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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극락쾌활림(極樂快活林)
①
대장백(大長白).
장백은 영산(靈山)으로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장백은 험준하기로 으뜸이요, 힘찬 산맥의 흐름은 생명의 기원을 느끼게 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하게 솟은 관목림은 대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다.
계곡과 계곡이 만든 천 길 협곡엔 목단강(木丹江)이 신선의 걸음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노을이 비친 수면 위에는 짙은 수영(樹影)이 드리워져 있고 속세의 시름을 잊은 듯 점점이 떠 있는 구름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단애와 고봉 사이로는 짙은 운해가 깔려 있어 더욱 신령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자 장백산에는 온갖 희귀한 약초는 물론 금수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장백산에서도 깊숙한 오지.
- 극락쾌활림(極樂快活林).
바로 장백산 속에 있었다.
그곳은 색과 환락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없는 것이 없고 인생의 즐거움만이 존재한다는 곳이다.
하나 그것은 소문일 뿐, 실제로는 생지옥이었다.
채화공자 반준과 오색환락거가 극락쾌활림에 도착한 것은 동지 초여드렛날이었다.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장백산의 밀림은 백설(白雪)에 뒤덮여 있는 그야말로 절경(絶景)이었다.
도저히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밀림과 절벽 사이의 밀도(密道)가 있었다. 그들은 일곱 군데의 절곡과 아홉 개의 절봉을 넘었다. 그리고 다시 다섯 군데의 하늘이 보이지 않은 설목림(雪木林)을 지났다.
며칠을 끝이 보이지 않는 밀도를 따라 이동하던 오색환락거는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단애의 한가운데 분지(盆地)에 마침내 도착했다.
그곳이 극락쾌활림이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길은 종유동뿐이었다.
종유동을 빠져나오니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에워싸인 움푹 꺼진 분지가 나타났다.
"호호...! 이곳이 바로 본림(本林)이예요."
오색환락거의 주렴 속에서 간드러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하... 정말 아름다운 곳이구려!"
채화공자 반준의 들뜬 음성이 들렸다.
향차는 종유동에서 빠져나와 분지 한가운데로 뻗은 잘 다듬어진 석도(石道)를 따라 굴러갔다.
분지의 넓이는 광대했고 종류를 알 수 없는 관목숲이 펼쳐져 있었으며 맑은 계류가 구비 치고 있었다.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한겨울에도 그곳은 봄 아니, 여름처럼 더운 날씨였던 것이다.
그들은 세 개의 다리를 건너 곧 눈을 의심할 정도의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즐비한 곳에 당도했다.
"이제 다 왔어요."
자르륵--!
주렴을 하나의 흰 손이 걷어 내며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내렸다.
그녀는 홍의궁장을 한 이십대의 미녀였다. 눈꼬리가 약간 치켜쳐 도도함 가운데 도발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하...! 먼 여행이었소."
오만한 웃음과 함께 채화공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뒤따라 내렸다. 그들이 내린 곳은 한 채의 웅장한 대전 앞마당이었다.
채화공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잘 가꾸어진 화원과 바닥에는 가지런하게 정비된 청석판이 깔려 있었고 건축물은 섬세하게 꾸며져 있다. 하나 기이한 것은 넓은 대전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좋긴 한데... 너무 조용하군?"
그 말에 홍의궁장녀 태월아가 교음을 발했다.
"곧 익숙해질 거예요. 반랑, 이곳에는 밤이 되어야 활기를 띠는 곳이니까요.""밤......?"
"호호... 곧 알게 될 거예요."
"......!"
"자, 들어가요. 우선 목욕부터 한 뒤 천천히 구경시켜 드리죠."목욕.
채화공자로서는 오래간만에 느긋한 여유를 갖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는 오색환락거 속에서 근 보름을 지냈다.
오색환락거는 넓었다.
커다란 침상도 있었고 마치 작은 집이나 다름없는 설계였기에 그는 별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그 동안 그는 타고난 바람기를 동원해 태월아를 집적거렸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태월아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의 끈질긴 유혹을 교묘히 뿌리쳤던 것이었다.
하나 정작 그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진 않았다.
'후후...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군. 그럼 서서히 극락쾌활림의 신비(神秘)를 사냥해 볼까?'아... 그는 바로 천우였다.
극락쾌활림에 들어오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희대의 바람둥이 채화공자 반준으로 행세를 했던 것이었다.
천우는 오랜만에 목욕을 마친 후 욕실을 나왔다.
그가 화려한 객방으로 걸어나오자.
"여기 갈아입을 옷이... 어멋!"
연홍(燕紅).
여덟 명 소녀 중 가장 나이 어린 소녀가 두 손에 은삼을 곱게 접어 받쳐들고 있다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 고개를 푹 떨군다.
천우는 벌거벗다시피 한 몸이었다.
물방울이 그대로 묻어 있는 가슴은 우람했고 간신히 아랫부분만 한 장의 천으로 두르고 있는 차림이었던 것이었다.
"하하... 연홍, 물기 좀 닦아주겠느냐?"
"그건... 저어......."
연홍은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천우는 내심 중얼거렸다.
'소문과 달리 오색환락거의 소녀들은 별로 음탕하지가 않다. 아니... 남자라곤 접해 보지도 못한 소녀들이다. 태월아 조차도... 그러고 보면 극락쾌활림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곳이 아닌가?'그렇다.
그는 그 동안 유심히 그녀들을 관찰했으나 그녀들이 탕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향차를 따라온 청년들은 다만 그녀들의 섭혼술에 제압 당했을 뿐이었다.
천우는 산뜻한 은삼으로 갈아입은 후 물었다.
"연홍, 이곳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연홍은 아직도 등을 돌리고 있었다.
"차차 아시게 될 거예요......."
"하하... 무어 그리 부끄러우냐? 남자와 여자란 그저......."그는 뒤에서 와락 그녀를 껴안고 전격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입을 맞추었다.
"아앗...! 읍......!"
연홍은 한 마리 작은 새였다.
그녀는 불시에 사로잡혀 강제로 입맞춤을 당하자 파르르 떨었다. 하나 입맞춤이 깊어지자 그녀는 그만 전신에 맥이 풀린 듯 축 늘어지고 말았다.
천우의 기술에 당한 탓일까?
그녀의 작은 심장은 쉴 새 없이 콩당거렸으며 얼굴은 불같이 달아올랐다.
천우는 그녀의 순진함에 놀랐다.
그는 슬쩍 최심섭백음공(催心攝魄音功)을 전개했다.
"연홍, 이곳은 어떤 곳이냐?"
그 말을 들은 순간 연홍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은... 환천군림부(幻天君臨府)의 장백지부(長白支部).......""환천군림부? 그럼 환천군림부주는 누구냐?"
"부주... 부... 주는... 부... 주......."
순간 그녀는 흡사 벼락을 맞은 듯 몸을 격렬히 떨었다.
어떤 금제에 부닥친 듯 그녀의 몸이 덜덜 떨렸다.
천우는 급히 질문을 돌렸다.
"장백지부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이곳에서는... 노동력을 모아 발굴작업을......."
천우는 흠칫했다.
"발굴작업? 무엇을 발굴한단 말이냐?"
"그건... 모릅니다. 다만 부주의 지시일 뿐......."
"그럼 오색환락거로 끌어들인 청년들은 모두 어디 있느냐?""그들은... 모두 발굴작업에 동원... 무간동(無間洞)에......."천우는 새로운 놀라운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로소 그는 극락쾌활림이 청년들을 유혹하여 끌어들인 이유를 알았다.
'그들이 그 동안 유혹한 청년고수들은 수천 명에 이른다.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한 것은 모종의 발굴작업에 동원시키기 위함이었다. 한데 과연 무엇을 캐내기 위한 것일까? 금 아니면 고분......?'그는 의혹이 점점 더 깊어짐을 느꼈다.
"장백지부주는 누구냐?"
"부주님은... 백(白)... 봉(鳳)... 황(凰)......."
순간 천우는 가슴이 쿵 함과 웬지 모르게 어떤 운명적인 충격을 느낀 것이었다.
그는 이때 연홍의 몸이 격렬히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의 최심섭백음공이 다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입을 쪽 소리나게 빨고는 놓아주었다.
"하하...! 연홍, 네 입술이 그렇게 달콤할 줄은 몰랐다.""아......!"
연홍은 흡사 꿈에서 깨어난 듯 몸을 흔들더니 곧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재빨리 달아나 버렸다.
"하하하하...! 월아에게 전해라. 나는 성질이 급하다고, 빨리 이곳의 미녀들을 보고 싶다고 말이다!"저녁 무렵.
극락쾌활림은 돌연 활기를 띠었다.
아니 활기라기보다는 열기, 광기(狂氣)에 가까운 열기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환하게 밝혀졌으며, 낯뜨거운 신음소리, 주악소리, 그리고 코를 찌르는 술냄새와 함께 남녀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 들렸다.
천우는 자신의 방에서 그 소음을 듣고 궁금증을 참을 길이 없어 밖으로 나왔다. 방을 나선 순간 그는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환락.
그것은 하나의 환락경이었다.
고루거각의 즐비한 건물들 사이에는 어느 새 수백 아니,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젊은 남녀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완전히 발가벗은 남녀들이 숲속, 화원, 또는 대전 바닥이나 회랑에서 뒤엉켜 아무렇지도 않게 낯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형언할 수 없이 기기묘묘한 자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인간임을 포기한 것 같았다. 술기운이라고 하기엔 그들은 너무도 강렬한 색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정사(情事)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천우는 참담함에 눈을 돌렸다.
무리를 지어 미녀들이 음무(淫舞)를 추며 서로의 몸을 비벼대는가 하면 색정을 돋우는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고 연신 냄새가 지독한 술단지가 날라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광기 어린 춤을 추거나 괴성을 질러댔으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가 함께 뒤엉켜 있었다.
"......!"
천우는 그 광경을 처음에는 눈의 착각인가 의심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그는 놀라운 가슴을 억누르며 군상들 사이를 거닐었다.
"하하하하...!"
음탕한 웃음소리와 간드러진 교성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 곳.
대전 바닥에 수많은 남녀가 뒤엉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와-- 아! 잘한다!"
그들의 한가운데 진흙 구덩이가 있었다. 그곳에 두 명의 전라의 계집들이 뒤엉켜 씨름하듯 뒹굴고 있었다.
"핫핫핫...! 옳지!"
"와하하...! 발을 걸어라!"
두 여인은 진흙을 온몸에 뒤집어 쓴 채 서로의 몸의 할퀴고 물어 뜯었다. 그 중 키가 큰 여인의 머리채가 잡히고 삽시간에 거꾸로 진흙바닥에 쳐박혔다.
구경꾼들은 깔깔거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흙바닥에 얼굴이 박힌 여인이 엉거주춤 서 있는 상대 여인의 가슴을 냅다 발로 걷어찼다.
"아악!"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그녀는 십 여장을 뒷걸음질 치고 털석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진흙투성이의 젖가슴이 일순 출렁거렸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여인만의 비밀스러운 곳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것도 잠시, 넘어진 여인이 순신간에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황소처럼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달려갔다. 서로 머리채를 거머쥐고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깨와 목과 팔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선혈이 진흙바닥을 어지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점점 더 광포해졌다. 사람들의 눈에서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빛이 나기 시작했다. 피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탐욕스런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죽여라!"
쨍그랑--
누군가 술병을 집어던졌다. 술병은 사기로 만들어져서 날카롭게 조각이 났다. 키가 작은 여인이 날카로운 사기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베였다.
눈에 초점이 없고 입에선 연신 괴소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광인의 표정이었다. 그녀는 아직 바닥에 엎드려 있는 키 큰 여자의 등에 일격을 가했다. 대추혈(大推穴)에서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그야말로 미친 광경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일단의 중들이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며 계집과 뒤엉켜 있었다.
또 어느 곳에서는 청년들이 개처럼 바닥을 기고 있었으며 벌거벗은 계집들이 깔깔거리며 청년들을 말처럼 타고 있었다. 하나같이 광기였으며 그들은 조금도 남을 의식치 않고 있었다.
한데 조금 다른 풍경도 있었다.
한곳의 대전.
그곳에는 피골이 상접한 노인들이 기진맥진하여 드러누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은 청년이었다. 단지 너무나 마르고 쇠약하여 노인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정사에는 흥미를 잃은 듯 오로지 술만을 마시고 있었으며 온몸은 온통 긁히고 찢긴 상처투성이었다.
'대체 이건 무슨 짓들인가......!'
천우는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온통 역겨움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환락이 아니라 참담한 지옥의 풍경이었다. 이쯤 되면 이곳은 지옥, 그것도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남녀 모두가 눈이 퀭하였고 안색이 싯누렇게 떠 있었다.
정상인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있다. 이들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천우는 문득 옆의 한 청년으로부터 술병을 빼앗았다. 이어 술을 조금 입에 부어 맛을 보았다.
다음 순간 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이것은... 마뇌향(魔腦香)을 탄 술! 그렇다! 술 속에 이성을 마비시키고 지각능력을 쇠퇴시키며 오직 환락과 색욕을 격발시키는 강렬한 마약을 타 마시게 하여 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음독할 수가!'그는 비로소 극락쾌활림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들에게 발굴작업을 시킨 후 그 피로감과 격노 등에 시달려 나타날지 모르는 반항심을 이런 식으로 무마시켜 마비시킨 채 부려먹는 것이다.''그러다 힘이 쇠잔해지면 아까 그 자들처럼 피골만 상접하게 되는 것이다. 무섭고... 잔혹한 짓이다.'천우의 가슴속에 정의감이 무섭게 끓어올랐다.
'으음...! 환천군림부... 대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포악무도한 만행을 자행한단 말인가? 나 천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직접 내 눈으로 본 이상......!'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때였다.
"술! 술... 술을 다오......!"
문득 그의 앞으로 한 청년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반 벌거숭이였고, 옆구리에는 계집을 끼고 있었다. 필시 명문대파의 청년 고수였음직한 당당한 용모였다. 하나 지금 그의 안색은 노오랗게 떠 있었고 눈은 흐리멍텅해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천우에게 부딪쳐 왔다.
"정신 차려라!"
천둥 같은 호통과 함께 천우는 청년의 따귀를 세차게 갈겼다. 하나 청년은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 듯 비틀했을 뿐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외치는 것이 아닌가?"헤헤헷... 술! 술을 다오......!"
천우는 절망감을 느꼈다.
'이들은 이미 감각 기관마저 상실했구나.......'
그는 환멸을 느꼈다.
'소위 무림의 후기 세대라는 이들이 이토록 무기력하게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도 일어설 수 없었단 말인가?'그는 청년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곧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이들은 완전히 돌아 버렸다......."문득 어디에선가 한 가닥 쇠잔한 음성이 들려 왔다.
"소용없는 짓이지... 그들은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설사 알았다 해도 능력이 닿지 않았지......!""......!"
천우는 돌아섰고, 그곳에서 한 특이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노인-- 그는 드물게 보이는 노인이었다.
일신에는 누런 황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칠순에 가까웠으며 팔이 흡사 성성이처럼 길어 무릎에 닿고 있었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음식도 손대지 않았고, 여자도 끼고 있지 않았다.
그는 피골이 상접했으나 눈빛만은 다른 자들과 달리 맑았다.
"귀하는......?"
괴노인은 그를 유심히 보더니 탄식했다.
"그대는 역용을 하고 있군......."
"그걸 어떻게......?"
"허허... 지난 날 노부의 눈과 이 긴 두 팔로 명성을 날릴 적에는 노부가 누구냐고 묻는 자가 없었지, 모두 첫눈에 알아보았으니까."노인의 음성에는 짙은 허무감이 실려 있었다.
천우는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라 안색이 변했다.
"혹... 혹시 귀하는 바로 신안쌍천비공(神眼雙天臂公) 굉천(宏天).......""그렇다네......."
노인의 시인에 천우는 가슴이 떨려 왔다.
신안쌍천비공!
그는 과거 마왕성과의 대전에 선발되었던 정파의 정예고수 삼백 인 가운데 한 명이 아닌가?십대문파의 최고 고수들과 정도의 고인(高人)들로 구성된 무림맹의 맹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죽었다고 알려지지 않았던가!십 리 밖의 개미까지도 볼 수 있다는 신안(神眼)과 그의 긴 두 팔로 펼쳐 내는 만천화우(滿天花雨)의 암기술로 일세를 풍미했던 풍진기인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죽었다고 전해졌던 그가 이런 곳에 살아 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무림맹의 다른 인물들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천우는 한 가닥 가슴속에 무서운 전율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모든 의혹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굉천에게 다가갔다.
"노인장, 어떻게 된 일이오? 이곳에......."
하나 신안쌍천비공 굉천은 경계심이 발동하여 날카롭게 쏘아부쳤다.
"자네는 누군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먼저 그것부터 밝히게!"천우는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으로써는 말해도 노인장은 모를 것이오. 다만 확실한 것은 이곳 사람은 아니란 점이오. 그리고 이 곳의 일에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소."문득 굉천의 두 눈이 기이한 광채를 발산했고 안색이 급변하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군. 누군가를 닮았는데... 호... 혹시... 그녀의... 아들이란 말인가......?"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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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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