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들의 행패를 피해 머나먼 블라디보스토크로 온 강수는
그곳에서 일본이 강제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 고종 황제의 비밀 지령을 받은 특사들을 만나는데…….
일본인의 행패를 피해 머나먼 블라디보스톡으로 간 강수
‘을사조약’, ‘헤이그 특사’, ‘만국 평화 회의’ 등 암호 같은 말들의 의미는?
어린 동생과 단 둘이 살며 설렁탕 집에서 일하던 열두 살 강수는, 어느 날 일본 아이들이 걸어온 시비에 말려들었어요. 그즈음 강수가 일하는 남대문 시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거든요. 강수는 비록 아이들이지만 괜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 피했지만, 우리나라 음식을 강아지 밥이라며 비하하는 것을 듣고 도저히 참지 못해 일본 아이들을 때렸어요. 그로 인해 강수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요.
머나먼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 한인촌에서 살고 있다는 설렁탕집 아주머니 오빠네로 피신하기 위해서 강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떠났어요. 그러나 도착해 보니 아주머니의 오빠는 이미 돌아가셨고, 가족들도 모두 이사가고 없었어요. 졸지에 이국 땅에서 혼자가 된 강수.
절망에 빠진 강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었어요. 강수는 진구네의 도움으로 김철만이라는 어르신 댁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김철만 어르신의 집 별채에는 많은 손님이 오갔어요. 중국이나 만주, 러시아 곳곳에서 와서 몇 날 며칠씩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성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어요. 이준이라는 분이었어요. 강수는 차 시중을 들며 어른들이 은밀히 나누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귀동냥하게 되었지요. ‘을사조약’, ‘고종 황제’, ‘러시아 황제’, ‘헤이그 특사’, ‘만국 평화 회의’, ‘일본’, ‘내탕금’ 등 암호와 같은 말들이 자주 들렸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아주 심각하고 어둡기만 했어요. 강수는 무슨 말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어렴풋이 어른들이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고종 황제의 비밀 지령,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려라!”
그리고 얼마 뒤, 이번에는 북간도에서 이상설이라는 손님이 오셨어요. 그런데 강수는 그 분을 보고 그만 뒤로 자빠질 만큼 놀랐어요. 2년 전, 동주 형을 따라 간 종로통에서 본 사람이었거든요.
그날 강수를 다급하게 찾아 온 동주 형이 함께 종로로 가자면서 말해 줬어요. 우리나라하고 일본이 무슨 조약을 맺었는데, 그게 일본이 총칼을 앞세우고 강제로 맺은 조약이라고 했어요. 우리 조선한테는 엄청 불리하고 일본에게만 유리한 조약이었는데, 충신 민영환 선생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자결을 하셨대요. 그 소식이 퍼져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종로통으로 몰려와 시위를 하고 있대요.
서둘러 동주 형을 따라간 종로 한복판에서, 누군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목소리를 돋워 연설을 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분노에 찬 연설 끝에 일본과 맺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에 죽음으로 맞서겠다면서 바닥에 머리를 마구 찧으며 울부짖었어요. 그 사람이 바로 이상설이었어요.
알고 보니 이준, 이상설 두 분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 황제의 비밀 지령을 받은 특사들이었어요. 두 분은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세 번째 특사인 이위종과 만나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어요. 그곳에 온 각국의 대표들에게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서였어요. 한시 바삐 떠나야 했지만, 한성에서 오기로 한 여비가 도착하지 않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밭일 등을 하며 여비를 모으고 있는 거였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강수는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불덩이 하나가 들어간 듯 알 수 없는 불꽃이 일었어요. 나라가 없으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다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라를 위해 그토록 애쓰시는 분들을 보며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지요. 그리고 비록 어리지만, 자기도 뭔가 우리나라를 위해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특사들이 헤이그로 떠나는 날, 강수는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나섰어요. 특사들의 손발이 되어 돕고 싶다고요. 강수의 간곡한 청에, 특사들도 허락했어요.
세 명의 특사들과 강수는 무사히 헤이그에 도착해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그곳에서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전 세계에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려는 시도,
그리고 주권 회복을 위한 시도 ‘헤이그 특사 파견’
우리나라 역사를 읽다 보면 속상할 때가 참 많아요. 을사조약으로 일본에게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긴 후, 그 부당함을 알리려고 고종 황제의 비밀 지령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특사의 이야기는 더욱 그래요.
1905년 11월, 을사조약으로 일본은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어요. 외교권이 없다는 것은 주권이 없다는 것으로, 일본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다른 나라와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도 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고종 황제는 조약 체결 뒤에 황실 고문 헐버트에게 위협과 강요로 맺어진 을사조약은 무효라며, 이 뜻을 전 세계에 알리라고 전했어요. 그리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명의 특사를 보내기로 했어요. 회의장에 나가 세계 열강들에게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의 다음 목적은 대한 제국을 통째로 빼앗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어요.
갖은 고생 끝에 특사들이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했어요. 특사들은 회의장 밖에서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안간힘을 썼어요. 우리의 입장이 담긴 공고사를 나눠 주고, 연설을 하고, 신문에도 기사를 실었지만 안타깝게도 회의장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어요. 결국 울분과 분노를 이기지 못한 이준은 헤이그의 낡은 드 융 호텔에서 순국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일본은 이상설에게는 사형을, 이위종에게는 무기징역을 내려 두 특사는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요. 또한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은 고종 황제를 폐위시켰어요.
나는 헤이그에서 안타깝게 죽은 이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지금은 수이푼 강가에 유허비로만 남은 이상설, 러시아 곳곳을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던 이위종, 세 특사의 이야기를 많은 어린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어요.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대한 제국의 입장을 전 세계에 알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진정한 애국자들이라는 걸 말이어요. 또한 세 특사 못잖게 앞장서서 특사들을 도와주고 ‘제4의 특사’로 불리는 헐버트 박사도 말이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아마 을사조약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헤이그 특사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어린이들도 많을 거예요. 그저 무기력하게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알고 있는 어린이도 있을 거예요.
물론 고종 황제의 헤이그 특사 파견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 세계에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고 우리나라가 주권 회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어요.
이 책을 읽고 그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아 주세요.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의 역사를 잘 알아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가깝지만 먼 〈근현대사 100년 동화〉 시리즈]
〈근현대사 100년 동화〉는 가깝지만 먼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동화로 담은 시리즈예요. 잘 몰랐지만 꼭 알아야 할, 알고 난 후에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우리 근현대사의 10가지 사건을 소개하지요. 지금의 우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사건들을 통해 과거를 바로 보고, 현재를 다시 보아요. ‘역사 탐구’ 코너를 통해 동화에서 다룬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는 것도 잊지 말아요.
●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녹두밭에 앉지 마라》
●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고종 황제의 비밀 지령》
● 1919년 3·1 운동 《3·1 운동 일기》
● 1923년 관동 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괴물들의 거리》
● 1943년 일제 강제 징용 《지옥의 섬, 군함도》
● 1948년 제주 4·3 《동백꽃, 울다》
● 1950년 6·25 전쟁 《대나무에 꽃이 피면》
● 1960년 4·19 혁명 《4월의 소년》
● 1970년 전태일 열사 사건 《11월 13일의 불꽃》
●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이토록 푸른 오월에》
[차례]
작가의 말 4
쫓겨 가는 강수 9
낯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4
드디어 일자리를 찾다 36
이상설을 만나다 49
개척리 한인들의 따뜻한 손길 66
이위종을 만나다 78
헤이그에 도착한 특사들 95
끝내 열리지 않는 문 117
제4의 특사 헐버트, 헤이그에 오다 133
떠나는 특사들 140
역사 탐구 157
[작가 소개]
▶ 글 이규희
성균관대 사서교육원을 나와 오랫동안 사서 교사로 일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좋아하며 고궁이나 박물관을 즐겨 찾곤 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어린 임금의 눈물》, 《왕세자가 돌아온다》, 《왕비의 붉은 치마》, 《장진호에서 온 아이》, 《대한제국이 사라진 날》, 《사비성을 지키는 아이들》, 《악플전쟁》, 《열한 살의 벚꽃엔딩》, 《신비한 문방구》 등 100여 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주홍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 그림 정진희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으며,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쿵쾅! 쿵쾅!》, 《미술관 가는 날》, 《분홍 아이》, 《수상한 캠핑카》, 《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너와 내가 괴물이 되는 순간》,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