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가 한 접시에 두 개씩 놓여지게 된 이유】
초밥의 맛은 밥알 개수에 좌우된다고 한다.
초밥 하나에 들어가는 밥알이 대략 300개일 때 초밥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또 만드는 요리사의 손바닥 온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손의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에 초밥 장인은 손을 식촛물에 담가
손바닥 온도를 언제나 섭씨 30도로 유지한다.
초밥 요리사 옆에 놓는 물그릇은 바로 그런 용도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은 극심한 식량란을 겪었다.
쌀의 수입이 끊겼고 패잔병과 해외 거주민 150만 명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쌀 공급이 절반으로 줄면서 쌀값이 130배가 뛰었다.
일본인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생선도 마찬가지였다.
어획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전쟁으로 인해 어선도 태부족이어서 주로 민물생선과 조개류에 의존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식량 상황이 심각해지자 1947년 7월,
일본 총리가 음식점 영업 긴급조치령을 발표했다.
여관과 다방,그리고 배급허가권을 취급하는 식당 이외에는 일체 음식점 영업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 식량 절약을 위해 여행을 비롯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의 외식을 금지한다는 조치였다.
식량을 아끼자는 의도였지만 부작용과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음식점이 문을 닫아야 했다.
초밥 전문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초밥을 만들어 팔 것이 아니라 쌀을 가져오는 사람에 한해 수수료를 받고 초밥을 만들어주면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배급받은 쌀을 가져온 사람에게 생선을 얹어 초밥을 만들어주는 것이니
양식을 과소비하는 것이 아니어서 긴급조치령의 취지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고 손님이 가져온 쌀로 밥을 짓고
거기에 생선을 얹어서 손님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니, 요식업이 아니라 위탁가공업에 해당됐다.
때문에 음식점 긴급영업조치령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초밥전문점 입장에서는 재료값과 요리사의 인건비를 수수료 형식으로 받는 것이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도쿄 시청은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다만 제한 조건을 만들었다.
1인당 쌀 한 홉으로 초밥 10개까지만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쌀 한 홉이면 대략 밥 한 그릇 정도의 분량이고, 이것으로 초밥을 만들면
지금 먹는 크기로 만들어야 10개 정도의 초밥이 만들어진다.
이전까지는 일본에 다양한 종류의 초밥이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 초밥이
현재의 모습과 크기로 통일된 배경은 이러한 긴급 조치령에 있었다.
이 무렵 일본은 곡식뿐 아니라 생선도 모자랐다.
때문에 초밥 하나하나를 예전처럼 다른 생산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같은 종류의 생선으로 초밥 두 개씩을 만들어 한 접시에 담아 서비스했다.
다섯 가지의 재료로 모두 10개의 초밥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접시 하나에 같은 종류의 초밥을 두 개씩 올려서 제공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리고 초밥 1인분을 시키면 대략 10개의 초밥이 나오는 것도 이때 생긴 관습이라고 한다.
참고
윤덕노 지음-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더난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