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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국 네비게이션 원문보기 글쓴이: Gemi
ㅁ그리스도인의영성적삶 2017-09-03 로마서 12: 1- 2ㅁ
시작하는 이야기
영성이라 하면 세속적인 것 보다는 신령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측면을 더 생각하고 관심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영성이란 말은 초감각적 실체들을 향하도록 도와주는 자세, 신앙, 관습들을 묘사하고 물질이나 육체적인 것들로부터 구분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이라는 용어를 이 세상이나 세계, 역사현실과는 대조적으로 저 세상 비 역사,
초현실적인 것들을 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실과 역사를 떠나 초월적 세계나 신비하고 신령한 비현실적인 것으로 기울기에, 그런 오도(誤導)를 막기 위해 정교회 슈메만(Alexander Schmeman)같은 신학자는 영성이란 용어대신 ‘그리스도인의 삶’(Christian Life)이란 말로 대치하여 사용하기를 권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결코 영적인 면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에 관여하며, 그 전체 속엔 종교나 철학, 사회와 정치, 신령 계나 자연, 인간의 영혼과 육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명령을 다 지향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영성에는 본성인 욕망의 억제, 정신적 훈련, 자기부인과 큰 선을 위한 저급한 것의 포기와 함께 인류와 자연이 다 포괄됩니다. 즉 자연인간의 욕심을 떠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의해 변화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삶’에 관하여 선인(先人)들의 신앙의 순례 적 삶을 찾아 좀 더 고찰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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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이야기
복음서나 바울서신에 의하면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고(눅1:35), 선한 일을 위해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았으며(행10:38),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인도되었습니다(마4:1). 심지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친 것도 히브리서에 따르면 성령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히9:14).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도 성령의 힘에 의한 것이요(롬8:11) 그가 승천하기 전 제자들과 교회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행1:2-3)고 명한 것도 성령으로 지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의 영성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경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철저한 유대인이던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이후 ‘박해자가 전파자’로 완전히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지향하게 됐습니다. 그의 삶의 기초인 믿음과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빌3:8) 이제까지 소중하던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 삶의 출발점이요 목표가 됐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 얻고, 남은 생은 창조주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의 생임을 깨닫습니다. 아직도 ‘사망의 몸’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롬7장). 영적 삶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그가 땅에서 살며 보여준 생을 닮고, 심지어 그의 고난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생활이요 육체 안에서의 생활이기도 합니다(롬8:17, 빌3:8-11참조). 따라서 영적 삶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육을 가진 인간은 성령과 육체사이의 싸움과 긴장이 늘 있습니다(롬8:12-14, 갈5:13-26). ‘성령안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기초입니다. 성령을 소유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는 것이요,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처럼 되는 과정이요 그리스도의 죽음이 죽을 육체 안에 완전히 반영될 때에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런 것이요,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는 한 영적인 승리나 완전보다는 좌절이 영성생활의 표식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이미 이루어졌으면서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실존(實存)이요, 하나의 윤리적 긴장으로 표현됩니다. 죄의 세력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물리칠 수 있기에(롬7:6, 8:2-4)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며(롬8:4-13,갈5장) 바로 이런 삶의 자세로 사는 것이 영성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홀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몸의 한 지체와 같이 다른 지체들을 통해서 공급되는 은혜에 의존하며, 또한 다른 지체들에게 은혜를 전하는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며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고전12장). 바울은 몸의 통일성과 연관성으로 한 신앙공동체인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 영성이란 그러므로 홀로의 영성만이 아닙니다. 몸의 여러 지체들이 피차 돕고 협력하며 연결되어 자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 몸 전체가 건강하듯,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바울은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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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 그리스도인 영성의 삶을 본 보여준 사람들 이야기
그리스도교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대마다 인간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구원의 윤리적 종교적 중심언어가 변화하여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도교(1-5세기)의 중심과제는 인간의 덧없는 무상함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때 ‘불멸성’확인이 교회의 1차적 메시지였습니다. 중세기(6-15세기) 1천여 년 동안은 죄책감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죄의 사유와 심판과 지옥으로부터 구원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근세(16-18세기)는 청교도의 윤리가 말했듯이 근검절약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확증하는 것이 덕(德)이었습니다. 19세기에는 인간 소외문제가 절정에 달해서 20세기 중반까지 소외의 극복이 교회 메시지의 중심과제여서 십자가의 신앙의 중심주제가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교회의 제1의 영성적 덕목은 무엇입니까? 인간영혼의 불멸성, 죄의 사유와 구원, 정직과 근면, 화해와 일치가 모두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절제와 나눔의 삶이 성령의 시대적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권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우리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인류를 향하신 뜻이 ‘변화하고’ ‘서로 나누며 살라’는 말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변화를 받아’의 원어는 형체를 변화 시키다의 현재수동태로서, ‘타인에 의해 계속적으로 변형되는 삶을 살아감’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판단규범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삶의 근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 속에 동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오늘의 삶의 상황 속에서 재현해나가는 ‘제자의 길’이며, ‘그리스도를 닮음’이며 예수를 내 생명 속에 ‘연출해 내는 삶’인 것입니다.
현대 신구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 영성의 본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몇 사람의 면모, 그들의 순례적인 삶을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인도의 캘커타에 빈민수용소를 열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다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와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교수직을 떠나 미국과 카나다 국경변두리의 육체. 정신박약 아동들의 공동체로 떠난 헨리 나우웬(Herny Nouwen)신부와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의 성육신적 영성에 대하여 차례대로 살펴보려 합니다. 신구교를 막론한 그리스도교의 영성에 관해 편견이 아닌 균형 있는 영성의 가르침의 의미를 바로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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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더 테레사는 저서를 별로 내지도 않았고 신학적으로 내세운 주장도 없으나, 그녀의 삶을 통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타종교인을 가톨릭으로 개종 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더 훌륭한 힌두교나 이슬람교도가 되기를 바라기에 전통적 가톨릭입장에서는 이단시(異端視)할 수도 있습니다. 간혹 신구교를 막론한 사제나 목사 중에는 과격한 비난을 서슴치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더 테레사는 가난한자들 중에 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사랑하고 염려하며 돌보는 것을 평생의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질 뿐 아니라 자선단체를 조직하여 온 세상에서 정말 불쌍하고 가난한자들을 돌보는 테레사나 그녀의 자선단체를 세계 사람들은 지켜보았습니다.
그녀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뿐 아니라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인도정부는 이교도의 수녀를 국장(國葬)으로 모시며 인도정부와 국민들은 최대의 치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신앙이나 영성을 여러 사상으로 정의하고 주장할 수 있으나, 그녀는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하고 버려진 그들을 돌보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의 최대과제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인 예수를 오직 세상을 위한, 다만 이웃을 위한 존재라고 하거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한다면, 테레사의 신앙과 삶은 그 정수(精髓)를 전시(展示)한 것입니다. 때문에 교리적으로 로마교황청은 그녀를 정죄할 수 있으나 결국 성자로 추대할 수 밖 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자선단체가 예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중심인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 영성적 삶입니다.
그녀의 자선단체를 찾은 한 외신기자가 문등병 환자를 돌보고 있는 그녀에게 “당신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고 묻자, 물론 나도 쉽지 않고 어렵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살리고 구원한 예수의 고난과 성령의 권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등에 대한 명상과 기도 등이 나로 하여금 이런 봉사를 계속할 수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 생의 공식과도 같은 <단순한 길>(The Simple Path)에서 테레사가 자신과 봉사원들에게 매일 가르치며 친히 따라 살게 한 생의 좌우명은 대단히 단순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는 한 성도가 영성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 법도 같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따라 한 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매일 이렇게 살기를 제시한 것입니다.
“묵상의 열매는 기도다. 기도의 열매는 믿음이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이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다. 봉사의 열매는 평화다.”이들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칩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기도하기 힘들 때엔 성령이 오셔서 나를 인도하고 보호하고 내 마음을 깨끗이 하며 도와 달라 간청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계시며 그분 없이는 우리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앙이 기도를 통해 더 확신하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살게 합니다. 저들에게 예수는 바로 하나님이요, 배우자요, 나의 생명이요, 나의 사랑이라 믿으며 살았습니다. 어떤 생명이나 각기 그 하나하나는 다 하나님께 고귀한 존재요, 교회는 그들의 가정입니다. 믿음까지도 실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이런 믿음의 선물이 바로 사랑입니다.
서구세계의 제일의 병은 페병이나 문등병이 아니라 사랑하지도 사랑받기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치유란 사랑받고 사랑하며 관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랑의 모든 행위는 기도요, 이런 기도는 고난도 기쁨으로 받고 참여케 합니다. 봉사는 힘든 것이 아니라 기쁨이요 감사의 표시입니다. 사랑이 넘쳐 봉사하게 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그리고 이런 봉사엔 하나님 주시는 평화가 깃들고, 이런 평화는 자신 속에서 이웃과 세상으로 번집니다. 사랑의 봉사들은 언제나 평화의 봉사가 됩니다.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평화가 나와 그들에게 임함을 체험합니다. 테레사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나그네 되고 감옥에 갇힌 자들이 바로 예수자신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돌보는 것이 신앙인 영성의 여정이기에 끝까지 이런 생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내가 가진 최상의 것을 바칠 수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이길 만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훌륭한 영성의 삶이라 믿으며 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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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헨리 나우웬의 낮아짐의 영성
헨리 나우웬 신부는 개신교신학교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에 관해 가르치고 영성에 관한 많은 저서를 출판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고백하듯 그 자신도 오랫동안 그리스도교 영성이나 영원 등을 이전에는 신령한 것과 죽은 뒤의 영원한 저 세상에서의 일들로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러한 생각이나 신앙은 변하여 ‘여기에서 지금’(Here and Now)에서 벌어지는 역사현장의 고난에 찬 일들이 더 소중하고, 그리스도교 영성이나 영원이란 바로 이러한 관심과 삶임을 깨닫게 됐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먼 훗날의 영원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들과 함께 사랑으로 사는 것이요, 오늘 역사현장에서 사랑과 봉사의 삶이 없다면 그 어느 날의 영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과 이웃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여기고 인내와 기쁨으로 동참하며 함께 고난을 나누며 사는 것이 영원이요 영적인 것입니다. 죽음 뒤든 죽음 전이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라 오늘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가 본보여 준 대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신앙과 생이 ‘영원’이요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보여준 삶으로 세상복판의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외면이 아닌 참여요, 그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거기에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세와 신앙이 그리스도인 영적신앙이요 삶의 자세입니다. 결코 신비한 신적체험이나 세상을 떠난 영적추구가 아닙니다. 깊은 산속에서 신비한 체험을 가진 제자들이 거기 더 머물고 싶어 했으나 예수는 다시 눈물과 한숨이 많은 세상복판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와 같이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신비하고 거룩하기보다 가장 세속적이고 구체적이며 세속의 일들을 성령의 은총을 힘입어 그것들을 해결하려 함께 부등켜 안고 몸부림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영적 삶에서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들, 날마다 신문 잡지나 TV뉴스에 나오는 세상 잡다한 문제들은 결코 영적 그리스도인과 상관없는 저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속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요, 영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려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을 사임하고 장애자들의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렉에 와서 저들과 함께 살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인 영성과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위로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영적추구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성서의 모든 이야기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아래로 내려오시고 예수가 인간이 되어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지상으로 오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요 성서의 정신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 영적인 삶을 추구하려 빌립보서가 보여주듯(2:5-8) 하나님의 본체인 그리스도가 동등 됨을 포기하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상을 입고 사람들과 같이 되며 죽기까지 복종한 것처럼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요 그의 영성입니다.
오늘 신구교의 신앙양태를 보면 흔히 그리스도교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이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신령하고 신비한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내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나우웬은 그의 저서 <생의 징표>(Life Signs: Intimacy, Fecundity and Ecstasy in Christian Perspective, New York; Doubleday, 1986. PP43-44)에서 사회나 정치적인 현실복판의 문제들을 영적인 것과 연결하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온전히 아름다운 삶의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한 점은 보수주의 그리스도인, 특히 정치와 종교를 나누며 정치적 문제를 타부시하는 한국교회에 큰 교훈을 줍니다. 따라서 한국교회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신구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개인적이거나 신령한 것이라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려는 자세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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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공 김재준 목사의 신앙순례와 성육신적 영성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는 (이하 장공이라 호칭) 유소년기를 조용한 유교가문에서 보냈고, 3.1운동이 있은 다음해 1920년에 서울유학3년을 YMCA에 드나들면서 앞으로 공부를 위한 준비교육을 마치셨습니다. 그 무렵 승동교회 연합사경회 때 김익두 목사 설교에서 “나도 믿겠다!”하고 결단하였습니다. “그 순간 정말 이상했다. 가슴이 뜨겁고, 성령의 기쁨이 거룩한 정렬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성경말씀이 꿀 송이 같고, 기도에 욕심쟁이가 됐다. 교실에서 탈락한 자연인이 교회에서 위로부터 난 영의 사람이 됐다”(범용기)고 쓰고 있습니다.
청년 장공이 겪은 거듭남의 체험은 진리의 영, 사랑의 영인 창조주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의 마음을 직접 방문해 준 사건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경험했고 칼빈이 증언하는 ‘성령의 내적 증언’이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앞으로 평생 그의 충직한 종으로 한민족을 위해 일할 장공을 “너는 나의 것이다”라고 이끌고 그와 동행하기 시작한 하늘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무렵 장공의 영성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는 13세기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와 20세기 초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그리고 가가와 도요히코였습니다. 20대 청년 장공의 신앙과 영성은 십자가에 달리신 갈릴리 나사렛 예수만이 진정한 메시아이며 나의구주라는 고백 앞에서 인간의 전존재와 소유는 ‘무(無)’와 ‘공(空)’이며 ‘청빈(淸貧)’이어야만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맛보는 생명의 충만, 사랑, 자유이외에 세상적인 부귀, 영화, 명예, 소유는 도리어 거추장스런 짐일 뿐이라는 생각이 장공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톨스토이, 성 프랜시스 등은 청년시절의 풋사랑 낭만적인 것만이 아니라, 장공의 나이 80세가 된 이후에도 변함없는 사랑의 대상이요 흠모의 영적성인이었습니다. 청년 장공의 3년 서울 고학생활은 그의 몸과 맘 양면에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해외유학 시기; 장공이 본격적으로 세계학계에 접하여 지도자로서 학문연구를 한 시기는 일본 청산(靑山)학원 신학부 3년 유학생활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및 웨스턴신학교에서 4년간 공부한 때가 전부였습니다. 이기간 동안 장공은 한국교계, 신학계와 한국사회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갈 수 있는 지도자로서 지성적 훈련을 쌓게 됩니다.
장공의 청산학원에서 자유라는 새로운 세계 경험과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보수주의, 특히 근본주의 신학을 공부한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신학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전한 신학은 극단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된 것입니다. 프린스턴에서 2학기를 공부한 장공은 1930년 가을 새 학기부터 피츠버그의 웨스턴신학교 2학년에 등록했습니다. 장공은 구약성서신학을 주 전공으로 하고 조직신학을 부전공으로 하였 습니다. 장공은 석사학위를 받는 졸업식에서 히브리어 특별상을 받았으며, 웨스턴 3년 동안 실력파학생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깊이 하였습니다. 1932년 미국의 경제공황 때문에 귀국하기로 결심하고 귀국하여 새로운 사명을 기다렸습니다. 평양 숭인상업과 용정 은진중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적응하면서 저항한다’는 정신으로 때를 기다린 장공은 조선신학교 설립의 실무를 맡게 됩니다.
조선신학교의 건교 정신과 소명; 장공은 일제 말, 암혹기에서 조선신하교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혼신을 다하던 중에 해방을 맞아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는 경동교회설립의 중심인물로 활동합니다.
장공은 조선신하교 설립에 부름을 받고 승동교회 하층에서 개교하였습니다. 개학식 때 초대 원장 김대현 장로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취임사를 했다고 (범용기)에서 증언합니다. ‘어렵고 작고 눌린데서’ 조선신학원은 탄생하였습니다.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작은 배아의 씨앗에서부터 서서히 자라 거목이 된다는, 곧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이룬다”는 신념의 소유자였으며, 조선신학원은 이제 80여년의 역사의 비바람을 해치며 한시대학교라는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해방공간에 조선신학교는 혼돈과 어둠으로부터 질서와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조선신학교는 교명을 ‘한국신학대학’으로 바뀝니다.
6.25전쟁과 한국장로교의 분열: 동족상쟁의 부끄럽고 어이없는 6.25전쟁, 민족의 참화를 겪습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장로교는 참담한 분열을 겪게 됩니다. 1953년 6월 10일 서울 동자동 한국신학대학 강당에서는 한국개신교 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결행되었습니다. 제38회 호헌총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진보적 신앙 로선의 교단을 창립 선언했습니다. 교파분열의 시련 속에서 장공은 일체의 우상숭배를 거절한다는 ‘복음의 자유’를 선포합니다. 이는 실로 복음의 자유혼과 프로테스탄트 개혁정신의 발휘였습니다.
4.19와 5.16의 충격 속에서: 1948년 정부수립 후, 12년 동안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던 이승만은 자신을 추종하는 인물들의 장막에 파묻힌 채 정치권력의 노욕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3.15부정선거 결과로 4.19의거가 일어났습니다. 이어서 박정희정권의 3선 개헌과 유신에 반대하여 반독재투쟁을 벌이며 정치현실의 한복판에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를 놓치지 않고 ‘실천신앙’, ‘생활신앙’의 참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성육신 신앙은 역사의 소금과 누룩입니다.
장공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남보다 먼저 나서서 큰소리로 목청 높여 순교를 자청하는 도전적 저항인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 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신앙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한국개신교사 속에서 선교사들의 후견과 보호를 받으며 교권주의자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학문의 양심과 신앙의 양심을 저버리고 타협했다면, 그는 목사직 파문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맘고생 몸고생도 아니했을 것입니다.
장공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과 1969년 ‘3선 개헌반대 범국민투쟁에 관계하여 앞장서서 투쟁했습니다. 장공의 성육신 신앙은 현실변혁을 지향합니다. 장공의 영성의 핵심적 본질은 ’성육신적 영성‘을 그의 현실이해 속에서 관철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공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을 통해 현실 변혁적 운동 속으로 깊이 관여한 것은 본래적 신앙인의 삶의 구현이고, 성실한 ’실천행동‘이라고 확신합니다. 장공은 그리스도신앙이란 곧 삶속에 성육신하는 ’생활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공의 ‘성육신적 영성신학’은 한국개신교가 대체로 보수적 선교사들이 형성해 온 ‘영혼구원을 목표’로하고 ‘사후천국생활을 대망’하고, ‘현실역사를 사탄의 지하왕국’으로 보는 신학, ‘구원체험을 인간내면의 성령체험으로만 제한하고’ 복음진리를 ‘교회당 안에 저장해 두는 한국교회’에 일대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장공과 뜻을 함께하는 1970년대 진보적 청년, 교역자, 신학자들은 한국사회에 ‘역사변혁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시련 속에서도 고난이 곧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무리가 생겨난 것입니다. ‘성육신적 신앙은 현실변혁을 지향 한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제3일>과 말씀의 인간화: 한국장로교 분열과정에서 <십자군>이 신앙과 진리증언의 계몽역할을 했다면, <제3일>은 유신독재에 맞서 신앙과 진리증언을 한국정치사회 속에 올곧게 선포한 말씀들입니다. 카나다에서 속간되었고 1981년 6월까지 속간 60호를 발행하여 국내외 민주화 운동시대에 ‘사회의 예언의 소리’로 기여하였습니다. 장공은 카나다를 중심으로 북미주 전역에 걸쳐 조국의 민주회복과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면서 화해의 신학을 실천하였습니다.
장공의 교회관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서 확장 이해됩니다. 교회는 성령의 기관이고, 교회는 현실역사를 그리스도의 역사로 변질시킬 책임이 있다는 것, 교회는 전쟁도발에 항거하여 평화운동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 교회는 특권층보다는 서민 민중의 친구요 대변자여야 한다는 것, 교회는 좌절 없는 희망의 등대이라는 것, 교회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실현되는 종말적 비전을 실현하는 병참기지요 창조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장공은 귀국하여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토(故土)를 걸었습니다. 생애 말년에 그는 시간과 역사의 범주를 넘어서는 더 크고 넓은 우주적 실재의 차원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보내셨습니다. 인간의 신비와 하나님형상 회복을 염원하셨습니다. 장공은 1987년 1월 벽두엔 함석헌과 함께 <새해머리에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유언처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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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감하며: 그리스도인 영성적 삶이 확연해 졌습니다. 그리스도인 영성은 보이지 않는 영과 신비한 세계의 거룩한 추구가 아니라, 우리 생의 모든 분야를 다 포괄하는 생입니다(embraces the whole life). 따라서 바울의 삶도 또 다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새롭고 변화되고 변형된 지금 여기서의 전혀 다른 삶’이었습니다.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말한 ‘하늘로부터 새로 난 생’이요, 이런 그리스도인의 영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삶이란 하나님과 이웃사랑을 제일로 가르친 그리스도의 명령을 피차 보완하며, 우리의 이런 사랑은 하나님 창조한 모든 생물 하늘과 땅, 온 우주에 까지 확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교’가 주장하는 대로 온 세계의 정의와 평화 창조물 보존과 온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나라 선교정신이 다 포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 영성적 삶이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길이요 삶입니다. 삼위일체로 표현한다면 “그리스인 영성이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의 삶을 본받으며, 근본적으로 성령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은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성의 삶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