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번째 편지 - 즐거움의 속성
지난주 월요편지에서 언급한 사건의 충격을 빨리 털어버리기 위해 짧게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여행은 너무 즐거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 사건을 저만치 밀어내 버렸습니다.
저는 여행 기간을 회상하며 이번 여행에서 만난 <즐거움>에는 어떤 요소들이 들어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늘 즐거운 일을 찾아다닙니다. 아마 그것이 인생의 목표일지 모릅니다.
첫째, 즐거움에는 시간적 요소가 있습니다.
즐거움과 재미가 어떻게 다를까요. 어찌 보면 비슷한 개념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전혀 다른 개념 같기도 합니다.
'재미'는 즉각적인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반면,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경험의 결과입니다. 재미가 순간적 쾌락이라면, 즐거움은 지속적 행복입니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활동은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감정이 사라지는 반면, 즐거움은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남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재미와 대비해 보면 즐거움은 시간의 지속성이 한 속성인 것 같습니다. 여행을 가면 최소한 1박 2일은 갑니다. 시간적으로 지속되는 흐름이 있어야 즐거움을 느낍니다.
특히, 즐거움은 시작과 끝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일상생활은 시작과 끝이 있기보다는 끊임없는 연속이라 일상 그 자체를 즐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시작과 끝이 있는 행사기간 동안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즐거움을 경험하려면 의도적으로 일정한 시간을 끊어서 하나의 기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이 가장 손쉽게 즐거움을 주는 장치입니다.
둘째, 즐거움에는 공간적 요소가 있습니다.
즐거움에는 반드시 특정 공간에서 여유롭게 머무는 것이 포함됩니다. 즐거움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 공간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그 공간을 여유롭게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행을 갔을 때 시내를 쏘다닐 때보다는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여유 있게 마실 때 '아 좋다'라는 느낌이 들고 그 순간 즐거움을 만나게 됩니다.
새벽 무렵 호텔 방 베란다에 혼자 앉아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며 일출을 감상하는 그 순간에 느끼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하루 일정을 마치고 멋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수다를 떨 때 우리는 즐거움의 극치를 맛보게 됩니다.
여행에서 즐거움을 맛보려면 무엇보다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빠듯한 일정에 쫓겨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한 것은 많은데 정작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피곤함만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노동까지 끼어들게 되면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사소한 말다툼이 큰 갈등으로 번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지나간 여행에서 여러 번 경험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행용 위장 인격'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평소의 성질을 감추고 위장 인격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사나흘이 지나면 위장 인격이 한계에 도달하여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게 되고 결국 갈등의 불꽃이 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공간적 여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즐거움에는 몰입의 요소가 있습니다.
몰입(flow)은 긍정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만든 개념입니다. 그는 몰입을 머릿속의 생각과 목표, 행동 등 모든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몰입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게 해 주며 무아지경의 경지에 빠진 채로 자신의 정신적인 역량을 몰입의 대상에 100% 쏟아부을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즐거울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번 여행이 그랬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하였습니다. 특히 디지털 아트 전시를 볼 때는 다들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몰입을 경험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팀을 응원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몰입의 경지에 빠집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더 자주, 더 깊게 몰입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지나간 여행 경험들을 회상하면 꼭 그런 순간이 있었고 이번 여행에도 그런 순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최인철 교수는 여행을 행복의 종합선물 세트이자 행복의 뷔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충격 극복의 방안으로 선택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여행 중 경험한 즐거움은 충격을 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또 이런저런 충격적 사건을 마주하게 될 때면 이번 여행을 떠올리며 여행을 치료제로 사용하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힘든 일이 있으면 훌쩍 떠나 보십시오. 의외로 좋은 처방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6.17. 조근호 드림
첫댓글 저도 2주간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독일의 큰매형이 돌아가셔서 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하고 어제 귀국하였습니다.
그 동안 참나방을 잘 지켜주신 현강님 수고 많으셨고, 달동네님도 꾸준히 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