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8신]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인생일까?
오랜 친구에게
너에게 편지 쓴 게 언제적일까? 군대 시절 몇 통, 아니면 사회 초년 서울과 전주로 떨어져 살면서? 글쎄, 아무튼 까마득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날마다 편지를 몇 통이라도 쓴 듯하다. 왜 아니겠냐? 1973년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으로 만난 이래, 어마무시한 세월 동안 동고동락을 같이 해온 셈이니, 내일모레면 반 세기가 다 되니 말이다. 마음으로 쓰는 편지를 ‘심서心書’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심서는 수 십, 수 백통은 썼으리라.
하늘이 금세 눈이라도 퍼부을 듯 잔뜩 으등그리고 있다. 괜히 기분이 우글쭈글하여 네가 또 떠올랐다. 요즘엔 궁금한 것은 메일도 아니고 카톡 몇 글자면 되건만, 책상 앞에 앉아, 너에게 아주 모처럼 편지를 쓴다. 엊그제 ‘몸은 어떠냐? 낙향한 시골생활이 적적하지 않냐’고 전화로 물었지? 너도 언제부턴가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으니 '산골생활은 어떠냐?'. 나의 대답은 들어보나마나 “적적하다니? 대만족이다. 아내의 부재 말고는 부러운 것 하나도 없다”이다. 요즘 부쩍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을 자주 쓴다. 도道를 즐길만한, 빈貧을 편히 생각할만한 내공의 철학도 없지만, 그냥 이 말이 좋아 보란듯이 즐겨 쓴다. 잔차(자전거)로 허허벌판 들길을 가로질러갈 때는, 어느 정치인의 “좋-다!”라는 말이 생각나 나도 따라 소리쳐 보고 싶을 정도다. “돈 안버니, 출근안하니 좋다-”라고 말이다. 그 정치인은 대통령이 당선된 날 자정께 기자들의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좋-다!”라고 외치더니, 퇴임 후 고향에 정착했을 때 기자들이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또 묻자 “좋-다!”라며 정말 좋아라 하더니, 60여자의 짧은 유언을 남기고, 참말로 유감스럽게도 우리 곁을 떠났다.
‘암투거사癌鬪居士’를 별호別號로 자처한 너의 건강상태를 생각하면, 아무 도움도 못돼주는 내가 미웁고 네가 안쓰러웠던 1년여의 세월, 잘 버텨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 어떻게든 같이 가야지’ 이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이 편지를 쓴 지 모르겠다. 1년새 기분이 참 많이도 오락가락했으리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그 이전과 많이 달라졌겠지. 죽음까지는 아니어도 그 문턱에 섰을 때의 기분, 약간 이겨내고 있는 요즘의 기분, 그 사이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 앞으로 어떻게 노후를 보낼 것인가의 고민,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친구와의 갈등,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숙제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취와 갈무리 등등 말이다. 둘이 터놓고 말한 적은 없어도, 미뤄 짐작되는, 너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인 것들에 대한 얘기들. 그냥 그렇게 말없이 무심한 세월은 흘러간다. 내일모레면 이 해도 가고, 새해가 온다. 우리는 하냥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친구야. 어제는 이름을 대면 너도 아는 서울 친구가 카톡으로 나훈아의 <공空>이라는 노래 가사를 적어보냈다. 너도 아는 노래일 거고, 타고난 끼가 있어 잘 부를 수도 있을 걸? 난, 언감생심 따라부르지도 못할 노래이지만. 들어보고 흥얼거려 봤는데 노랫말이 무척 마음에 들더라. <살다보면 알게 돼/일러주지 않아도/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살다보면 알게 돼/알면 웃음이 나지/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잠시 왔다가는 인생/잠시 머물다 갈 세상/백 년도 힘든 것을/천 년을 살 것처럼/살다보면 알게 돼/버린다는 의미를/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 들어봤지? 이 노래.
몇 번 따라부르다 음치이자 박치자인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한문선생으로 정년퇴직한 그 친구는 일주일 전엔 나훈아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노랫말을 보내더니, 어제는 <공>의 노랫말을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 들어보라고 아니면 배워보라고 보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세월 베고...>만큼은 어거지로 배워, 지난 주말 아버지를 비롯해 여럿이 앞에서 열창을 했었다. 흐흐. 그 노랫말이 너무 좋아 욕심을 내 배운 것이다. ‘그것도 노래라고 부르냐?’며 일축하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여보게, 쉬었다 가세/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남은 얘기 다하고 가세>라는 노랫말이 와닿았기 때문에, 아무리 음치래도 제법 흉내는 낸 것같지 않더냐?
너와의 ‘우정 47년’은 우리에게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 사이에 생긴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냐. 지금도 이메일 goodjob48@hanmail.net을 바꾸지 않은 이유이다. 어디 동고동락同苦同樂이 말처럼 쉬운 일이더냐? 우정의 갈림길에 여러 번 서기도 했고, 기쁨·슬픔·즐거움·노여움·분노와 증오·실망을 넘어 증오까지 있었지 않았느냐? 사랑과 우정은 가꾸기 나름이라는 것도 알았다. 예전엔 환갑만 넘으면 진짜로 노인이었는데, 지금은 칠순연도 사양하고, 가족끼리 팔순잔치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도 80, 90을 꿈꿀 수 있는 60대 중반의 나이. 알만큼은 안다고 하지만, 아직은 덜 산 게 틀림없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같이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를 모르니 말이다. 너는 네 별호로 인하여 ‘버린다’는 의미를 나보다는 더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골치아픈 것’은 딱 질색이다. 굳이 우정友情에 대한 정의定義가 필요할 것같지도 않더라. 다만, 혹시 서로가 서로에게 ‘굴레’가 되면 안될 것같더라. 우리 사이를 말하는 게 아니고, 주변의 친구들 얘기다. 심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속없이 나훈아의 <테스형>이나 웨장을 치듯 불러대며, 모두 뒤로 미루고, 나중에 잘 되겠지, 알게 되겠지,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해야 하므로, 날마다 1시간여 잔차를 타고 고향 동네들을 한 바퀴 돌며, 이것저것, 여기저기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기웃거리며 물어보며 사진을 찍으며 ‘고향 냄새’를 몸에 배도록 하고 있다. 뒷산 저수지에서 새우를 잡고, 고사리와 취나물을 뜯으며, 논농사 물꼬를 보며, 참나무 토막에도 우후죽순처럼 솟아날 표고버섯을 기다리며 물을 주다보니 지나간 세월도 금방이더라. 어느새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내일모레는 세밑이다. 유수流水. 흐르는 물처럼. 도덕경道德經의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무슨 뜻일까? 우리, 외로움을 넘어 고독孤獨을 즐기자. 얼마 전에 읽은, 지리산록에서 수년간 혼자 사는 구영회라는 분이 ‘외로움와 고독’을 주제로 쓴 글들로 엮은 수필집이 생각난다. 기회가 되면 너도 함 읽었으면 좋겠다. 이제 연초에나 보겠구나. 그때 수담手談 한 수 하자. 늘 건안建安해라.
12월 23일 오후
고향 우거에서 오랜 친구 쓰다
첫댓글 마음도 몸도 그대로인디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는디ㆍ
누애 똥구녕 사랑하는 마음도 그대로인디
나도 전형적인 한국 남자라
사랑한다 표헌을 잘 못했나보다.
죽기전에 가봐야할곳 100 곳을
부지런히 가보려 했는데
코로나땜시 여햄도 못다니고있는데
ㆍ
죽기전에 해야할일 100가지는 무엇일까?
몇몇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조상님 부모님 산소 정리가 젤 많드라
우리 나이가 그냥 나이가 아닌가보다.
부지런한 친구는 벌써 자기 누울자리
만들고 다니고 있드라.
나도 연애시절엔 사랑한다 좋아한다
이쁘다 입에 침이 마르게 하고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ㆍ못하고 살았네
해봐야지
미쳤나봐 소리를 듣더라고
한번 해봐야지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