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안동의 정자 이야기를 함께 한지도 벌써 20회를 맞이하고 있다. 고산정에서 시작한 물길은 흘러 흘러 하회마을에 다다랐다. 하회마을은 2010년 7월 “한국의 역사 마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씨족 마을이다.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하회마을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면서 마을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결의안에서 “하회마을은 주거 건축물과 정자, 정사, 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전통적 주거 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하회마을은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안동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다녀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적 특성과 공간구성이 잘 드러나 있다.
하회마을의 공간구성을 보면, 마을 길은 방사선과 같이 뻗어 있다. 마을 입구에서 양진당, 충효당으로 통하는 중심도로를 중심으로 골목길은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이 길들을 따라서 주요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을은 중심도로를 경계로 해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는데, 북촌의 대표적인 가옥으로는 양진당과 북촌댁, 남촌의 대표적인 가옥으로는 충효당과 남촌댁이 있다. 이 외에도 주일재, 하동고택, 작천고택, 귀촌종택 등 주요 가옥들이 있으며, 이러한 양반 가옥들 둘레에 상민들의 살림집인 초가가 배치되어 있다. 주요 가옥들은 대체로 마을 부지의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나 각 집의 향이 다양한 것이 하회 마을 공간 구성의 특징이다. 이는 마을이 경사지가 아니라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으로 강과 산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집들은 각각 자신의 입지에 걸맞은 안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지정사(좌)와 연좌루(우)
오늘 찾아가게 될 원지정사는 빈연정사와 이웃하며 북촌에 위치하며 부용대를 바라 보고 있다. 이 건축물은 1573년(선조 6) 서애 류성룡이 홍문관 재직 중 부친상을 당하자 낙향하여 지내면서 건립한 정사이다. 서애는 원지정사를 지은 뜻을 서재로 쓰기 위해서라고 기문에 밝히고 있으며 서재 옆에 누각 건물인 연좌루를 지은 것은 강물을 굽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사 이름을 원지라 한 것은 ‘원대한 뜻’을 지니지 않으면 세상에 나아가 소초小草 노릇밖에 할 수 없으므로 수양을 통하여 원지를 키우고자 하는 뜻이다. 서애는 세상에 나가기 전에는 원지(원대한 뜻)를 품었더라도 마음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막상 세상에 나가서는 소초(자잘한 풀) 노릇밖에 할 수 없으므로 열심히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원지의 약효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원지정사의 의미는 마음을 다스리는 집, 마음을 다스리는 유학 공부를 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 또 서쪽에 있는 산에 원지가 많이 나서 정사의 그윽한 정취를 더욱 돋우어 주고 있어 원지정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하회마을 야경이다. 가운데 검게 보이는 곳이 만송정 솔숲이고 그 너머에 원지정사가 있다.
정사는 화경당(북촌댁) 뒤편에 동남향하고 있지만 조망은 화천 건너편 부용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면 담장에 나 있는 사주문을 들어서면 마당 좌측에 정사가 있고 그 우측 앞쪽에 연좌루가 배치되어 있다. 정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왼쪽에 1칸 마루를 두고 그 오른쪽에 2칸 온돌방을 놓았다. 건물의 정면은 툇마루를 시설하고 마루 전면을 개방하였다. 연좌루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으로 사방을 개방하였다. 계자난간을 돌린 마루 앞으로는 부용대의 절경과 그 좌·우측의 겸암정사와 옥연정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서애 선생의 손자인 졸재 류원지는 하회 16경 중 10경으로 원봉영우(遠峯靈雨:원지봉에 내리는 신령한 비)를 꼽았다. 연좌루에 올라 서쪽을 보고, 멀리 원지봉에 구름 비가 내리니 산이 더욱 푸르러 보이는 광경을 그리고 있다.
아! 먼 것은 가까운 것이 쌓여 나아간 것이요, 뜻은 마음이 가는 방향이다. 상하 사방의 끝없는 공간으로 보나 아득한 옛날로부터 흘러온 지금까지의 시간으로 보나 저 우주는 참으로 멀고도 먼 곳이다. 내 마음이 방향을 얻었고 방향을 얻은 까닭에 완상하는 것이며, 완상함으로써 즐거워하는 것이며, 즐거워함으로써 자연 잊는 것이니 잊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집의 협소함을 잊어버린다는 의미이다. 도연명의 시에 “마음이 세속과 머니, 사는 곳이 절로 한가롭다.”고 하였으니,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 누구와 더불어 취향을 같이할 것이었던가! 무인년 4월 보름 전날에 서애가 쓴 기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옥연정사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노 저어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목가적이다.
원지정사에서 바라본 부용대 원지정사기 |