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 길의 의미(출 5:1-9절)
이선규 목사 설교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드디어 애굽땅에 들어가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소개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절기를 지킬
것이라고 분명하게 전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는 세상 임금인 사단의 모형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아
무 의심 없이 기들의 무덤의 벽돌 만드는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오늘 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 우리의 고집인 인간 본성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결국 바로 왕의 아들이 죽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 보냈던 것은 우리들의 본성이
골 고 다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믿음으로만 의인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완악한 그의 행동을 통해 멸망 받을 자의 몇가지 특징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백성을 보내라는 모세의 말을 듣고 바로는 네가 말하는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네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고 2절 햇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분의 명예를 손상 시키려는
교만한 태도 입니다.
하나님께 멸망받을 자의 태도가 바로 이와 깥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불렛셋의 장수 골리리앗을 보아도 바로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멸망
받을 자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 했던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 (요18:38)라는
비소적인 물음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을 의지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 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유념치 않고 눈앞의 현실에만 급 급해합니다.
모세는 재차 바로에게 백성들을 보내 줄 것을 요청 했습니다 (3절 ) 그러나 완고한
바로 는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려느냐? 거기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핏발 서 린 말로 대답 합니다.
바로는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권에만 몰두 하
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그들은 대 홍수 직전에 노아의 경계를 듣고도 현실적 쾌락에만 몰두하여 노아를
비웃던 노아 시대의 사람들 처럼 또한 소돔성에 거하던 롯의 사위나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 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간 것처럼
현실 문제에 온 신경을 기울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이 여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결국은 어떠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해 모두가 멸망 하고
말 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멸망 받을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5:24-25) 오히려 그 말슴을 비웃고 귀를 닫은채 자신의 현실적 문제에만 집착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러한 분은 없으십니까?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도 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무관하게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을 보십시요 모세의 말을 듣던 바로는 급기야 그 말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백성에게는 전보다 고역을 더욱 무겁게 하였습니다.
(9절 )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 방법으로서 그 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더욱 모질게
핍 박 하였던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성도를 핍박하는 악인들이 비록 세상에서 핍박을
하면 할 수록 성도는 더욱 강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을 떠 날 준비를 하 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왕이 바로 이스라엘을
보냈더라면 그들은 생각하기를 바로 왕이 허럭해서 우리가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니다.
(벧전5;8)
그러므로 성도에서 핍박을 받을면 받을 수록 낙망하지 맙시다
오히려 악 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성도에 대한 그 분의 구원이 가까왓음을 알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한 것은 3일쯤 가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기 위함 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는 3일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로 인하여 전보다도 심한 박해와 고역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3일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3일에 대한 기사가 여러번 나옵니다.
(창22:4) 삼일재 되던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있는 그곳을 보고 아브라함은
사랑 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기 위해 3일 길을 간 최초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3일 길의 신앙을 통해 자기가 사랄하는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 하
는 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3일 길 신앙을 통하여 복의 근웡이 되 고 3대 종교의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의 신앙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3일 (창31:21-22) 요셉의 3일 (창42:17-18)
요셉의 3일 요나의 3일 (욘3:30) 호세아의 3일 (호6:2)
예수님의 3일 예언입니다. (마17:23) 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나 그가 셋 째날에
다시 일으 키리라. (마17:22)
삼일깅로 가야 하는 이유
하나님 자신의 강력한 손길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되 인간의 자율적인 행위에 의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 드리는 경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하신 규범에 의해 드려야 참된 경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그 분의 말씀 듣는 것을 더 좋아
한다 고 하셨고 순종이 제사보다 낳다고 말씀 하셨습1니다. (삼상 15:22)
바른 경배를 드리 위해서 입니다. (출5:30)
3일 여정을 가서 하나님게 희생을 드리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심입니다. 제 3일 여정을 통해 본 세 종류의 경배자 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하루길 간 사람
(애굽의 경내) 이 사람 들은 이집트에서 떠나기는 했지만 홍해를 건너 지 못했기
때문에 애굽 경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 한자의 모형입니다.
애굽 경내의 경배는 바로왕이 원하는 경배입니다.
바로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되 멀리는 가지 말라 (출 8:25 2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고기와 수확을 얻기 위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 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큰 고기는 물이 깊은 곳에 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물이 깊은 바다로 가야합니다.
하나님께 참된 경배에도 깊은 감사 깊은 말씀 깊은 기도 깊은 찬양이 수반 되어야
합니다.
(2 )이틀 길을 간사람 입니다.
이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기는 했지만 광야 초기에 원망과 불평을 일삼고 애굽을 동경하는
과거에 머문 사랍 들입니다.
이들은 나중에 우상 숭배와 간음 죄 등 범죄로 인해 경배에 실패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 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광야를 통과 할 때 마다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닥칠 때마다 불신앙
이것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고 하 였습니다. (고전 10:7-11)
3. 3일 길을 간 사람입니다.
3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바로 왕의 술책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많은 신자들이 이 사단의 4대 술책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른 경배를 드리지
못하는 중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의 여정이 약3일 길이됩니다.
3일 여정을 마친 후에 경배 드린 자들은 신령과 진리로 3일 여정을 마친 후에 드린
경배 는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린 자의 모형입니다.
(요4:24) 그러am로 우리는 3일 길을 가기에 피곤하고 고난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게 바른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성도의 좁은길 입니다.
4. 3일 길을 가는 비결 입니다.
3일 길으 가기 위해서는 바로와의 4대 술책 을 거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바른 경배를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술책이기 때문 입니다.
이 사단의 술책을 이긴 자만이 애굽을 탈출하여 3일 여정을 갈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바로와 같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성도를 업신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헌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기도 합시다. 불상한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리고 어떤 조
롱과 멸시를 받더라도 견딜 수 있는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니다
그리고 3일 길을 묵묵히 걸어가 가나안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