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사회
주취 신고 하루 2675건… 공무집행방해 67%가 ‘취객’
입력 2023-05-03 03:00 업데이트 2023-05-03 04:38
[음주범죄에 관대한 사회] 〈하〉 반복되는 ‘취객과의 전쟁’ |
지난달 29일 오전 1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술집에서 만취한 72세 남성이 출동한 경찰에게 삿대질하고 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줄어들던 주취자 관련 신고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대면 모임이 부활하자 음주 관련 사건 사고도 다시 늘고 있는 것이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접수된 주취자 관련 신고는 2019년 101만4542건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20년 90만250건, 2021년 79만1905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97만6392건으로 23.3% 급증했다. 매일 평균 2675건씩 주취자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올해는 다시 100만 건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날씨가 풀리며 야외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코로나19 기간 줄었던 음주 소비도 늘면서 주취 관련 신고 및 범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 이들이 늘면 술에 취해 저지르는 범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공무집행방해로 붙잡힌 피의자 9132명 중 주취자는 6126명(67.1%)에 달했다. 경찰과 소방관 등을 상대로 한 공무집행방해 범죄자 10명 중 약 7명은 주취자였던 것이다. 역시 2021년 기준으로 방화 범죄의 37.3%, 폭행 범죄의 23.9%가 음주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있는 지구대와 파출소 직원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주취자를 상대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라며 “주취자 관련 신고와 범죄가 늘어 현장에서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지장을 겪고 있다”고 했다.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는 주폭(酒暴)이 줄지 않는 것은 수사 및 재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고, 재판에 넘어가더라도 처벌 수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한 경찰은 “술에 취한 취객한테 발차기 한두 대 맞는 건 기본”이라며 “심각한 부상이 아니면 그냥 넘어가자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했다. 공무집행방해로 재판에 넘어간 경우에도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2021년 기준으로 17.9%에 불과하다.
“112 신고 10건중 8건 술 때문”… 공무집행방해 실형은 18% 그쳐
당곡지구대 12시간 동행 르포 계속된 주취 신고에 인력 부족도… 다른 강력사건 골든타임 놓칠 우려 폭행 등으로 입건해도 처벌 약해… “음주, 감경 아닌 가중처벌 사유로” |
“여기 사람들이 술병 던지고 싸워요. 빨리 좀 와주세요.”
지난달 28일 오후 11시 49분경 서울 관악경찰서 당곡지구대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일행 사이에서 시비가 붙었다는 것이었다.
출동한 두 경찰관을 맞이한 건 테이블에 있던 가위를 들고 서로 위협하던 두 청년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경찰들은 “제발 가위는 내려놓고 얘기하자”며 한 명씩 붙잡고 뜯어말렸다. 하지만 둘 다 물러서지 않으면서 몸싸움이 이어지자 경찰은 증원을 요청했고 경찰 10여 명이 현장에 도착한 후에야 상황이 진정됐다. 몸싸움을 벌이던 이들은 “일행인데 잠시 오해가 있었다”라고 해 경찰은 입건 없이 약 1시간 만에 상황을 마무리했다.
● “112 신고 10건 중 8건이 술 때문”
동아일보는 주말을 앞둔 ‘불금’인 지난달 28일 오후 7시 반부터 29일 오전 7시 반까지 약 12시간 동안 당곡지구대 현장 경찰과 동행 취재를 진행했다. 관악구 신림동 당곡지구대는 서울에서 주취자 신고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동행한 현장마다 경찰들은 주취자 대응에 애를 먹고 있었다. 29일 0시 47분경 관악구에 있는 한 빈대떡집에선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선 만취한 70대 남성이 “잘못한 거 없으니까 당장 가라”며 육두문자를 연신 내뱉었다. 싫은 표정 없이 남성을 달래서 가게를 떠나게 한 김민우 경위는 “욕은 하지만 경찰을 때리진 않으니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했다. 주폭의 피해는 서민에게 돌아갔다. 가게 주인은 “3시간 넘게 욕설과 고함을 반복하는 바람에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가서 할 수 없이 신고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 밖에도 도로나 공사 현장 등에서 취객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119구급대에 인계하는 등 음주 관련 신고는 밤새 쏟아졌다.
12시간 동안 당곡지구대에 접수된 신고 총 42건 중 18건(42.9%)이 주취자 신고로 분류됐다. 하지만 폭행으로 신고된 경우에도 출동해 보면 음주 상태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례까지 포함할 경우 사실상 대부분의 신고가 술과 관련돼 있다는 게 일선 경찰의 설명이다. 이 지구대의 정경빈 경위는 “평균 10건 중 8건은 음주와 관련된 신고”라고 했다.
주취 사고가 이어지다 보니 성폭행 강도 등 다른 강력사건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동행 취재한 오후 11시경 당곡지구대에 신고 7건이 한꺼번에 몰리자 출동할 순찰차가 일시적으로 부족한 상황도 벌어졌다.
● 공무집행방해 10건 중 1건도 입건 안 돼
현장에선 공무집행방해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빈번하지만 실제 입건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한 지구대에 근무 중인 경찰관은 “공무집행방해 행위가 발생해도 실제 입건해서 수사까지 이어지는 건 10건 중 1건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선 주취자에게 한두 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입건하는 걸 마뜩잖아 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공무집행방해로 입건하고 수사해 재판에 넘기는 것도 일이다 보니 적당히 달래 마무리하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올 1월 서울서부지법은 2021년 주취자 보호 조치를 하던 경찰관의 허벅지를 20초간 깨물어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로 재판에 넘어간 경우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가 45.7%로 가장 많았고, 벌금이 선고된 경우는 30.7%에 달했다.
● “음주 범죄 감형 아닌 가중처벌 필요”
최근 법원에선 음주를 감형 사유로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형사 법정에선 주취 감경을 호소하는 피고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술에 취해 택시 운전사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역시 변호인을 통해 “만취 상태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극히 미약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음주가 감형 사유가 아닌 가중처벌의 사유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전히 법원은 음주 범죄 처벌에 소극적”이라며 “오히려 음주를 가중처벌 사유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도 “음주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인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현장에서도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주취 신고#음주 범죄#취객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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