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은 대금, 소금과 아울러 신라 3죽의 하나로 널리 향악 사용되던 횡적으로서, 대금과 소금의
중간에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고종 때 한림제유의 소선으로 전하는 <한림별곡>은 시부, 서적, 명필, 명주, 하훼, 음악, 누각, 추천의
팔경을 읊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제 6연을 보면 중금이 노래반주에 쓰여왔을음 알 수 있는데요...
또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참고해 보면...
중금은 피리, 소금, 박 등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짐작컨대 중금은 혜금, 피리, 소금, 박과 더불어 주로 춤의 반주에 사용된 듯합니다.
조선조에 와서는 종묘 제행의 헌가악에 대금, 소금과 함께 편성되었다가...
최근에 이르러서 대금을 배우기 전에 취법과 운지법을 익히게 하였으나, 1940년 이후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악기 입니다.
대금과 달리 해가 묵은 황죽을 주 재료로 하구요...
제도나 악보는 거의 대금의 것과 유사합니다.
대금과 다른 점이라는 청공이 없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음색의 변화가 적습니다.
대금보다 불규칙적이고 복잡하여 익히기 어렵습니다.
쓰이지 않는 악기라 자료가 부족합니다... (죄송.. ^^;;)
2. 소금
소금은 가로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로 우리나라 고유의 가로로 부는 적 중 가장 작은 것입니다.
신라시대에는 소금이 대금, 중금과 함께 삼죽으로 불렸구요...(위에 언급했죠?)
신라의 소금은 중국의 당적과 함께 고려시대를 통하여 전해져왔고, 조선조 성종 24년 악학궤범에도 나타나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소금은 당시 종묘영녕전 헌가에만 편성되고 나머지는 거의 당적에 의해 연주되어져서,
차츰 밀려나는 시기였습니다. (당적과 소금이 유사한 점이 많거든요...)
이왕직 아악부 시대에 당적은 그 음역과 음정이 당악계의 곡은 연주하는 데만 적합했을 뿐 향악계
의 악곡에는 맞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가장 곤란했던 것이 당적의 최저음이 없다는 점이었는데요...
후에 향악계의 음악에 적합한 횡적을 1956년 3월 국립국악우너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교육용으로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현행과 같이 7지공으로 보오나되면서 소금이라는 명칭도 부활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현재의 소금은 예전의 소멸됐던 소금과 다르고, 당적과도 다릅니다.
소금의 재료로는 황죽도 무방하지만 대금과 같이 쌍골죽이 더욱 좋습니다.
관악기 중 가장 높고 맑은 소리를 가지고 있어 소리가 도들어져 들립니다.
다른 관악기들이 복수로 편성되는 합주에도 흔히 단수로 편성되구요...
전통적인 소금가락의 주된 흐름은 대금과 흡사하지만 장식음이 훨씬 풍부하고 화려하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