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hEfA3bq-Sk?si=6D0nVkJVWxdieRvF
3법인.. 불교의 근본을 세 가지로 표시. 인이란 일정불변.
대장경 안에 아함경 가운데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것을 보면 석가세존이 사용한 언어가 아닌 후대에 만든 개념인 듯.
3법인이라는 고유명칭을 후대에 만든 이유.. 시간이 흐르며 불경이라 하지만 순수한 불교가 아닌 것이 섞이므로 불교를 확실히 밝히려 3법인 또는 4법인이라 정의함.
즉 3법인이 중심이면 진경 아니면 위경이라 한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또는 열반적정
위 비디오 33분부터 내용..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법이란 감각적으로 들어올 때만 있는 것이고, 감각적으로 사라지면 없다. 무상이요 무아다.
제법은 무아다.
sabbe dhamma anatta(anatman)
일체인 법은 무아다.
본체는 볼 수 없다.. 드러나는 것은 상과 용
일체는 법이요, 법은 실체가 없다.. 나, 효진은 법이란 마음에 생긴 것이므로 실체가 없다고 한다.
외도에서 법은 진리라 하고, 불교에서는 의근의 상대를 법이라 한다. 불교 안에서 법을 진리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불법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뜻.
법(法)이란 한자의 고어에는 해치가 들어가 있다. 해치는 물에 들어가면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수다원.. 이 몸이 있다는 존재한다는 유신견[신념처]이 사라진다.
사다함.. 신념처가 사라지면 감각[각념처]이 있다는 게 사라진다.
아나함.. 각념처가 사라지면 심념처가 사라진다.
아라한.. 심념처가 사라지면 법념처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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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고 들으며..
고광스님의 한문 경 해석을 듣다 보면.. 전에 알았던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발견하는데..
잘못 알고 있던 이유는 한문에 대한 무식이었고, 바른 이해는 한문에 대한 바른 설명을 들으니 생기는 것을 본다.
경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도록 해주는 고광스님께 새삼 고마움을 표합니다.()^^.
한편 한문 글자에 담긴 변화를 들으며..
인류 4대 발상지로 인더스강 지역의 인도 문명과 함께 황하강 지역의 중국 문명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즉 외래 사상이 중국에 전해질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문화적으로 불교가 당시 중국보다 월등했기 때문이라는 말에 수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4대 문명 발상지라고 하지만 인도 문화가 중국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던 시기에 인도가 앞섰다는 것이지.. 현대인 지금도 인도가 앞서고 있다고 할 수 없음을 보면.. 인도가 항상 중국을 앞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형문자로 뜻글자인 한문을 풀어주는 스님 말을 들으며 그런 뜻글자를 만든 당시 중국인의 문화 깊이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 그런 한문 문화권에 있던 한반도 문화 역시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가 삼국시대였던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엄청난 변화가 오니.. 백제 수도인 사비성은 <금강경>에 나오는 사위국(성)에서 빌린 언어로 임금이 사는 성이란 뜻이다. 신라의 서라벌 역시 사위라는 말이 어원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어원은 역시 사위가 되고..
그리고 불교는 중국 문화와 함께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알다시피 불교가 일찌감치 삼국, 고려시대 주류였고, 유교는 조선에 이르러야 주류가 된다.
하지만 불교든 유교든 모두 글자는 한자였기에 우리 문화는 한문화권이라 하며.. 그런 한문화의 우수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K-문화가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와..
불교를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을까?.
일체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서 생겨 있는 것.
저 문제는 당시 중국은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두가 당연한 사실로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데..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니!.
비존재인 마음(心)이란 글자를 보아도 심장이 들어가 있듯이 존재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철학에서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현상학이 나오니.. 일체는 마음에서 생긴다는 불교와 목적은 다르지만 궤를 같이 하는 철학이 된다.
다만 스님이 설명하는 내용은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 사유 방법은 존재를 전재로 새워진 정신세계인데.. 스님은 그게 아니라 마음인 법에서 세워진 것이라 하니..
우리에게 익숙한 논리에서 벗어나기에 이해가 어려운 것이다.
해서 하는 말.. 꿈. 깨!
이렇듯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비존재인 마음을 당시 중국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지.. 답이 있을 수 없었다. 하여 마음을 바르게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지금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마음에서 나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생겼다는 것으로 나와 세계를 그렇게 관하여 궁극적으로 괴로움이 없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자리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객관적 현실을 무시하고 현상을 마음에서 생긴 것으로 치부하여 현실을 외면하거나 책임 회피 수단으로 본다는 등의 엉뚱한 비판을 한다. 그와 같은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나와 세계를 존재로 보는 시각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포함해 나와 세계를 존재로 여길 때.. 그것을 형상화하여 만든 한자는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문자이며, 한문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화가 아닌가.. 한글이나 영어를 아무리 예술적으로 멋있게 그려내도 한자의 멋에 비할 수 없다.
지금 중국에서 벌이고 있는 중국식 간자체인 한문이나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한자는 글자를 보며 뜻을 알 수 있는 상형문자가 더 이상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당나라 때 한자야 말로 상형문자인 한자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걸로 아는데..
만일 한자를 다시 가르친다면 당나라 한자를 그대로 가르쳐야만 하리라.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에 나오는 그 한자 말이다.^^.
참고로 우리가 한자를 읽는 식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소리하는 데.. 우리가 읽는 식은 당나라 상류층이 사용하던 발음이라고 한다.
지금 중국이나 일본인의 한문 발음 소위 상놈들이 하는 발음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쌍놈 발음을 우리가 따라가고 있으니.. 상놈이 판치는 세상이 된 건가..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불자인 우리만이라도 위처럼 보고 읽자. ㅎㅎㅎ^^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