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17. 월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창세기 15장
카톡을 많이 받다 보면 어떤 때는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한꺼번에 두세 개의 메시지가 와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맨 아래 메시지만 보고 위에 있는 메시지를 놓칠 때가 있다.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떤 분이 나에게 음성메시지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나는 그분이 나를 너무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너무 의지하지 말고 QT를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좋겠다.”라는 맥락으로 짧게 답을 드렸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그분이 보낸 카톡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나!
내가 읽은 마지막 글 위에 다른 글들이 더 있었던 것이다.
그 글을 읽어 보니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나는 그 중요한 글을 읽지 못하고 맨 아래에 있는 기도 부탁만 읽었던 것이다.
위의 글을 다 읽고 나니 그제야
‘아… 이래서 나한테 그런 기도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한 생각에 긴 기도문을 만들어 일단 보내 드렸다.
어제는 아침부터 그 일로 인하여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
단기팀이 다녀가고 나면 받은 재정이 얼마인지, 어디에 얼마를 사용했는지 계산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래서 모든 계산을 다 했는데 아무래도 돈이 남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돈이 이렇게 남을 리가 없는데 왜 돈이 남지?’
나는 돈이 모자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냥 내 돈을 넣으면 되니까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 돈이 남으면 아주 마음이 불편해진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돈이 남을 이유가 없는데?’
그래서 다시 장부를 처음부터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나!
드디어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어떤 선교사님을 도와드린 돈을 장부에 기록하면서, 동그라미 하나를 더 넣은 것이었다.
하하하!
그러니 당연히 계산상 돈이 많이 남을 수밖에!
이유를 발견하고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는 재정을 계산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편이다.
물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내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재정을 맡아 계산할 때면 이런 기도를 한다.
“하나님, 제가 계산을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것을 손해 보게 하는 일은 없도록 도와주세요.
차라리 제가 손해를 보면 보았지, 하나님께 드려진 재정이 잘못 사용되거나 없어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큰 헌금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선교사님, 그냥 알아서 사용하세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나를 그렇게 믿어 주시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그러나 헌금을 받은 사람의 책임으로서 나는 가능하면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자세하게 알려드리고 싶다.
어떤 분들은
“선교사님,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받은 헌금에 대해서는 청지기로서 깔끔하게 잘 관리하고 싶다.
나는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신다!”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나 역시 내 주위에서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자꾸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특별히 내가 선교사로서 다른 선교사를 도와주어야 할 때 그 선교사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고 금방 또 더 도움을 주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
하나님도 정직한 자에게 주는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접목하면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말성경 창세기 15장
1. 그 후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어제는 아침부터 그렇게 기분이 가벼운 날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묵상해야 하는 창세기 15장 1절 말씀을 듣자마자 이 말씀이 그야말로 “위로의 말씀”으로 확 내 마음에 와닿았다.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곧바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구원받은 것만도 감사한데 감히 무슨 상을 바라나요? 저는 상 같은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성경적인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경에는 분명히 상을 바라보며 달려가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는 이렇게 말씀한다.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상을 받도록 달리십시오.”
그러니 성경적인 자세는 “나는 아무 상도 바라지 않는다”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오늘 창세기 15장 1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해 주시는 것이 참 감사하다.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그래! 하나님께 받을 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상이 무엇인지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무엇을 참고 견디며 섬겼는지 완전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사람들은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감사함으로 대하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말씀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의 능력 가운데
오늘도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 새벽예배를 더욱 활성화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도 600명, 700명 정도밖에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새벽예배를 더 큰 성전인 티고니 교회 본당에서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두 성전에서 동시에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내 아들 제임스 전도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함께 티타임을 가지며 달걀과 빵과 차를 나누면서 친교하는 시간에도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지치고 힘든 이들이 있다면 이 새벽예배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게 하시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하시고,
새로운 격려와 사랑을 듬뿍 받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8. 17.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나의 딸
사랑하는 나의 아들
네 하루하루의 삶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네가 항상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바로 그런 자들을
깨어 있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코람데오도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 되겠지.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네가 하는 모든 수고,
주 안에서 하는 수고
헛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라.
너를 남들과
비교하지도 말라.
남들이 얼마만큼
가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네가 안 가졌는지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네가 얼마만큼 나를 위해
수고하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니?
너는 오늘 나를 위하여서
너의 이웃을 위하여서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느냐?
그것으로 너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지켜본다.
상줄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울지 마세요.
어쩐지 이 이야기는
꼭 해주고 싶네요.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