考)는 가장 높은 형태의 이해(理解)이다. 다시 말하면 창조적인 사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에 부정적으로 접근해야 되는데 그 까닭은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 그러니까 사회의 새로운 구조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창조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방일 터이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들은 그것을 긍정적인 체계, 긍정적인 공식, 긍정적인 결론으로서가 아니라 부정적으로 연구하고 검토해야만 한다.

 

사회는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은 왜 붕괴(崩壞)하는가?

개인의 창조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사회를 붕괴시키는 기초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모방(模倣)이고, 붕괴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모방인 본질 그 자체인 지도자들이다.

붕괴되는 사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와 나, 개인이 창조적이냐 아니냐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모방이 있으면 붕괴가 뒤따르고, 권위가 있으면 꼭 모방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든 정신적 심리적 구성이 권위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창조적이 되려면 권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생명력이 넘치는 흥미로 상당히 행복한 그런 순간들, 창조의 순간에는 반복이라는 의식도 없고 흉내 낸다는 의식도 없어진다. 그런 순간이란 항상 새롭고 신선하고 창조적이고 행복하다.

따라서 사회를 붕괴시키는 기초적인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권위의 숭배인 흉내 내기임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자유인인 되기 위하여(삶의 문제에 대하여 /개인과 사회)-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온 세상을 뒤져 선각자와 그들의 사상체계(思想體系)를 추구하고, 이런저런 내용을 다룬 서적들을 읽는 따위는 온 세상을 다 방황하고 돌아다녀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하기만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철저히 헛되고 공허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철저히 인식(認識)하지 못하므로 우리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과정을 명확하게 알기 시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명확성은 그만큼 더 많아진다. 자신에 관한 지식은 끝이 없어서 성취는 있을지언정 종결에는 다다를 수가 없다. 그것은 끝없는 강이다.

그 강을 연구하는 사이에 그 강으로 점점 들어가는 사이에 인간은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억지로 행하는 자아(自我)수련(修練)이 아니라, 자아에 관하 지식을 통해 마음이 고요해질 때만 고요함 속에서 그 침묵(沈?) 속에서 현실은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이해(理解)가 없고 이런 경험이 없다면 무턱대고 책을 읽고 대화에 끼어들고 선전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린애 같은 짓이어서 그것은 별로 의미 없는 활동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반면에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있고, 따라서 그 창조적인 행복, 이성의 산물이 아닌 그 무엇의 경험을 겪을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들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관계에서 그러니까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변혁(變革)을 이루어질 수 있겠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자유인인 되기 위하여(삶의 문제에 대하여/무엇을 추구하는가)-

 

 

 

홀로 있는 것이 좋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세상의 저자거리를 걷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다. 봄의 물줄기와 녹아내리는 눈으로 가득한, 복잡하고 시끄러운 산 개울 옆으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홀로 있는 것은 홀로 아름답게 서 있는 그 고독한 나무를 인식하는 것이다.

거리에 있는 사람의 외로움은 삶의 아픔이다. 그는 결코 홀로이거나, 멀리 떨어지거나, 접촉되지 않거나, 취약하지 않다.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끊임없는 고난을 낳는다.

표현에 대한 요구, 그 좌절과 고통을 수반하는, 무언가 표현해야겠다는 요구는 [지식인이 아니고] 거리를 걷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다. 그는 결코 홀로가 아니다. 슬픔은 그 외로움의 움직임이다. ”

(p 256, 크리슈나무르티의 일기, 1973년 9월 15일)

 

 

"진리의 아름다움과 그 미묘함은 신앙과 교리에 들어 있지 않으며, 인간이 찾을 수 있는 곳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으로 가는 통로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정된 지점, 어떤 안식처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사랑은 측정될 수 없으며, 우리가 그것을 쥐거나 체험할 수도 없다. 그것은 사용되고 놓아두는 시장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승려나 가난한 사람은 그것에 가깝지 않으며, 부자도 마찬가지이다. 지성적인 사람도 재능 있는 사람도 그것을 만질 수 없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그것에 가까워 본적이 없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라, 그러면서도 세상을 살아라.“

(p264, 크리슈나무르티의 일기 1973년 9월 27일)

 

 

“우리는 세계입니다. 세계는 여러분과 나이고 세계는 여러분과 나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창조해 왔습니다...... 세계는 당신이고 당신은 세계입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깊이, 낭만적으로가 아니고 지성적으로가 아니고, 실제적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전 지구적 문제임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문제나 여러분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고 인간 문제입니다...... 사고는 과거로부터의 움직임의 반응입니다. 과거는 체험과 지식으로서 두뇌 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고는 단편적입니까?

왜 사고가 사람들 사이에 분리를 - 기독교도들, 불교도들,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자본주의자들, 신자들, 불신자들 등 - 구축해 왔습니까? 분열적이지 않은 단편적이지 않은 그 속에 후회, 아픔, 슬픔이 들어 있지 않는 사고에 기초하지 않는 행동이 있습니까?” (P497)

 

 

"세상 속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들 속에서, 즉 우리가 곧 세계이므로-

진행되고 있는 행동, 움직임을 본 다음에 결론에 기초를 두지 않는 행동이 있는지

- 결론은 사고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다시 단편적인 이상에 기초하지 않는 행동, 편견에 기초하지 않는 행동, 매 순간 전체적이고 완전하여 그 행동 속에는 후회, 슬픔, 아픔이 없는, 그런 행동이 있는지 찾아내기를 원합니다.“

(P500)

 

 

" 사고가 조합한 모든 사물들은 실제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사고는 산이나 나무를 조립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하나의 실재입니다.

모든 신들, 모든 의례들, 사고에 의해서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해악은 하나의 실재이며, 폭력, 잔인성, 무감각, 파괴는 사고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고에 의하여 조립된 하나의 실재입니다.

산들, 나무들, 강들, 하늘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실재이지만, 사고에 의하여 조립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고에 의하여 조립된 실재이지만 신경증적인 것입니다. 신경증은 하나의 실재입니다. 그런데 진리는 실재가 아닙니다. 사고는 결코 진리를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리와 실재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

(P 504)

 

 

“ 여러분은 왜 여기에 왔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 문제에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탐구가 서로 다르고, 탐구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탐구대상이 부단히 변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영적 스승이라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다른 영적 스승으로 옮겨가는 습관, 다양한 조직이나 단체에 가입하는 습관, 체계를 추종하는 습관을 가져왔습니다.

달리 말해서 점점 더 큰 만족, 흥분을 가져다주는 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한 사상학파에서 다른 학파로, 한 사상체계에서 다른 체계로, 한 스승에서 다른 스승으로 가는 과정을 여러분은 진리 탐구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삶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삶의 의의, 삶의 투쟁을 헤아리면서, 그때마다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지금 나는 여러분이 내 강연의 끝에 어떤 것을 찾았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발견한 순간, 이미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탐구도 그치고 맙니다.“

 

 

 

Freedom From The Known

 

In the life we generally lead there is very little solitude. Even when we are alone our lives are crowded by so many influences, so much knowledge, so many memories of so many experiences, so much anxiety, misery and conflict that our mind become duller and duller, more and more insensitive, functioning in a monotonous routine. Are we ever alone? Or are we carrying with us all the burdens of yesterday?

 

보통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일상 생활에 고독이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조차도, 내면에는 엉청나게 많은 영향들 하며, 수많은 지식들 그리고 경험 따위들로서 아주 시끌벅적거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또 그만큼이나 많은 기억들, 그리고 걱정과 괴로움과 갈등들 따위로 아주 복잡하지요. 그러니 제대로 올바르게 생각할 수도 없어져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무뎌지고 자꾸만 둔감해져서 단조롭게 틀에 박힌대로만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정말로 혼자 되어본 적이 있기나 할까요? 아니면 언제나 어제의 짐만 지고 다니는 것일까요?

 

There is a rather nice story of two monks walking from one village to another and they come upon a young girl sitting on the bank of a river, crying. And one of the monks goes up to her and says, `Sister, what are you crying

수도사 두 사람에 대한 것으로 상당히 괜찮은 얘기가 하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니다가 어느 강가에 닿았을 때, 왠 여자 하나를 만났답니다. 그 여자는 강둑에 앉아서 울고 있었지요. 그래 그 수도사 중에 한 사람이 그 여자한테로 가서 물어보았답니다. "자매여, 왜 울고 있느뇨?" 하고 말입니다.

 

She says, `You see that house over there across the river? I came over this morning early and had no trouble wading across but now the river has swollen and I can"t get back. There is no boat." `Oh," says the monk, `that is no problem at all", and he picks her up and carries her across the river and leaves her on the other side. And the two monks go on together.

그래 그 여자가 말하기를, "저기 강 건너 집이 하나 보이지요? 오늘 아침 일찌기 걸어서 강을 건너 올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물이 불어서 건너 갈 수가 없어졌어요. 배도 없잖아요." 한단 말이지요. 그러자 그 수도사는, "오, 아무 것도 아니구만." 하고는, 그 여자를 달랑 등에 업고는 강을 건너서 내려다 주었지요. 그러고는 다시 그들의 길을 갔답니다.

 

After a couple of hours, the other monk says, `Brother, we have taken a vow never to touch a woman. What you have done is a terrible sin. Didn"t you have pleasure, a great sensation, in touching a woman?" and the other monk replies, `I left her behind two hours ago. You are still carrying her, aren"t you?"

그런데 한 두어 시간 뒤에 그 다른 수도사가 말하기를, "형제여, 우리는 여자에게 손도 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는데, 그대는 소름끼치는 죄악을 저질렀다오. 여자를 만지면서 그대는 야리꾸리한 쾌락을, 그 엄청난 감각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오?" 한단 말이에요. 그래 그 수도사가 대답한다는 말이, "나는 그 여자를 두 시간 전에 강 건너 내려 놓았오. 그런데 그대는 아직도 업고 오는구료. 그렇지 않소?" 했다는 얘기에요.

 

That is what we do. We carry our burdens all the time; we never die to them, we never leave them behind. it is only when we give complete attention to a problem and solve it immediately - never carrying it over to the next day, the next minute - that there is solitude. Then, even, if we live in a crowded house or are in a bus, we have solitude. And that solitude indicates a fresh mind, an innocent mind.

그게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짓이지요. 우리는 항상 우리의 짐을 지고 다니거든요. 결코 그 짐에 대해서 죽어버리지를 않아요. 그걸 지나간 일로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오로지 문제에 대해서 완벽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 자리에서 풀어버릴 때라야 만이, 다음 날까지, 다음 순간까지 문제를 지고 가지 않을 때라야 만이, 거기에 고독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북적대는 집에서 살거나 버스를 타고 가거나 간에 항상 고독을 지니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 그 고독은 새롭고 활기찬 마음, 즉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마음임을 나타내어 주는 것입니다.

 

 

 

 

Truth is a pathless land
진리는 길 없는 길입니다

The Dissolution of the Order of the Star
별의 교단 해산


The Order of the Star in the East was founded in 1911 to proclaim the coming of the World Teacher. Krishnamurti was made Head of the Order. On August 2, 1929, the opening day of the annual Star Camp at Ommen, Holland, Krishnamurti dissolved the Order before 3000 members. Below is the full text of the talk he gave on that occasion.

동방의 별 교단은 인류의 스승이 재림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1911년에 창설되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 교단의 교주 자리에 앉혀졌다. 1929년 8월 2일, 네덜란드의 옴멘에서 있었던 연례 캠프모임 개막일에, 크리슈나무르티는 3000명의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단을 해산했다. 다음은 당시 그가 행한 연설의 전문이다.

 


“We are going to discuss this morning the dissolution of the Order of the Star. Many people will be delighted, and others will be rather sad. It is a question neither for rejoicing nor for sadness, because it is inevitable, as I am going to explain.
우리는 오늘 아침, 별의 교단 해산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뻐하시리라 봅니다. 물론 다소 슬퍼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로써 결코 즐거워하거나 슬퍼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You may remember the story of how the devil and a friend of his were walking down the street, when they saw ahead of them a man stoop down and pick up something from the ground, look at it, and put it away in his pocket. The friend said to the devil, “What did that man pick up?” “He picked up a piece of Truth,” said the devil. “That is a very bad business for you, then,” said his friend. “Oh, not at all,” the devil replied, “I am going to help him organize it.
아마 여러분은 이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느날 악마와 그의 친구가 길을 걸어가다, 그들 앞에서 한 남자가 허리를 굽혀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바라보더니, 호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가 악마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뭘 주웠지?” 그러자“한 조각의 진리를 주웠다네”라고 악마가 말했습니다. “자네에겐 안된 일이군”라고 친구가 말했지만, 악마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 전혀 그렇지 않아. 난 저 사람이 그걸 조직화하도록 할 거야”.

“I maintain that Truth is a pathless land, and you cannot approach it by any path whatsoever, by any religion, by any sect. That is my point of view, and I adhere to that absolutely and unconditionally. Truth, being limitless, unconditioned, unapproachable by any path whatsoever, cannot be organized; nor should any organization be formed to lead or to coerce people along any particular path. If you first understand that, then you will see how impossible it is to organize a belief. A belief is purely an individual matter, and you cannot and must not organize it. If you do, it becomes dead, crystallized; it becomes a creed, a sect, a religion, to be imposed on others. This is what everyone throughout the world is attempting to do. Truth is narrowed down and made a plaything for those who are weak, for those who are only momentarily discontented. Truth cannot be brought down, rather the individual must make the effort to ascend to it. You cannot bring the mountain-top to the valley. If you would attain to the mountain-top you must pass through the valley, climb the steeps, unafraid of the dangerous precipices.
저는 진리란 길 없는 길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어느 종교, 어느 종파를 통해서도 진리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견해이며, 이에 대한 저의 신념은 확고하고 절대적입니다. 진리란 무한하고 무조건적이며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다가갈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위해 단체를 조직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단체를 설립해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방법을 따르도록 인도하거나 강요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선 이것을 이해하신다면, 그러면 단체를 통해 믿음을 구현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순전히 개인의 문제이기에, 단체를 통해 구현할 수도, 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진리는 죽어, 결정체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교리, 종파, 종교가 되어버리고,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도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왜소해져, 심약한 사람들, 그저 일시적인 불만에 사로잡혔을 뿐인 사람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각자 그곳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산 꼭대기를 계곡 아래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산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곡을 넘고 절벽도 타오르고 위험한 낭떠러지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So that is the first reason, from my point of view, why the Order of the Star should be dissolved. In spite of this, you will probably form other Orders, you will continue to belong to other organizations searching for Truth. I do not want to belong to any organization of a spiritual kind, please understand this. I would make use of an organization which would take me to London, for example; this is quite a different kind of organization, merely mechanical, like the post or the telegraph. I would use a motor car or a steamship to travel, these are only physical mechanisms which have nothing whatever to do with spirituality. Again, I maintain that no organization can lead man to spirituality.

따라서, 이게 바로 제 견해로는, 별의 교단이 해산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여러분들은 다른 교단을 만들지도 모르며, 진리를 찾는 다른 단체에 계속 가입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그 어떤 단체에도 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어떤 단체를 활용하기는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런던에 갈 경우 런던까지 저를 데려다 줄 그러한 단체 말이죠. 하지만 이는 편지를 부치고 전보를 치는 일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성질의, 그저 기능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단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행할 때는 자동차나 배도 이용할 것인데, 이런 것들은 영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물리적인 구조물일 뿐입니다. 하여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어떤 단체도 인간을 영성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If an organization be created for this purpose, it becomes a crutch, a weakness, a bondage, and must cripple the individual, and prevent him from growing, from establishing his uniqueness, which lies in the discovery for himself of that absolute, unconditioned Truth. So that is another reason why I have decided, as I happen to be the Head of the Order, to dissolve it. No one has persuaded me to this decision.

만일 이러한 목적으로 단체를 만든다면, 그 단체는 개개인이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목발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결함 덩어리, 족쇄가 되어, 틀림없이 개개인을 불구로 만들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성장하는 걸,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구현하는 걸 방해할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고유한 가치는 자기 스스로 절대적 진리를 발견하는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단의 교주 자리에 앉게 된 제가, 이를 해산하기로 마음먹은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도록 설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This is no magnificent deed, because I do not want followers, and I mean this. The moment you follow someone you cease to follow Truth. I am not concerned whether you pay attention to what I say or not. I want to do a certain thing in the world and I am going to do it with unwavering concentration. I am concerning myself with only one essential thing: to set man free. I desire to free him from all cages, from all fears, and not to found religions, new sects, nor to establish new theories and new philosophies. Then you will naturally ask me why I go the world over, continually speaking. I will tell you for what reason I do this: not because I desire a following, not because I desire a special group of special disciples. (How men love to be different from their fellow-men, however ridiculous, absurd and trivial their distinctions may be! I do not want to encourage that absurdity.) I have no disciples, no apostles, either on earth or in the realm of spirituality. “Nor is it the lure of money, nor the desire to live a comfortable life, which attracts me. If I wanted to lead a comfortable life I would not come to a Camp or live in a damp country! I am speaking frankly because I want this settled once and for all. I do not want these childish discussions year after year.

이는 무슨 대단한 행위가 아닙니다. 전 추종자를 원치 않습니다. 이것 뿐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추종하는 바로 그 순간 진리 따르는 일은 멈추고 맙니다. 제 말씀에 여러분이 귀 기울이든 그렇지 않든,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을 하는 데 흔들림 없이 매진할 것입니다. 전 오로지 한 가지 근원적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종교나 종파를 만드는 게 아닌, 새 이론이나 새 철학을 세우는 게 아닌, 인간들을 모든 속박,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열망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연스레 물을 것입니다. 어째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계속해서 연설을 하느냐고요. 제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 말씀드리도록 하죠. 추종자를 원해서도 아니고, 특별한 제자들로 이루어진 특수한 단체를 원해서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찌 그토록 다른 동료들과는 달라 보이고자 하는지. 그 구분이란 게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 것 없고, 허튼 것이라고 할지라도요. 전 그 같은 엉터리 짓을 부추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상이든 영적인 세계이든 제겐 제자가 없습니다. 사도도 없습니다. 돈의 현혹이나 편안한 삶을 살고자하는 갈망이 저를 유혹해서도 아닙니다. 편안한 삶을 살고자 했더라면, 이 캠프모임에 오지도, 이처럼 습기 찬 나라에 와 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이를 완전히 결말 짓고자 이처럼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해를 거듭해가며 이 같은 유치한 논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One newspaper reporter, who interviewed me, considered it a magnificent act to dissolve an organization in which there were thousands and thousands of members. To him it was a great act because, he said: “What will you do afterwards, how will you live? You will have no following, people will no longer listen to you.” If there are only five people who will listen, who will live, who have their faces turned towards eternity, it will be sufficient. Of what use is it to have thousands who do not understand, who are fully embalmed in prejudice, who do not want the new, but would rather translate the new to suit their own sterile, stagnant selves? If I speak strongly, please do not misunderstand me, it is not through lack of compassion. If you go to a surgeon for an operation, is it not kindness on his part to operate even if he cause you pain? So, in like manner, if I speak straightly, it is not through lack of real affection, on the contrary.

저를 인터뷰한 한 신문기자는 수천 수만의 회원을 가진 단체를 해산하는 건 대단한 조치이라고 하더군요. 그에게는 대단한 조치였겠죠.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까요. “앞으로 뭘 하실 것인가요, 어떻게 사실 것인지요? 추종자도 없을 테고, 사람들도 더 이상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을 텐데요.” 그러나 저는 영원에 귀 기울이고, 영원을 살며, 고개를 그리로 향한 분이 단 다섯 분만이라도 계신다면 족합니다. 이해하지도 못 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그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원치도 않고, 아니 오히려 새로운 것을 그들 자신의 메마르고, 고리타분한 자아에 억지로 맞추려 들 것입니다. 제 말씀이 좀 심하더라고, 오해를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 입장에서는 통증이 좀 있다 하더라도 수술을 하는 게 친절 아닐까요? 이와 마찬가지로,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이는 참된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As I have said, I have only one purpose: to make man free, to urge him towards freedom, to help him to break away from all limitations, for that alone will give him eternal happiness, will give him the unconditioned realization of the self. “Because I am free, unconditioned, whole, not the part, not the relative, but the whole Truth that is eternal, I desire those, who seek to understand me to be free; not to follow me, not to make out of me a cage which will become a religion, a sect. Rather should they be free from all fears; from the fear of religion, from the fear of salvation, from the fear of spirituality, from the fear of love, from the fear of death, from the fear of life itself. As an artist paints a picture because he takes delight in that painting, because it is his self-expression‎!!!, his glory, his well-being, so I do this and not because I want anything from anyone.

이미 말씀드렸듯이, 목적은 단 하나뿐입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 자유를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것, 그를 도와 온갖 속박을 깨뜨리는 것. 이것만이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자아에 대한 온전한 깨달음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유롭고, 온전 무결하기에, 부분에 치우치거나, 상대적이지도 않으며, 영원하고 온전한 진리이기에, 저를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이 자유로와지기를, 저를 추종하지 말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통하여 종교, 종파가 되어버리고 마는 감옥을 만들지 마시길 소망합니다. 반면 종교에 대한 두려움, 구원에 대한 두려움, 영성에 대한 두려움, 사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화가가 그림 그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기에, 그게 자기 표현이고, 영광이자 행복이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처럼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원해서가 아닙니다.


“You are accustomed to authority, or to the atmosphere of authority, which you think will lead you to spirituality. You think and hope that another can, by his extraordinary powers--a miracle, transport you to this realm of eternal freedom which is Happiness. Your whole outlook on life is based on that authority. “You have listened to me for three years now, without any change taking place except in the few. Now analyze what I am saying, be critical, so that you may understand thoroughly, fundamentally. When you look for an authority to lead you to spirituality, you are bound automatically to build an organization around that authority. By the very creation of that organization, which, you think, will help this authority to lead you to spirituality, you are held in a cage.

여러분은 권위자, 또는 권위자 주변의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그가 여러분을 영성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초능력 -- 기적의 힘으로 행복이라고 하는 영원한 자유의 왕국으로 여러분을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는 전체 시각은 그 권위라고 하는 것 위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3 년 동안 제 얘기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젠 제가 하는 얘기를 분석하고, 비평하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온전하고 본질적인 이해에 도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을 영성으로 이끌어줄 권위자를 찾을 때,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그 권위자 주변에 단체를 설립하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단체를 설립함으로써, 이 분 권위자를 도와 여러분을 영성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여러분은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If I talk frankly, please remember that I do so, not out of harshness, not out of cruelty, not out of the enthusiasm of my purpose, but because I want you to understand what I am saying. That is the reason why you are here, and it would be a waste of time if I did not explain clearly, decisively, my point of view.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러는 것은 냉정하고 잔인해서가 아니라, 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열정에서도 아닌, 여러분이 제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시길 원하기 때문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 여기에 계신 이유이며, 만일 제 견해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단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For eighteen years you have been preparing for this event, for the Coming of the World Teacher. For eighteen years you have organized, you have looked for someone who would give a new delight to your hearts and minds, who would transform your whole life, who would give you a new understanding; for someone who would raise you to a new plane of life, who would give you a new encouragement, who would set you free and now look what is happening! Consider, reason with yourselves, and discover in what way that belief has made you different, not with the superficial difference of the wearing of a badge, which is trivial, absurd. In what manner has such a belief swept away all the unessential things of life? That is the only way to judge: in what way are you freer, greater, more dangerous to every Society which is based on the false and the unessential? In what way have the members of this organization of the Star become different?

18 년 동안 여러분은 이 행사를, 즉 인류 스승의 재림을 준비해왔습니다. 단체를 만들어, 여러분 가슴과 마음에 새로운 희열을 가져다 줄 누군가를 18년간 기다려왔습니다. 여러분을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끌어 올려줄 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줄 이, 여러분을 해방시켜줄 이를 말이죠. 하지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보십시오. 찬찬히 살펴보시고 꼼꼼히 따져 보십시오. 그러한 믿음이 어떤 점에서 여러분을 바꿔놓았는지 찾아보십시오. 뱃지를 차는 것과 같은 피상적인 차이, 그런 엉터리 짓 말고요. 어떤 점에서 그러한 믿음이 인생의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쓸어내버렸는지요? 그것만이 판단의 유일한 잣대입니다. 어떤 점에서 여러분은 보다 자유로와지고, 보다 위대해지고, 거짓과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기초한 모든 사회에 더 위험해졌나요? 어떤 점에서 교단의 회원들은 달라졌나요?


“As I said, you have been preparing for eighteen years for me. I do not care if you believe that I am the World Teacher or not. That is of very little importance. Since you belong to the organization of the Order of the Star, you have given your sympathy, your energy, acknowledging that Krishnamurti is the World Teacher partially or wholly: wholly for those who are really seeking, only partially for those who are satisfied with their own half-truths. “You have been preparing for eighteen years, and look how many difficulties there are in the way of your understanding, how many complications, how many trivial things. Your prejudices, your fears, your authorities, your churches new and old all these, I maintain, are a barrier to understanding. I cannot make myself clearer than this. I do not want you to agree with me, I do not want you to follow me, I want you to understand what I am saying.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은 18년간 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왔습니다. 제가 인류의 스승이라고 믿든 그렇지 않든,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별의 교단이라고 하는 단체에 가입해 있기에, 크리슈나무르티가 인류의 스승이라는 점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적으로 인정하며 그에 공감하고,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진정으로 찾아나선 이들은 전적으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의 반쪽짜리 진리에 만족한 이들은 그저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며 말이죠. “여러분은 18년 동안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얽히고 ?힌 사소한 일들이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지. 편견, 두려움, 권위자, 교회, 단언컨데, 새로운 것이든 낡은 것이든 간에 이 모두가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게 동의하기를 바라지 않고, 저를 추종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얘기를 이해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This understanding is necessary because your belief has not transformed you but only complicated you, and because you are not willing to face things as they are. You want to have your own gods?new gods instead of the old, new religions instead of the old, new forms instead of the old?all equally valueless, all barriers, all limitations, all crutches. Instead of old spiritual distinctions you have new spiritual distinctions, instead of old worships you have new worships. You are all depending for your spirituality on someone else, for your happiness on someone else, for your enlightenment on someone else; and although you have been preparing for me for eighteen years, when I say all these things are unnecessary, when I say that you must put them all away and look within yourselves for the enlightenment, for the glory, for the purification, and for the incorruptibility of the self, not one of you is willing to do it. There may be a few, but very, very few.

이러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복잡다난하게 만들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만의 신을 갖고자 합니다. 낡은 신 대신 새로운 신을, 낡은 종교 대신에 새로운 종교를, 낡은 유형 대신에 새로운 유형을 원합니다. 모두 다같이 가치없고, 모두 다 장애물일 뿐이며, 모두 다 여러분을 제한하고, 모두 다 여러분께 목발이 될 뿐입니다. 낡은 영적 구분대신 새로운 영적 구분을 하게 되었고, 낡은 우상 대신 새로운 우상을 섬기게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의 영성을 다른 누군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복을 다른 누군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깨달음을 다른 누군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비록 저를 맞이하기 위해 18년 동안 준비해왔지만, 이것들 모두 필요없으니, 이들 모두를 치워버려야만한다고 했을 때, 깨달음, 영광, 영혼의 정화를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 내면을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 중 어느 분도 그렇게 하려 들지 않고 있습니다. 몇 분 계실지도 모르지만, 아주 아주 극소수이죠.


So why have an organization?

“Why have false, hypocritical people following me, the embodiment of Truth? Please remember that I am not saying something harsh or unkind, but we have reached a situation when you must face things as they are. I said last year that I would not compromise. Very few listened to me then. This year I have made it absolutely clear. I do not know how many thousands throughout the world members of the Order have been preparing for me for eighteen years, and yet now they are not willing to listen unconditionally, wholly, to what I say.

그렇다면 단체를 왜 만든다는 말입니까?

뭣 때문에 진리의 화신인 저를 그런 거짓되고 위선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추종토록 하겠습니까? 잔인하고 냉혹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주시하십시오.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작년에 얘기했었습니다. 당시 극소수의 분만이 귀기울이더군요. 올해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전세계에 걸쳐 얼마나 많은 회원분들이 18년간 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이제 그분들은 제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As I said before, my purpose is to make men unconditionally free, for I maintain that the only spirituality is the incorruptibility of the self which is eternal, is the harmony between reason and love. This is the absolute, unconditioned Truth which is Life itself. I want therefore to set man free, rejoicing as the bird in the clear sky, unburdened, independent, ecstatic in that freedom . And I, for whom you have been preparing for eighteen years, now say that you must be free of all these things, free from your complications, your entanglements. For this you need not have an organization based on spiritual belief. Why have an organization for five or ten people in the world who understand, who are struggling, who have put aside all trivial things? And for the weak people, there can be no organization to help them to find the Truth, because Truth is in everyone; it is not far, it is not near; it is eternally there.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의 목표는 인류를 온전히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아울러 영적 숭고함은 자아의 부패하지 않는 순결성에 있으며, 이는 영원한 것이고, 이는 곧 이성과 사랑의 조화라고 단언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절대적이고 온전한 진리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인간을 해방시켜, 그들로 하여금 가벼운 몸짓으로 거리낌없이 창공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18년간 맞이하고자 준비해온 그 사람인 저는 이제 말씀드립니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고, 여러분을 옭아매고, 얽어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이를 위해 영적 믿음에 기초한 단체는 필요치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고, 하찮은 것들에 맞서, 그것들 모두를 제껴버린 다섯명 혹은 열명을 위해서라면 뭐하러 단체를 만드나요? 그리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단체는 없습니다. 진리는 모든 이들 안에 있으며, 멀리 있지도 않고, 가까이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Organizations cannot make you free. No man from outside can make you free; nor can organized worship, nor the immolation of yourselves for a cause, make you free; nor can forming yourselves into an organization, nor throwing yourselves into works, make you free. You use a typewriter to write letters, but you do not put it on an altar and worship it. But that is what you are doing when organizations become your chief concern. “How many members are there in it?” That is the first question I am asked by all newspaper reporters. “How many followers have you? By their number we shall judge whether what you say is true or false.” I do not know how many there are. I am not concerned with that. As I said, if there were even one man who had been set free, that were enough.

단체는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지 못합니다. 외부의 그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지 못합니다. 단체에서 받들어 모시는 걸 숭배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그 단체의 대의에 몸바친다해도 그게 자신을 해방시켜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끼리 단체를 만들어보아도, 그 단체의 일에 매진한다 하여도, 그게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지는 않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타자기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타자기를 제단에다 모셔놓고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주된 관심사가 단체일 때, 여러분은 바로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원이 얼마나 되죠?” 이 질문은 모든 신문기자들이 제게 제일 먼저 하는 질문입니다. “추종자가 몇이나 되죠? 그 숫자를 보면 당신이 하는 말씀이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몇 명인지 모릅니다. 그런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스스로를 해방시킨 이가 단 한 분만이라도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Again, you have the idea that only certain people hold the key to the Kingdom of Happiness. No one holds it. No one has the authority to hold that key. That key is your own self, and in the development and the purification and in the incorruptibility of that self alone is the Kingdom of Eternity.

거듭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특정한 사람만이 행복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 열쇠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여러분 자신이며, 자기 자신을 승화, 정화하여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상태에 이를 때, 거기에 영원의 왕국이 있습니다.


“So you will see how absurd is the whole structure that you have built, looking for external help, depending on others for your comfort, for your happiness, for your strength. These can only be found within yourselves. “You are accustomed to being told how far you have advanced, what is your spiritual status. How childish! Who but yourself can tell you if you are beautiful or ugly within? Who but yourself can tell you if you are incorruptible? You are not serious in these things.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주변에 쌓아올린 전체 구조물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으며, 다른 사람에 기대 자신의 안락, 행복, 삶의 동력을 찾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 자신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단계까지 나아갔고, 현재 어떤 영적 상태에 있는지, 누군가로부터 가르침 받는 데 여러분은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유치한 짓입니까! 자기 내면이 아름다운지 추한지에 대해 여러분 자신 말고 어느 누가 가르쳐줄 수 있나요? 자신이 영원히 부패하지 않을지, 여러분 자신 말고 누가 말해줄 수 있나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But those who really desire to understand, who are looking to find that which is eternal, without beginning and without an end, will walk together with a greater intensity, will be a danger to everything that is unessential, to unrealities, to shadows. And they will concentrate, they will become the flame, because they understand. Such a body we must create, and that is my purpose. Because of that real understanding there will be true friendship. Because of that true friendship which you do not seem to know there will be real cooperation on the part of each one. And this not because of authority, not because of salvation, not because of immolation for a cause, but because you really understand, and hence are capable of living in the eternal. This is a greater thing than all pleasure, than all sacrifice.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분들은 다 함께 열정적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그림자와 같이 비실재적인 모든 것들에 위험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분들이 결집하여, 불꽃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구심체를 우리는 만들어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이해가 있기에, 참된 우정이 싹틀 것입니다. 그러한 참된 우정이 있기에, 여러분이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각자 역할을 통한 진정한 협력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권위 때문이 아니고, 구원 때문도 아니며, 대의를 위한 희생 때문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영원 속에서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값지며, 그 어떤 희생보다도 위대한 일입니다.


“So these are some of the reasons why, after careful consideration for two years, I have made this decision. It is not from a momentary impulse. I have not been persuaded to it by anyone. I am not persuaded in such things. For two years I have been thinking about this, slowly, carefully, patiently, and I have now decided to disband the Order, as I happen to be its Head.

그래 이것들이 2 년 간에 걸쳐 신중하게 숙고한 끝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몇몇 이유입니다. 일시적 충동으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가 설득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일을 함에 있어서는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2년여 동안 저는 이 문제를 천천히, 신중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저는 제가 교주로 있게된 그 교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You can form other organizations and expect someone else. With that I am not concerned, nor with creating new cages, new decorations for those cages. My only concern is to set men absolutely, unconditionally free.”

여러분은 다른 단체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에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새로운 새장을 만드는 일에도, 그 새장을 새롭게 장식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유일한 관심사는 인간을 완전히, 절대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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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8.31 12:51

    첫댓글 한 34,5년전 '아는 것으로 부터의자유-Freedom from the known'라는 책이 번역 되면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크리슈나무티,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으로 자기를 바라보라는 그의 외침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군요.
    아직 읽을 기회가 없었던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Truth is pathless land'는 '진리는 길이 없는 대지이다'라고 읽으시면 조금 더 필자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결국 진리에 도달 하는데는 왕도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진리에 도달 할 수 있거든요.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13.09.01 00:28

    좋은 시 올려 주셨군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기에
    언제나 새로우며... 고맙습니다^^

  • 13.09.04 08:24

    자연은....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 자연의 고마움에 아침 문안인사를 드립니다...출발!!
    크리슈나무르티.... 자기를 안다면 ``강대나무의 삶``도 좋으련만....정신심리학...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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