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하늘이 청명하다. 허공이 하 맑아 깨끗이 닦은 사기그릇처럼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다.
나는 동네 숲에 앉아 해바라기 한다. 어디선가 ‘소녀의 기도’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라 너무 반가웠다.
수십 년 전 자주 듣던 음악이다. 나 어렸을 때 피아노 소리는 부잣집 창문에서나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도 피아노가 딱 한 대만 있었다.
나는 옛날 학창시절이 생각이 났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일 때 점심시간에 ‘소녀의 기도’ 음악이 흘러나오면 점심 먹다 말고 강당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들으며 마음이 마냥 행복 했었다.
교정에서 이 음악을 들으면 맑고 빛나는 허공에 은구슬이 구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선율로 씨가 싹트고 꽃이 벙글고 연두빛 나뭇잎에 이슬이 내려앉는다고.
그러면서 작곡자, ‘바다르체프스카’는 어찌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 마력 같은 곡을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작곡할 때 마음에 티 하나 묻지 않았을까? 순수한 생각만 했을까? 이 곡을 만드는 동안 이슬만 입에 머금었을까? 생각했었다.
지금도 나는 백 번을 들어도 좋다. 나이 들어도 감성은 여전한지 예나 지금이나 호소력 짙은 절묘한, 예쁜 소리로 가슴이 설레인다.
요즘 늦게 피아노를 배운다. 바이엘 상권을 떼려 하니 손의 관절이 안 좋아 쉬고 있다. 옛날 방에는 큰 피아노가 있었는데 먼지를 매일 훔치며 왜 배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도 그 때 배웠으면 어설프게라도 이 곡을 직접 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후회스럽다.
인터넷 펌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다 피아노 치는 청춘의 손을 본다. 손이 정말 예쁘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얼른 내 손을 감춘다. 옛날에 나도 누구 못지않게 손가락도 길고 예뻤는데. 별안간 슬프다.
그런데 피아노 소리는 부드럽게 귓바퀴에 감기고 눈을 감긴 다음 마음에 스며든다. 그러자 이 아름다운 소리가 신의 말씀으로 들린다. 아직도 감성은 늙지 않아 음악을 아름답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나는 쭈그러진 손을 매마진다. 그리고 피아노를 열고 조심스레 건반을 만진다.
그래 살살 다시 시작하자. 이 세상에 해보자는 생각은 할 수있다는 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늘진 늦가을 만년 소녀 얼굴에 눈물 대신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
첫댓글 글을 읽다보니 잔잔한 미소가 번지네요.
아직도 소녀이십니당~
선배님, 감사합니다~여전히 소녀 감성이셔요~늘 건강하세요~
낭만선배님 닉처럼 어쩜이리도 고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