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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경험해 보아야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百 : 일백 백(白/1)
聞 : 들을 문(耳/8)
不 : 아니 불(一/3)
如 : 같을 여(女/3)
一 : 한 일(一/0)
見 : 볼 견(見/0)
(유의어)
이문불여목견(耳聞不如目見)
출전 : 한서(漢書)
백문(百聞)은 ‘백번 들음’의 뜻이고, 불여(不如)는 ‘같지 않음’의 뜻이다. 그리고 일견(一見)은 ‘한번 봄’의 뜻이다. 그러므로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함을 뜻하는 말로, 무엇이든지 실제로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전한(前漢)의 제9대 황제(皇帝) 선제(宣帝)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한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고민 끝에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 병길(丙吉)에게 토벌군의 적임자를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는지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에게 물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충국은 이미 76세의 백전노장 이었지만 아직도 실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하였다.
그는 일찍이 제7대 황제 무제(武帝) 때 흉노 토벌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직속 부하로 출전하였다가 1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과감하게 진격하여 전한의 군사를 무사히 구해내는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혁혁한 전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병길이 조충국을 찾아가 선제의 뜻을 전하니 바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선제는 조충국이 명장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불러들여 강족의 토벌 방책에 대해서 고견을 물었다.
조충국은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金城郡)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百聞不如一見 兵難險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
조충국은 선제의 윤허를 받고 현지로 달려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포로로 잡힌 전한 군사로부터 정보를 캐낸 뒤 선제에게 “기병(騎兵)보다는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방책을 제시하였다. 이 방책이 채택된 이후 강족(羌族)의 반란도 차차 수그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조충국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이다.
실상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던 속담이었을 것이요, 널리 쓰이는 말이었을 것이다. 서양에서도 ‘열의 소문보다 하나의 중거’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계획, 집행할 때 현지를 한번도 답사하지 않고 탁상공론에 매달린 경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고사성어이다.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하며 살아간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백번 듣는 것보다는 한번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훨씬 분명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각적인 것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은 보는 것이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환기성(喚起性)과 힘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식, 정보사회로서, 순식간에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쏟아진다. 많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인터넷, 그리고 사람들의 입 등으로부터 새로운 소식, 지식, 정보들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이 때 여러 사람들의 입이나 인터넷 등을 거쳐 듣게 되는 것들은 불확실하거나 부정확할 수 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사회 많은 지도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정선된 책을 많이 읽기를 권한다. 왜 그럴까? 그 속에는 위인들의 삶, 성공한 사람들의 축적된 경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고 합리적인 삶인가를 알려 주는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권한다. 이건 또 왜 그럴까? 여행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 지역이나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 유산,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관찰하면서 자기 생활의 반성과 함께 일상을 떠나 삶을 충전하고, 더 발전된 생활의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경험을 많이 쌓고 싶으세요? 책 읽기, 여행, 어떤 일에 대한 직접적 참여하고 싶나요? 다 좋습니다. 경험은 중요한 자산임을 명심합시다.
경험이란? 실제로 보고 듣거나 행하는 일, 어떤 일에 직접 부닥쳐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등을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경험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어떤 일에 직접 부닥쳤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의 생활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발판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른들의 말씀에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도 그 속에 성공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게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해야만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판단은 빗나갈 때가 많고, 추론도 오류가 잦다. 책을 단 한 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달랑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논하고, 그게 다 맞다고 우기면 대책이 없다. 조약돌만 한 소견으로 태산을 논하는 건 무지의 오만이다.
한나라 9대 황제 선제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의 유목 민족인 강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진압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선제가 오늘날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 병길에게 토벌군 장수로 누가 적임인지를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76세 백전노장이었지만 군사를 거느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7대 황제 무제 때 흉노 토벌에 나선 그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해 한나라 군사를 모두 구출했다.
이런 전공으로 싸움터에 나갈 때 깃발을 들고 앞서는 거기(車騎)장군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내가 적임이오. 이 노신을 능가할 자가 어디 있겠소.” 병길이 선제의 뜻을 전하니 그는 선뜻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
조충국이 명장임을 아는 선제가 그를 불러 강족 토벌 대책을 물었다.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소.”
그가 답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란 싸움터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니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핀 후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선제는 기꺼이 허했다.
현지를 둘러본 조충국은 기병보다 둔전병(屯田兵; 평시엔 농사를 짓다 전시엔 싸움에 동원되는 병사)을 두는 게 좋다는 방책을 올렸고, 선제는 이 계책을 수용했다. 이후 강족의 반란은 수그러들었다. 한서 조충국전에 나오는 고사다.
탁상공론(卓上空論)은 세상의 이치를 탁자 위에서 논하는 거다.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나온다. 하지만 하나는 경계하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고, 경험이란 게 때로는 시야를 좁히는 편견도 된다.
인재 꿰뚫어 보는 백문일견(百聞一見)의 법칙
'리더가 일을 모르는 것은 흉이 아니지만 사람을 모르는 것은 흉'이라는 말이 있다. 궁극의 리더십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들의 다양한 지인(知人) 비결이 전수돼 온다는 것은 인재 경영의 갈급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에 나오는 8관6험법(八觀六驗法), 제갈량의 관인칠경(觀人七經), 강태공의 '육도(六韜)' 속 팔징(八徵), 유소의 '인물지' 속 팔관오시(八觀五視), '장자'에 소개되는 구징(九徵) 등이 그것이다.
지인술은 사전 검증 단계인 관(觀)과 상황 대처 능력을 실증해 보는 험(驗)-징(徵)으로 구별된다. 전자가 평판, 인상비평 조회 검증이라면 징과 험은 직접 압박면접 청문회를 통한 실증이다.
필자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지인술의 요체를 백문일견(百聞一見)의 법칙으로 정리한다. 백문은 여러 시각에서의 다양한 평판 조회다. 일견은 직접 눈앞에서 압박면접 등을 통한 진면목 판단이다.
사전 검증의 관찰에선 과거 이력을, 청문회 면접의 험(驗)에선 미래 실력을 실증해 본 셈이다. 신체용모에서 언행까지 다양한 요소가 언급되지만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전 검증 단계에서다.
첫째, 자기 관리를 살피라. 언행일치가 되는지, 또 잘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원칙을 지켰는가.
둘째, 인척·지인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보라. 본가·처가는 물론 어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지를 살피라.
셋째, 인맥 관계를 보라.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추천하고 중용했는지, 일선 직원일 때 어떤 상사에게 기용됐는지를 살피라.
다음으로 직접 시험 보는 면접 단계 질문이다.
첫째, 미래 식견과 위기 대처 능력을 구체적 질문을 통해 알아보라. 비슷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정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물어보라.
둘째, 감정 조절 능력을 살피라.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고난, 두려움(喜怒哀樂苦懼) 등 감정의 롤러코스터 상황에서 나타나는 절제력을 살피라.
셋째, 세속적 유혹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돈, 이성, 술 앞에서 무장해제한 상태의 진면목을 알아보라.
'다 갖춘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조조의 유재시거(唯才是擧·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실력만 따지겠다)도 그 일환이다. 종합 평가든, 실력 우선 평가든 공통점은 'A+ 리더가 A+ 인재를 기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 百(일백 백, 힘쓸 맥)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흰 백(白; 희다, 밝다)部와 一(일)의 뜻을 합(合)하여 일백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百자는 ‘일백’이나 ‘백 번’, ‘온갖’과 같은 수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百자는 白(흰 백)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百자는 白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기는 하지만 글자의 유래가 명확히 풀이된 것은 아니다. 百자의 갑골문을 보면 타원형 위로 획이 하나 그어져 있고 가운데로는 구멍이 있었다. 이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百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일백’이라는 수로 쓰인 것을 보면 이것은 지붕에 매달린 말벌집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말벌집 하나당 약 100여 마리의 말벌이 있으니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래서 百(백)은 열의 열 곱절. 아흔 아홉에 하나를 더한 수(數). 일백(一百) 등의 뜻으로 ①일백(一百) ②백 번 ③여러, 모두, 모든 ④온갖 ⑤백 배 하다 그리고 ⓐ힘쓰다(맥) ⓑ노력하다(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백 번째의 대 또는 오래 이어 내려오는 여러 세대를 백대(百代), 백 갑절을 백배(百倍), 여러 가지의 일이나 온갖 일을 백사(百事), 백 대의 수레를 백승(百乘),백 사람이나 갖가지로 다른 많은 사람을 백인(百人), 어떤 수를 백으로 나눔을 백분(百分), 언제든지 이김을 백승(百勝), 여러 가지로 많이 나옴을 백출(百出), 많은 가족 또는 여러 가지 변명을 백구(百口), 일반 국민을 백성(百姓), 여러 학자들이나 작가들을 백자(百子), 높고 낮은 모든 벼슬아치를 백관(百官), 온갖 과일을 백과(百果), 온갖 방법이나 갖은 방법을 백방(百方), 모든 것 또는 여러 가지를 백반(百般),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을 백가쟁명(百家爭鳴), 몇 백년 후까지도 마멸 되지 않고 남음을 백고불마(百古不磨),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내오는 일가 사이의 친분을 백대지친(百代之親), 여러 가지 좋은 맛으로 만든 음식을 백미음식(百味飮食), 모든 일이 다 실패됨 또는 아무 일도 아니 됨을 백사불성(百事不成), 모든 일이 뜻대로 됨을 백사여의(百事如意), 해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음을 백해무익(百害無益), 후세까지 오래도록 모든 사람의 스승으로 숭앙되는 덕과 학문이 높은 사람이라는 백세지사(百世之師) 등에 쓰인다.
▶️ 聞(들을 문)은 ❶형성문자로 闻(문)은 간자(簡字), 䎹(문), 䎽(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입구)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聞자는 ‘듣다’나 ‘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聞자는 門(문 문)자와 耳(귀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聞자를 보면 사람의 귀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어둑해진 저녁에서야 결혼할 신랑이 신부의 집에 당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이렇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혼인하다’라는 뜻으로 썼었다. 후에 이러한 모습이 바뀌면서 사람은 女(여자 여)자와 昏(어두울 혼)자가 결합한 婚(혼인할 혼)자가 되었고 사람의 귀는 耳(귀 이)자에 門자를 더한 聞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聞자는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에서 ‘듣다’나 ‘소식’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聞(문)은 소리가 귀로 들어가다라는 말로 듣다, 들리다의 뜻으로 ①듣다 ②소리가 들리다 ③알다, 깨우치다 ④소문나다, 알려지다 ⑤냄새를 맡다 ⑥방문하다, 소식을 전하다 ⑦묻다, 질문하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알리다 ⑨틈을 타다, 기회를 노리다 ⑩견문(見聞), 식견(識見) ⑪소식(消息), 소문(所聞) ⑫명성(名聲), 명망(名望) ⑬식견(識見) 있는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들을 령/영(聆), 들을 청(聽)이다. 용례로는 듣고 보는 것으로 깨달아 얻은 지식을 문견(聞見), 도를 들음 또는 도를 듣고 깨달음을 문도(聞道), 들어서 얻음을 문득(聞得), 이름이 널리 알려져 숭앙되는 일을 문망(聞望), 부고를 들음을 문부(聞訃), 소문으로 전하여 들음을 문소문(聞所聞), 들어서 손해 봄을 문손(聞損),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을 문인(聞人), 들어서 앎을 문지(聞知), 들어서 배움을 문학(聞學), 뜬 소문을 들음을 문풍(聞風), 향내를 맡음을 문향(聞香),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을 문달(聞達), 들려 오는 떠도는 말을 소문(所聞),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전하여 들음을 전문(傳聞), 퍼져 돌아다니는 소문 또는 설교나 연설 따위를 들음을 청문(聽聞), 아름답지 못한 소문을 추문(醜聞), 이전에 들은 소문을 구문(舊聞), 여러 번 들음을 천문(千聞),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으로 실상 없이 떠도는 말을 풍문(風聞), 들어서 앎 또는 듣고 앎을 문이지지(聞而知之),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일거양득(一擧兩得) 등에 쓰인다.
▶️ 見(볼 견, 뵈올 현)은 ❶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❷회의문자로 見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見자는 目(눈 목)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다. 見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큰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보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자에서는 目자가 주로 ‘눈’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見자는 ‘보다’와 같이 보는 행위에 주로 쓰이고 있으니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는 見자가 現(나타날 현)자 대신 쓰인 적이 있기에 ‘나타나다’나 ‘보이다’와 같은 의미도 있다. 이때는 ‘현’으로 발음한다. 다만 見자의 기본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見(견, 현)은 ①보다 ②보이다 ③당하다 ④견해 그리고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마음에 생각하는 점을 의견(意見),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을 발견(發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偏見), 서로 다른 의견을 이견(異見), 남의 일에 간섭함을 참견(參見),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무슨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을 예견(豫見), 보고 헤아리는 생각이나 올바로 인식하거나 올바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견(所見),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손님을 만남을 접견(接見),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아 뵙는 일을 알현(謁見), 임금께 나아가 뵈옴을 진현(進見),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또는 대의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운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