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복에 나비달린 구두신고 실컷 뽐내던 소녀가 하얀손 쭉 피고 한팔 높이 세워 올리며 벌레리나 되고팠던 늘씬한 아가씨가 이제는 백발노인이 되어 지난 힘들고 괴로웠던 아픔은 잊어버리고 기쁘고 행복했던 추억만 몇개 기억하며 내 자식 손주들만 알아 보는 예쁜 치매로 양로원에서 세월가기만 기다리는 어머니
" 그리 기억을 못 하니 오래 못 사시겠네 " 순간 서운한 표정이 어머니 얼굴에 스친다 " 그냥 13년만 넘겨 사세요 "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 뭐 백살까지 살라고? " " 그럼요 요즘 백세시대 랍니다. 어머니 일기쓰고 나이 계산도 하시니 얼마든지 백살까지 사시겠네요 " 금새 어머니 얼굴에 생기가 솟으며 방그레 웃으신다 그래요 어머니 백수잔치때 내 팔순잔치도 함께해요 하며 꼬옥 안아드렸다
그리움은 홍등이 되어/요양원일기(정구온)
그리움이 총총이 박힌 하늘 아래로 홍등이 춤을 춥니다 바람의 날개짓인양 살랑거리는 홍등은 어머니가 장독대에 심었던 봉숭아꽃처럼 붉디붉고 흔들리는 물결위의 홍등은 조각난 그리움이듯 어지럽습니다
세라복에 나비달린 구두신고 한껏 뽐내던 소녀의 모습도 발레리나꿈꾸던 신여성의 모습도 백발이 된 검은머리처럼 바랜지 오래 오직 기다림하나가 버팀목이 되어 오늘을 견디시는 어머니 " 잘 지내셨어요? " " 너무 오랜만에 왔구나 " " 뭘 며칠전에 왔었는데" "아냐 한달도 넘었어 " 어제 본 아들도 한달이 넘은듯 여겨지고 볼을 부비고 가슴에 포옥 안겨드려도 허기를 채우지못해 늘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일기장에 쓰시는 어머니 홍등이 그리움으로 난무하는 강변에서 어머니를 불러 봅니다 어 머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