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MBC 축구해설위원인 서형욱씨(28)는 축구계에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축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계에 입문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입문한 것이 아니라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이 자리에까지 오르게된 보기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축구계에 뛰어들려면 언론사 시험을 통해 기자가 되거나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는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인터넷 축구 웹진을
거쳐 신문사 기자, 그리고 축구해설위원의 영역까지 진출했다. 그야말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축구팬이었던 서형욱씨는 98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계기로 본격적인
축구 매니아가 되었고, 이후 PC 통신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의 시삽으로
활동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국내 최초의 해외축구 웹진 <토탈사커>를 만들었고, 이 웹진은 해외축구 소식에 목말라했던 많은 축구팬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토탈사커를 통해 역량을 키운 서형욱씨는 SBS 축구채널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해설을 맡으며 방송계에 데뷔했으며 이후 메이저 스포츠紙인 굿데이에
입사, 축구기자로서 활동했다. 현재는 굿데이를 퇴사, MBC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등 축구계 일선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서형욱씨가 직접 밝히는 '축구 매니아에서 시작해 스포츠지 기자, TV 해설위원까지의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겪었던 애로사항' 등에 관한 인터뷰이다.
-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에는 일반적인 축구팬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축구팬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축구에 빠지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98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예선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였고 월드컵 예선에 최초로 홈 & 어웨이
방식으로 열렸는데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것이다.
- PC 통신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를 통해 본격적인 축구 매니아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안다.
위에서 밝혔듯이 98월드컵 아시아예선 이후부터 관심을 갖고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98월드컵이 끝난 뒤인 98년 말에 PC 통신 나우누리의 모임 만들기라는
코너에 유럽축구 동호회를 만들자는 제의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재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동호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글이 있어 참여하게
됐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였는데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운영진으로 참여, 체계적으로 회원들을 모았다.
나와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신기한 생각도 들었고,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가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되었다. 그 전에는 좋아하는
선수나 팀을 위주로 챙겨보곤 했는데 그 때부터는 전체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
유럽 4대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으니까 자주 만나서 축구 이야기하고, 공도 직접 차고 그러다 보니 더욱 축구에 빠지기 시작했다.
-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
유럽축구 동호회를 만들고 나서 처음 느꼈던 것은 나는 축구 매니아가 아니었구나라는 것이었다.(웃음) 일반인들이 볼 때는 내가 축구 매니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임에 나가보니까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더라.(웃음)
나 같은 경우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관심을 갖고 있는데 반해 특정팀이나 선수를 집중적으로 좋아하는 회원들의 경우 그 팀의 정말 세세하고 전문적인 부분까지도 꿰차고 있었다.
초창기 에피소드를 하나 말해본다면 처음에 정기모임을 갖는데 1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전략을 구상한 것이 여자 회원 하나를 운영진에
임명해서 무조건 나오게 했고 이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랬더니 다음 정기모임에는 30명이 나오더라.(웃음)
이 동호회를 통해 느낀 부분이나 의의를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뭔가 사람들이
모여서 '나만 이것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라는 것. 나우누리 해외축구 동호회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 보람이 있다.
이 동호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축구 웹진이나 이런 쪽으로 많이 진출도 했고, 무엇보다 흩어졌던 해외축구 매니아들을 뭉치게 해서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 그 당시에도 축구 쪽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나?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그래서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했던 것이고. PD나 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운 좋게 일이 잘 풀려서 자연스럽게
축구 쪽에서 일을 하게 됐다.
- 국내 최초의 해외축구 웹진 <토탈사커>를 만들었는데,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을 이야기해달라.
당시 우리 동호회에서 활동하시던 분 중 한 명이 스포츠러브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 회사 사장님이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분이셨는데 나우누리 유럽축구 동호회가 활발한 활동을 보이자 동호회 자체를 스포츠러브 내로 옮겨서 운영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의하셨다. 그 때 마침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해외축구 전문 웹진을 만들어보는 것이어서 제의를 했고 그 쪽에서도 해보자고 해서 1999년 12월부터 시작했다.
시작해보니 반응이 괜찮았고 스포츠러브에서도 제대로 해보자고 제의해서
2000년 2월에 본격적으로 웹진을 운영했다. 당시 유럽축구 동호회 출신인 소순배씨와 신우식씨, 그리고 내가 웹진을 꾸려나갔고 객원 필진들도 몇 명 가세했었다.
나 같은 경우 2000년도 학기를 휴학하고 약 9개월 정도 토탈사커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그 당시는 해외축구 웹진이란 것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내 개인적으로도 얻은 것도 많았고 훗날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되었던 시절이다.
- 그렇다면 토탈사커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뭐 언젠가 누가 했어도 했겠지만 최초로 해외축구를 전문으로 하는 웹진이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동호회 출신의 축구 매니아들이 모여 동호회 스타일의 글쓰기를 선보였다는 점, 즉 기사체가 아니라 주관적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해외축구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토탈사커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되었고, 흩어져 있던 매니아들의 관심을 모이게 해서 층이 넓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결국 이후 다른 사이트들이 나오게 한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시간이 지나면서 토탈사커 필진들이 점점 떠나갔고, 본인도 떠나게 되면서 사실상 문을 닫게 됐는데.
나는 일단 들어갈 때 그 쪽 직원으로 들어갔으니까 소정의 급여를 받았었고,
글쓰시는 분들께도 원고료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그 사이트가 돈을 버는 사이트가 아니었고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급여나 원고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계속 글을 부탁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나와 소순배씨
정도만이 글을 쓰는 상태였다.
이후 내가 굿데이에 입사하게 되면서 관리를 못하게 되니까 사이트는 거의 정지상태였고, 회사쪽에서도 급여를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기존 필진들도 모두 나오고 하면서 토탈사커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 토탈사커를 나와 스포츠紙 굿데이에 들어갔는데.
당시 4학년 1학기라 언론사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인데 굿데이가 창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공채로 들어가기에는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생각해 되든 안되든 해보자는 생각에 경력으로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굿데이 측에서 일단 일간지 경력이 없으니까 경력으로는 힘들겠고 공채로 들어올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름대로 내 경력을 평가해준 것이다.
- 일반적인 코스와는 달리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웹진을 통해 굿데이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질감 같은 것은 없었나?
이질감 같은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조직에 들어가면 내가 가장 막내가 되기 때문에 순응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당시 공채를 뽑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언론사 시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었다.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서류통과한 사람들끼리 모아놓고 직접 취재를 시켜서 선발했다. 당시 들어온 사람 중에는 나 말고도 이런저런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형욱씨/sportal
축구부 역시 분위기도 좋았고, 내 경력들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줬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일부에서는 내가 웹진 출신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쪽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인터넷 뒤져서 기사 쓰라고 월급 주는 것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웹진에서야 여건이 안되어서 그랬지만 여기에선 현장취재를 위주로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나에 대한 선입견을 약간 가지고 있는 듯 해서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 밖에서 본 스포츠紙와 안에서 직접 겪은 스포츠紙는 또 달랐을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스포츠지든 일간지든 목표는 특종이다. 특히 스포츠지는 1면
경쟁이 치열하다. 일간지의 경우 배달이 판매부수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스포츠지는 판매량의 절대적인 부분을 가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 손에 집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기사가 나오게 된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신입으로 들어가 스포츠지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도 그런 분위기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편집회의가 있으면 나 역시도 약간 부풀릴 수 있는 아이템을 제시하게 되곤 했으니까.
왜냐하면 회사 안에서 쓰는 아이템이 있고, 쓰지 않고 버리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회사가 원하는 아이템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 역시
기존의 패턴에 따르는 기사를 쓰고 아이템을 만들게 되었다. 외부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든 간에 내부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그 시스템에 동화되는 것이
있다. 그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들어가든 스포츠지의 시스템을 크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 그 과정에서 마음고생도 컸을텐데.
사실 스포츠지에 합류했다는 것은 그런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고, 어차피 들어갔으면 인정을 받아야하지 않겠나. 특히 신입
시절에는 자신도 모르게 순응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6개월 정도 별다른 생각
없이 열심히 하고, 가라는데 가고, 쓰라는 것을 썼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다른 부서는 모르겠지만 축구부는 민주적이었다.
내가 생각해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이 지켜졌고, 특별한 불만 없이 만족스럽게 생활했다.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웃음)
그런데 월드컵을 거치고 축구붐이 일어나면서 다른 스포츠지와 경쟁이 붙어서
그런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았다. 스포츠지 전체가 김남일의 사생활, 송종국의
열애설 등 축구 외적인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났던 것은 설기현 기사 때문이었다. 포커스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잡혔든 어쨌든 간에 언론은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되는데 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나는 터키의 갈라타사라이가 설기현에게 영입제의를 했다는 정보를 얻어
데스크에 이야기를 했더니 설기현에게 확인해보고 기사를 쓰라고 했다. 설기현과 전화통화를 했고 설기현은 "그런 이야기를 벨기에 신문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이미 팀에서 거부한 것으로 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기사를 썼는데 다음날 신문을 보니 1면 메인에 '설기현, 터키
간다'라는 제목과 함께 내 이름으로 기사가 올라가 있었다. 기사내용엔 설기현이 터키 간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는데 제목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기사내용은 위에서도 함부로 고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문투를 바꿀 수는 있어도 내용
자체는 고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는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제목만 기억하니 졸지에 나는 '뻥기사를 쓴 기자'가 되어 있었다. 항의메일도 많이 왔었다.(웃음)
물론 이런 부분들이 문제라는 것을 스포츠지 사람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알아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고, 그런 입장에 대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 그런 문제들이 굿데이를 퇴사하게된 이유였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부분들이 내가 퇴사하게 된 이유는 아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월드컵 당시 TV 해설 등의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고, 잉글랜드 유학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내 자신이 보다 충실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또한 일을 하다보니 애초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없어질 것 같았다. 더 있으면 내가 하고 싶어했던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남아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스스로 여러 생각을 했지만 회사 사람들과는 그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갑자기 떠난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축구부 사람들과는 아직까지도 계속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기 때문에 굿데이 기자 생활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은
없다.
-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람있었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행복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직업이 됨으로써 잃는 부분도 있다.
내가 쓴 기사가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줬을 때의 만족감, 평소 동경하고 좋아했던 선수들과 직접 만나고, 인터뷰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보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축구계의 뒷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웃음)
다만 일로써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축구 자체를 편하게 즐길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경기를 끝까지 음미하면서 보고 싶은데 경기 도중에도 취재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야하고, 경기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내려가서 취재를 해야하는 등...
- 선수 중에는 특별히 차두리와 친하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차두리 선수는 KBS 최승돈 아나운서의 소개로 알게됐다. 2001년도에 최승돈
아나운서가 축구 관련 책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책 안에 들어갈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와 KBS 이재후, 최승돈 아나운서, 차두리, 이천수 5명이 만났었다.
다른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난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다.(웃음) 그러다가 문득 두리가 해외축구를 좋아한다고 그랬던 것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서로 말이 술술 나왔다. 두리도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국내에
해외축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둘이서 바이에른 뮌헨이 어떻고, 이런저런 축구 이야기를 신나게 나눴다. 당시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둘이 한참 해외축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천수가 끼어들더니 "두리형이 해외축구 정말 많이 알아요. 베컴 성이 데이빗이란 것도 안다니까요"라고 말해서 좌중을 웃긴 바 있다.(웃음)
서로 연락처 교환하고 나중에 명동에서 만나 갈비도 뜯고 그랬다. 당시 두리가
무명시절이었던 터라 만날 때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좋았다.(웃음)
그 뒤에 두리가 코스타리카전에 골을 넣고 월드컵에도 출전하고 그러면서 유명세를 타자 회사에서는 내가 두리와 연락이 되는 것을 아니까 압박이 들어오기도 했다.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과 일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 능력 있는
기자들은 그것을 잘 조절한다. 그러나 난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남들이 다
쓰는 기사밖에 쓰지 않았다.
두리가 A매치 첫 골을 터트렸던 코스타리카전은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경기였다. 두리는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에 내려온 나를 보더니 포옹을 하면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기자생활하기를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사소하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이야말로 기자생활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스타일이 아니고, 안면은 없지만 기자라는 신분을
내세워 선수들과 인터뷰하고 그러는 서글서글한 성격이 아니라 사적으로 친한
선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두리가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형욱, "축구 매니아에서 시작해 기자, 해설위원까지"②
월드컵 이탈리아전을 하루 앞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인자기와 함께
- 이제 방송 이야기를 해보자. 2000년 SBS 축구채널을 통해 축구해설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설을 하게된 계기가 있다면.
2000년에 SBS 스포츠채널에서 유로 2000 전 경기를 생중계했었다.
그 당시 스포츠채널 관계자가 토탈사커를 보고 방송에 필요한 자료들을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고 유로 2000 전문 사이트를 만들고 있었던 우리는 자료를
제공해주면서 방송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 이후 SBS 축구채널이 9월에 생기면서 전화가 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1주일에 2번 중계하는데 해설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하냐고 거절했는데, 주위에서 해보라고 종용했고 나 역시도 다시 생각해보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축구채널에서도 1주일 정도 해보면서 영
아니다 싶으면 알아서 뺄테니 부담 없이 하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월드컵 예선, 이탈리아컵 등을 중계하는 등 정기적으로 방송을 하게
됐다. 그런 와중에 굿데이에 입사하면서 회사 방침에 따라 그만두게 됐다.
- 그 이후 MBC에서 방송활동을 재개하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SBS 스포츠채널에 취업해서 방송을 더 이상 못한다고 이야기한
2-3일 뒤에 MBC에서 연락이 왔다. <월드컵 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해외축구 섹션 패널로 참여할 수 있는지 물었다. 회사에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해서 다시 방송활동을 하게 됐다. 굿데이가 신생사이다보니 홍보를 위해 공중파 방송 출연을 허락한 것이었다.
<월드컵 스페셜>에 고정 출연하고, 겨울에 챔피언스리그를 중계하면서 계속적으로 MBC와 인연을 이어갔다. 월드컵 기간에는 일본에서 벌어졌던 조예선 몇
경기를 중계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얻기도 했다. 당초 MBC에서는 일본에서 열린 조예선 경기를 모두 소화해주길 원했는데 회사가 허락하지 못해 5일 동안만 머물렀던 것이 다소 아쉽다.
그 뒤에 내가 굿데이를 그만두자 MBC에서 정식계약을 하자고 해서 1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 자신의 해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람들이 졸립다고 하면서 심야 중계에 적당한(?) 해설이라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좋게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은 차분하고 분석적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차분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분석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용조용하게 튀지
않고 무난하게 정보 위주로 해설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할까. 요즘에는 나름대로 생각해서 선수 정보 위주가 아닌 전체적인 부분을 전달하려고 노력중이다.
굳이 장점을 말해본다면 틀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해설의 여러 요소 중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장점이라고 말하기에 좀 그렇다.
해설 스타일 자체도 시청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고, 아직까지는 방송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고 어색한 면이 있다. 극적인 골이 들어갔을 때도 마음은 흥분되는데 말이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웃음)
- 다른 해설가들과 본인을 비교한다면.
다른 분들이야 모두 몇 십년씩 축구계에 계셨던 분인데 반해 나야 경력이 3-4년에 불과하지 않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해설경력 역시 아직 일천하고.
동생이 내 모니터를 잘해주는데 동생 말로는 만약 차범근, 신문선, 이용수 해설위원과 내가 같은 시간에 같은 중계를 한다면 내 중계를 보라는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한다.(웃음) 모두들 장점이 있고 좋은 중계를 해주시는 분들이라 나와의 비교는 무리이다.
- 케이블 TV에서 방송하는 것과 공중파 TV에서 방송하는 것의 차이는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케이블 TV가 방송하기 더 편하다. 보다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 공중파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선수
정보나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이 유용하다 하더라도 조금 꺼려진다.
시청자들이 "저 사람은 저런 것으로 도배한다"라는 말을 들을까봐...
나름대로 이런저런 연구도 많이 하고, 경기도 많이 보면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아직은 모자라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 한국의 축구해설문화와 유럽의 축구해설문화는 사뭇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해외축구를 중계할 때 한쪽으로는 ESPN의 중계해설도 들려오는데 그들의 해설 멘트는 정말 간략하다. 일반인들은 유럽에서는 중계방송시 전술분석을 자세히 해준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월드컵 직전 심판 워크샵에서 콜리나 심판과 함께
말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으며 선수 이름이나 불러주는 정도이다. 그 선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그것을 화제로 이야기하면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든다. 전술 등에 관한 세세한 분석은 경기가 끝난 뒤 스튜디오에서 패널들을 초청, 분석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설자들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해설가는 시청자들이 경기를 쉽게 볼 수 있도록 맥을 짚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국내에서는 그것을 넘어 경기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분석해서 다른 사람에게
재생산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존재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유럽 시청자와 국내 시청자의 축구에 대한 이해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오프사이드 트랩을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그 부분을 굳이 이야기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만약 황선홍 선수가 상대 수비진의 교묘하고도 지능적인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렸다고 치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일반 시청자들은 "황선홍 쟤는 왜 멍청하게 저러냐"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국 해설자들은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해설방식이 기준으로 자리잡혔기 때문인지 말을 더 많이 해야하고, 선수들의 동작 동작마다 주석을 달아줘야 한다고 시청자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중계하다보면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 대해 시청자도,
아나운서도 부담을 느낀다. 뭔가 말을 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 축구중계에 있어 캐스터와의 호흡도 무척 중요한데, 특별히 호흡이 잘 맞는 캐스터가 있는가?
그렇다. 캐스터와의 호흡은 무척 중요하다. 해설자는 캐스터가 말을 던져주면
그것을 통해 말을 이어가든지 받아치든지 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캐스터가
어떤 말을 던져주느냐가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 같이 했었던 조민호 캐스터(현 스카이KBS)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일단 조민호씨는 연구를 많이 하는 캐스터이며
축구채널부터 시작해 워낙 많은 축구중계를 했기 때문에 여러 해설가들을 두루 만났다. 그러다 보니 상대 해설자의 스타일에 잘 맞춰준다. 나와 호흡을 맞출 때도 내가 어느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고, 경기 전에도 꼼꼼히 체크해서 편하게 이끌어준다. 목소리 톤 역시 좋고.
적시적소에 내가 말하기 편하게 말을 던져주고, 내가 설명하고자 했던 부분을
건드려주는 등 해설자가 자신의 능력을 100% 끌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캐스터이다.
또한 현재 나와 호흡을 맞추고 계신 MBC 김창옥 캐스터 역시 융통성있게 나를 리드할 뿐 아니라 내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주는 편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반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아나운서도 있다. 물론 내가 연륜이 짧고 경력이 일천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줄 수 없으니 그런 경우에는 안타까울 뿐이다.
- 축구중계시 어떤 원칙이 있는가?
일단 방송 중에는 상대가 틀린 말을 해도 바로 받아치면 안된다. 골을 7번 선수가 넣었는데 10번이 넣었다고 한다면 그런 것은 고쳐줘야 하지만, 예를 들어
"저 선수가 어제까지 부상이었는데 나왔네요"라고 이야기를 했을 경우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곧바로 부정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정확성이나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담을 갖고 있어서 한 타임이 지난 다음 "그런데 저 선수 요즘
컨디션이 상당히 좋죠"라는 식으로 돌려서 이야기한다.
- 축구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외축구 매니아와 국내축구 매니아간의 대립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나 역시 해외축구 매니아 출신이지만 일부 해외 축구매니아들의 무조건적인
해외축구 추종 및 국내축구에 대해 무시하는 모습에는 반대한다. 사실 개인이
한국축구를 보지 않고 유럽축구를 보겠다는 것은 개인취향의 차이라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한국축구를 폄하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일부 매니아들은 외국 클럽팀의 주전선수들의 경우 일단 우리 선수들보다 무조건 한수 위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예를 들어 이천수는 아인트호벤으로
가도 로벤에게 절대 안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천수가 로벤과의 경쟁에서도 밀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지적응의 문제라는 것이 있고 로벤은 네덜란드에서 키우는 유망주라는
어드밴티지가 있긴 하지만 기량만을 놓고 볼 때 결코 뒤쳐질 것은 없다고 본다.
현재 송종국이나 이영표, 설기현 등의 예에서 보듯이 네덜란드, 벨기에의 명문클럽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도 모두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월드컵 결승전 중계를 마치고 이윤철 캐스터와 함께
한국축구나 K리그를 폄하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경기장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유럽 톱리그에 비해 K리그의 수준이 떨어지는 면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라는 것이 리그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는 것이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가장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경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와 직접 호흡하는
축구는 K리그 아닌가.
- 네덜란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인트호벤 경기를 새벽에 중계하는 것도 고역이겠다. 물론 챔피언스리그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힘들다. 사실 아인트호벤의 경기 중 일부는 보다 빠른 시간에 경기가 잡혀있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MBC나 KBS나 공중파 방송이다보니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송할 수 없어서 새벽으로 시간대가 옮겨졌다.
이것은 스포츠국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서와 협의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아마 아인트호벤-페예노르트 정도의 빅경기라면 황금시간대 중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것을 보면 유럽구단에서도 방송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웃음) 우리의 요구에 맞춰 경기시간을 조절해주니 말이다. 비슷한 예로 페예노르트의 경기가 다른 팀에 비해 빨리 시작되는 것도 일본이나 한국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경우는 동남아,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때문에 아시아쪽 시간대에 맞추다보니 영국 시간으로 보통 일요일 12시
정도의 땡볕아래 경기를 펼치게 된다.
심지어 어떤 경기는 영국 시간으로 일요일 오전 9시, 10시에 열리는 경기도 있다. 아시아 축구팬들을 위해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웃음)
- 잉글랜드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음..6월말이나 7월초에 갈 예정인데 상황이 유동적이라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리버풀에 Football MBA Industry라는 과정이 있고, 강사진도 괜찮다고 해서 계획을 잡고 있다.
사실 내가 축구인 출신이 아니라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내가 해설을 계속 하든,
기자를 하든 간에 내 나름대로 축구계에 기여할 수 있고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쪽에서 경력을 쌓자 생각해서 유학을 생각했던 것이다.
- 축구 매니아로 시작해 스포츠지 기자와 방송해설위원까지 왔다.
부러워하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밖에서 볼 때는 TV에도 자주 나오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돈도 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내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썩 좋은 일만은 아니다.
TV의 경우 차범근, 김주성 위원이 해외에 나가있기 때문에 많이 하게 됐을 뿐이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현재 잉글랜드 유학을 계획하고 있지만 갔다온다고 해도 결정되어 있는 일도 없다.
축구기자나 해설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메일을 많이 받는데, 솔직히 말하면 뭐라 할 말이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이다.
아시다시피 일단 우리나라에는 축구잡지에서 일하는 몇몇 기자를 제외하곤 축구기자가 거의 없다. 스포츠지에서도 돌아가면서 부서를 맡으니까 말이다. 나
같은 경우야 굿데이에 있었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축구만 하고 나오긴 했다. 막판에 하키, 사격 같은 종목도 조금 하긴 했지만.
어쨌든 축구기자가 되는 길 자체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근사치라면 축구
PD나 스포츠 기자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길밖에 없다.
솔직히 나를 부러워하는 시선은 부담스럽고, 또한 되고 싶다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거의 없다. 내가 밟았던 길이 상당히 예외적인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그 쪽 분야에서 최초라고 평가해줬기 때문에 운 좋게 여기까지 온 것이지
무슨 길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길이 있다면 앞으로 축구시장이 확대되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축구
웹진도 보다 상업성있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고, 언론에서도 축구 전문기자를
많이 배치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국내축구시장이 작기 때문에 내가 모범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 계획을 말해달라.
전문적인 축구 저널리스트로 자리잡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언젠가 FC 서울의 구단주 또는 단장으로서 프로축구팀을 운영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웃음)
단기적인 목표라면 유럽에서 축구특파원으로 활동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실현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지금 잉글랜드 유학을 생각하는 것도 유럽에서의 인맥쌓기라는 측면도 있다.
앞에서 말한 그 과정이 유럽 명문구단의 CEO나 단장들이 특강도 많이 하고,
각국의 유학생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훗날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