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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채화공자 반준.
그는 갑자기 냅다 고함을 쳤다.
"이 늙은 원숭이 같은 놈아! 술을 처먹을려면 곱게 처먹을 일이지 감히 본공자에게 시비를 걸다니......!"그와 동시에 그는 거칠게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펑!
격렬한 폭음이 일었다.
"으윽......!"
굉천은 힘없이 무려 이십 여장이나 나가 떨어졌다. 전혀 무방비 상태인 채로 졸지에 당한 것이다.
"......!"
굉천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채화공자의 돌연한 변화로 그는 머리속이 어지러워졌다. 하나 그는 먼저 분노가 치솟았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채화공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낭패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신안으로서의 명성 못지 않게 한 번 보면 결코 잊지 않는 무서운 두뇌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자칫 하면 목숨을 내어줄 실수를 저지를뻔 한 것이었다.
이때 그의 귓가로 은은한 전음이 들려 왔다.
"굉노인, 미안하오... 십지천화 송문연과 나는 인연이 깊소. 자, 그럼 내일 밤 다시 이곳에서 봅시다.""......!"
굉천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때였다.
채화공자의 등 뒤로 한 미녀가 소리 없이 나타났고 그녀는 바로 다름 아닌 태월아였다.
태월아는 반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호호... 여기 계셨군요. 어디 가셨나 했죠."
채화공자, 아니 천우는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사뭇 들뜬 미소가 어려 있었다.
"후훗... 이 곳은 정말 기막힌 곳이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소."그의 이러한 반응에 태월아는 적이 만족한 얼굴로 응수했다.
"호호... 원하신다면 이 곳은 모두 반랑의 것일 수도 있죠."천우는 히죽 웃으며 반문했다.
"그건 무슨 뜻이오?"
태월아는 미소를 띄운 채 대답했다.
"반랑을 이 곳의 귀빈이자 부림주로 초빙할 수도 있다는 말이예요."출신내력도 알려지지 않은 그에게 그것은 분명 대단한 제의였으며 훌륭한 미끼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연기가 완벽했기 때문일까? 천우는 몹시 기쁜 듯 두 눈을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오?"
"정말이고 말고요."
"후후...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또한 본 공자가 기다리던 바요."이어 그는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한데 대체 림주는 누구요?"
그 말에 태월아는 대답 대신 생긋 웃어 보이고는 돌아섰다.
"따라 오세요."
그녀는 앞장 서 걸었고 천우는 그 뒤를 따랐다. 태월아의 앞서 걷는 그녀의 뒷모습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한들한들 나부끼듯 걷는 그녀의 자태는 요염하기 그지없었고 걸음을 옮길 적마다 유연하게 흔들리는 여체의 곡선미는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반준, 즉 천우의 음탕한 시선은 그녀의 아름다운 굴곡을 따라 오래도록 쫓아 다녔다. 그는 느긋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둥이 특유의 관심사를 드러냈다.
"후후... 낭자는 둔부가 정말 탐스럽군요. 뒤에서 보니 매우 훌륭하오. 한데 림주는 여인이오?"
"그래요."
태월아는 대답하기 싫은 듯 짧게 대꾸했다. 하나 천우는 능글맞은 어투로 다시 말을 붙혔다.
"그럼 림주도 그대만큼 아름답소?"
"......!"
일순 태월아의 얼굴이 찡그러졌으나 곧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천녀와 림주를 비교하다니요? 그건 보름달 앞에서 반딧불을 견주는 것이예요."그 말에 천우는 피식 실소했다.
"낭자는 쓸데없이 겸손하구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소.""호호... 하나 곧 믿게 될 거예요."
태월아는 한 마디 덧붙이고는 다시 걸었다.
"......!"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은 경직되고 말았다. 갑자기 그녀의 몸일부에 이상한 감각이 전해졌다. 채화공자의 손이 그녀의 둔부에 와 닿은 것이었다.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채화공자의 손은 그녀의 둔부를 제멋대로 어루만지고 있었고 태월아의 얼굴에는 일순 분노의 기색이 어렸다. 하나 그녀는 애써 참는 듯한 음성으로 그에게 말했다.
"이 곳에는 반랑이 손만 뻗으면 누구든 안을 수가 있어요.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녀들이 구름처럼 많으니까요."하나 채화공자는 그녀의 둔부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후훗... 하나 낭자 만큼은 못 되오."
태월아는 그에게서 떨어져 서며 표정을 고쳐 생긋 웃었다.
"아직은 안 돼요."
"그건 왜요?"
채화공자는 아쉬운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보면 볼수록 도발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용모였다.
태월아는 그의 시선엔 아랑곳 없이 여전히 미소하며 대꾸했다.
"천녀는 이 곳의 유녀(遊女)가 아니니까요."
"그럼 유녀만을 안을 수 있다는 말이오?"
"그래요."
채화공자는 피식 웃으며 잘라 말한다.
"그럼 흥미 없소."
"......?"
태월아는 의외라는 듯 고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채화공자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었다.
"나 채화공자 반준은 썩은 꽃은 꺾지 않소. 본 공자가 원하는 것은 바로 싱싱한 꽃이오."그녀는 상당한 기이함을 상대에게 느낄 수 있었고, 쉽게 거절할 것도 종잡을 수 없는 여운이 남았다.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야. 호색한이면서도 나름대로의 법도가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매우 음탕하나 어찌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그녀는 보이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어쨌거나 이 사람은 호색한이야! 그가 하는 말에 귀기울일 필요는 없지.......'
대전(大殿).
분지 깊은 곳에 한 채의 대전이 있었다.
천우는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곳은 바깥쪽의 상황과는 그 분위기마저 사뭇 달랐다. 우선 매우 조용했고 지극히 고적함에 형언키 어려운 고결함마저 깃들어 있는 듯 했다.
고아하다고 할까?
은은한 품위가 엿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천우가 놀란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대전을 지나는 동안 그는 많은 여인들을 보았다.
그녀들 역시 모두 아름다운 미녀들임에는 틀림없었다. 하나 그녀들은 그가 이제껏 보았던 헤픈 유녀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저마다 품위가 있었으며 음탕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천우는 내심 고소를 지었다.
'역시 이 곳은 두 개의 얼굴을 지닌 곳이로군.'
곧 그는 넓은 전청(殿廳)으로 안내되었다.
전청에는 좌우로 여덟 명의 소녀들이 시립해 있었고 상석에는 엷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휘장 속은 황금봉황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한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자태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
천우는 미묘한 시선을 휘장 쪽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때 문득 그를 안내한 태월아가 말했다.
"림주께 예(禮)를 취하세요."
하나 천우는 곧 방약무인한 태도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 이 곳에 진짜 꽃(花)들이 있구료?"
천우는 막강한 살기를 느꼈다.
시립해 있던 소녀들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녀들은 휘장 안의 여인의 명령만 떨어지면 곧 천우를 죽일 기세였다. 천우의 무례는 정도를 지나친 것이었다.
그녀들은 일제히 분노에 찬 시선으로 천우를 노려보았다.
"으... 음......!"
휘장 속으로부터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의미는 확실치 않았으나 그 음성의 주인이 나이가 많지 않음을 천우는 금방 느낄 수가 있었다.
이어 휘장 속에서는 천상의 음율을 닮은 듯한 섬세한 옥음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채화공자 반준인가요?"
"그렇소. 당신이 이 곳의 림주요?"
천우의 언동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으음......!"
곁에 있던 태월아의 안색이 대변(大變)했다.
좌우의 소녀들은 내공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천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그녀들은 천우를 단숨에 끝장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정작 휘장 속의 음성은 부드럽게 울렸다.
"반공자는 대단한 기세를 지녔군요?"
"하하... 그렇소!"
천우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설사 눈앞의 태산이 무너져도 본 공자는 끄덕 없소."
그는 짐짓 가슴을 쳐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예의 부드러운 음성은 다소 조소가 깃들어졌다.
"지나친 과신은 위험을 초래하지요."
"나는 나를 믿을 뿐이오."
천우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호호호홋......!"
휘장 속의 여인은 교소를 터뜨렸다.
그것은 분명 비웃음이었으나 흡사 여러 개의 금현(琴弦)이 울리는 듯 감미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곧 그 음성은 어조가 바뀌어 사뭇 신중하게 말했다.
"극락전은 보았나요?"
"그렇소."
"그 곳의 노예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원무림에서 내노라 하는 고수들이었어요."그 말을 끊고 천우는 내뱉듯 대꾸했다.
"후훗... 보기 나름이오. 내가 보기에는 쓰레기들일 뿐이오.""인간 쓰레기들이라고 해서 모두 허수아비는 아니예요."휘장 속의 음성은 다소 강경해졌다.
천우는 대답 대신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불평하듯 아무렇게나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실망이구료? 이 곳에 오면 꽃 같은 미녀들을 안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 보니 매우 인색하군."그의 말투는 건방지기 짝이 없었으며 그의 태도는 몹시 오만해 보였다. 하나 휘장 속의 음성은 오히려 부드러워졌다.
"그건... 그대가 하기에 달려 있어요."
"어떤 것을 하라는 것이오?"
천우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휘장 속에서는 차분한 설명으로 답했다.
"알다시피 이곳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있어요. 그들은 지금 중요한 공사(工事)를 치르고 있죠. 하나 그들은 가끔 말성을 일으키는 때가 있어요. 그들의 반란을 제지시키기는 무척 애를 쓰게 되지요.""후후... 내게 그 일을 맡아 달라는 거요?"
"맞아요. 승낙한다면 당신에게는 무궁한 이득이 있을 것이오."그녀의 말에 천우는 씨익 웃었다.
"후후... 일종의 거래인 셈이구료?"
"그렇게 생각해도 돼요."
"좋소."
천우는 매우 선선히 수락했다.
하나 곧 그는 정색을 지으며 덧붙였다.
"좋소. 하나 대가는 내가 정하겠소."
"......!"
휘장 속에서는 흠칫 놀라는 기색이 보였고 잠시 아무런 말도 들려 오지 않았다. 그의 이런 제의가 의외인지라 무언가 생각하고 재 보는 것이리라!잠시 후 휘장 속에서는 다시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좋아요. 그럼 성사된 것으로 하겠어요."
천우의 입가에는 기이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후후... 아직 남은 일이 있소."
"......?"
그는 휘장 속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불공평한 것은 딱 질색이오. 일단 림주의 얼굴을 보아야겠소.""......!"
휘장 속에서는 가벼운 놀라움이 전해져 나왔다. 이때 좌우의 소녀들이 대경하며 외쳤다.
"감히......!"
"무엄하다......!"
하나 천우는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예의 그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후... 싫다면 강제로라도 볼 수밖에......."
슈슉!
말을 맺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빛살 같은 속도로 휘장을 덮쳐 갔다.
"앗!"
"감히......!"
소녀들은 대경하여 분분히 몸을 날려 그를 가로막았으나 천우는 유령처럼 그 사이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는 휘장을 향해 부채를 수평으로 그었다.
번-- 쩍!
한 가닥의 은선(銀線)이 그대로 휘장을 갈랐다. 이때 휘장 속 인영은 노기 띤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원하다니......!"
그와 동시에 여인은 손을 뻗었고 형체도 소리도 없는 음유한 기운이 천우에게로 향해 나갔다. 천우는 그 여인의 무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간파했다.
옥수금영(玉手金影).
단목가의 비전절기가 천우에게 발출된 것이다. 그것의 고강함이란 가히 천근의 쇳덩어리를 단숨에 박살낼 수 있는 장세(掌勢)인 것이다.
천우는 좌우로 몸을 비틀며 장세를 피해갔다. 그런데 어느새 또 하나의 장력(掌力)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피하지 못하고 우수(右手)를 들어 다급히 맞받아쳐 갔다.
펑!
천우는 휘청하며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아......!"
여인은 나직이 경악성을 발했다.
투투툭......!
휘장은 상단이 수평으로 갈라진 채 수평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휘장 속의 상황이 모두 드러났다.
여인휘장 속에 가리워졌던 여인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백의를 단아하게 차려 입은 미녀는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대략 십 팔구 세 정도 되었을까?
섬세한 윤곽과 백옥 같은 피부가 거의 완벽한 미를 자아낸다.하나 그보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자체보다는 그녀가 지닌 기품이었다.
우아하고 고귀한 품위를 지닌 절세의 미녀...... 그녀는 함부로 범접키 어려운 그런 미녀였다. 그녀의 길고 매끄러운 섬섬옥수에는 하늘거리는 봉황우(鳳凰羽)가 쥐어져 있다.
눈.
그녀의 서늘하도록 크고 아름다운 눈은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고 천우의 눈과 일직선으로 마주쳤다. 그런데 그 눈과 마주한 천우의 눈에는 기묘한 감정이 얽혀 들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들은 서로가 기이한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천우는 가슴에 은은한 진동을 느꼈다. 무엇인가 명백한 이유도 없이 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는 백의여인의 얼굴에서도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읽어 낼 수가 있었다.
백의여인.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으나 곧 표정을 고치며 슬쩍 손에 쥔 봉황우를 뻗었다.
"당신의 오만함은 보아 넘길 수가 없군요."
휘리릭......!
돌연 수천 가닥의 음유한 기운이 실처럼 천우를 감아 들어갔다.
"......!"
천우는 졸지에 꼼짝할 수 없이 묶여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의 안색은 삽시에 흙빛이 되었다. 하나 누구 알겠는가? 그것은 천우의 고육책(苦肉策)이었다.
"이건 경고예요. 재차 이런 무례를 범한다면 용서치 않겠어요."백의여인의 음성은 준엄했다. 그녀의 가냘픈 좌수(左手)가 나풀거렸다. 언제 손을 썼는지도 모르게 맹렬한 일장이 쏘아져 갔다.
"으윽......!"
천우는 가슴을 부여안고 주르륵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금시 낭패한 기색으로 물들었고 가슴에는 뚜렷한 장인(掌印)이 찍혀 있었으며 그 부분의 옷은 아예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천우는 기가 죽은 얼굴로 백의여인을 멀거니 쳐다본다.
백의여인은 그에게서 돌아섰다.
"돌아가세요."
그 음성은 싸늘했다. 하나 어딘가 모르게 동요된 기색이 엿보이는 음성이었다.
"커억!"
천우는 한 모금 응혈을 내뱉었다.
"림주의 무공은... 상상 이상이오... 나는......."
그는 패배를 시인했다.. 태월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팔을 당겼다.
"그만 돌아가세요. 반랑, 림주님의 심기가 편치 않으세요.""알... 알겠소......."
천우는 풀 죽은 음성으로 대꾸했고 이어 못 이기는 척 태월아를 따라 그곳을 나섰다. 그가 사라지자 백의여인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확실히 그녀의 아름답고 우아한 얼굴에는 동요의 빛이 보였다.
'왜 그랬을까... 그를 본 순간 가슴에 닿는 기이한 느낌은... 웬지 친근감이 드는 것은......?'하나 곧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겠지... 그는 단지 음탕한 사내에 불과해.'
하나 그 만남이야말로 운명이었음을... 그녀가 알 리 없었다.그녀의 눈에 한 아름다운 청년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 분... 그 분과 반준은 너무도 대조적이야. 그 분은 정녕 아름답고 지혜로운 분이지... 하나 반준은 거칠고 무례해.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상대... 한데 왜 반준의 오만한 태도가 내게는 용납되어지는 것인지.......'그러다 불현듯 그녀는 탄식해 마지않았다.
'만일, 천릉... 그 분이 무공을 익혔다면.......'
그녀의 눈가에는 아쉬움이 깃들이었다. 하나 곧 체념한 듯 그녀는 다시 고개를 힘겹게 내저었다.
우문천릉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백봉황... 알 수가 없군. 그녀는 나를 본 순간 왜 동요된 것인가......?'천우는 침상에 벌렁 누운 채 생각했다.
'웬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이어 그는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해 갔다.
'환천군림부의 장백지부라... 게다가 백봉황의 무공은 놀라운 것이다. 그토록 음유(陰柔)한 장력은 처음이다. 그 정도라면 적어도 호불위와 견주어도 결코 하수가 아니다.'그의 생각은 잘 정리되어지지 않았다.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처럼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당금 무림에서 그 누가 백봉황 같은 고수를 키울 수 있단 말인가? 또한.......'그의 의문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이곳에서 벌이는 공사는 무엇일까? 그토록 많은 인력을 동원할 정도라면... 산이라도 들어낸다는 말인가......?'생각을 이끌어 가던 중 갑자기 한 가지 영감이 그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갔다.
'그렇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파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쩌면... 극히 엄청난 비밀이 잠재하고 있을 것이다.'그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소 풀어진 눈으로 창 밖을 응시했다. 어둠이 매우 짙었다. 이미 밤이 깊어진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내리 감으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내일 밤 신안쌍청비공을 만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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